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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라미(pāramī)는 무엇이고 일상에서 어떻게 쌓아나가야 할까?

작성자위뭇따 vimutta|작성시간23.09.20|조회수32 목록 댓글 0

아비담마에서 본삼매 속행과정을 배울 때, 우리는 종성의 마음에 대해서 배운다.

차례로 준비, 근접, 수순, 종성의 마음이 일어나고 그 이후에 색계·무색계 본삼매에 들어가거나 도와 과의 출세간 마음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종성의 마음에서 빠라미가 부족하면 도과의 마음을 경험할 수 없다.

필자가 궁금했던 것은 이 빠라미(pāramī)를 어떻게 이해하고, 일상에서 어떻게 쌓아나가야 하는 것인지였다.

 

우 실라 사야도께 이 부분에 대해서 여쭈었는데, 답변을 통해 필자가 이해한 것과 필자가 스스로 찾아본 것들을 아래에 공유한다.

부족한 부분은 필자가 사야도의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1.

빠라미(pāramī)는 한국 불교에서는 바라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뜻으로 보자면 '고귀한 일들'이다.

 

보살행이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부처님이 되려는 존재만이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부처가 되기 위한 빠라미를, 아라한은 아라한이 되기 위한 빠라밀을 행해야 한다.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빠라미를 행해야 할 것이다.

 

종류로는 10가지가 있어 다사빠라미요(dasapāramiyo, 십바라밀)라고 칭한다.

다나(dāna, 보시), 실라(sīla, 지계), 넥캄마(nekkhamma, 출리), 빤냐(paññā, 지혜), 위리야(vīriya, 정진), 간띠(khanti, 인욕), 삿짜(sacca, 진실), 아딧타나(adhiṭṭhāna, 결정), 멧따(metta, 자애), 우빽카(upekkhā, 평온)의 10가지이다.

 

 

2.

빠라미가 가지는 공통적인 특성(lakkhaṇā)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고귀한 마음이다.

'내가 아닌 남의 행복과 이익을 챙겨주는 것'이고 '여러 사람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하고 연민과 지혜로써 빠라미를 행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보살은 부처가 되기 위한 대연민과 지혜를 완성해나가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연민과 지혜로 빠라미를 행한다.

 

그러면 어떤 마음으로 빠라미를 하게 되는가?

우 실라 사야도가 말씀하시는 한 가지 키워드는 '고마워서'이다.

 

내가 잘 살기 위해 여러 존재들과 세상의 은혜를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은혜를 갚고, 여러 존재와 세상의 도움으로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하여 세상의 은혜를 갚는다.

 

고맙기 때문에 해주고 싶어서 한다.

이 세상에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가 없는 존재가 한 사람도 없다.

만나는 모든 존재가 내 아버지였던 자이니, 그를 화나게 한다면 내가 아버지를 화나게 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 키워드는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간선업(vaṭṭanissita, 왓따닛시따)과 빠라미가 되는 출세간선업(vivaṭṭanissita, 위왓따닛시따)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vaṭṭa는 회전, 윤회, round of existence를 의미하고 nissita는 '의존하는'의 뜻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지처가 nissaya, 의지하는 조건이 nissaya-paccaya이다.

 

세간 선업은 윤회의 굴레 속에서 계속 돌게 만드는 선업이고, 출세간 선업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선업이다.

무엇이 다른가? '결과를 바라는 마음'이다.

 

세간 선업은 더 좋은 것, 되고 싶은 모습 등을 욕심내서 하는 선업이다.

'이런 좋은 일을 하면 어떤 결과, 과보를 받을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고 하는 좋은 행위이다.

 

수행을 할 때에는 신비롭고 좋은 결과를 바라며 수행을 하는 것이 세간 선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세간 선업은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 닙바나에 인도하는 힘이 없다.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왓따닛시따 선업의 결과는 훌륭한 외모, 좋은 부모, 좋은 집안, 부자, 지위, 명석한 두뇌 등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세간의 결과이다.

 

위왓따닛시따 선업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는 선업이다.

한국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와 같다.

 

고귀함을 결정짓는 것은 세간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 출세간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에 달려 있다.

세간에서는 한없이 바라고 가지려고 한다. 출세간은 놓아버리려고 한다.

 

왜 놓아야 하는가? 잡고 쥐고 가질 만한 것이 아니라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더욱 쉽게 해주는 마음이 앞서 말한 '고마워서' 하는 것이다.

 

은혜를 갚고, 고마운 존재들과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바라는 것이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즐겁고 행복하고 고마워서 받은 은혜를 돌려줄 뿐, 결과를 받고싶지 않다.

 

 

3.

40가지 명상주제 중에는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함(cāgānussatikathā)' 수행이 있다.

cāga는 '선물, 버림, 포기함, 관대함'의 뜻이 있고, anu-sati는 anu(after, along, 따르는)+smṛ(to remember, 기억하다)로 계속해서 생각하고 마음챙긴다는 뜻이다. 

 

빠라미를 행하는 마음과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 마음은 비슷한 부분들이 많다.

참고를 위해 청정도론을 인용한다.

 

(청정도론 제1권 P.526-530)

107.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기를 원하는 자는 자연스럽게 보시에 전념하고 항상 보시하고 나누어주어야 한다. 혹은 처음 닦는 사람은 '지금 이후부터 만약에 받을 사람이 있으면 단 한 입 분량의 덩어리라도 먼저 보시하지 않고 먹지 않으리라'고 받아들여, [수행을 시작한 바로] 그 날 덕이 높은 분들께 능력껏 최대한 보시한다.

그런 뒤 거기서 표상을 취하고 조용한 곳에 혼자 머물러 "이것은 참으로 내게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이다. 나는 인색함과 때에 얽매인 사람들 가운데서 때와 인색함에서 벗어난 마음으로 살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구걸하는 것에 반드시 부응하고, 보시하고 나누어 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A.iii.287)"라고 이와 같이 인색함의 때로부터 벗어난 것 등의 덕으로 자신의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108. 참으로 내게 이득이다: 참으로 내게 이득이고, 장점이다. "[음식을 베풀어서] 생명을 주는 자는 천상이나 인간에 삶을 얻는다.(A.iii.42)" "보시하는 자를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늘 모인다.(A.iii.40)" "좋은 사람들³³³⁾의 법을 따라 보시하는 자는 사랑받는다(A.iii.41)"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세존께서 보시하는 자의 이득을 찬탄하셨다. 반드시 나도 그 이득에 동참하리라는 것이 여기서 뜻하는 것이다.

³³³⁾ "...'좋은 사람들인 보살(bodhisatta)들의 법'이라는 말이다.(Pm.160)"

109. 참으로 큰 이득이다: 이 교법과 사람 몸을 얻은 것은 참으로 내게 큰 이득이다. 왜 그런가? 나는 인색함의 때에 얽매인 사람들 가운데서... 나누어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110. 인색함과 때에 얽매인: 인색함과 때에 사로잡힌.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중생이라 불린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것은 '인색함과 때에 사로잡힌 중생들 가운데서'라는 뜻이다. 인색함과 때는 자기의 번영을 타인과 나누어 가짐을 견디지 못하는 특징을 가졌고, 마음의 본래 투명한 상태를 더럽히는 어두운 법의 일종이다...

112. 아낌없이 보시하고: 관대하게 보시한다.³³⁶⁾ 손은 깨끗하고:³³⁷⁾ 손은 지극히 청정하고. 정성스럽게 자기의 손으로 선물을 주기 위해 항상 손을 씻는다는 뜻을 설한 것이다. 주는 것을 좋아하고: 주는 행위가 주는 것이다. 보시한다는 뜻이다. 그 주는 것을 항상 실천하여 좋아하기 때문에 '주는 것을 좋아하고'라 했다. 구걸하는 것에 반드시 부응하고(yācayoga): 구걸하는 자가 원하는 그것을 보시하기 때문에 구하는 것에 부응한다는 뜻이다. 독송할 때는 야자요가(yājayoga)라고도 한다. 헌공(yajana)이라 불리는 공양에 부응한다는 뜻이다. 보시하고 나누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보시하는 것과 나누어주는 것을 좋아함이다. '나는 보시하고, 또 내 자신이 사용할 것을 나누어준다. 나는 이 둘 모두 좋아한다.'라고 이와 같이 계속해서 생각한다는 뜻이다.

³³⁶⁾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보시한다는 뜻이다.(Pm.160)"

³³⁷⁾ ...이 말은 베풀기 전에 자신의 손을 닦는 인도풍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래서 힌두 전적에서도 관대한 사람이라는 표현에 '손이 늘 물에 젖은 사람'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113. 이와 같이 '때와 인색함에서 벗어난'이라는 등으로 구분한 보시의 덕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얽매이지 않고, 성냄에 얽매이지 않고, 어리석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때 그의 마음은 보시를 의지하여 올곧아진다(A.iii.285)" 이와 같이 앞서 설한 방법대로 장애들을 억압할 때 차례에 따라 어떤 한 순간에 선의 구성요소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이것은 보시의 덕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함이라 부른다.

114. 이러한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 비구는 더 큰 양으로 보시하는 것을 향해 기운다. 탐하지 않는 잠재성향을 갖게 되고, 자애에 수순하며, 두려움이 없고, 희열과 기쁨이 커진다. 더 이상 통찰하지 못한다하더라도 적어도 선처로 인도된다.

 

 

 

참고 문헌: 아신 빤딧짜 사야도, '여래가 오신길 보물산 둘레 길', (사)법승 담마야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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