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뻐함은 4가지 무량한 마음 중 하나로, 남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다.
남의 선업 뿐 아니라 세속적인 성공도 함께 기뻐함의 대상이다.
질투하지 않는 역할을 한다. 타인의 공덕을 본인에게도 똑같이 생기게 하는 유익한 과보가 있다.
청정도론에서 muditā는 따분함(arati)을 제거하면서 나타나고, 따분함을 가라앉힐 때 성취한다고 한다.
필자는 함께 기뻐함의 반대말에 왜 따분함이 나오는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와 관련하여 우 실라 사야도께 질문을 드렸다.
아래 내용 중 부족한 부분은 필자가 사야도의 답변을 잘못 이해한 것일 수 있다.
1.
청정도론에서 muditā 및 arati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 청정도론 제2권 제9장 >
95. 더불어 기뻐함의 특징은 [다른 자의 성공을] 기뻐함이다. 질투하지 않는 역할을 한다. 따분함(arati)을 제거함으로 나타난다. 중생들의 성공을 보는 것이 가까운 원인이다. 따분함을 가라앉힐 때 이것을 성취하고 [세속적인 희열로] 왁자지껄한 웃음을 일으킬 때 실패한다.
...
100. 재가에 의지한 기쁨이 더불어 기뻐함의 거룩한 마음가짐의 가까운 적이다. 성공을 보는 것이 [더불어 기뻐함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재가에 의지한 기쁨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전승되어온다. "눈으로 인지하는 형상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매력있고, 마음을 끌며 세속적인 것과 연결되어있다. 이런 것들을 획득한 것을 획득한 것이라고 여기거나,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기억하면서 기뻐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러한 기쁨을 재가에 의지한 기쁨이라 부른다.(M.iii.217)"
따분함은 [더불어 기뻐함과] 같은 성질인 기쁨과는 다른 성질이기 때문에 먼 적이다. 그러므로 따분함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더불어 기뻐함을 닦아야 한다. 더불어 기뻐함을 일으키면서 외딴 거처나 혹은 지극히 유익한 법들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108. 이 가운데서 ① 자애는 악의가 많은 자를 청정으로 인도하는 도고, 연민은 잔인함이 많은 자를, 더불어 기뻐함은 따분함이 많은 자를, 평온은 애욕이 많은 자를 청정으로 인도하는 도다.
중생들을 마음에 잡도리함은 네 가지가 있으니, 복리(필자 주 - 복리는 hita이며, 이익·축복·좋음·복지 등의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를 가져옴, 불리를 제거함, 성공을 기뻐함, [중립적인] 무관심이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 아들과 병든 아들과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자기의 일에 몰두한 네 아들에 대해, 어린 아들에게는 얼른 자라기를 바라고, 병든 아들에게는 쾌차하기를 바라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에게는 젊음의 행복을 오래 즐기기를 바라고, 자기의 일에 몰두한 아들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갖지 않는 것처럼, 무량에 머무는 자도 모든 중생에 대해 자애 등을 닦아야 한다.
그러므로 청정으로 인도하는 도 등에 따라 무량은 넷이다.
109. ② 이 넷을 닦고자 하는 자는 제일 먼저 중생들에 대해 복리증진을 바람으로 닦아야 한다. 자애는 복리증진을 바라는 특징을 가진다.
그 다음에 복리를 바랬던 중생들이 고통에 압도된 것을 보거나 듣거나 추측하여 그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바람으로 닦아야 한다. 연민은 고통의 완화를 바라는 특징을 가진다.
그 다음에 이와같이 복리를 바랐고, 고통이 제거되기를 바랐던 그들의 성공을 보면서 성공에 대해 더불어 기뻐함을 통해서 그들을 닦아야 한다. 더불어 기뻐함은 기뻐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 다음에는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무심한 상태라 불리는 중립적인 상태로 그들을 닦아야 한다. 평온은 중립적인 상태를 바라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므로 복리 등의 형태로 제일 먼저 자애를 설했고, 그 다음에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의 순서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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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더불어 기뻐함에 머무는 자가 갖가지 기쁨을 가져올 원인으로 인해 기쁨이 일어난 중생의 알음알이를 관찰할 때 더불어 기뻐함이 일어나기 때문에 더불어 기뻐함에 머무는 자의 마음은 알음알이(식)를 이해하는데 친숙해져 있다. 그가 순서에 따라 얻은 공무변처를 초월한 뒤 허공의 표상을 자기의 영역으로 삼는 알음알이로 마음을 가져갈 때 어려움 없이 마음이 그곳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더불어 기뻐함은 식무변처를 위한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해탈의 조건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식무변처가 정점이라고 설하셨다.
...
124. 이와 같이 깨끗함이 정점이라는 등으로 이들의 위력을 알고 난 뒤에 다시 이 모든 것은 보시 [바라밀] 등 모든 선한 법들을 완성한다고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하살(mahāsatta / 필자 주 - mahā(큰), satta(중생, 유정) = 큰 존재, 위대한 존재)들은 중생들의 복리를 소원하고, 중생들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이미 얻은 특별한 성공이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고, 모든 중생들에 대해 편견이 없기 때문에 평등한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사람에게는 주어야 한다, 이 사람에게는 주지 말아야 한다'라는 분별을 짓지 않고 모든 중생들에게 행복의 원인인 ① 보시(dāna)를 행한다.
그들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② 계(sīla)를 지킨다.
그 계율을 원만히 하기 위해 ③ 출가(nekkhamma)를 한다.
중생들의 복리와 불리에 대해 미혹하지 않기 위해 ④ 통찰지(paññā)를 청정히 한다.
중생들의 복리와 행복을 위해 항상 ⑤ 정진(viriya)한다.
최상의 정진으로 용맹스러움을 얻었지만 중생들이 저지르는 여러 가지 과실을 ⑥ 인욕(khanti)한다.
'이것을 주겠다. 이것을 하겠다'라고 한 ⑦ 서원(paṭiñña = sacca)¹⁰⁸⁾을 저버리지 않는다.
¹⁰⁸⁾ 십바라밀에서는 서원 대신에 진실(sacca, 진리)이 나타나는데 저자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복리와 행복을 위해 ⑧ 굳은 결심(adhiṭṭhāna)을 가진다.
그들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⑨ 자애(mettā)로 [그들을] 우선으로 여긴다.
⑩ 평온(upekkhā)하기 때문에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은 보시[바라밀] 등 모든 선한 법들을 완성한다.
어진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지은 청정도론의 삼매수행의 표제에서 거룩한 마음가짐에 관한 해설이라 불리는 제9장이 끝났다.
2.
필자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은 ① '따분함(arati)'과 ② '세속적인 희열로 왁자지껄한 웃음을 일으킨다'는 것에 관한 서술이었다.
먼저 arati의 경우 언급된 대목을 다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따분함(arati)을 제거함으로 나타난다... 따분함을 가라앉힐 때 이것을 성취하고...
...따분함은 [더불어 기뻐함과] 같은 성질인 기쁨과는 다른 성질이기 때문에 먼 적이다. 그러므로 따분함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더불어 기뻐함을 닦아야 한다. 더불어 기뻐함을 일으키면서 외딴 거처나 혹은 지극히 유익한 법들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기뻐함은 따분함이 많은 자를... 청정으로 인도하는 도다.
청정도론에서 따분함의 성질은 '기쁨과는 다른 성질'이며 '따분함의 공포', '불만을 가진다'는 등으로 언급되고 있다.
따분함의 원어인 arati는 a+rati 로 파자된다.
여기서 a는 부정의 뜻을 가진 접두어이고, rati는 애착·사랑·좋아함·즐거움·성교 등의 뜻이 있다.
즉 arati는 싫어함, 불만족, 혐오, 애착없음, 절제 등의 뜻이다.
사야도는 여기에 더해 arati는 혐오하기 때문에 다른 존재와 관계 없이 혼자있는 것임을 일러주셨다.
개인적으로는 arati를 '따분함(boredom)'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싫어함, 불만족, 혐오' 등으로 번역해서 이해하면 muditā의 반대말로 이해하기 쉬웠다.
Muditā는 다른 이의 성공을 내 성공처럼 기뻐하는 마음이다. 당연히 상대에 대해 싫어하고 혐오하는 마음과 함께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Muditā에 대한 설명에서 '세속적인 희열로 왁자지껄한 웃음을 일으킨다'는 것과 관련된 청정도론의 서술은 다음과 같다.
...[세속적인 희열로] 왁자지껄한 웃음을 일으킬 때 실패한다.
...재가에 의지한 기쁨이 더불어 기뻐함의 거룩한 마음가짐의 가까운 적이다. 성공을 보는 것이 [더불어 기뻐함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재가에 의지한 기쁨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전승되어온다. "눈으로 인지하는 형상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매력있고, 마음을 끌며 세속적인 것과 연결되어있다. 이런 것들을 획득한 것을 획득한 것이라고 여기거나,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기억하면서 기뻐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러한 기쁨을 재가에 의지한 기쁨이라 부른다.(M.iii.217)"
사야도는 세속적인 욕심과 muditā가 가깝게 있다는 말을 해주셨다.
Muditā는 세속적인 성공에도 함께 기뻐하는 무량한 마음이다.
세속적인 희열, 재가에 의지한 기쁨은 이 성공이라는 대상에 대해 원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는 자칫 대상에 대해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을까.
이 성공에 대해서 원하고 좋아하여 애착을 일으킨다면 욕심의 마음이 될 것이다.
함께 기뻐함은 중생의 행복과 이익을 바라는 무량한 마음에 속한다.
이 마음부수에 혐오는 멀리 있는 적이다. 싫어함, 불만, 혐오가 있을 때 함께 기뻐함을 일으킬 수 없다.
세속적인 욕심은 가까이 있는 적이다. 남의 성공을 개인적으로 원하고 애착을 가질 때 무량한 마음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