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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의 번뇌가 다하고 청정범행을 닦는 승가 스님들은 보시의 복밭이다.

작성자위뭇따 vimutta|작성시간23.10.20|조회수50 목록 댓글 0

보시 경(A6:37)
dāna-sutta

 

1. ... 그 무렵에 웰루깐따끼의 난다마따 청신녀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 여섯 가지 구성요소를 갖춘 보시를 하였다. 세존께서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으로 ... 그것을 보시고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여섯 가지 구성요소를 갖춘 보시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베푸는 자의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고 받는 자의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그러면 무엇이 베푸는 자의 세 가지 구성요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베푸는 자는 보시하기 전에 마음이 즐겁고 보시할 때 마음이 깨끗하고 보시한 뒤 마음이 흐뭇하다. 이것이 베푸는 자의 세 가지 구성요소다.

그러면 무엇이 받는 자의 세 가지 구성요소인가? 비구들이여, 받는 자는 탐욕을 여의었거나⁸²⁾ 탐욕을 길들이는 도를 닦고, 성냄을 여의었거나 성냄을 길들이는 도를 닦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거나 어리석음을 길들이는 도를 닦는다. 이것이 받는 자의 세 가지 구성요소다.

⁸²⁾ "'탐욕을 여읜 자(vītarāga)'란 아라한을 말한다." (AA.iii.365)

이처럼 베푸는 자의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고 받는 자의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구성요소를 갖춘 보시이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구성요소를 갖춘 보시의 공덕을 재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에게는] 이만큼의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고, 원하는 것 사랑스러움 귀여움 이로움 행복으로 인도한다.'라고 그 양을 재는 것은 쉽지가 않다. 참으로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크나큰 공덕의 무더기라는 명칭이 있을 뿐이다...

4. "보시하기 전에 마음이 즐겁고
보시할 때 마음이 깨끗하고
보시한 뒤 마음이 흐뭇한 것이 보시의 성취니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어 번뇌 다하고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은
제사의 [복]밭을 구족했다고 알려졌노라.

직접 자신의 손으로 헌공하고 보시하는
이러한 제사는 자신과 남에게 큰 결실을 가져오나니
[삼보에] 신심 있고 슬기롭고 현명한 자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이와 같이 제사 지낸 뒤
악의 없는 행복한 세상 얻으리."

- 대림스님 옮김, 『앙굿따라 니까야』, 초기불전연구원(2007)

 

 

보시의 분석 경 (M142)
Dakkhiṇāvibhaṅga Sutta

 

... 2. 그때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한 벌의 새 옷을 가지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 제가 손수 물레질하여 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게 연민을 일으키시어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⁶⁰⁴⁾ ... 세 번째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세존께서는 세 번째에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⁶⁰⁵⁾

⁶⁰⁴⁾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세존이시여, 제가 옷 가게에서 옷을 사서 백 명의 비구에게도 천 명의 비구에게도 십만 명의 비구에게도 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존을 위해 제가 손수 물레질하고 손수 기워서 가져온 것이니 세존께서 받아주십시오.'라고 간청하면서 말씀드렸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세 번 다 거절하셨다."(MA.v.67)

⁶⁰⁵⁾ "그러면 세존께서는 왜 자신에게 보시하려는 것을 비구 승가(bhikkhu-saṅgha)에게 보시하라고 하셨는가? 어머니에 대한 연민(anukampā) 때문이었다. 세존께만 보시하려는 의도(cetanā)를 승가와 세존 둘 모두에게로 향한다면 그 의도는 결합되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MA.v.67)

... 4.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⁶⁰⁷⁾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했다면,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하여 보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⁶⁰⁸⁾

⁶⁰⁷⁾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라는 것은 제자인 사람(antevāsika-puggala)이 스승인 사람(ācariya-puggala)의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MA.v.70)

⁶⁰⁸⁾ "스승을 만나면 인사하고, 그 지역에 스승이 머물면 행동할 때 머리 숙여 인사하고 걷고, 인사하고 앉고, 인사하고 눕는다. 멀리서 스승님이 오시는 것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등 스승에게 적절한 행동(paccūpakāra)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씀이다."(MA.v.70)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갔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갔고 삿된 음행을 삼갔고 거짓말하는 것을 삼갔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 등을 마시는 것을 삼갔다면, ...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법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승가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다면, ...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해 의심이 없다면,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하여 보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5. "아난다여, 그런데 열네 가지 개인을 위한 보시가 있다.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 보시하는 것이 첫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벽지불⁶¹¹⁾에게 보시하는 것이 두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여래의 제자인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이 세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아라한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네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불환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다섯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불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여섯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일래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일곱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일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여덟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예류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아홉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예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탐욕을 여읜 이교도⁶¹²⁾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한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행실이 바른 범부⁶¹³⁾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두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행실이 나쁜 범부⁶¹⁴⁾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세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⁶¹⁵⁾이 열네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⁶¹¹⁾ "'벽지불(빳쩨까 부처님, pacceka-buddha)'이란 스스로 진리를 깨달으신 분을 말한다. 모든 성자들도 스스로 진리를 꿰뚫고 가르침을 스스로 경험하거늘 왜 벽지불을 두고는 스스로 진리를 깨달은 분이라고 하는가? 물론 모든 성자들도 스스로 진리를 깨달았지만 여기서는 그런 통찰(paṭivedha)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제자들은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nissaya-bhāva) 진리를 통찰한다. 다른 이로부터 가르침을 듣지 않고는 예류도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르게 깨달음을 성취한 분(정등각자, sammāsambuddha)은 다른 이들의 의지처가 되면서 진리를 깨닫는다. 그러나 이 벽지불들은 다른 이의 도움도 없고 또한 다른 이를 인도할 능력도 없이 진리를 깨닫는다. 그러므로 스스로(paccekaṃ)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buddhavanta) 벽지불들(paccekabuddhā)이라고 한다."(MAṬ.i.115)

⁶¹²⁾ "여기서 '탐욕을 여읜 이교도'란 업을 설하고 도덕적 행위를 설하면서(kamma-vādi-kiriya-vādi) 다섯 가지 신통력을 갖춘 자를 말한다."(MA.v.71)

⁶¹³⁾ "'행실이 바른 범부(puthujjana-sīlavanta)'란 그의 본성이 소처럼 행동하는 자(go-sīla-dhātuka)로써 속이거나 사기 치지 않고 다른 이를 괴롭히지도 않고 여법하고 바르게 농업이나 상업으로 삶을 영위하는 자이다."(MA.v.71)
즉 마치 소의 원래 품성이 유순하고 속이지 않는 것처럼 삼귀의나 오계를 수지하지는 않았더라도 천성으로 행실이 바른 범부를 말한다.

⁶¹⁴⁾ "'행실이 나쁜 범부(puthujjana-dussīla)'란 어부나 낚시꾼 등 다른 이를 괴롭혀 삶을 영위하는 자를 말한다."(MA.v.71)

⁶¹⁵⁾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양육(posana)하는 의미에서 보시한 것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 조각이나 반 조각 정도 준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개나 돼지나 닭이나 까마귀 등 어떤 것이 가까이 왔을 때 [이 보시가 미래에 나의 이익과 행복이 되기를] 바라면서 어떤 것을 보시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에 해당된다."(MA.v.71)

6. "아난다여⁶¹⁶⁾, 이 가운데서 축생에게 보시를 하면 백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⁶¹⁷⁾ 행실이 나쁜 범부에게 보시를 하면 천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행실이 바른 범부에게 보시를 하면 십만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탐욕을 여읜 이교도들에게 보시를 하면 천억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예류과의 실현을 닦는 자⁶¹⁸⁾에게 보시를 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도니다. 그러니 예류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일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 일래자에게 ... 불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 불환자에게 ... 아라한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 여래의 제자인 아라한에게 ... 벽지불에게 ... 여래·아라한·정등각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⁶¹⁶⁾ 어디에 한 보시가 큰 결실을 가져오는가는 재가자들의 큰 관심이기도 하다. ... 세존께서는 §6에서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오법온을 갖춘 출가자에게 하는 보시가 큰 결실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⁶¹⁷⁾ "이 보시는 백 생 동안 수명(āyu), 아름다운 용모(vaṇṇa), 행복(sukha), 힘(bala), 영감(paṭibhāna)이라는 이 다섯 가지의 이익을 되돌려주고 동요하지 않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MA.v.71)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수닷따 경」(A4:58)과 「음식 경」(A4:59)에는 수명, 아름다움, 행복, 힘의 보시를 통해서 천상이나 인간의 행복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고 나타나고, 『앙굿따라 니까야』 제3권 「음식 경」(A5:37)에는 음식을 보시하면 수명과 아름다움과 명성과 명망과 천상과 높은 가문을 얻는다는 내용이 나타나는데 본경의 이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겠다.

⁶¹⁸) "가장 낮게는 삼보에 귀의한 재가자(tisaraṇaṃ gata upāsaka)도 '예류과의 실현을 닦는 자(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a)'라고 한다. 그에게 보시한 과보도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다. 더 나아가 오계에 확고히 머문 자, 십계에 확고히 머문 자, 사미, 구족계를 받은 비구, 구족계를 받고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자(vatta-sampanna), 위빳사나를 실천하는 자(vipassaka), 위빳사나를 열심히 닦는 자(āraddha-vipassaka)의 순으로 이들에게 한 보시는 그보다 더 큰 과보가 있다. 가장 높게는 도를 구족한 자(magga-samaṅgī)를 '예류과의 실현을 닦는 자'라 한다.
[도(magga)는 한 순간밖에 일어나지 않는데 그런 도를 구족한 자에게 보시를 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위빳사나를 열심히 닦는 자가 가사를 수하고 발우를 들고 마을로 탁발을 간다. 그가 대문에 서 있을 때 그의 손에서 발우를 받아 부드러운 음식과 딱딱한 음식을 넣는다. 그 순간(khaṇa)에 비구에게 도가 일어나면 이러한 보시를 일러 '도를 구족한 자에게 한 보시'라 한다." (MA.v.72)

7. "아난다여, 그런데 일곱 가지 승가를 위한 보시가 있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첫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여래가 완전한 열반에 들고 나서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두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비구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세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비구니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네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와 비구니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도 하는 것이 다섯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하는 것이 여섯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니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하는 것이 일곱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8. "아난다여, 미래세에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삿된 법을 가졌으며 노란 가사를 목에 두른 일족들이 있을 것이다.⁶²¹⁾ 사람들은 승가를 위해 그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보시를 베풀 것이다.⁶²²⁾ 아난다여, 그렇더라도 승가를 위한 보시⁶²³⁾는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⁶²⁴⁾ 아난다여, 개인에게 하는 보시가 승가에게 하는 보시보다 그 과보가 더 크다고 나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⁶²⁵⁾

⁶²¹⁾ "[승가라는 말 대신에] '일족들(gotrabhuno)'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들은 사문이라는 이름만 지니기 때문에 그런 일족이라 한다. ... 집안에 자식과 아내를 두고 농업이나 상업 등의 직업으로 그들을 부양한다."(MA.v.74)

⁶²²⁾ "여기서 '승가를 위해 그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보시를 베풀 것이다.'라고 하셨고, 계행이 청정치 못한 승가(dussīla-saṅgha)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승가가 계행이 나쁘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승가를 위해, 승가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으로 계행이 나쁜 자에게 보시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승가에 하는 보시는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다고 설하셨다. 노란 가사를 목에 두른 승가에 하는 보시도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하셨다. 승가에게 하는 보시는 승가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데 승가를 존중하는 것(cittīkāra)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MA.v.74)

⁶²³⁾ "'승가를 위한 보시'라고 하셨다. 어떤 이는 승가에게 보시를 하리라는 생각으로 시물을 준비하여 승원에 가서는 '스님, 승가를 위해 장로 한 분을 [추천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는 승가에서 한 명의 사미를 추천받고는 '내가 한 명의 사미를 얻었다.'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에게로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에 처음에 승가에게 보시하리라는 생각이] 다르게 나타난다. 그의 보시는 승가에게 한 보시가 아니다. 대장로를 추천받고는 대장로를 얻었다고 기쁨을 일으키면서 한 보시도 승가에게 한 보시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사미건 비구건 신참이건 장로건 어리석은 자건 현명한 자건 어떤 이라도 승가에서 추천받고는 당황하지 않고 승가에게 보시하리라는 생각으로 승가를 존중한다. 그의 보시는 승가에게 한 보시(dakkhiṇā saṅghagatā)이다."(MA.v.74)

⁶²⁴⁾ ... "네 가지 도를 닦는 자들과 네 가지 과에 머무는 자들
이러한 승가는 올곧으며 통찰지와 계를 구족하였노라.
공양 올려 공덕 찾는 생명체들이 재생을 가져오는 공덕 지으려
이런 승가에 보시하면 큰 결실이 있노라."

⁶²⁵⁾ "개인인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dinna-dāna)보다 승가를 대표하여 승가에서 지정하여 준 사람이라면 그가 비록 계행이 나쁘더라도 그에게 보시하는 것이 그 공덕이 더 크다(maha-pphalatara)."(MA.v.75)

9. "아난다여,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있다."

10.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는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지만 보시 받는 자는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이다."

... 13.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도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고 받는 자도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이다.

아난다여, 이러한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이 있다."

14.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스승께서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⁶²⁶⁾
그러한 보시는 보시하는 자에 의해 청정해진다.⁶²⁷⁾

⁶²⁶⁾ "숙련된 농부는 황무지 땅을 얻더라도 적절한 때에 밭 갈고 덩어리를 걷어내고 씨앗을 심어 밤낮으로 보호하여 방일하지 않으면 다른 비옥한 땅에서 얻는 곡식보다 더 많이 얻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계행이 청정한 자(sīlavā)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dussīla)에게 보시를 하더라도 큰 결실(phala)을 얻을 수 있다."(MA.v.76~77)

⁶²⁷⁾ "'보시하는 자에 의해 청정해진다'는 것은 ... 큰 과보(mahapphalā)가 있다는 뜻이다." (MA.v.76)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받는 자에 의해서 청정해진다.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어느 쪽에 의해서도 청정해지지 않는다.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풍성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한다.

탐욕을 끊은 자가 탐욕을 끊은 자들에게⁶²⁸⁾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세속적인 보시 가운데 으뜸이라고 나는 말한다."

⁶²⁸⁾ "'탐욕을 끊은 자가 탐욕을 끊은 자들에게'라고 하셨다. 여기서 '탐욕을 끊은 자(vīta-rāga)'란 불환자(anāgāmī)를 말한다. 아라한은 탐욕을 완전히 끊은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아라한이 아라한에게 하는 보시가 가장 으뜸(agga)이다. 아라한은 존재에 대한 집착과 존재에 대한 바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번뇌 다한 자는 보시의 과보를 믿지 않는가? 보시의 과보를 믿음에 번뇌 다한 자와 동등한 자가 없다. 그러나 번뇌 다한 자가 지은 행위(kata-kamma)는 이미 탐욕을 끊었기 때문에 선(kusala)이나 불선(akusala)이 아니며 더 이상 과보를 가져오지 않고 오직 작용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보시가 으뜸이라고 했다."(MA.v.77)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 니까야』, 초기불전연구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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