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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팔법(lokadhamma)과 yoniso manasikāra를 행하는 방법

작성자위뭇따 vimutta|작성시간24.06.30|조회수24 목록 댓글 0

1. Yoniso manasikāra에 대해서

 

- 여섯 대상과 조우할 때마다 선업이 생겨나도록 올바르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올바른 마음기울임(yonisomanasikāra)이다.

- 수행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매우 거칠고 바라지 않는 쪽으로 달아나 버린다.

- 수행으로 잘 길들여진 마음은 매우 부드럽고 잘 제어되어 있어 마음 둔 곳에만 머문다. 바라는 것을 곧이곧대로 생각할 수 있다.

올바르게 마음기울임

여섯 대상과 만날 때마다 올바른 마음기울임(yonisomanasikāra)만을 생겨나게 해야 한다. 선법이 생겨나도록 올바르게, 여법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누군가 비난을 하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저 사람이] 몰라서 비난하는 것이다. 생각한 대로 함부로 말하는 것은,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이들의 본성(dhammatā)이다. 만약 사실대로 안다면 잘못 비난했다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이 매우 안 좋을 것이다. 내가 지금 비난당하는 것도 잘못이 없는 사람을 비난했었기 때문일 거다. 윤회 윤전(輪廻輪轉)의 빚이 아직 남아 있어 비난당하는 것이니 마음 상할 필요 없다’라는 등으로 올바르게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비난은 모든 사람이 겪는 세간팔법(lokadhamma)¹²²이다. 부처님조차 겪어야 하는 법들인데 하물며 내가 어떻게 겪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세간 팔법들과 만났을 때 마음이 바뀌는 것도 보통 사람들의 일이다. 참는 것은 거룩한 이들, 선한 이들만의 일이다. 나는 거룩한 이들, 선한 이들의 길만을 따라가리라. 부처님께서도 무지막지한 악당들이 자신의 몸을 톱으로 토막토막 내더라도 그 악당들에 대해서 화내면 안 된다고¹²³ 훈계하셨다. 만약 화를 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가 아니라고 하셨다. 지금 비난받는 것은 그 톱으로 잘리는 것보다 당하기에 훨씬 수월하다. 그러니 어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라는 등으로도 올바르게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¹²²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행복함과 괴로움. A8:5; 『앙굿따라 니까야』 제5권, p.69 참조.
¹²³ 『청정도론』 제2권, p.143 참조.

또 다른 방법으로는 ‘비난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성냄을 뿌리로 한 마음과 함께 생겨나는 정신법들, 마음에 의해 생겨난 물질법들일뿐이다. 다섯 무더기일 뿐이고, 물질과 정신일뿐이다. 비난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어떠한 존재는 따로 없다. 그 물질과 정신들도 비난하는 바로 그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지금 화낼 일도 없다. 비난하는 물질과 정신들이 없는데도 그 뒤에 화를 내고 있으면 그 물질과 정신들의 연속된 결과인 새로운 물질과 정신들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마치 부모에게 원한을 가져 그들이 죽은 뒤에 그 아들이나 손자에게 복수를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비난당하고 있는 그대도 다섯 무더기일 뿐이다. 그 다섯 무더기, 물질과 정신들도 바로 지금 사라져 간다. 그러한 물질과 정신의 연속된 결과인 바로 지금 물질과 정신들이 화를 내고 있다면 부모 시대에는 어찌할 수가 없어 아들, 손자, 손녀 시대가 되어서야 복수를 하는 것과 같다’라는 등으로 올바르게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올바르게 생각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방법들은 아주 다양하다. 여기에서는 선업이 생겨나도록 올바르게 마음기울이는 모든 것들이 올바른 마음기울임(yonisornanasikāra)이다... 이상이 숙고함(abhujita)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이렇게 제한함(niyamita) 등을 통해 여섯 문에서 선한 마음만 생겨나게 하면서 감각기능 단속 계를 청정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이에게는 여섯 대상과 만날 때마다 대부분 선법으로서의 새김만 생겨난다. 이러한 새김을 새김단속이라고 한다. 가끔씩 불선법들이 생겨 나더라도 ‘다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렇게 다잡는 것도 감각기능단속 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참회를 함으로써¹²⁵ 범계로부터 청정하게 되는 것과 같다. 원하지 않는(aniṭṭha) 대상과 만나더라도 대부분 참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참는 것을 인욕단속이라고 한다. 감각욕망 사유 등이 생겨나지 않도록, 생겨난 감각욕망 사유를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정진단속이라고 한다.

¹²⁵ 비구가 참회를 해야 하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다른 비구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면 죄가 없어진다. 이것을 '참회(desana)한다'라고 표현한다.

위에 제시한 여러 가지 방법들은 아주 좋은 것들이다. 얼핏 보기에는 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실천해 보면 생각한 만큼 쉽지 않고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하면 수행으로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매우 거칠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마음먹었던 대상들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마음대로 생겨난다.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그대로 있지 않고 바라지 않는 쪽으로 달아나 버리는 것, 마음이 거친 것 등은 수행으로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에 으레 법칙처럼 생겨나는 현상(dhammata)이다.

...강력한 위빳사나 수행자(balava vipassaka)에게도 이러한 번뇌들이 여전히 일어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수행 없이는]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없다'라고 알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보호할 수 없는가? 감각기능단속으로 제거할 수 있는 번뇌들은 몸과 말로 범하는 번뇌들이 아니다. 삼매와 지혜로만 제거할 수 있는 드러난 번뇌, 잠재된 번뇌들이다.

...수행으로 다스려진 마음은 매우 부드럽고 잘 제어되어 있어 마음 둔 곳에만 머문다. 바라는 것을 곧이곧대로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 둔 곳에만 부드럽게, 잘 제어되는 것은 수행으로 잘 길들여진 마음의 변함없는 성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기능단속 계는 수행에 의해서만 완벽히 청정하게 할 수 있다. 수행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감각기능단속 계도 더욱 청정하게 된다. 수행이 완벽하게 성숙되었을 때는 주석서, 복주서에 설해진 대로 완벽히 청정하게 된다.

- 마하시 사야도 지음,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 pp.91~95, 이솔출판(2013)

 

 

 

2. 세간팔법(lokadhamma)에 대해서

 

-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행복함과 괴로움의 8가지 법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

- 인간들과 함께 하는 이러한 법들은 무상하며 영원하지 않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
- 이를 알고 마음챙기는 영민한 자는 원하는 것들에 순응하지 않아 그것에 마음을 사로잡히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들에 적대하지 않아 그것에 반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순응함과 적대감을 버려서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

세상의 법 경1 (A8:5)
Lokadhamma-sutta

1.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세상은 다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아가게 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2. "그것은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이다..."

3.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
인간들과 함께 하는 이러한 법들은 무상하며 영원하지 않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라.

이를 알고 마음챙기는 영민한 자는
변하기 마련인 법들을 비추어 보아서
원하는 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서 반감이 생기지도 않나니

그에게는 순응함과 적대감이 흩어지고 사라져 존재하지 않으리.
티끌 없고 슬픔 없는 [열반의] 경지를 알고 존재의 저 언덕에 도달하여 이를 바르게 꿰뚫어 아노라."

- 대림스님 옮김, 『앙굿따라 니까야 5』 pp.69~70, 초기불전연구원(2007)
세상의 법 경2(A8:6)

1.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세상은 다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아가게 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2. "그것은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이다..."

3.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들에게도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기고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도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기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특별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

4.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이득이 생기면 그는 다음과 같이 숙고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득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손실이 생기면... 명성이 생기면... 악명이 생기면... 칭송이 생기면... 비난이 생기면... 즐거움이 생기면... 괴로움이 생기면...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득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고, 손실이... 명성이... 악명이... 칭송이... 비난이... 즐거움이... 괴로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그는 이득에는 순응하고 손실에는 적대하며, 명성에는 순응하고 악명에는 적대하며, 칭송에는 순응하고 비난에는 적대하며, 즐거움에는 순응하고 괴로움에는 적대한다.

그는 이렇게 순응함과 적대감을 가져서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득이 생기면 그는 다음과 같이 숙고한다. '나에게는 이득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손실이 생기면... 명성이 생기면... 악명이 생기면... 칭송이 생기면... 비난이 생기면... 즐거움이 생기면... 괴로움이 생기면... 그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리하여 이득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고, 손실이... 명성이... 악명이... 칭송이... 비난이... 즐거움이... 괴로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그는 이득에 순응하지 않고 손실에 적대하지 않으며, 명성에 순응하지 않고 악명에 적대하지 않으며, 칭송에 순응하지 않고 비난에 적대하지 않으며, 즐거움에 순응하지 않고 괴로움에 적대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순응함과 적대감을 버려서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의 차이점이고, 특별한 점이고, 다른 점이다."

6.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
인간들과 함께 하는 이러한 법들은 무상하며 영원하지 않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라.

이를 알고 마음챙기는 영민한 자는
변하기 마련인 법들을 비추어 보아서
원하는 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서 반감이 생기지도 않나니

그에게는 순응함과 적대감이 흩어지고 사라져 존재하지 않으리.
티끌 없고 슬픔 없는 [열반의] 경지를 알고 존재의 저 언덕에 도달하여 이를 바르게 꿰뚫어 아노라."

- 대림스님 옮김, 『앙굿따라 니까야 5』 pp.70~73, 초기불전연구원(2007)

 

 

 

3. 성냄과 인욕에 대해서

 

- 내가 행복하고 악의가 없기를 바라는 것처럼, 다른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에 대한 서원을 일으킨다.

- 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애를 ② 공경하는 스승에게, ③ 좋아하는 친구에게, ④ 무관한 자에게, ⑤ 원한 맺힌 자에게 확장한다.

- 대장부 기질을 타고난 자는 해를 입더라도 남들에 대해 원수라는 인식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원한을 맺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무관한 자에 대한 자애심에서 그친다.

- 화를 낸 자에게 화로써 앙갚음을 하는 자는 처음 화를 낸 자 보다 더욱 비열하다.

- 상대방이 화난 것을 알고서 마음챙기면서 고요하게 머무는 자는 자기와 남 둘 모두를 이롭게 한다.
- 화내는 자는 아름답지 않고 화에 압도되어 흉한 꼴이 된다. 자신을 태우고 악취나게 한다.
- 화내는 자는 자신의 마음을 태우고 고통스럽게 한다. 자신의 업을 타락시키고 계행을 파한다. 상대와 똑같이 비열해진다. 이미 사라진 오온의 법들을 알아차리지 못해 헛되게 분풀이를 하며 자신의 의도를 더럽힐 뿐이다.

1. 자애수행
Mettābhāvanāvaṇṇanā

...먼저 성냄의 위험과 인욕의 이익을 반조해야 한다... 이 수행으로 성냄을 버려야 하고 인욕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허물을 버릴 수 없고 알지 못한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반이여, 성내거나, 성냄에 휩싸이거나, 마음이 [성냄에] 시달릴 때 생명조차 앗아간다(A.i.216)"라고 시작하는 경을 통해 성냄의 허물을 보아야 한다.

"관용이 [그 특징인] 인욕은 최상의 고행이고 열반은 최상이라고 부처님들은 설하신다(D.ii.49; Dhp.184)"... 이상과 같은 경 등을 통해서 인욕의 이익을 보아야 한다.

3. 이와 같이 성냄의 허물을 살펴보고 성냄으로부터 마음을 격리시켜, [많은] 이익을 가진 인욕에다 묶어두기 위해서 자애의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8.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거듭거듭 닦아야 한다. '내가 행복하기를, 고통이 없기를!' 혹은 '내가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기를!'이라고... 비록 그가 백 년이나 천년동안 '내가 행복하기를!'이라는 등의 방법으로 자기에 대한 자애를 닦는다고 해도 본삼매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기를!'하고 닦을 때 '마치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고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중생들도 참으로 그와 같다'라고 자기를 본보기로 삼을 때 다른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에 대한 원이 일어난다.

세존께서도 다음과 같이 설하시면서 이 방법을 보이셨다.
"마음으로 모든 방향으로 찾아보았건만 어느 곳에도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자 얻을 수 없네.
이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각자 자신이 사랑스러운 것. 그러므로 자기의 행복을 원하는 자, 남을 해치지 마세."
- S.i.75; Ud.47.

11. 그러므로 그 증거로 제일 먼저 자기를 자애로 가득 채워야 한다. 그다음에 [자애를] 쉽게 일으키기 위해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존중하고 공경하는 스승이나 스승에 필적할 만한 분...에 대하여 그분에게서 발견되는 좋은 말씀 등과 존중과 공경을 생기게 하는 계행과 학식 등을 계속해서 생각하여 '이런 참된 분께서 행복하시기를, 고통이 없으시기를!'하며 이런 방법으로 자애를 닦아야 한다. 그는 이런 사람에 대해서 반드시 본삼매에 든다.

12. 그러나 이 비구가 이만큼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런 한계를 부수고자 할 때는 그다음으로 아주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 무관한 자에 대해... 원한 맺힌 자에 대해 자애를 닦아야 한다...

13. 그러나 원한 맺힌 자가 없거나 대장부 기질을 타고나서 해를 입더라도 남들에 대해 원수라는 인식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는 '무관한 자에 대해서는 자애심을 적절하게 닦았다. 이제 그것을 원한 맺힌 자에게 적용시키리라'고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무관한 자 다음에 원한 맺힌 자에 대해 자애를 닦아야 한다'라는 것은 원한을 맺은 적이 있는 자와 관련해서 설한 것이다.

14. 만약 그가 원수에 대해 마음을 가져갈 때 그가 지은 해악이 기억나서 적개심이 일어난다면 처음에 언급한 [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해 거듭거듭 자애의 증득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거듭거듭 그 사람에 대한 자애를 닦음으로 적개심을 제거해야 한다.

15. 만약 이와 같이 노력해도 제거되지 않으면, 톱 등의 비유의 경책을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적개심을 버리기 위해 거듭거듭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무지막지한 악당들이 양쪽에 자루가 달린 톱으로 사지를 토막토막 자르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음속에 화를 낸다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M.i.129)"

"화를 낸 자에게 화로써 앙갚음을 하는 자는 처음 화를 낸 자 보다 더욱 비열하다.
화로써 앙갚음하지 않을 때 승리하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한다.
상대방이 화난 것을 알고서 마음챙기면서 고요하게 머무는 자는 자기와 남 둘 모두를 이롭게 한다.(S.i.162)"

"비구들이여, 적을 즐겁게 하고 적에게 도움 되는 일곱 가지 법이 있어 여자거나 남자거나 간에 화난 자에게 찾아온다. 무엇이 일곱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그의 적에게 이와 같이 원한다. '이 자가 참으로 흉한 꼴이 되기를!'이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자기 적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 화난 사람은 화에 압도되고, 화에 정복되어, 비록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이발과 면도를 하고 하얀 옷을 입더라도 그는 화에 압도되어 흉한 꼴이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적을 즐겁게 하고 적에게 도움 되는 첫 번째 법으로 여자거나 남자거나 간에 화난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적은 그의 적에게 이와 같이 원한다.
'이 자가 괴롭게 잠들기를! ...
이 자에게 행운이 따르지 않기를! ...
이 자에게 부가 따르지 않기를! ...
이 자에게 명성이 따르지 않기를! ...
이 자에게 친구가 없기를! ...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이나 천상에 태어나지 않기를!'...(A.iv.94-96"

"비구들이여, 마치 화장터에서 사용된 나무토막이 있어 양끝은 불타고 중간은 악취가 난다면 마을에서도 그것을 장작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숲에서도 장작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그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A.ii.95; It.90)"

그러므로 이제 그대가 이와 같이 화를 내면 세존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리라. 화로써 앙갚음을 할 때 처음 화낸 자보다 더 비열하여 승리하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리라. 그대의 적이 지은 일들을 그대 스스로 그대 자신에게 지을 것이고, 화장터에서 사용된 나무토막과 같을 것이다...

22. ...만약 원수가 자기의 영역으로 삼은 그대의 [몸에] 고통을 줄지라도
무엇 때문에 그대는 그의 영역이 아닌 그대의 마음에 고통을 주려 하는가.

...멋대로 부리는 화는 참으로 그대가 보호하는 계행의 뿌리를 멸절시키나니 그대같이 어리석은 자 또 누가 있겠는가.
다른 자가 비열한 행위를 했다고 그대는 불같이 화를 낸다.
왜 그대는 그대 스스로 남이 했던 같은 일을 하려 하는가.

만약 나를 화나게 만들고자 남이 불쾌한 행위를 했다면
무엇 때문에 그대는 화를 내어 남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려는가.

그대가 화를 내어 그에게 고통을 줄 수도 혹은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가 초래한 고통으로 당장에 그대 자신을 태우리.

만약 원수들이 분노로 인해 눈멀어 악처의 길을 간다면
무슨 이유로 그대도 분노하여 그들을 따라 가려는가.

...오온의 법들은 순간적인 것이라 이미 없어져 버렸거늘, 지금 그대는 누구에게 화를 내는가.
그에게 고통을 주려해도 그가 없다면 누구에게 고통을 주겠는가.
그대의 존재가 바로 고통의 원인이거늘 무엇 때문에 그에게 화를 내는가.

23. 만약 이와 같이 자기를 훈계해도 적개심이 가라앉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나 남에게 업이 각자 자기의 주인임(kammassakatā)⁹¹⁾을 반조해야 한다. 우선 이와 같이 자기 것을 반조해야 한다.

⁹¹⁾ '업이 자기의 주인임'으로 옮긴 'kammassakatā'는 'kamma+sakatā'로 분해된다. 여기서 'sakatā'는 'saka(자기, 자신)'의 추상명사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업이 자기 자신임'이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업이 자신의 주인임'이라고 의역하였다. 오온의 역동적인 흐름일 뿐인 나의 삶의 흐름에서 오직 매 순간 일으키는 의도적 행위들이 개체의 연속성을 유지시켜 나가는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여보게, 그에게 화를 내어 무엇을 할 것인가? 화냄으로 인한 그대의 업이 장차 그대를 해로움으로 인도하지 않겠는가? 그대의 업이 바로 그대의 주인이고, 그대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대의 권속이고, 업이 그대의 의지처이다. 그대는 그대가 행한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 행위는 정등각을 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벽지불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성문의 지위에 이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범천과 제석과 전륜왕과 지방의 왕 등 가운데 어느 지위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이 행위는 교단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여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지경에 처하게 하고, 지옥 등 갖가지 고통을 겪게 한다.

이 [화내는 업]을 행할 때 양손에 시뻘건 숯과 똥을 쥐고서 다른 자에게 던지려는 사람처럼 첫 번째로 자신을 태우고 악취나게 한다.'라고...

32. ..."상자에 넣을 때에도 손으로 눌러 짜부라뜨릴 때에도
계를 파하는 두려움 때문에 알람바나에게 화내지 않았다.(Cp.85)"

33. "...만약 내가 그에게 화를 내었다면 그는 그 순간에 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마음대로 했더라면 계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파계한 자는 구경의 경지를 성취하지 못한다.(Cp.85)"

- 대림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2권』 pp.137~155, 초기불전연구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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