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 힘 경(A8:27, Bala-sutta)과 대불전경 2권 인내 바라밀의 주석에는 8가지 힘에 대해서 말한다.
8가지 힘은 출처와 번역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① 우는 것은 아이들의 힘이다.
② 화내는 것은 여자들의 힘이다.
③ 무기는 도적들의 힘이다.
④ 권력은 왕들의 힘이다.
⑤ 불만은 어리석은 자들의 힘이다.
⑥ 성찰하는 것은 현자들의 힘이다.
⑦ 숙고하는 것은 지자들의 힘이다.
⑧ 인내하는 것은 출가자들의 힘이다.
참고할 만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또 하레는 빨리어 발라(bala)를 문자 그대로 ‘힘(力)’으로 번역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갖고 있는 ‘속성(attribute)’이라고 이해했다. 따라서 위 경문을 다시 정리해 보면, 어린아이의 속성은 울음이고, 부인의 속성은 남편에 대한 잔소리이고, 강도의 속성은 싸움이고, 왕의 속성은 권력이고, 어리석은 자의 속성은 남을 헐뜯음(毁呰)이고, 지혜로운 자의 속성은 살피고 깊이 생각하는 심려(審慮)이고, 많이 배운 자의 속성은 철저히 검토하는 것이고, 사문과 바라문의 속성은 인내하는 것이다.
한편 이 경과 대응하는 ‘증일아함경’ 권31 제1경에서는 여섯 가지 힘을 언급하고 있다. “여섯 가지란 무엇인가? 어린아이는 울음으로 힘을 삼아 할 말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운다. 여자는 성냄으로 힘을 삼아 성을 낸 뒤에 말을 한다. 사문과 바라문은 참음으로 힘을 삼아 항상 겸손할 것을 생각하고 남들보다 낮춘 뒤에 자신의 말을 한다. 국왕은 권위로 힘을 삼아 그 큰 권력으로 자신의 말을 한다. 그리고 아라한은 골똘하고 정밀함으로 힘을 삼아 자신의 말을 한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큰 자비를 성취하고 그 큰 자비로 힘을 삼아 중생들에게 널리 이익을 주느니라.”(T2, p.717b)
...
한편 ‘잡아함경’의 ‘팔력경(八力經)’과 ‘광설팔력경(廣說八力經)’에서는 약간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팔력경’에서는 “이른바 자재왕의 힘(自在王者力), 일을 결단하는 대신의 힘(斷事大臣力), 원한을 맺는 여자의 힘(結恨女人力), 우는 아이의 힘(啼泣嬰兒力), 비방하는 어리석은 이의 힘(毁呰愚人力), 자세하고 명료한 지혜의 힘(審諦黠慧力), 출가하여 인욕하는 힘(忍辱出家力), 많이 들어 깊이 생각하는 힘(計數多聞力)이니라”라고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반면 ‘광설팔력경’에서는 ‘팔력경’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충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른바 자재왕의 힘이란 왕이 자재한 위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일을 결단하는 대신의 힘이란 대신이 일을 결단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원한을 맺는 여자의 힘이란 여인의 특성상 원한을 맺는 힘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는 아이의 힘이란 아이의 특성상 우는 힘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방하는 어리석은 이의 힘이란 어리석은 이의 특성상 일에 맞닥뜨리면 비방하여 말하는 것이다. 자세하고 명료한 지혜의 힘이란 지혜로운 사람이 언제나 자세하고 명료하게 살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출가하여 인욕하는 힘이란 출가한 사람이 항상 인욕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많이 들어 깊이 생각하는 힘이란 많이 들어 아는 사람은 언제나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 마성 스님, "29. 여덟 가지 힘(八力)", 법보신문(2020)
1. 8가지 힘 중 5가지는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을 피곤하게 하고 수고스럽게 하는 것은 공덕이 되지 않거나 나쁜 업이다. 세상에 빚을 쌓는 것과 같다.
그러나 반대로 타인을 편안하게 하고 이익되게 하는 행은 공덕이 되는 행위다. 세상에 빚이 없는 행복을 누린다.
- 아이는 울음으로 힘을 삼아 부모를 피곤하게 할 수 있다.
- 여인은 성냄과 원한을 힘으로 삼아 남편을 피곤하게 할 수 있다.
- 거친 자는 무력과 싸움을 힘으로 삼아 주변을 피곤하게 할 수 있다.
- 권력자는 권력을 힘으로 삼아 아랫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수 있다.
- 어리석은 자는 불만, 남의 잘못 찾기, 비방, 헐뜯기를 힘으로 삼아 주위를 피곤하게 할 수 있다.
2. 8가지 힘 중 나머지 3가지는 닦아야 하는 것이다.
- 현명한 자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성찰한다.
- 많이 배운 자는 숙고를 통해 명료하게 검토한다.
- 출가자는 스스로의 악행을 제거하고, 타인의 악행을 참는다.
- (추가로 덕 있는 자는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
3. 출가자가 '참는 것'을 힘으로 삼는 이유는 '악행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사문·바라문은 출가를 통해 자신의 악행,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다른 중생들의 제어되지 않아 넘쳐 흐르는 악행들을 맞닥뜨렸을 때에는 인내한다.
여기서 '바라문'은 혈통에 의한 바라문 계급이나 책을 짓고 베다를 외울 뿐 실제로 수행은 하지 못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출가하여 명상을 통해 번뇌를 제거하는 실제 수행을 하는 자를 뜻한다.
불교 밖에서 사문이란 일반적인 출가 수행자를 의미한다. 불교 안에서는 부처님의 아들이자 승단의 한 구성원인 비구를 의미한다. 이처럼 사문이라는 말은 잘 알려져 있으니 달리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바라문'이라는 말에는 보다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 말은 팔리어로 '브라흐마나(brāhmaṇa)'라고 한다... 태초에서 여러 겁이 지나자 사람들 사이에는 악한 양상들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 사람을 선출하여 '위대한 선출자', 즉 마하삼마타 왕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통치하게 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세상은 악의 힘에 지배받고 있다. 타락하여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숲으로 들어가 이러한 악의 방식들을 제거하고 씻어내자"라고 말하면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명상에 들어 안지정에 머물렀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머물렀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문이라고 불렀다.
바라문의 원어인 브라흐마나는 '악을 제거하는 사람'을 뜻한다. 바라문은 스스로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이나 마을에서 모아온 음식으로 살아갔다. 이처럼 그들이 브라흐마나의 말뜻을 그대로 지키면서 순수하고 성스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바라문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들은 '구나 브라흐마나', 다시 말해 '성스런 수행의 덕목에 의한 바라문' 이었던 것이다.
많은 겁이 지난 뒤 이 유덕 바라문들 중 몇몇은 명상에 들어 안지정을 지속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마을의 외곽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베다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들은 더 이상 악을 제거하고 안지정을 얻기 위한 명상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바라문이라는 이름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더 이상 유덕 바라문은 아니었으니, 성스러운 수행의 자질을 구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자티 브라흐마나', 즉 '출생에 의한 바라문'이라고 불릴 뿐이었다. 그들은 선정을 얻기 위한 명상을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열등한 종성으로 간주되었다... 이 바라문은 선정을 연마함으로써 번뇌를 제거하거나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속이려고 강물이나 흐르는 물속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그러한 기만행위를 '불순한 것을 정화하는 목욕'이라고 불렀다.
...부처님이 '인내는 사문이나 바라문의 힘이다'라고 말할 때는 오직 유덕 바라문만을 염두에 둔 것이다.
- 밍군 사야도 지음, 『대불전경』 2권 pp.411~413, (주)한언(2009)
바라문 집단의 출현
22. "와셋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보시오, 사악한 법들이 중생들에게 생겼습니다. 참으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비난이 알려지게 되었고 거짓말이 알려지게 되었고 처벌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우리는 사악한 해로운 법들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그들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없앴다. 와셋타여, 사악한 해로운 법들을 없앤다고 해서¹⁵¹⁾ '바라문, 바라문'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생겨났다.
¹⁵¹⁾ 바라문(brāhmaṇa)의 어원을 bāheti(없애다)에서 찾고 있는데 bāheti는 bahi(밖으로)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동사이다. 그래서 '밖으로 한다, 밖으로 보낸다, 밖으로 끌어낸다'는 의미이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brāhmaṇa는 √bṛh(to shine, to be bright)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들은 숲 속에서 초막을 짓고 초막에서 참선을 하였다. 그들은 숯불을 피우지 않았고 연기를 내지 않았고 절굿공이를 내려놓았으며¹⁵²⁾ 저녁에는 저녁식사를 위하고 아침에는 아침식사를 위해서 마을과 읍과 수도로 내려가서 걸식을 하였다. 그들은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숲 속의 초막으로 가서 참선을 하였다. 사람들이 이런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숲 속에서 초막을 짓고 초막에서 참선을 합니다. 그들은 숯불을 피우지 않고...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숲 속의 초막으로 가서 참선을 합니다.'라고. 와셋타여, 참선을 한다고 해서 '자야까, 자야까(정려하는 자)'라는 두 번째 단어가 생겨났다.¹⁵³⁾"
¹⁵²⁾ 이런 단어들은 모두 제사와 관련된 것이다. 태초에 바라문들은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에 몰두했지 지금의 바라문들처럼 제사에서 헌공을 하기 위해 불을 지핀다든가, 소마 즙을 짜기 위해서 절굿공이로 찧는다든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혹은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고 걸식해서 먹었다는 의미도 된다.
¹⁵³⁾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바라문이라는 사제 계급도 신의 권위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악한 법을 없애기 때문에 사제(바라문)이며 혹은 참선하고 정려(靜慮, 필자 주 - 고요히 생각하는 것)하는 데서 생겼다고 본경의 이 부분은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불선법을 제거하고 참선을 하는 수행자가 최초의 바라문이었다는 의미이다.
23. "와셋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중생들은 숲 속의 초막에서 참선을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마을의 경계나 읍의 경계로 내려와서 책을 만들면서 정착을 하였다. 인간들은 이런 그들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이 중생들은 숲 속의 초막에서 참선을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마을의 경계나 읍의 경계로 내려와서 베다를 만들면서¹⁵⁴⁾ 정착을 하였다. 이들은 이제 참선을 하지 않는다.'라고. 와셋타여, 이제 참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앗자야까, 앗자야까(베다를 공부하는 자)'라는 세 번째 단어가 생겨났다. 와셋타여, 그 시절에는 이들이 저열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최상으로 간주된다.
¹⁵⁴⁾ '베다를 만들다'로 옮긴 원문은 ganthe karontā인데 '책을 만들다'로 직역할 수 있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이러한 바라문의 일원이 이와 같은 태고적 세상의 기원과 관계된 단어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그들은 중생들로부터 생겨났으며 다른 것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자들에 의해 생겨났으며... 법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왜냐하면 지금 여기에서도 내세에서도 법이 이 세상에서 최상이기 때문이다."
...
사문 집단의 출현
26. "와셋타여, 끄샤뜨리야도 자신의 법을 경원시하고 '사문이 되리라.'며 집을 떠나 출가하는 그런 시절이 있게 되었다. 와셋타여, 바라문도... 와이샤도... 수드라도 자신의 법을 경원시하고 '사문이 되리라.'며 집을 떠나 출가하는 그런 시절이 있게 되었다.
와셋타여, 이 네 가지 구성원들에 의해서 사문의 구성원이 형성되었다.¹⁵⁷⁾ 그들은 중생들로부터 생겨났으며 다른 것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자들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법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왜냐하면 지금 여기에서도 내세에서도 법이 이 세상에서 최상이기 때문이다."
¹⁵⁷⁾ 즉 이들 네 계급의 구성원 모두가 사문의 구성원(samaṇa-maṇḍala)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각묵스님 옮김, 『디가 니까야』 제3권 「세기경」 (D27) pp.175~178, 초기불전연구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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