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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뭇따] 학습Pariyatti

“유학인 성스러운 제자들은 같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더 높은 세상에 태어난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5장)

작성자위뭇따 vimutta|작성시간26.03.15|조회수54 목록 댓글 0
§38. 욕계 재생연결의 대상

여기서 죽음에 직면한 인식과정에서는 오직 다섯 번의 속행이 느리게 일어나는 것이 기대된다. 그러므로 만약 현재의 대상이 일어나서 영역에 나타날 때 죽음을 맞으면 재생연결식과 존재지속심(바왕가)도 현재의 대상을 취한다. 욕계 재생연결의 경우 대상이 여섯 문의 하나에서 취한 업의 표상이거나 혹은 태어날 곳의 표상이면 그 대상은 현재의 것이거나 과거의 것이다. 그러나 업은 과거의 것이고 마음의 문을 통해 취한다. [욕계 재생연결의] 대상들은 모두 제한된(paritta) 현상들일 뿐이다.
2. 욕계 재생연결의 경우 ... : 만일 재생연결식의 대상이 ① 업이면 당연히 그것은 과거의 것이고 마음의 문에서 취한 정신적인 대상이다. 만일 그 대상이 ② 업의 표상이라면 여섯 문들 가운데 어떤 하나에 의해서 인지될 것이며 그것은 과거의 것이거나 현재의 것이다. 그러나 ③ 태어날 곳에 대한 표상이 그 대상인 경우에 대해서는 아비담마의 대가들마다 서로 대립되는 해석을 하고 있다.

『위바위니 띠까』의 저자를 포함한 몇몇 주석가들은 태어날 곳의 표상은 반드시 마음의 문에서 취해지는 현재에 속하는 눈에 보이는 형색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본문에 나타나는 아누룻다 스님의 문장을 "대상이 업의 표상이면 여섯 문들 가운데 어떤 문으로도 인지할 수 있으며 그것은 현재의 것이거나 과거의 것이다. 대상이 태어날 곳의 표상이면 그것은 여섯 번째 문, 즉 마음의 문에서 인지되고 현재의 것이다."라고 해석한다.(VṬ.190~192 참조)

그러나 레디 사야도를 포함한 다른 대가들은 이런 해석을 너무 무리하고 좁은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해석하기를 '아누룻다 스님이 태어날 곳의 표상은 과거의 것이거나 현재의 것으로서 여섯 문들 가운데 어디서든 인지할 수 있다고 견해를 넓게 표방했을 것'이라고 한다. 레디 사야도는 논장에서 "태어날 곳의 표상은 마음의 문에 나타난 현재의 눈에 보이는 대상이다."라고 보통으로 말을 할 때, 그것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나타난다(gocarabhāvaṁ gacchati)'는 뜻으로 말한 것이지 현재에 눈의 대상, 즉 형색 이외의 것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PdṬ.264 참조). 예를 들면 지옥에서 나는 신음소리나 천상의 음악이나 향기와 같은 눈에 보이는 형색 이외의 대상이 표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33~535, 초기불전연구원(2021)

 

아라한이 아닌 자에게 Javana는 마음이 대상을 강하게 움켜쥐고 선업이나 불선업을 짓는 '의도적이고 능동적인 마음 작용'이다. 건강하게 깨어있을 때 인식과정에서 이 속행은 번개 같은 속도로 7번 연속해서 일어난다. 죽음이 임박하면 물질적 토대는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마음의 힘 역시 약해지기 마련이니, 그 마지막 순간에는 7번이 아닌 5번의 속행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추측해 본다. 이 다섯 번의 속행이 '느리게manda 일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시간이 느리다는 뜻이라기보다(마음이 일어나고 머무르고 소멸하는 아찰나, sub-moment는 평상시나 죽을 때나 그 절대적인 기간은 동일하다), 마음의 활력과 예리함이 둔하고 약하다(feeble)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속행의 강도가 약해진다는 것을 '느리게 일어나는 것'으로 표현한 셈이다.

 

죽을 때의 표상으로서의 업kamma은 '지금 겪는 것처럼 과거의 순간과 의도가 재생되는 것'이니 당연히 그 대상은 과거의 것일 수밖에 없고, 현재의 감각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섯 문이 아닌 마음 문으로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문은 원칙적으로 '지금 외부에서 충돌하는 현재의 감각대상’을 잡는 것이다. 욕계 재생연결에서 업의 표상kamma-nimitta을 취할 경우에 과거의 표상을 취한다면 마음 문으로, 스님들의 독경 소리와 같은 현재 대상을 취한다면 다섯 문이 모두 가능하므로 '여섯 문의 하나에서 취하고, 현재이거나 과거이다'라는 것이 성립된다.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의 경우 위 해설에서 대립되는 해석을 소개해주고 있다. 죽음 직전에 다음 생에 태어날 세계의 모습이 미리 환영처럼 나타나는 이 표상이 ‘어떤 감각기관(문dvāra)’을 통해, ‘어떤 형태(대상 종류)’로 나타나는가를 두고 옛 스승들의 견해가 갈린 것이다.

  1. 『위바위니 띠까』 저자의 입장은 엄격하고 좁은 해석이다. 주장의 요지는 태어날 곳의 표상은 오직 '마음의 문(의문)'을 통해서만 나타나며, 오직 '현재' 대상이며, 오로지 '눈에 보이는 형색'일 뿐이라는 것이다.
  2. 레디 사야도의 입장은 유연하고 넓은 해석이다. Gati-nimitta가 6문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고, 형태 역시 시각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소리, 냄새 등 다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에게는 둘 중 레디 사야도의 해석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마지막으로 아비담마에서 '제한된paritta'이라는 단어는 욕계kāma-loka에 속하는 법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이다. 아비담마에서는 대상을 그 수준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제한된 대상은 감각적 욕망이 지배하는 욕계의 대상, 일반적인 중생의 대상이다. 고귀한/광대한mahaggata 대상은 깊은 선정에 든 색계·무색계의 대상, 범천의 대상이다. 출세간lokuttara 대상은 열반nibbāna이다. 욕계에 태어나는 자의 임종 직전의 마음은 그 성질상 '제한된 현상'을 붙잡는다. 욕계에 재생하는 자의 재생연결의 대상(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은 그 형태가 3가지 중 어느 것이 되었든 철저히 욕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한된paritta 대상일 수밖에 없다.

 

§39. 고귀한 재생연결의 대상

색계 재생연결의 경우 대상은 항상 개념(paññatti)인 업의 표상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색계의 재생연결도 대상은 경우에 따라 고귀한 마음이거나 개념인 업의 표상이다.

무상유정들의 경우 생명기능의 구원소가 재생연결로 확립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물질의 재생연결을 가진다고 한다.
무색계의 [중생들은] 정신의 재생연결을 가진다.
나머지는 물질과 정신의 재생연결을 가진다.
색계 재생연결식의 대상은 재생을 일으키는 선의 대상인 닮은 표상(paṭibhāga-nimitta)이다. 이것은 빤냣띠(개념)이고 업의 표상으로 간주된다. 첫 번째와 세 번째의 무색계선의 대상은 무한한 허공과 아무것도 없다는 빤냣띠(개념)인데 이것이 각각의 천상의 재생연결식의 대상이다. 두 번째와 네 번째 무색계의 대상은 첫 번째와 세 번째 무색계의 마음을 그 대상으로 가진다. 이들은 고귀한 상태(mahaggata)라 부른다.

무상유정, 즉 인식이 없는 중생들은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재생연결 시에 어떤 대상도 가지지 않는다. 이 존재들의 흐름은 생명기능의 구원소(jīvita-navaka)로 유지된다. 생명기능의 구원소는 생명기능을 구성하는 아홉 가지 물질, 즉 유기물질의 집합을 뜻한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35~537, 초기불전연구원(2021)

 

해설에는 색계선의 대상을 빠띠바가 니밋따로만 일반화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색계선 전부를 닮은 표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Paṭibhāga는 'paṭi-(~에 대한, 맞서는, 대응하는) + bhāga(몫, 부분 ←√bhaj 나누다/분배하다)'라는 어원으로 '대응하는 것, 닮은 것, counterpart' 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빠띠바가 니밋따를 직역하면 대응하는 표상, counterpart sign 이라는 뜻이다. 수행의 맥락에서는 '물리적 대상(거친 원본)에 상응하여 마음속에 만들어진 정제된 복사본'으로 이해할 수 있다. 흙이나 호흡 같은 '물질(색, Rūpa)'을 기반으로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정제된 이미지가 그 원리다.

 

색계 명상 대상은 총 26가지가 있는데 이 중 22가지는 빠띠바가 니밋따라는 개념을 대상으로 삼지만, 그 외 4가지는 표상이라고 할 수 없는 개념을 대상으로 삼는다.

  1.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하는 22가지: 이들은 모두 물리적 대상에서 출발해 맑고 빛나는 이미지(닮은 표상)로 승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 까시나 10가지
    • 더러움 10가지 
    • 몸의 32부분 1가지
    • 들숨날숨 1가지
  2. 중생이라는 개념satta-paññatti을 대상으로 하는 4가지: 특정 물리적 형태가 아닌 중생(생명체)라는 개념으로 마음을 무한히 확장하는 수행이다. 빛나는 이미지인 닮은 표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오직 '중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선정의 대상이 된다.
    • 사무량심(자·비·희·사) 4가지

즉, 색계 선정의 대상은 모두 개념(빤냣띠)인 것은 맞지만, 모두가 닮은 표상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분류는 무색계 첫 번째 선정인 공무변처, 세 번째 선정인 무소유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공무변처의 대상은 무한한 허공이라는 개념, 무소유처의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는 개념이다. 이처럼 무색계 첫 번째, 세 번째 선의 대상은 물리적 원본을 정제해서 만든 마음속의 시각적/감각적 표상이 아니라 순수 관념이며, 복사할 원본(물질) 자체가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개념(빤냣띠)이기는 하지만 '닮은 표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117. (6) 대상에 따라: 이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 열 가지 까시나, 열 가지 부정,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몸에 대한 마음챙김 - 이 22가지는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가진다. 나머지 [18가지]는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갖지 않는다.

...식무변처, 비상비비상처 - 이 12가지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을 대상으로 가진다.

열 가지 까시나, 열 가지 부정,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몸에 대한 마음챙김 - 이 22가지는 표상을 대상으로 가진다.
나머지 여섯은¹⁹⁹⁾ 설할 수 없는 대상을 가진다.

¹⁹⁹⁾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과 공무변처와 무소유처가 그 여섯이다.

- 대림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1권 pp.321~322, 초기불전연구원(2021)

 

이렇게 보면,  선정(Appanā, 본삼매)에 도달할 수 있는 명상 대상ārammaṇa들은 그 본질적 특성에 따라 크게 3가지 카테고리로 묶임을 알 수 있다.

  1. 닮은 표상Paṭibhāga-nimitta: 물질에 대응하여 정제된 '시각적/감각적 개념'
    • 원래는 거친 물질rūpa이었으나, 고도의 집중을 통해 빛나고 투명한 시각적·감각적 이미지(개념)로 승화시킨 것들
    • 총 22가지: 까시나 10가지, 더러움 10가지, 몸의 32부분 1가지, 들숨날숨 1가지
  2. 순수 관념paññatti: 물리적 원본이 없는 '순수 추상적/의미적 개념'
    • 사무량심 4가지: '중생'이라는 개념
    • 무색계 1선 공무변처: '무한한 허공'이라는 개념
    • 무색계 3선 무소유처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개념
  3. 고귀한 마음mahaggata-citta
    • 총 2가지: 무색계 2선 식무변처, 무색계 4선 비상비비상처

무상유정asaññasatta들의 경우 생명기능의 구원소jīvita-navaka, 즉 물질의 재생연결을 가진다고 한다. 다섯 무더기로 이루어진 존재의 경우 새 삶이 시작될 때 재생연결식과 함께 업에서 생긴 물질이 같이 생겨난다. 그런데 아산냐삿따의 경우 마음이 없으므로 새 존재가 시작될 때 업생색만 생겨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각묵스님은 강의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말씀해 주신다. 초기불교의 관점에서는 베다 문헌에 등장하는 신들은 대체로 욕계 천신에 가깝고 색계·무색계 존재는 나오지조차 않는다는 것, 그리고 힌두교에서 말하는 범천은 색계 초선천의 존재이지 2선천 ~ 비상비비상처천의 존재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욕계 천신은 수명이 엄청나게 길고 능력이 뛰어나지만 여전히 감각적 욕망kāma를 가지고 아수라들과 전쟁을 하며 질투나 분노를 느끼는 등 한계를 지닌 존재들이다. 힌두교/바라문교에서는 우주의 창조주로 브라흐마Brahma를 상정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범망경」에서 창조주 신앙의 실체를 말씀하신다.

  • 우주의 수축기(파괴기)가 지나고 우주가 다시 팽창하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색계 초선천(대범천)에 빈 궁전이 생겨난다. 이때 더 높은 천상(색계 2선천인 광음천)에 있던 어떤 존재가 수명이 다해 이 텅 빈 대범천에 홀로 태어난다.
  • 홀로 너무 오래 지내다 보니 외로워져서 "다른 존재들도 이곳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때 다른 존재들이 수명이 다해 대범천으로 태어난다.
  • 먼저 태어난 자는 "내가 원해서 저들이 태어났다. 고로 나는 창조주요, 전능한 자다!"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태어난 자들은 "우리가 오기 전부터 저분이 계셨다. 고로 저분은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요, 전능한 창조주이시다!"라고 생각한다.
  • 이 나중에 태어난 자들 중 누군가가 수명이 다해 인간 세상에 태어나 수행자가 된다.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신통력(숙명통)을 얻어 전생을 보지만, 딱 자신이 대범천에 있던 시절까지만 보게 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위대한 창조주 브라흐마가 세상을 만들었고 그는 영원하다"고 설법한다. 이것이 부처님이 밝히신 창조신화(범천 신앙)의 기원이다.
  • 힌두교 등 각종 종교에서 절대적이라고 믿는 그 대범천(창조주)조차도 부처님의 일체지(모든 것을 아는 지혜)로 보았을 때는, 그저 31개 세계 중 14번째 세계(색계 초선천)에 사는, 수명이 좀 길고 착각에 빠진 중생일 뿐인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알고 보시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31천의 모습이 얼마나 수준 높은 통찰 지혜의 가르침인지, 모든 것을 알고 보지 못했을 때는 범망경에 나오는 고귀한 존재들조차 자신의 인식 범위에서 사견을 짓기란 얼마나 쉬운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일화이다. 자신이 볼 수 있는 한계점까지만 보고 그것이 '궁극의 진리(우주의 시작, 영원한 자아 등)'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면, 62가지의 거대한 사견(그물, 범망)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오직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알고 보시는 부처님만이 윤회의 시작과 끝, 31개의 모든 세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결국 찰나생·찰나멸하는 조건 발생(연기)에 불과하다는 구경의 진리(위빠사나적 통찰)를 스스로 꿰뚫어 보셨다. 수행의 깊이가 아무리 깊어 선정(사마타)에 들고 신통을 얻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해체해서 보는 지혜(위빠사나) 없이 선정의 경험을 해석한다면 거대한 '사견(Wrong View)'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40. 재생의 법칙

무색계에서 죽은 자는 더 높은 무색계에 태어나고 낮은 무색계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또한 욕계에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다.

색계에서 죽은 자는 원인 없이 태어나지 않는다.

욕계에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존재는 죽어 어디든지 태어날 수 있다.
나머지 [두 원인을 가졌거나 원인 없이 죽은 자들은] 반드시 욕계에 태어난다.

여기서 이것이 재생연결의 과정이다.
재생연결의 법칙은 범부와 유학의 경우는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 위 문장은 범부들의 경우에 국한해서 그 진행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먼저 범부들의 진행 과정을 설명하고 유학의 경지에 있는 성스러운 제자들(ariya-sāvakā)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무색계에 머무는 유정들은 그들이 태어난 경지나 더 높은 선에 상응하는 무색계 선을 닦지 그보다 더 낮은 선을 닦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곳에서 임종할 때는 같은 세상이나 더 높은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선의 경지에서 떨어져 버리면 그들은 근접삼매(upacāra-samādhi)의 힘으로 욕계에 태어날 것이다. 즉 세 원인을 가진 욕계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를 재생연결식으로 하여 욕계에 태어날 것이다.

무상유정천에서 떠난 중생들은 두 원인이나 세 원인을 가진 욕계 과보의 마음을 재생연결식으로 하여 욕계에 태어난다.

색계에서 죽은 자는 무색계선을 가졌으면 무색계 천상에 태어나고 색계선을 가졌다면 색계 천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며 욕계에 태어날 강한 업을 지었다면 다시 욕계에 태어날 것이다. 색계에서 죽어 욕계에 태어나는 자도 반드시 두 원인이나 세 원인을 가진 욕계 과보의 마음을 재생연결식으로 하여 욕계에 태어난다.

욕계에서 세 원인을 가진 마음으로 죽은 자들은 어떤 세상이든 다 태어날 수 있다. 세 원인을 가진 욕계의 존재는 어떤 형태의 업이든 모두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원인을 가졌거나 원인 없는 마음으로 욕계를 떠난 자들은 욕계에만 다시 태어난다. 그들은 두 가지 원인 없는 조사하는 마음 가운데 하나를 재생연결식으로 하여 태어나거나, 두 원인이나 세 원인을 가진 욕계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를 재생연결식으로 하여 태어난다.

유학에 속하는 성스러운 제자들의 경우에는 고귀한(mahaggata) 죽음의 마음에서 낮은 재생연결식으로 퇴행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성스러운 제자들은 세 원인을 가진 죽음의 마음으로 임종을 한다. 세 원인을 가지지 않고서는 도와 과를 증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학인 성스러운 제자들은 같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더 높은 세상에 태어난다. 그들은 같은 형태이거나 더 높은 재생연결식으로 태어난다.

물론, 아라한의 도와 과에 이른 자들은 죽은 후에 어떤 세상에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37~541, 초기불전연구원(2021)

 

위 인용문 단락에 대한 아래 글은 필자의 해석과 추론이 특히 많이 들어가 있다. 그 이유는 위 '재생의 법칙' 단락에서 '법칙이 왜 그렇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원리 설명이 책의 내용상 부족하기 때문인데, 필자는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 해석과 추론을 덧붙였다. 따라서 독자는 수용적이기보다 비판적으로 내용을 보아야 할 부분이 상당히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무색계 중생이 자신의 경지보다 낮은 무색계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원리는 무색계 선arūpa jhāna의 순차적 초월 구조가 그 이유인 것으로 필자는 짐작한다. 무색계 존재들은 자기 경지의 무색계선이나 더 높은 무색계선을 닦을 수는 있지만 낮은 것은 닦지 않으며, 그래서 죽을 때 같은 경지나 더 높은 경지에 난다. 무색계 네 단계는 각각 이전 단계의 대상을 명시적으로 초월하며 성립하기 때문이다.

  • 공무변처: 까시나(색계 대상)를 초월하여 무한한 공간을 대상으로 삼음
  • 식무변처: 공간을 초월하여 그 공간을 인식한 무한한 의식(識)을 대상으로 삼음
  • 무소유처: 그 식을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대상으로 삼음
  • 비상비비상처: 무소유를 초월하여 이전 식을 극히 미세하게 정련

색계 선정에서는 선정 요소jhānaṅga가 변하면서 상승하지만 대상은 동일하다. 반면 무색계 선정에서는 선정 요소는 4선의 경지와 동일하게 유지되면서 대상이 변화한다. 공무변처는 제4선의 까시나 대상을 초월하고, 식무변처는 공무변처의 대상을 초월하고, 무소유처는 식무변처의 대상을 초월한다.

이 메커니즘이 핵심인데, 예컨대 무소유처에 태어난 중생의 존재지속심bhavaṅga은 "아무것도 없음"을 대상으로 하는 무소유처 과보심이다. 이 중생이 공무변처 선을 닦으려면 자신이 이미 '거칠다'고 버린 하위 대상을 다시 쥐어야 하는데, 각 단계가 이전 단계의 대상을 명시적으로 넘어선 위에 성립하므로 구조적으로 역행이 불가능하다. 색계 선정에서는 초선부터 4선까지 모두 까시나 등 동일 유형의 대상을 잡지만, 무색계는 각 단계마다 대상 자체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역행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무색계에서 죽은 후에는 같은 무색계나 더 높은 무색계에 태어나지, 낮은 무색계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무색계 중생이 색계에 태어나지 않는 이유는 수행 가능한 업의 종류 문제로 필자는 해석한다. 무색계 중생은 물질rūpa이 전혀 없는 순수한 정신적 존재이며, 이 영역의 거주자들은 전적으로 정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색계 선정(1~4선)에 들기 위해서는 대체로 '까시나(원반)', '호흡', '시체' 등과 같은 물리적 대상(물질)을 눈으로 보거나 몸으로 감각하여 그것을 '닮은 표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색의 존재는 색계 선정을 닦기 위한 '준비 표상'을 잡을 방법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색계 선정을 닦지 못하므로 색계 천상에 태어날 원인(업)을 지을 수 없다. 색계 선정rūpāvacara jhāna은 대부분 까시나라는 상대paṭibhāga-nimitta(counterpart sign), 즉 미세한 형상적 대상을 대상으로 삼는데, 물질적 기반이 전혀 없는 무색계 중생에게는 이런 형상적 대상을 새로이 취하여 색계 선을 닦을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다. 무색계 중생이 닦을 수 있는 선업은 같은 수준 이상의 무색계 선 뿐이고, 그 선정을 유지하지 못해 떨어지면 남은 것은 근접삼매 수준의 힘뿐이므로, 결과적으로 무색계 아니면 욕계로만 재생이 가능하고 색계는 선택지에서 빠지게 된다.

 

무색계 범부 중생이 죽음의 순간에 집중력을 잃어 자신이 머물던 무색계 선정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에는 선정의 힘을 잃었으니 무색계에 다시 태어날 수 없고, 앞서 설명했듯 색계로 갈 수도 없다. 남은 곳은 욕계Kāma-loka뿐이다. 이 중생은 수만 겁 동안 엄청난 집중력을 닦았던 존재이므로, 선정을 잃고 욕계로 떨어질 때 지옥/아귀/축생/아수라 같은 악처로 직행하거나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떨어지더라도 최하로 근접삼매upacāra-samādhi의 힘으로 '지혜를 온전히 갖춘(세 원인을 가진) 인간이나 욕계 천신'으로 태어난다.

색계에서 죽은 자가 무인ahetuka으로 태어나지 않는 원리는 무엇일까? 이 역시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필자는 그 핵심이 업력의 질적 하한선에 있다고 추론한다. 원인 없이 태어나는 것은 4악처에 태어나거나, 인간이나 천신으로 태어나도 장애가 있거나 성별이 불완전한 등의 저열한 재생연결식으로 태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선정은 세 가지 원인을 가진 개인만 닦을 수 있다(c.f. 도·과의 마음, 즉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다). 색계 범천들은 사마타 수행을 통해 임종의 순간에도 오개를 완전히 억누르고 선정을 성취한 분들이다. 이러한 존재들이 이번 생의 임종 시 선정을 잃어버린 경우, 과거에 지어둔 업들이 재생연결식의 대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인데, 이들의 지혜와 집중력의 수준을 미루어 보면 지옥에 가거나 개나 돼지, 장애를 가진 존재로 태어날 만큼 저열한 업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법칙에 끼워맞춘 해석'을 할 수 있겠다. 색계에 태어날 정도의 강력한 선업을 지은 존재가 욕계에 떨어지더라도, 그 잔여 업력이 완전히 바닥나서 무인ahetuka 재생연결식까지 추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선정을 성취했던 업력의 잔여분이 최소한 2인dvihetuka 수준의 재생연결식은 보장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법칙은 선정을 성취할 만큼의 존재가 가지는 업의 안전망, 선업의 잔여력 같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무상유정천의 중생의 경우 임종 시 선정을 유지할 마음이 없다. 이 존재들은 마음이 아예 없으므로 그 존재 기간 중 어떤 새로운 업도 지을 수 없고, 수명이 다하면 이전 생에서 지은 업에 의해 욕계 존재로만 재생할 것이다.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자는 어디든지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업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2가지, 혹은 원인 없이 죽은 자들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지혜가 없어 선정을 닦거나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욕계에 태어나게 된다. 다만 이번 생에 노력한다면 다음 생에는 세 원인을 가진 욕계 과보의 마음으로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평등하지 않고, 따라서 당연히 차별적일 수밖에 없는 업의 법칙은 성스러운 제자들ariya-sāvakā에 이르러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유학인 성스러운 제자들은 같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더 높은 세상에 태어난다. 그들은 같은 형태이거나 더 높은 재생연결식으로 태어날 뿐, 아래로 떨어짐이 없다. 소따빤나Sotāpanna는 스스로 악처 재생을 초래하는 수준의 불선업을 더 이상 짓지 않게 됨으로써 4악처를 영원히 벗어나며, 아나가미Anāgāmi는 욕계로 떨어질만한 감각적인 갈망을 모두 제거하여 영원히 바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는 세계인 욕계로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아라한Arahant은 존재 자체를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윤회의 결박을 영원히 벗어나 어떤 세상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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