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모- 땃사 바가와또 –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3회)
Namo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제6권 진리를 위주로 한 가르침
Mahā – vagga
제56 주제
진리[諦] 상윳따
Sacca - saṁyutta
제3장 꼬띠가마 품
Koṭigāma -vagga
꼬띠가마 경1 (S56:21)27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왓지에서 꼬띠가마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4.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셍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432]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셍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5. “비구들이여, 이제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잘라졌고, 존재로 인도함은 부수어졌으며,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6.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생에서 저생으로 저생에서 이생으로
그대들과 나, 긴 세월을 치달려왔도다.
이제 이 [네 가지 진리]를 보았도다.
존재로 인도함을 근절하였도다.
괴로음의 뿌리를 잘라버렸도다.
이제 다시 태어남이란 존재하지 않도다.”
꼬띠가마 경2(s56:22)274)
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던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수 없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들이라 불릴 수 없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 ∙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지 못한다.”
4.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만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다. [433]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 ∙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5.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괴로움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근원을 꿰뚫어 알지 못하며
어디서 괴로움이 남김없이
모두 소멸하는지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을 가라앉힘으로 인도하는
도(道)도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마음을 통한 해탈이 없고
통찰지를 통한 해탈도 [없나니]
그들은 끝을 이룰 수 없기에
태어남과 늙음으로 치달리도다.
괴로움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근원을 꿰뚫어 알며
어디서 괴로움이 남김없이
모두 소멸하는지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을 가라앉힘으로 인도하는
도도 꿰뚫어 아는 자들은
마음을 통한 아는 해탈을 구족하고
통찰지를 통한 해탈도 [구족하나니]
그들은 끝을 이루었기에
태어남과 늙음으로 치달리지 않도다.”
정등각자 경(S56:23)
Sammāsambuddha – sutta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자라 부른다.”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아라한 경(S56:24)
Arahanta –sutta
3. “비구들이여, 과거에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깨달은 아라한 ∙ 정등각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깨달았다.
비구들이여, [434] 미래에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깨닫은 아라한 ∙ 정등각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현재에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깨닫는 아라한 ∙ 정등각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깨닫는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 미래에 ∙∙∙ 현재에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깨닫는 아라한 ∙ 정등각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은 그대로 완전하게 깨닫는다.”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번뇌의 멸진 경(S56:25)
Āsavakkhaya –sutta
3. “비구들이여, 나는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가 멸진한다고 말하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 [번뇌가 멸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275)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하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보기 대문에 번뇌가 멸진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친구 경(S56:26)
Mitta –sutta
3.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연민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그대들 말이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이 [43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관통하도록 그대들은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믿음을]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이다.”
4.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연민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그대들 말이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이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관통하도록 그대들은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믿음을]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진실함 경(S56:27)
Tatha –sutta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4.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는 진실하고, 거짓이 아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276)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세상 경(S56:28)
Loka –sutta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4. “비구들이여,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여래가 바로 성스러운 분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철저히 알아야함 경(S56:29)
Pariññeyya –sutta
3. “비구들이여, [436]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4.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가운데 철저하게 알아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버려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실현해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닦아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철저하게 알아야 하는 성스러운 진리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해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 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가왐빠띠 경(s56:30)
Gavampti – 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많은 장로 비구들이 쩨띠에서 사하자띠에 머물렀다.277)
2. 그 무렵 많은 장로 비구들은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서 원형천막에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3. “도반들이여, 괴로움을 본 사람은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 봅니까?
4. 이렇게 말하자 가왐삐띠 존자278)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저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비구들이여, [437] 괴로움을 본 사람은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다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본다.’라고279)
제3장 꼬띠가마 품이 끝났다.
붓다사 사낭 찌랑 띳타뚜(3회)
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불법이라 불리우는 법과율의 가르침이
오랜세월 훼손없이 존속하여 머무소서.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