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모- 땃사 바가와또 –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3회)
Namo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청정도론 3권
제21장 도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
paṭipadāñāṇadassanavisuddhiniddeso
도의 출현으로 인도하는 위빳사나p328~
vuṭṭhānagāminīvipassanā
100. (6) 어린아이: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누각 위에 앉아있다가 길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소리를 듣고 ‘누가 내 아들에게 해코지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여 황급히 달려갔다. 자기 아들이라 인식하면서 남의 아들을 안고 돌아왔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아들인줄 인식했을 때 부끄러워하면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 여자가 아이를 훔쳤다고 하지 말아야 할 텐데’하면서 본래 장소에다 내려놓고는 잽싸게 누각으로 올라가 앉았다.
101. 여기서도 [범부가]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다섯 가지 무더기들을 취하는 것은 자기 아들인줄 잘못 인식하여 남의 아들을 껴안는 것과 같다. 세 가지 특상을 통해 ‘나’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은 이 아이는 남의 아들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같다.
공포로 나타나는 지혜는 부끄러워함과 같고,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는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림과 같고, 수순하는 지혜는 본래 장소에다 아이를 내려놓음과 같고, 고뜨라부의 지혜는 아이를 내려놓고 길가에 서있을 때와 같고, 도의 지혜는 누각으로 올라감과 같고, 과의 지혜는 올라가서 앉는 것과 같다. 이처럼 적용해서 알아야 한다.
102. (7) 굶주림 (8)목마름 (9)추위 (10) 더위 (11) 어둠 (12) 독: 이 여섯 가지 비유는 출현에 이르는 위빳사나를 수행하는 자가 출세간법으로 기울고 향하고 기대는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서 설했다.
103.[(7)굶주림]: 배고픔에 압도되고 굶주림에 내몰린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갈망하듯이 윤회의 굶주림에 내몰린 수행자는 불사를 맛보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이란 음식을 열망한다.
104. [(8)목마름]: 목마른 사람이 목과 입이 타 들어가서 갖가지 재료로 만든 마실 거리를 갈망하듯이 윤회의 목마름으로 타는 수행자는 성스러운 팔정도라는 마실 거리를 열망한다.
105.[(9)추위]: 추위에 벌벌 떠는 자가 뜨거움을 갈망하듯이 윤회에서 갈애와 애정이라는 추위에 벌벌 떠는 수행자는 오염원을 태워버릴 도의 온기를 열망한다.
106. [(10)더위]: 더위에 녹초가 된 자가 차가움을 갈망하듯이 윤회에서11가지 불(S.iv.19)에 의해 기진맥진한 수행자는 10가지 불이 꺼진 열반을 열망한다.
107.[(11) 어둠]: 어두움에 둘러싸여있는 사람이 빛을 갈망하듯이 무명의 어두움에 둘러싸인 수행자는 도를 닦아서 생긴 지혜의 빛을 열망한다.
108.[(12)독]: 독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독을 제거할 약을 갈망하듯이 오염원의 독으로 괴로워하는 수행자는 오염원의 독을 제거할 때 불사의 약인 열반을 열망한다.
109. 그래서 설하셨다.”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삼계의 존재에 대해 ∙∙∙ 아홉 가지 중생의 거처에 대해 그의 마음은 물러나고, 움츠리고, 되돌아오고, 퍼지지 않는다. 평온이나 혐오스러움이 확립된다. 마치 약간 경사진 연잎 위의 물방울이 물러나고, 움츠리고, 굴러 떨어지고, 퍼지지 않듯이.”라고(§63) 모든 것은 앞서 설한 방법대로 알아야 한다.
110. 이렇게 하여 그는 초연한 자(patilīna-cara)라 불린다. 이것을 두고 설하셨다.
“비구가 초연하고
멀리 여읜 마음을 닦을 때
그를 두고 사람들이 적절하게 말하기를
존재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Sn.810)”
이것은 깨달음의 구성요소 등의 차이를 결정한다
111. 이와 같이 이 상카라들에 대한 평온의 지혜는 수행자의 초연한 상태를 결정하고 나아가서 ① 성스러운 도에 있는 깨달음의 구성요소, 도의 구성요소, 禪의 구성요소 ② 도닦음 ③ 해탈의 차이를 결정한다.
그런데 어떤 장로는 기초가 되는 禪(pādakajjhāna)이 깨달음의 구성요소와 도의 구성요서와 禪의 구성요소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한다. 어떤 자는 위빳사나의 대상이 되는 무더기들이 결정한다고 하고 어떤 자는 개인의 성향이 결정한다고 한다. 그들의 견해 가운데서 오직 이 준비의 위빳사나의 출현으로 인도하는 위빳사나가 결정한다고 알아야 한다.
112. [①구성요소의 차이]:이제 순서에 따라 설명한다.
㉠위빳사나에 의한 결정에 따르면 마른 위빳사나를 하는 자(sukkhavipassaka,乾觀者)에게 일어난 도와, 증득(等至)을 얻은 자에게 禪을 기초로 하지 않고 일어난 도와, 초선을 기초로 하고 기초가 되는 禪이외의 다른 상카라들을 명상하여 일으킨 도는 초선의 도가 된다. 모든 경우에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 여덟 가지 도의 구성요소들, 다섯 가지 禪의 구성요소들이 있다. 그들의 준비의 위빳사나는 기쁨과 함께하기도 하고 평온과 함께하기도 하며 출현할 때에는 상카라들에 대해 평온한 상태에 이른 뒤 기쁨과 함께 한다.
113. ㉡오종선(五種禪)에서 두 번째, 세 번째 禪을 기초로 하여 일어난 도와 함께하는 禪은 순서대로 네 가지, 세 가지, 두 가지의 구성요소들을 가진다. 모든 경우에 일곱 가지 도의 구성요소들이 있다. 네 번째 경우에는 여섯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서들이 있다. 이 차이는 기초가 되는 禪에 의한 결정과 위빳사나에 의한 결정에 기인한 것이다. 이들 이전의 위빳사나는 기쁨과 함께하기도 하고 평온과 함께하기도 한다. 출현에 이르는 위빳사나는 오직 기쁨과 함께한다.
114. ㉢ 제5선을 기초로 하여 도가 생겼을 때 평온과 마음의 하나됨(心一境性)이라는 두 가지 禪의 구성요소들을 가지며 깨달음의 구성요소와 도의 구성요소는 각각 여섯 가지와 일곱 가지이다. 이 차이도 두 방법의 결정에 기인한 것이다. 이 경우 준비의 위빳사나는 기쁨과 함께하거나 평온과 함께한다. 출현함에 이르는 위빳사나는 오직 평온과 함께한다. 무색계 禪을 기초로 하여 일어난 도에도 이 방법이 적용된다
이와 같이 [위빳사나의] 기초가 되는 禪으로부터 일어난 어떤 상카라들을 명상한 뒤 도가 생겼다면, 이 도와 가까운 지점에서 출현한 증득이 그 도를 자기와 같은 상태로 만든다. 마치 땅의 색깔이 도마뱀에게 자기의 색깔을 갖게 하는 것처럼.
115. ㉣ 두 번째 장로의 이론에 따르면 어떤 증득이든 그것으로부터 일어나 그 증득에 속하는 법들을 명상한 뒤 도가 생기면 그 도는 그 증득과 같다. 여기서도 위빳사나에 의한 결정은 앞서 설한대로 알아야 한다.
116. ㉤ 세 번째 장로의 이론에 따르면 자기의 성향에 맞게 禪을 기초로 하여 그 禪에 속하는 법들을 명상한 뒤 도가 생기면 그 도는 그 禪과 같다. 이것은 禪을 위빳사나의 기초로 하지 않았거나 혹은 禪에 속하는 법들을 명상하지 않고 성향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 이 뜻은 「난다꼬와다 경」(Nandakovāda Sutta, 난다들을 교계하는 경. M.iii.277)에서 설하신 것과 같다. 여기서도 위빳사나에 의한 결정은 앞서 설한대로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상카라들에 대한 평온이 깨달음과 도와 禪의 구성요소들을 결정한다고 알아야 한다.
117. [② 도닦음의 차이]: 만약 이 [상카라들에 대한 평온이] 처음에 어렵게 노력과 자극을 통해 오염원들을 억압할 때 이것을 어려운 도닦음(dukkhāpaṭipadā)이라 부른다. 그와 반대되는 것을 쉬운 도닦음(sukhpaṭipadā)이라 한다. 오염원들을 억압한 뒤 위빳사나의 목표인 도의 출현이 천천히 생기면 둔한 초월지(dandhābhiññā)라고 부르고, 그 반대를 빠른 초월지(khippābhiññā)라 한다. 이와 같이 이 상카라들에 대한 평온은 [도가] 오는 곳에 서서 그 도에게 각각의 이름을 준다. 그러므로 이 도는 네 가지 이름들을 얻는다.
118. 그런데 어떤 비구에게는 이 도닦음이 [예류도부터 이라한도까지가] 서로 다르고 어떤 자에게는 네 가지 도에서 한결같다. 부처님들의 경우 네 가지 도 모두에게 쉬운 도닦음과 빠른 초월지를 가지셨다. 법의 사령관인 [사리뿟따 존자]도 그와 같았다. 그러나 목갈라나 존자는 첫 번째 도는 쉬운 도닦음과 빠른 초월지를 가졌지만 나머지 세 기지 도의 경우 어려운 도닦음과 둔한 초월지였다.
119.도닦음처럼 지배(adhipati)도 어떤 비구에게는 네 가지 도에서 다르고 어떤 자에게는 네 가지 모두에서 한결같다. 이와 같이 상카라들에 대한 평온이 도닦음의 차이를 결정한다.
[①자기 성품에 따라]: 만약 상카라들에 대한 평온이 상카라들을 무상이라고 명상한 뒤 출현하면 표상 없는 해탈로 해탈한다. 만약 상카라들을 괴로움이라고 명상한 뒤 출현하면 원함 없는 해탈로 해탈한다. 만약 무아라고 명상한 뒤 출현하면 공한 해탈로 해탈한다. 이것이 자기 성품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122.[②반대되는 것에 따라]: 무상의 관찰을 통하여 상카라들의 덩어리를 분해한 뒤 영원하다는 표상, 지속된다는 표상, 항상하다는 표상을 버리고 왔기 때문에 표상이 없다고 한다. 괴로움의 관찰을 통하여 행복이라는 인식을 버린 뒤 원함과 열망함을 말려버리고 왔기 때문에 원함이 없다고 한다. 무아의 관찰을 통하여 자아, 중생, 인간이라는 인식을 버린 뒤 상카라들을 공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공하다고 한다. 이것이 반대되는 것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123.[③자기의 덕에 따라]: 탐욕 등이 공하기 때문에 공하고, 물질의 포상 등이 없기 때문에 혹은 탐욕의 표상 등이 없기 때문에 표상이 없고, 탐욕을 원함 등이 없기 때문에 원함이 없다. 이것이 자기의 덕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124. [④대상에 따라]: 이 도는 공하고, 표상이 없고, 원함이 없는 열반을 [자기의] 대상으로 삼기 대문에 각가 공하고, 표상이 없고, 원함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대상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125.[⑤ 오는 곳에 따라]: 오는 곳은 두 가지이다. 즉 위빳사나가 오는 곳과 도가 오는 곳이다. 도의 경우에는 위빳사나가 그 오는 곳이고 과의 경우에는 도가 그 오는 곳이다. 무아의 관찰을 공함이라 한다. 공함의 위빳사나로 [도달한] 도는 공하다. 무상의 관찰을 표상 없음이라 한다. 표상 없음의 위빳사나로 [도달한] 도는 표상이 없다.
126.그런데 이런 용어는 논장(Abhidhamma)의 가르침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경장(Suttanta)의 가르침에 발견된다. [경장]에서는 ‘고뜨라부의 지혜는 표상이 없는 열반을 자기의 대상으로 삼아서 표상이 없다는 이름을 가진 뒤 스스로 [도가] 오는 곳에 서서 도에게 이름을 준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도는 표상이 없다고 설했다. 도가 오는 곳에 따라 그것의 과도 표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다.
127. 그리고 괴로움의관찰은 상카라들에 대한 원함을 말려버리고 오기 때문에 원함이 없다고 이름 한다. 원함 없는 위빳사나를 통해 생긴 도도 원함이 없다고 한다. 원함 없는 도의 과도 원함이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위빳사나는 도에게 자기의 이름을 준다. 도는 과에게 준다. 이것이 오는 곳을 따라 이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상카라들에 대한 평온이 해탈의 차이를 결정한다.
상카라들에 대한 평온의 지혜가 끝났다.
붓다사 사낭 짜랑 띳타뚜(3회)
(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불법이라 불리우는 법과율의 가르침이
오랜세월 훼손없이 존속하여 머무소서.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