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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3권 제22장 지와 견에 의한 청정 *1.고뜨라부, 네 가지 도, 네 가지 과p345~

작성자sucitta여의주|작성시간22.03.12|조회수9 목록 댓글 0

나모- 땃사 바가와또 –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3회)

Namo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청정도론 3권

 

제22장 지와 견에 의한 청정

ñāṇadassanavisuddhiniddeso

 

1.고뜨라부, 네 가지 도, 네 가지 과p345~

pahamamaggañāakathā

 

1.이 [수순하는 지혜] 다음에 고뜨라부(gotrabhū, 種姓)의 지혜가 생긴다. 이것은 도로 전향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도닦음의 지와 견에 의한 청정’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지와 견에 의한 청정’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중간에 처해있기 때문에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다. 그러나 위빳사나의 흐름에 들어있기 때문에 위빳사나라는 명칭을 가진다.

 

2.예류도,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 이 네 가지 도에 대한 지혜를 지와 견에 의한 청정(ñāṇadassanavisuddhi,知見淸淨)이라  한다.

 

고뜨라부의 지혜와 첫 번째 도의 지혜

 

3. 여기서 첫 번째 도의 지혜를 성취하고자하는 자는 달리 해야 할 것이 따로 없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수순하는 지혜로 종결되는 위빳사나를 일으킴으로써 이미 다 해 마쳤다.

 

4. 이와 같이 수순하는 지혜가 일어나고, 진리를 뒤덮는 칠흑 같은 암흑이 [준비,근접, 수순의] 세 가지 수순하는 지혜 각각의 힘에 의해 사라질 때(ⅩⅩⅠ.§129이하) 수행자의 마음은 모든 상카라들에 들어가지 않고, 머물지 않고, 확신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고수하지 않고, 묶이지 않는다. 마치 연잎으로부터 물방울이 물러나고, 움츠리고, 굴러 떨어지듯이 모든 표상이라는 대상과 진행이라는 대상은 방해(palibodha)로 나타난다.

 

5. 모든 표상이라는 대상과 진행이라는 대상이 방해로 나타나고, 수순하는 지혜를 반복해서 일으키는 것이 끝날 때 표상이 없고, 진행이 없고, 형성됨을 여의었고, 소멸인 열반을 대상으로 고뜨라부의 지혜가 일어난다. 이것은 범부(puthujjana)의 종성, 범부의 이름, 범부의 경지를 초월하고 성자(ariya)의 종성, 성자의 이름, 성자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대상인 열반으로 처음 들어가고, 처음 전념하고, 처음 집중하는 것이다.

 고뜨라부의 지혜는 도에게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 더욱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 반복하는 조건,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 존재하지 않은 조건, 떠나가버린 조건 — 이 여섯 가지 형태로 조건을 성취한다. 이것은 위빳사나의 정점에 이른 것이고 다시는 물러섬이 없다. 이를 두고 설하셨다.

 “어떻게 밖으로부터 출발함과 물러섬에 대한 통찰지가 고뜨라부의 지혜인가? 일어남을 극복하기 때문에 고뜨라부이다. 진행을 ∙∙∙ 절망을 극복하기 때문에 고뜨라부이다. ∙∙∙ 밖으로 상카라들의 표상을 극복하기 때문에 고뜨라부이다. 일어나지 않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고뜨라부이다. 진행하지 않음에 ∙∙∙ 절망이 없고 소멸인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고뜨라부이다. 일어남을 극복하고 일어나지 않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고뜨라부이다.(PS.I.66)”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6. 여기서 수순하는 지혜와 고뜨라부가 비록 하나의 전향을 가진 하나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지만 이들이 다른 대상을 가지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비유가 있다. 그것은 이러하다.

  어떤 사람이 큰 개울을 건너뛰어 저쪽 기슭에 머물고자하였다. 그는 속력을 다해 달려와서 이쪽 기슭의 나무 가지에 묶여 매달려있는 밧줄이나 혹은 장대를 잡고 껑충 뛰어넘어 반대쪽 기슭으로 몸을 향하고 기울이고 기대어서 반대쪽 기슭의 위쪽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놓아버리고 반대쪽 기슭에 떨어져서는 처음엔 그 몸이 비틀거리다가 서서히 안주하였다.

 이와 같이 존재, 모태, 태어날 곳, 거주, 거처의 반대쪽 기슭인 열반에 머물기를 원하는 수행자도, 일어나고 사라짐의 관찰 등으로 속력을 대해 달려와 자기 몸이라는 나뭇가지에 묶여 매달려있는 물질의 밧줄이나 느낌 등의 장대 가운데 하나를 무상, 고, 무아라고 수순의 전향으로 잡고는 그것을 놓지 않고 첫 번째 수순의 마음으로 껑충 뛰어넘어 두 번째 [수순의 마음= 근접의 속행]으로 열반을 향하고 기울이고 기대어, 저쪽 기슭의 위에 이른다. 마치 뜸을 저쪽 기슭으로 향하고 기울이고 기대듯이.

 마찬가지로 세 번째 [수순의 마음 = 수순의 속행으로 곧 얻게 될 열반에 가까이 가서 그 마음이 소멸함으로써 그 마음의 대상이었던 상카라들을 놓아버리고 종성의 마음으로 상카라들을 여읜 피안의 열반에 이른다. 반복함을 얻지 못해 비틀거리는 사람처럼 하나의 대상에 단박에 잘 안주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도의 지혜로써 안주한다.

 

7. 여기서 수순은 진리를 가려버리는 오염원의 어둠을 흩어버릴 수는 있지만 열반을 대상으로 삼지는 못한다. 종성은 오직 열반을 대상으로 삼지만 진리를 가려버리는 어둠을 흩어 버리지는 못한다.

 

8. 이것이 비유다. 눈을 가진 어떤 사람이 별자리의 합궁을 관찰하리라 생각하고 밤에 밖으로나가서 달을 보기 위해 위로 올려다보았지만 먹구름에 덮여 있었기 때문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가닥 바람이 일어 짙은 구름을 쓸었고, 다시 바람이 일어 중간의 구름을 쓸었고, 또 다시 바람이 일어 옅은 구름까지도 모두 쓸어버렸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구름 없는 하늘에서 달을 보면서 별자리의 합궁을 원만하게 알 수 있었다.

 

9. 진리를 가려버리는 짙고, 보통이고, 옅은 오염원의 어둠은 세 가지 구름과 같다. 세 가지 수순하는 마음은 세 가지 바람과 같다. 고뜨라부의 지혜는 눈을 가진 사람과 같다. 열반은 달과 같다. 각각의 수순하는 마음이 진리를 가려버리는 어둠을 흩어버리는 것은 각각의 바람이 순서대로 구름을 흩어버리는 것과 같다. 진리를 가려버리는 어둠이 사라졌을 때 고뜨라부의 지혜가 청정한 열반을 보는 것은 구름 없는 하늘에서 그 사람이 청정한 달을 보는 것과 같다.

 

10. 세 가지 바람은 달을 가린 먹구름을 흩어버릴 수는 있지만 달을 보지는 못하는 것처럼 수순하는 마음도 진리를 가리는 어둠을 흩어버릴 수는 있지만 열반을 보지는 못한다. 마치 그 사람이 달을 보기는 하지만 구름을 흩어버릴 수는 없듯이 이 고뜨라부의 지혜도 열반을 보지만 오염원의 어둠을 흩어버리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도의 전향(āvajjana)이라 부른다.

 

11. 비록 이 고뜨라부의 지혜가 전향의 마음은 아니지만 전향하는 곳에 머물러서 ‘이와 같이 생겨라’하고 도에게 신호(saññā)를 보내는 것ㅊ럼 하고서 소멸한다. 도의 지혜도 고뜨라부의 지혜가 준 신호를 놓지 않고 간단없는 상속으로 그 지혜를 따라 전에 미처 부수지 못하고 전에 미처 쪼개버리지 못했던 탐욕의 무더기, 성냄의 무더기, 어리석음의 무더기를 부수고 쪼개버리면서 생긴다.

 

12. 이것이 비유다. 어떤 궁수가 여덟 우사바의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 백 장의 판자를 놓게 하고 천으로 얼굴을 가린 뒤 활을 쏠 채비를 하고 회전하는 기계 위에 섰다. 다른 사람이 그 기계를 돌린 뒤 목표물인 판자가 궁수를 향할 때 막대기로 신호를 주었다. 궁수는 그 막대기의 신호를 놓치지 않고 활을 쏘아 백장의 판자를 관통하였다.

 

13. 여기서 고뜨라부의 지혜는 막대기의 신호와 같다. 도의 지혜는 궁수와 같다. 고뜨라부의 지혜가 준 신호를 놓치지 않고 도의 지혜기 열반을 대상으로 하여 전에 미처 부수지 못하고 전에 미처 쪼개버리지 못했던 탐욕의 무더기, 성냄의 무더기, 어리석음의 무더기를 부수고 쪼개버리는 것은 궁수가 막대기의 신호를 놓치지 않고 백장의 판자를 관통하는 것과 같다.

 

14. 도는 탐욕의 무더기 등을 부술 뿐만 아니라 시작이 없는 윤회에 전전하는 괴로움의 바다를 말려버린다. 모든 악처의 문을 닫아버린다. 일곱 개의 성스러운 보물과 대면하게 한다. 여덟 가지 삿된 도를 버린다.모든 증오(vera)와 두려움(bhaya)을 가라앉게 한다. 정등각자의 가슴으로부터 태어난 아들이 되게 인도한다. 다른 수백 가지의 이익을 얻게 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이익을 주는 예류도와 함께한 지혜가 예류도의 지혜다.

 첫 번째의 지혜가 끝났다.

 

 

 

     붓다사 사낭 짜랑 띳타뚜(3회)     

     (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불법이라 불리우는 법과율의 가르침이

     오랜세월 훼손없이 존속하여 머무소서.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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