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모- 땃사 바가와또 –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3회)
Namo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청정도론 3권
제22장 지와 견에 의한 청정
ñāṇadassanavisuddhiniddeso
1.고뜨라부, 네 가지 도, 네 가지 과p352~
paṭhamamaggañāṇakathā
첫 번째 과의 지혜 — 두 번째 성자
15.이 지혜 바로 다음에 그것의 결과로 둘 혹은 셋의 과의 마음들이 일어난다.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들은 즉시에 과보를 주기 때문에 “즉시에 [과보를 주는] 禪을 설했다.(Sn.226)”고 하셨고 “그는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즉시에 과보를 주는 [성스러운 도에] 천천히 도달한다.(A.I.149)”고 설하셨다.
16. 어떤 자들은 과의 마음이 한 개나, 두 개나, 세 개나, 네 개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고뜨라부의 지혜가 수순하는 지혜를 반복한 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순하는 마음은 최소한 두 개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단 하나로는 반복하는 조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의 전향을 가진 인식과정은 최대로 일곱 개의 속행의 마음을 가진다. 그러므로 [예리한 자는].
①-②두 개의 수순을 가지고
③그것의 세 번째가 고뜨라부이고
④네 번째가 도의 마음인 그 과정은
⑤-⑦세 개의 과의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둔한 자의 경우]
①-③세 개의 수순을 가지고
④그것의 네 번째가 고뜨라부이고
⑤다섯 번째가 도의 마음인 과정은
⑥-⑦두 개의 과의 마음을 가진다.
그래서 설하였다. ‘둘 혹은 셋의 과의 마음들이 일어난다’고.
17. 어떤 자들은 ‘네 개의 수순을 가지고, 그것의 다섯 번째가 고뜨라부이고, 여섯 번째가 도의 마음인 과정은 하나의 과의 마음을 가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의 [속행에서 도가] 일어나고 그 이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재의식과 가깝기 때문이다(CF.Ⅳ.76-77)” 라고 설했기 때문에 그 견해는 논파되었다. 그러므로 옳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18. 이[첫 번째 과가 생기는 것에 이르러] 예류자는 두 번째 성자라 불린다.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신이나 인간 중에 일곱 번 달려서 윤회한 뒤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
19. 과의 마음 끝에 그의 마음은 잠재의식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 잠재의식을 끊고 도를 반조하기 위해여 의문전향의 마음이 일어난다. 그것이 멸할 때 순서대로 도를 반조하는 일곱 개의 속행이 일어난다. 다시 잠재의식에 들어가서 r와 같은 방법으로 과 등을 반조하기 위하여 전향의 마음 등이 일어난다. 그 [전향 등]이 일어남으로써 그는 ①도를 반조하고 ②과를 반조하고③ 버린 오염원들을 반조하고 ④남아있는 오염원들을 반조하고 ⑤ 열반을 반조한다.
20. ① 그는 ‘참으로 내가 이 도로써 왔구나’라고 도를 반조한다. ② 그 다음에 ‘이것이 내가 얻은 이익이구나’라고 과를 반조한다. ③ 그 다음에 ‘참으로 이들이 내가 버린 오염원들이구나’라고 버린 오염원들을 반조한다. ④ 그 다음에 ‘이들이 아직 남아있는 오염원들이구나’라고 뒤의 세 가지 도로써 버릴 오염원들을 반조한다. ⑤ 마지막으로 ‘이 법을 대상으로 삼아 내가 이 법을 꿰뚫었다’라고 불사인 열반을 반조한다. 이와 같이 예류인 성스러운 제자는 다섯 가지 반조를 가진다.
21. 예류자처럼 일래자와 불환자도 다섯 가지 반조를 가진다. 아라한의 경우 남아있는 오염원들을 반조함이 없다. 이와 같이 모두 19가지 반조가 있다. 이것이 최대의 한도이다. 유학들은 버린 오염원들과 남아있는 오염원들을 반조할 수도 혹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을 반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하나마가 세존께 여쭈었다. “제가 안으로 어떤 법을 버리지 않아서 가끔 탐욕의 법들이 제 마음에 침입하여 머뭅니까?(M.i.91)”라고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두 번째 도의 지혜 — 세 번째 성자
22. 이와 같이 반조한 뒤 예류자인 성스러운 제자는 그 자리에 앉거나 다른 시간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과 악의를 줄이는 두 번째의 경지를 얻기 위해 수행한다. 그는 기능(根), 힘(力), 깨달음의 구성요소(覺支)들을 함께 가져와서 물질, 느낌, 인식, 상카라, 알음알이로 분류되는 형성된 것들을 무상, 고, 무아라고 지혜로써 면밀히 검토하고 그곳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여 위빳사나의 과정에 들어 간다.
23.이와 같이 수행할 때 앞서 설한 방법대로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 끝에 하나의 의문전향을 통해서 수순하는 지혜와 고뜨라부의 지혜가 일어나고 고뜨라부 다음에 일래도가 일어난다. 그와 함께한 지혜가 일래도의 지혜이다.
두 번째 도의 지혜가 끝났다.
두 번째 과의 지혜 — 네 번째 성자
24. 이 지혜 다음에 앞서 설한 방법대로 과의 마음들이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일래자를 네 번째 성자라 부른다. 오직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 이 다음에는 앞서 설한 방법대로 반조가 있다.
세 번째 도의 지혜 — 다섯 번째 성자
25. 이와 같이 반조한 뒤 일래자인 성스러운 제자는 오직 그 자리에 앉거나 다른 시간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과 악의를 남김없이 버리고 세 번째 경지를 얻기 위해 수행한다. 그는 기능, 힘,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함께 가져와서 형성된 것들을 무상, 고, 무아라고 지혜로 철저히 검토하고 그곳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여 위빳사나의 과정에 들어간다.
26. 이와 같이 수행할 때 앞서 설한 방법대로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 끝에 하나의 의문전향을 통해서 수순하는 지혜와 고뜨라부 다음에 불환도가 일어난다. 그와 함께한 지혜가 불환도의 지혜이다.
세 번째 도의 지혜가 끝났다.
세 번째 과의 지혜 — 여섯 번째 성자
27. 이 지혜 다음에 앞서 설한 방법대로 과의 마음들이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이런 불환자를 여섯 번째 성자라 부른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열반에 들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 재생연결을 통해서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 이 다음에 앞서 설한 방법대로 반조가 있다.
네 번째 도의 지혜 — 일곱 번째 성자
28. 이와 같이 반조한 뒤 불환자인 성스러운 제자는 그 자리에 앉거나 다른 시간에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탐욕, 자만, 들뜸, 무명을 남김없이 버리고 네 번째의 경지를 얻기 위해 수행한다. 그는 기능, 힘,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함께 가져와서 형성된 것들을 무상, 고, 무아라고 지혜로써 철저히 검토하고 그곳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여 위빳사나의 과정에 들어간다.
29. 이와 같이 수행할 때 앞서 설한 방법대로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 끝에 하나의 의문전향을 통해서 수순하는 지혜와 고뜨라부의 지혜가 일어나고 고뜨라부 다음에 아라한도가 일어난다. 그와 함께한 지혜가 아라한의 지혜이다.
네 번째 도의 지혜가 끝났다.
네 번째 과의 지혜 — 여덟 번째 성자
30. 이 지혜 다음에 앞서 설한 방법대로 과의 마음들이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이런 아라한을 여덟 번째 성자라 부른다. 그는 번뇌가 대한 위대한 자이고, 마지막 몸을 가진 자요, 짐을 내려놓았고,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존재의 족쇄를 풀었고, 바른 구경의 지혜(aññā, 究竟智)로 해탈했고, 신을 포함한 인간에서 최고의 공양을 받을만한 자이다.
31. 이와 같이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 이 네 가지 도에 대한 지혜가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이라 한다’(§2)고 앞서 설한 것은 이러한 순서대로 얻어야 할 이 네 가지 지혜에 관해서 설한 것이다.
붓다사 사낭 짜랑 띳타뚜(3회)
(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불법이라 불리우는 법과율의 가르침이
오랜세월 훼손없이 존속하여 머무소서.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