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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3권 제22장 지와 견에 의한 청정 *2.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菩提分法)p375~

작성자sucitta여의주|작성시간22.03.17|조회수7 목록 댓글 0

나모- 땃사 바가와또 –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3회)

Namo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청정도론 3권

 

제22장 지와 견에 의한 청정

ñāṇadassanavisuddhiniddeso

 

2.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菩提分法)p375~

Bodhipakkhiyakathā

 

(4)버려야할 법들과 (5) 그들을 버림

Pahātabbā dhammā teaṁ pahānañca

                               

이어서

79. 이것은 특별한 논의가 아니다. 성전에서 이미 [이와 같이 거량을] 하셨기 때문이다. 『무애해도』에서 “그가 이 오염원들을 버릴 때 과거의 오염원들을 버리는가, 미래의 오염원들을 버리는가, 아니면 현재의 오염원들을 버리는가?”라고 질문을 제기하신다. “만약에 과거의 오염원들을 버린다면, 이미 파괴한 것을 파괴하고, 이미 멸한 것을 멸하게 하고, 사라진 것을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은 것을 가라앉게 한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것을 버린다.’라고 이의를 제기하시고, “그는 과거의 오염원들을 버리지 않는다.(Ps.ii.217)”라고 그것을 거부하신다.

 다시 “만약 그가 미래의 오염원들을 버린다면 그는 생기지 않은 것을 버리고, 발생하지 않은 것을 버리고, 일어나지 않은 것을 버리고, 나타나지 않은 것을 버린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을 버린다.”라고 이의를 제기하시고는 “그는 미래의 오염원들을 버리지 않는다.”라고 그것을 거부하신다.

 다시 “만약에 그가 현재의 오염원들을 버린다면 그는 탐욕을 가진 채로 탐욕을 버리고, 성을 내면서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은 채 어리석음을 버리고, [자만의] 수갑에 채인 상태에서 자만을 버리고, 잘못 생각하면서 견해를 버리고, 고질적인 습관을 가진 채 잠재성향을 버리고, 어둡고 밝은 법들이 쌍으로 일어나고, 도를 닦는 것 자체가 오염된 것이 된다.(Ps.ii.217-18)”라고 이의를 제기하신 후 “그는 과거의 오염원들을 버리지 않고, 미래의 오염원들을 버리지 않고, 현재의 오염원들을 버리지 않는다.’라고 모든 것을 거부하신다.

 다시 “도를 닦음도 없고, 과를 깨달음도 없고 오염원들을 버림도 없고, 법의 관통도 없는가?”라는 질문의 끝에 “도를 닦음이 없지 않고 〮〮〮 법의 관통이 있다”라고 법의 관통이 있다”라고 정리하신다. “마치 어떤 것과 같은가?”라고 질문을 제기하시고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예를 들면, 아직 열매가 열리지 않은 어린 나무가 있다고 치자. 어떤 사람이 그 나무의 뿌리를 잘라버리면 그 나무에 아직 열리지 않은 열매들은 열리지 않은 채로 열리지 않고, 생기지 않은 채로 생기지 않고, 일어나지 않을 채로 일어나지 않고, 나타나지 않은 채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일어남이 오염원들이 생길 원인이고, 일어남이 오염원들이 생길 조건이다. 일어남에 위험을 보고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향해 돌아간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어남을 조건으로 생길 오염원들이 생기지 않은 채 생기지 않는다. 〮〮〮 나타나지 않은 채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원인이 소멸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소멸한다. 진행이 원인이고 〮〮〮 표상이 원인이고 〮〮〮 쌓음이 원인이고 〮〮〮 쌓음이 없음으로 마음이 들어가기 때문에 쌓음을 조건으로 생길 오염원들이 생기지 않은 채 〮〮〮 나타나지 않은 채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원인이 소멸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도를 닦음이 있고, 과를 깨달음이 있고, 오염원들을 버림이 있고, 법의 관통이 있다.(Ps.ii.218)”

 

80.이것은 무엇을 밝혔는가? 토양을 얻은 오염원들의 버림을 밝혔다. 토양을 얻은 오염원들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것인가? 그들은 단지 토양을 얻어 일어난 것일 뿐이다.

 

81. 일어남(uppannaṁ)이란 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어남] ② 있었다가 사라진 [일어남] ③ 기회에 의해서 주어진 [일어남] ④ 토양을 얻음에 의한 [일어남]으로 여러 분류가 있다.

 여기서 ① 일어남과 쇠퇴와 무너짐[의 세 순간]을 가지고 있다고 일컫는 모든 것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어남이라 한다.

 ② 대상의 맛을 경험하고는 사라진 ‘경험하고서 사라졌다’고 일컫는 유익한 과보와 해로운 [과보], 또한 일어남 등의 세 순간에 이른 뒤 소멸한 ‘있었다가 사라졌다’라고 일컫는 나머지 형성된 것들을 있었다가 사라진 일어남이라 한다.

 ③ “그가 이전에 지었던 업들(cf. M.iii. 164;171)”이라는 방법으로 업을 설하셨다. 비록 그 업이 과거의 것이라 하더라도 업은 다른 과보를 누르고 자기의 과보를 가져올 기회를 만들며 머물기 때문에, 그리고 그와 같은 기회를 가진 과보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회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에 기회에 의해서 주어진 일어남이라 한다.

 ④ 각각의 토양들에서 뿌리 뽑히지 않은 해로운 [업]을 토양을 얻음에 의한 일어남이라 한다.

 

82. 여기서 토양과 토양을 얻음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토양이란 위빳사나의 대상으로서 삼계에 속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들이다. 토양을 얻음이란 그 무더기들에서 일어날만한 오염원이다. 그러므로 오염원이 토양을 얻었기 때문에 토양을 얻음(bhūmiladdha)이라 한다. 이것은 대상으로서 말한 것이 아니다.

 

83. 왜냐하면 대상의 [측면에서 보면] 오염원은 모든 과거와 미래의 무더기들과 번뇌 다한 자들의 통달지를 갖춘 무더기들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마라깟짜나 존자의 무더기들을 대상으로 소레야(Soreyya) 장자에게 일어난 오염원과(DhpA.i.325) 우빨라완나(Uppalavaṇṇa)존자의 무더기들을 대상으로 난다(Nanda)바라문 학도에게 일어난 오염원처럼(DhpA.ii.49)

만약 그것을 토양을 얻음에 의한 일어남이라 한다면 어느 누구도 존재의 뿌리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염원이 생길] 토대로서 토양을 얻음을 알아야 한다. 위빳사나를 통해 통찰지를 가지지 않은 어떤 무더기들이 일어날 때 그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부터 그 속에 윤회의 뿌리인 오염원들이 잠재한다. 그것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토양을 얻음이라 한다고 알아야 한다.

 

84.어떤 사람의 무더기들에 오염원들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잠재해있을 때 오직 그 사람의 무더기들이 그 오염원들의 토대가 된다. 다른 사람의 무더기들이 아니다. 과거의 무더기들에 잠재해있고 버려지지 않은 오염원들의 토대는 오직 과거의 무더기들이다. 다른 것이 [토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방법은 미래 등에도 적용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욕계의 무더기들에 잠재해있고 버려지지 않은 오염원들의 토대는 오직 욕계의 무더기들이다. 다른 것이 [토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방법은 색계, 무색계에도 적용된다.

 

85. 예류자 등 성인의 무더기들에서 윤회의 뿌리인 오염원들이 각각의 도로 버려졌을 때 그 성인의 무더기들은 그 오염원들의 토양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그 무더기들은 이미 버린 윤회의 뿌리인 오염원들의 토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범부의 경우 윤회의 뿌리가 되는 오염원들을 모두 다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업이든 그가 행하는 것은 유익한 업이거나 해로운 업이 된다. 그러므로 그에게 업과 오염원들을 조건으로 윤회가 계속된다.

 

86. ‘그 범부의 윤회의 뿌리인 오염원들이 물질의 무더기에만 있고 느낌 등의 무더기에는 없다거나 〮〮〮 혹은 오직 알음알이의 무더기에만 있고 물질의 무더기 등에는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왜 그런가? 구별 없이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모두] 잠재해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마치 땅의 영양소 등이 나무의 [전체에 퍼져있듯이].

 

87. 예를 들면, 큰 나무가 땅 표면에서 커서 땅의 영양소와 물의 영양소를 의지하여 그것을 조건으로 뿌리와 줄기와 큰 가지와 작은 가지와 싹과 잎과 꽃과 열매가 가득하여 하늘을 덮을 때까지 겁이 다하도록 씨앗의 상속으로 나무의 계보를 이어가며 자랄 때 땅의 영양소 등이 오직 뿌리테만 있고 줄기 등에는 없다거나 〮〮〮 혹은 오직 열매에만 있고 뿌리 등에는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 그런가? 구별 없이 뿌리 등 모든 곳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88.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 나무의 꽃, 열매 등을 역겨워하여 ‘만두까 가시”라고 부르는 독 있는 가시로 그 나무의 사방을 찌른다면 그 나무는 독이 번져 땅의 영양소와 불의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게 되어 상속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자도 무더기들의 일어남을 역겨워하여 그 사람이 그 나무의 사방에 독을 바르는 것처럼 자기의 상속에 네 가지 도를 닦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의 무더기의 상속을 네 가지 도의 독에 닿아 윤회의 뿌리인 오염원들이 모두 근절된다. 그러므로 몸의 업 들 모든 종류의 업은 단지 작용만 하는 상태가 되어 미래에 재생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어 다음 생의 상속을 생기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알음알이의 소멸과 함께 마치 연료가 다한 불처럼 집착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이와 같이 토양과 토양을 얻음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89. 다시 ⑤ 현재 생기고 있는 [일어남] ⑥ 대상을 잡았기 때문에 [일어남] ⑦ 억압하지 못함을 통한 [일어남] ⑧ 근절하지 못함을 통한 [일어남]의 네 가지 일어남이 더 있다.

 여기서 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어남]이 현재 생기고 잇는 일어남이다.

 ⑥ 눈 등의 영역에 대상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오염원이 일어나지 않지만 대상을 잡음으로써 나중에 틀림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대상을 잡았기 때문에 일어남이라 한다. 마치 깔랴나(Kalyāṇa)마을에서 걸식을 행하던 마하띳아(Mala-Tissa) 장로가 이성을 봄으로써 일어난 오염원처럼.(MA.i.66와 A.i.4에 대한 AA참조)

 ⑦ 사마타와 위빳사나 가운데서 어느 것으로도 억압되지 않은 오염원은 그것이 비록 마음의 상속에 들어오지 않았더라고 억압하지 못함을 통한 일어남이라 한다. 왜냐하면 [조건이 갖추어질 때 그 오염원의] 일어남을 막을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⑧비록 사마타와 위바사나로 억압되었더라도 성스러운 도로 근절되지 않았으므로 [오염원이] 일어날 가능성을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에 근절하지 못함을 통한 일어남이라 한다. 마치 여덟 가지 증득을 얻은 장로가 허공을 날다가 꽃이 만발한 동산에서 꽃을 따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여인의 노래 소리를 들음으로써 일어난 오염원처럼.

 

90. 대상을 잡았기 때문에 일어남과 억압하지 못함을 통한 일어남과 근절하지 못함을 통한 일어남, 이 셋은 토양을 얻음에 의한 일어남에 포함된다고 알아야 한다.

 

91. 이와 같이 일어남의 분류를 설했다. 이 가운데서 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어남] ② 있었다가 사라진 [일어남] ③기회에 의해서 주어진 [일어남] ⑤ 현재 생기고 있는 [일어남], 이 넷은 도로버릴 수 없기 때문에 [네 가지 지혜 가운데] 어느 지혜로도 버릴 수 없다.

 그러나 ④토양을 얻음에 의한 [일어남] ⑥ 대상을 잡았기 때문에 [일어남] ⑦억압하지 못함을 통한 [일어남] ⑧ 근절하지 못함을 통한 [일어남], 이 넷은 모두 버릴 수 있다. 왜냐하면 [네 가지 도의] 세간적인 지혜와 출세간적인 지혜는 [이런 네 가지 일어남의] 일어난 상태를 소멸시키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기서 지혜로 버려야 할 법들과 그들의 버림을 알아야 한다.

 

 

     붓다사 사낭 짜랑 띳타뚜(3회)                           

     (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불법이라 불리우는 법과율의 가르침이

     오랜세월 훼손없이 존속하여 머무소서.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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