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모- 땃사 바가와또 –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3회)
Namo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청정도론 3권
제23장 통찰지수행의 이익
paññābhāvanānisaṁsaniddeso
3. 멸진정에 들 수 있는 능력을 갖다p416~
Nirodhasamāpattikathā
36. 결심이 없으면 불 등으로 손상되기도 한다. 마치 마하나가(Mahā-Nāga)장로의 경우처럼.
장로는 신도인 어머니가 살고 있는 마을로 탁발을 갔다고 한다. 그 청신녀는 죽을 공양올리고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마루에 앉게 했다. 장로는 멸진정에 든 채 앉아잇었다. 장로가 앉아있을 때 그 마루에 불이 났다. 다른 비구들은 각자 자기의 자리를 걷어서 그 자리를 피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장로를 보고 ‘게으른 사문, 게으른 사문’이라고 말했다. 불은 집의 지붕과 대나무와 목재를 태우고 장로를 둘러싼 채 불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항아리로 물을 길어와 불을 끄고 재를 치우고 바닥을 마른 소똩으로 깔고서 꽃을 뿌리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있었다. 장로는 예정된 시간에 일어나서 그들을 보자 ‘내가 [남들에게] 드러나고 말았구나’라고 생각하여 하늘을 날아 삐양구(Piya ṅgu) 섬으로 갔다.
이것이 내 몸에서 떨어져있는 필수품이 손상되지 않음이다.
37. 몸과 닿아 있는 하위나 상의나 앉는 자리에 대해서는 특별히 결심할 필요가 없다. 증득 그 자체로 그는 그것을 보호한다. 산지와(Sañjīva)존자의 경우처럼. 이와 같이 설하셨다. “산지와 존자는 삼매로 충만한 신통이 잇었고, 사리뿟따 존자도 삼매로 충만한 신통이 있었다.(PS.II.212)”
38. ② 승가가 기다림: 승가가 기다리면서 [그가 오기를] 기대한 ㄴ것이다. 이 비구가 오지 않는 한 대중공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 비구의 미리 해야 할 일은 실제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기다림으로 전향(āvajjana)하는 것이 미리 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전향해야 한다. ‘만약 내가 7일 동안 멸진정에 들어서 앉아있는 동안 승가가 알리는 공사 등 어떤 공사를 하기를 원하면 어떤 비구가 와서 부르기 전에 일어나리라’고, 이와 같이 하고서 멸진정에 든 자는 정확하게 그 시간에 출정한다.
39. 만약 그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승가가 모였을 때 그를 보지 못하면 ‘아무개 비구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멸진정에 들어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숨기는 한 비구를 보낸다. ‘가서 승가가 부른다고 하시오.’ 그러면 그가 들을만한 곳에 가서 ‘도반이여, 승가가 스님을 기다립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출정하게 된다. 이와 같이 승가의 명령은 중요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출정하도록 그것에 전향하고서 입정해야 한다.
40. ③ 스승님(부처님)이 부르시는 경우: 여기서도 부처님의 부르심으로 전향하는 것이 미리 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전향해야 한다. ‘만약 내가 7일 동안 멸진정에 들어 있을 때 부처님이 사견을 검토한 뒤 학습계율을 제정하시거나 그에 버금가는 일이 생겨 법을 설하시면 어떤 비구가 와서 부르기 전에 일어나리라’고. 이와 같이 하고서 멸진정에 든 자는 정확하게 그 시간에 출정한다.
41. 만약 그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부처님과 승가가 모였을 때 그를 보지 못하면 ‘그 비구는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신다. ‘멸진정에 들어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부처님께서는 한 비구를 보내신다. ‘가서 그에게 내가 부른다고 하라.’ 그러면 그가 들을만한 곳에 가서 ‘부처님께서 스님을 부르십니다’고 말하자마자 출정하게 된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부르심은 중요하기 대문에 자기 스스로 출정하도록 그것에 전향하고서 입정해야 한다.
42. ④ 자기 수명의 한계: 목숨의 한계이다. 이 비구는 자기의 수명의 한계를 결정함에 능숙해야 한다. 자기 목숨의 상카라들이 7일 동안 계속해서 일어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전향하고서 입정해야 한다. 만약 목숨의 상카라들이 7일 이내에 소멸할 것인 데 그것에 대해 전향하지 않고 입정한다면 그의 멸진정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멸진정에 든 채 죽는 경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중간에 멸진정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에 전향하고서 입정해야 한다. 나머지 셋의 경우는 전향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것은 반드시 전향해야 한다고 설하셨다.
43. 이제 그가 이와 같이 무소유처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이런 미리 해야 할 일을 하고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한다. 그때 한 번 혹은 두 번의 마음순간이 지난 뒤 마음 없는 자(acittaka)가 된다. 그는 소멸을 체득한다. 왜 두 번의 마음들 뒤에 그에게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소멸을 향한 노력 때문이다. 이 비구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법들을 쌍으로 묶어서 여덟 가지 증득에 오른 것은 차제멸(次第滅, anupubba-nirodha)을 향한 노력 때문이지 비상비비상처를 얻기 위한 노력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멸을 향한 노력 때문에 두 번의 마음 다음에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44. 그러나 무소유처로부터 출정하여 이런 미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가는 비구는 그 다음에 마음 없는 자가 될 수 없다. 돌아와서 다시 무소처에 머문다.
45. 이전에 가 본적이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의 비유를 여기서 말해야 한다. 이전에 가 본적이 없는 길을 가는 어떤 사람이 물이 넘치는 계곡이나 깊은 저습지 넘어 이글거리는 햇볕에 달구어진 바위에 올랐다. 하의와 상의를 단정히 하지도 않고 계곡에 뛰어든다. 그러나 그의 소지품들이 젖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시 올라와 강둑에 서거나 도로 바위에 올라와서는 발이 데어 다시 그 주위에 선다.
46. 여기서 그 사람이 하의와 상의를 단정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곡에 뛰어들자마자, 혹은 달구어진 바위에 오르자마자 되돌아가서 그 주위에 서듯이 수행자도 미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상비비상처에 도달하자마자 되돌아가서 무소유처에 머문다.
47. 그러나 이전에 그 길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곳에 와서 한 벌의 옷을 단정히 입고 다른 한 벌은 손에 쥐고 계곡을 건넌다. 혹은 달구어진 바위를 살짝 밟은 뒤 다른 곳으로 간다. 이와 같이 미리 해야 할 일을 한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하고 그 다음에 마음 없는 자가 되어 소멸을 체득하여 머문다.
48. (7) 어떻게 머무는가? 이와 같이 한정한 시간만큼 머문다. 중간에 수명이 다하거나 승가가 기다리거나 스승이 부르시거나 하지 않는 한 그만큼 머문다.
49. (8) 어떻게 출정하는가? 불환자의 경우 불환자를 얻음으로써, 아라한의 경우 아라한과를 얻음으로써, 이와 같이 두 가지로 출정한다.
50. (9) 출정한 자의 마음은 어느 곳으로 기우는가? 열반으로 기운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도반 위사카여, 상수멸의 증득에서 나온 비구의 마음은 멀리 여읨(viveka)으로 향하고,멀리 여읨으로 기울고, 멀리 여읨으로 기댑니다.(M.i.302)”
51. (10) 죽은 자와 멸진정에 든 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 뜻도 경에[서 이미 설했다. 이처럼 설하셨다. “도반이여, 죽어서 수명이 다한 자는 그의 몸의 상카라들이 소멸되고 가라앉았고, 말의 상카라들 ∙∙∙ 마음의 상카라들도 소멸되고 가라앉았습니다. 또한 목숨이 다하고 온기가 식어버렸고 감각기능들이 가라앉았습니다. 또한 목숨이 다하고 온기가 식어버렸고 감각기능들이 완전히 파괴되어버렸습니다. 상수멸을 증득한 비구도 그의 몸의 상카라들이 소멸되고 가라앉았고, 말의 상카라들 ∙∙∙ 마음의 상카라들도 소멸되고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목숨은 다하지 않았고 온기도 식지 않고 감각기능들도 파괴되지 않았습니다.(M.i.296)”
52. (11) 멸진정은 형성된 것인가, 형성되지 않은 것인가? 등의 질문에 대해 이것은 형성된 것이라거나,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거나, 세간적인 것이라거나,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거나, 세간적인 것이라거나, 출세간적인 것이라고 답할 수 없다. 왜 그런가? 고유성질(sabhāva)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증득한 자가 증득했다고 하기 때문에 이것은 구체적인 것(nipphannā)이라고 설한다. 이것은 추상적인 것(anopphannā)이 아니다.
고요하고 성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금생의 열반이라 이름하는 멸진정
성스러운 통찰지를 닦아서
지자는 그것을 증득한다.
그러므로 이런 증득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성스러운 도 가운데 통찰지의 이익이라고 말한다.
붓다사 사낭 짜랑 띳타뚜(3회) ∙∙∙
(buddhasāsanaṃ ciraṃ tiṭṭhatu)
불법이라 불리우는 법과율의 가르침이
오랜세월 훼손없이 존속하여 머무소서.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