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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마 길라잡이 초급과정 6강

작성자티라닷따|작성시간24.04.19|조회수19 목록 댓글 0

아비담마 길라잡이 초급과정 6강
아신 빠라구 스님 

제1장 마음의 길라잡이 

I.2 원인 없는 마음들 - 18가지  
      ahetuka-cittāni (p144)

§8. 해로운 과보의 마음들(akusala-vipāka-cittāni)- 7가지

(1) 전오식 

'해로운 과보의 마음과 다음의 유익한 과보의 마음에서 처음의 다섯 가지 과보의 마음은 눈, 귀, 코, 혀, 몸이라는 감성의 물질을 의지하여 일어난 것이다. 
이 다섯은 마노의 알음알이의 '앞에 있는 다섯가지 알음알이'라는 뜻으로 중국에서는 전오식(前五識)으로 옮겼고 역자들도 이를 차용하고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이 열 가지를 '한 쌍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dvi-pañca-viññāṇa)'라는 전문용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본서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역자들은 한 쌍의 전오식(前五識)'으로 옮기고 있다. '(p146)

즉 해로운 과보의 전오식과 유익한 과보의 전오식을 함께 한 쌍의 전오식, 한쌍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dvi-pañca-viññāṇa)라 표현한다. 
dvi(드위)는 한 쌍이라는 뜻이고 pañca(빤짜)는 5가지라는 뜻이며 viññāṇa(윈냐나)는 알음알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해로운 과보의 눈의 알음알이와 유익한 과보의 눈의 알음알이는 한 쌍이 된다. 

눈, 귀, 코, 혀, 몸의 오문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과정이 있고 마음 속에서 생각하고 마음이 일어나는 의문의 과정이 있다. 

2) 해로운 과보의 마음들의 역할 

" '눈의 알음알이[眼識]'는 눈의 감성을 의지하여 일어난다.
이것의 역할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아는 것이다. 
나머지 '귀의 알음알이[耳識]'등도 그들 각각의 감성에 의지해서 일어나고 그들의 역할도 그들 각각의 대상들을 단지 아는 것이다. 
즉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촉감을 느끼는 것이다. "(p147)

'여기서 해로운 과보의 마음의 경우에는 대상은 불쾌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이다.'(p147)
 
3) 해로운 과보의 마음의 느낌 
'처음의 네 가지 감각기능에 부딪친 대상은 약하기 때문에 여기에 관계된 느낌은 중립적이다. 
그러나 해로운 과보인 몸의 알음알이의 경우 대상이 몸의 기능에 부딪치는 것이 강하기 때문에 그와 함께하는 느낌은 육체적 고통(dukkha)이다.' (p147)


§9.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들(kusalavipāka-ahetuka-cittāni)
    - 8가지 (p149)

(8) 평온이 함께한 눈의 알음알이 [眼識]
(9) 그와같이 [평온이 함께한] 귀의 알음알이[耳識]
(10) [평온이 함께한] 코의 알음알이 [鼻識]
(11) [평온이 함께한] 혀의 알음알이 [舌識] 
(12) 즐거움이 함께한 몸의 알음알이 [身識]
(13) 평온이 함께한 받아들이는 마음[意]
(14) 기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意識]
(15) 평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意識]

(1) 명칭 
유익한 마음, 선한 마음으로 선한 행동, 선한 말을 한다면 유익한 업이 생기게 된다. 
kusala(꾸살라)는 유익함, 선함이라는 뜻이고 vipāka(위빠까)는 과보라는 뜻이다. 
ahetuka(아헤뚜까)는 앞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원인 없는' 의 뜻이고 citta(짜따)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즉 kusalavipāka-ahetuka-citta(꾸살라위빠까-아헤뚜까-찌따)는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마음은 8가지가 있다. 

(2) '원인 없는'을 명칭에 붙인 이유 
앞에서는 해로운 과보의 마음이라고 불렀으나 이번에는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이라고 '원인 없는'을 추가해서 마음의 이름을 붙였다. 
해로운 과보의 마음의 경우 무조건 원인 없는 과보 마음만이 있다. 
그 말은 원인 있는 해로운 과보의 마음은 없다는 것이다.  

유익한 과보의 마음의 경우는 원인 있는 과보 마음도 있고 원인 없는 과보 마음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유익한 과보의 마음이라고만 이름 붙이면 어떤 마음인지 헛갈릴 수 있어서 '정확하게 이야기 하기 위해서 원인 없는'을 붙여서 부른다. 

'이 범주에 속하는 여덟 가지 마음은 유익한 업의 과보의 마음들이다. 앞의 범주에 속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ahetuka(원인 없는)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모든 해로운 과보의 마음은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p149)
해로운 과보의 마음은 6가지 뿌리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익한 과보의 마음은 원인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업으로서 결정할 수 없는. 즉 무기(無記 avyākata)의 아름다운 원인을 가진 마음들이 있다. 
이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원인 없는 것(ahetuka)'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이다.'(p149-150)

(3) 해로운 과보의 마음과의 비교

'이 가운데 일곱 가지는 해로운 과보의 마음과 일치한다. 
해로운 과보의 마음들은 원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일어나고 유익한 과보의 마음들은 원하거나(ittha) 열렬히 원하는 (ati-itta) 대상에 대해서 일어난다. 
해로운 과보의 마음들에서처럼 여기서도 눈의 알음알이를 위시한 처음의 네 가지 알음알이는 평온, 즉 중립적인 느낌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몸에 부딪치는 대상은 강하기 때문에 유익한 과보인 몸의 알음알이는 육체적 즐거움(sukha)이 따른다.'(p150)

안식, 이식, 비식, 설식은 평온 느낌과 함께 일어난다. 
유익한 업의 과보로 일어나므로 대상은 원하는 대상, 좋아하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부딪침이 약하기 때문에 평온 느낌으로만 일어난다. 
신식의 경우는 몸에 닿는 대상이 원하는 감촉, 좋은 감촉이며 이 부딪침은 강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 함께 일어난다.
받아들이는 마음 역시 평온이 함께 일어난다. 

(4) 조사하는 마음 (santīraṇa citta)
1) 종류 
'이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은 해로운 과보의 마음에는 없는 마음, 즉 기쁨(somanassa)과 함께하는 조사하는 마음을 하나 더 포함하고 있다. 
해로운 업의 과보로 생긴 조사하는 마음은 중립적인 한 가지 느낌과 함께하는 반면 유익한 업의 과보인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립적인 느낌과 함께하는 것으로서 보통으로 원하는(ittha)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며 다른 하나는 열렬히 원하는(ati-ittha)대상에 대하여 일어난 기쁨과 함께하는 마음이다.'(p150)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조사하는 마음은 해로운 과보의 마음과는 달리 두가지 느낌으로 일어난다. 
해로운 과보의 마음은 평온 느낌으로만 일어난다. 
그러나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조사하는 마음은 정신적인 기쁜 느낌으로도 일어나고 평온 느낌으로도 일어난다. 

2) 조사하는 마음의 대상 
그 이유는 유익한 업의 과보로 나타니는 대상이 일반적인 평범한 좋은(보통으로 원하는) 대상인 경우가 있고 또 하나는 아주 특별하게 좋은 (열렬히 원하는) 대상인 경우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해로운 업의 경우는 싫어하는 대상은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가 없으며 따라서 평온이 함께하는 조사하는 마음 하나만 생긴다.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기쁨이 생기지 않고 평온 느낌만 생기는 이유는 받아들이는 마음은 앞의 알음알이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역할외에는 다른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하는 마음은 그 대상이 어떤 대상인지 조사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대상이 특별하게 좋은 대상인 것을 알 수 있게 되므로 기쁜 느낌이 같이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부처님, 승가가 대상인 경우 등은 아주 특별하게 좋은 대상이 된다.
부처님의 모습을 뵙게 되면 특별하게 좋은 대상으로 기쁨이 함께하는 조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일반적인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평온이 함께하는 조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세 가지 조사하는 마음이라고 하면 해로운 과보의  평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기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평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5) 원인없는 과보의 마음 정리 
이와 같이 원인 없는 과보의 마음은 총 15개( 해로운 과보의 마음 7개, 원인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 8개)가 있다. 

(6) 마노의 요소와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
'조사하는 마음: 이것은 받아들이는 마음 바로 다음에 일어나는 마음이다.
이것의 역할은 감각의 알음알이가 알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받아들인 그 대상을 조사하고 검사하는 마음이다. '(p148)

'받아들이는 마음과 조사하는 마음은 다섯 가지 감각의 문에서만 일어나며 둘 다 과거의 업의 과보로 생긴 것이다.'(p148)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받아들이는 마음(sampatichana)은 마노의 요소[意界, mano-dhātu]이고, 조사하는 마음(santīraṇa)은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意識界]라는 점이다.' (p148)

마노의 요소는 빨리어로 mano-dhātu(마노 따뚜)., 한자로 의계(意界)라고 한다.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는 빨리어로 mano-viññāṇa-dhātu(마노 위냐나 다뚜), 한자로는 의식계(意識界) 라고 한다. 
이 용어들은 Paṭṭhāna (빳타나)에 자주 등장한다. 

'아비담마에서는 구체적으로 마노의 요소[意界, mano-dhātu]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즉 받아들이는 역할 두 가지(유익한 과보의 마음과 해로운 과보의 마음)와 아래'작용만 하는 마음(kiriya)'의 '오문전향(五門轉向, 다섯 감각 대문으로 향하는 역할)'이다.'(p148)

즉  마노의 요소는 해로운 과보의 받아들이는 마음, 유익한 과보의 받아들이는 마음, 그리고 오문전향의 마음의 세 가지가 있다. 


§10. 원인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들(ahetuka-kiriya-cittāni) -3가지
(16) 평온이 함께한 오문전향(五門轉向)의 마음
(17) 그와 같이 [평온이 함께한] 의문전향(五門轉向)의 마음 
(18) 기쁨이 함께한 미소짓는 마음 
- 이 셋은 원인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모두 열여덟 가지 원인 없는 마음이 끝났다.  (p150)

(1) 명칭 
ahetuka(아헤뚜까)는 '원인 없는'이라는 뜻이고 kiriya(까리야)는 '작용만 하는'의 뜻이다.  

'kiriya는 '작용만 하는 마음'이며, vipāka(과보의 마음)처럼 무기의 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유익하거나 해로운 선, 불선이라는 업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p150)

(2) 무기의 마음 
무기(無記 avyākata)의 마음이라고 하면 작용만 하는 마음과 원인없는 과보의 마음들을 한 마디 용어로 말하는 것이다. 

아라한이 되면 유익한 일을 해도 선업이 되지 않는 작용만 하는 마음만 일어나게 된다. 
아라한이 유익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라한이 그 일을 해도 선업이 되지 않을 뿐이다.
범부의 경우는 무명, 갈애라는 마음이 있다. 
범부가 예불을 올릴 때 무의식적으로 욕심의 뿌리로 선한 과보를 받고 싶다는 집착하는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게 된다. 
범부들은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으므로 집착, 무명을 바탕으로 선한 일을 하기 때문에 업이 생기는 것이다. 
아라한의 경우는 계를 지키거나 예불을 올려도 집착, 애착,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선한 일을 하지 않으므로 업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아라한의 경우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만 생기는 것이다. 

(3) '원인 없는' 명칭의 이유  
'원인 없는'이라고 붙이는 이유는 앞에서와 같이 원인 있는 작용만 하는 마음들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4) 느낌 
오문전형과 의문전향의 마음은 평온 느낌과 같이 일어난다. 
미소짓는 마음은 기쁨이 함께 일어난다. 
미소 짓는 마음은 미소 짓게 하는 마음이다. 

강의 후 문답)
문) 작용만 하는 마음 중 아라한에게만 있는 마음은 기쁨이 함께한 미소짓는 마음만 해당되는 것이지요?
답) 작용만 하는 마음 중 오문전향, 의문전향은 모두에게 공통되는 마음이고 미소짓는 마음만 아라한에게 적용되는 마음이다. 

문) 마노의 요소(mano-dhātu,마노 다뚜)와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mano-viññāṇa-dhātu,마노 위냐나 다뚜)라고 말씀하셨는데 mano(마노), viññāṇa (위냐나), citta (찌따)는 동일어라고 배웠는데 여기서는 다르게 구별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답) 중국에서 번역할 때는 mano(마노), viññāṇa (위냐나, 알음알이), citta (찌따, 마음)으로 다르다고 해서 번역은 다르게 했다.  
그러나 초기불교에서는 이 세가지는 모두 동의어이다. 
모두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노의 요소(mano-dhātu,마노 따뚜)와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mano-viññāṇa-dhātu,마노 위냐나 다뚜)로 명칭을 붙인 것은 그 마음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인식의 낮은 단계나 높은 단계로 구분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 마음은 한 가지만 일어난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 주변에는 시각이나 소리 등 여러 감각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데 그렇다면 이런 감각을 인식하는 마음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요?
답) 마음은 한가지가 끝나야 다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이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동시에 일어난다고 느끼는 것이다. 

문) 우리가 깊게 생각에 빠지는 경우 등 불러도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답)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오문전향의 마음이 일어나야 하는데 오문전향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알지 못한다. 
뒤에 인식과정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문) 인식과정을 하나하나 알 수 있게 되려면 위빠사나 수행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건가요?
답) 위빠사나 수행을 많이 한다고 해도 인식과정 마음 하나하나를 다 알 수 없다. 
단지 인식과정의 속행에서 그 마음이 선한 마음인지 불선의 마음인지만을 알 수 있다. 
부처님 제자인 사리붓따 조차도 인식 과정의 마음 하나하나를 알지 못한다고 나온다. 
부처님의 말씀이니 마음이 이런 단계를 거쳐서 일어난다는 지식으로만 알고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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