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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와 컴퍼스로 작도하는 문제가 있다던데, 왜 두 가지로만 하나요? 3대 작도 문제가 무엇인가요? 정5각형의 작도법을 알려 주세요. 가우스가 정17각형을 작도했다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

|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도형은 직선과 원이다. 어느 집에나 직선을 그리는 자와, 원을 그리는 컴퍼스는 있을 것이다. 일부라도 반듯한 물건만 있으면 눈금은 없지만 자 대용으로 쓸 수 있고, 팽팽한 실에 연필을 매달면 남부럽지 않은(?) 컴퍼스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간단한 도구이므로 고대 사람들도 사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와 컴퍼스는 단순한 도구지만, 멋들어진 제도 기구의 힘을 빌지 않아도 상당히 많은 작도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 정육각형과 같은 정다각형을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할 수 있다. 눈금이 없는 자와 컴퍼스 두 개만으로 작도하는 것을 ‘기하학적 작도’나 ‘유클리드 작도’ 혹은 ‘플라톤 작도’ 등으로 부르는데, 이 글에서는 ‘기본 작도’라는 용어를 쓰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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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와 컴퍼스만 갖고도 많은 작도를 할 수 있지만, 아무리 해도 작도가 안 되는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정7각형은 도무지 두 도구만으로는 작도할 수 없었다.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하는 문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전해져 왔다는 ‘삼대 작도 문제’다. 삼대 작도 문제란 기본 작도만으로 다음을 작도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말한다.
1. 주어진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두 배인 정육면체 2. 임의의 각을 삼등분한 각 3. 주어진 원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
물론 자와 컴퍼스 이외의 도구를 이용할 수 있다면, 세 가지 모두 작도할 수 있다. 문제는 눈금이 없는 자와, 컴퍼스 겨우 두 개만으로 제한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나 그렇지만, 제한 조건이 까다로울수록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단 두 개의 도구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작도하려는 것은 만용에 가까운데, 그렇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자와 컴퍼스 이외의 제도 기구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이 삼대 작도 문제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지만 안 되더라’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좀더 읽어보면 알겠지만, 작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았던 정17각형도 사실은 작도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짐작할 수 있듯이 불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삼대 작도 문제도 19세기에 와서야 기본 작도만으로는 작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왜 그런지 증명(이라기보다는 간단한 설명)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무엇을 작도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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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과정의 수학에서는 다각형이나 원을 포함한 도형을 많이 다루는데, 이 단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사람이 수학에 흥미를 잃거나, 고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조선을 잘 그으면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렇게 그어야 하는지 너무나 어렵기만 하기 때문이다. 기하학의 고전인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이 유럽 수학계를 지배하던 당시의 학생들도 똑같이 고민한 것을 보면 무리도 아니고, 고백하건대 필자도 고생을 많이 했다. | |
| 근세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1637년 ‘방법서설’(方法敍說, Discours de la méthode)을 발표하면서부터 이 상황에 돌파구가 열렸다. 방법서설의 부록 세 편 중 한 편에 오늘날 ‘직교 좌표계’ 혹은 ‘데카르트 좌표계’(Cartesian coordinate system)라고 부르는 개념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위의 그림처럼 평면에 동서 방향 및 남북 방향으로 각각 x축, y축이라 부르는 서로 수직인 두 직선을 그리고, 만나는 점을 원점 O라 한 것을 데카르트 좌표계라 부른다. 이렇게 하면 평면 위의 임의의 점 P는 각 축에 내린 수선의 발이 결정하는 두 숫자 a, b의 순서쌍 (a, b)와 일대일 대응한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 보이는 이런 발상이 현대 수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차츰 보겠지만, 좌표계를 도입하면 기하학의 많은 문제를 대수학의 문제로 바꿀 수 있다. 보조선을 긋지 않고도(!) 대수 방정식을 풀어서 기하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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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a인 두 점을 작도할 수 있으면, a와 –a를 ‘작도수’ (constructible number)라 부르자. 이를 위해서는 거리의 기본 단위가 필요한데, 그 단위를 편의상 1이라 두자. 특히 1은 작도수다. 데카르트 좌표계를 보면, 점 (a, b)를 작도할 수 있다는 말과, 점 (a,0) 및 (0, b)를 작도할 수 있다는 말은 같다. 즉, a, b가 모두 작도수라는 것과도 같은 뜻이다. 따라서 기본 작도로 작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작도수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같은 얘기다.
길이가 a인 선분의 한 끝에서 반지름이 b인 원을 그리고, 선분을 연장한 직선과의 교점을 생각하면, a+b, a-b를 작도할 수 있다. 따라서 a+b, a-b는 작도수이다. a, b가 작도수일 때, ab와 b/a는 아래 그림처럼 평행선을 이용하여 작도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작도수 a와 b의 사칙연산으로 이루어진 수는 모두 (0으로 나누는 것은 제외하고) 작도수다. 특히 1을 여러 번 더하고 뺀 정수는 작도수이며, 이들의 곱과 몫으로 이루어진 유리수도 작도수다. 그럼 과연 유리수만 작도수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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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이에 더 나아가서, a가 (양의) 작도수일 때 √a(루트a라는 의미임, 이하 같음)를 작도할 수 있음을 윗 그림과 같이 보였다. AB가 반원의 지름의 양끝이면 ACB가 직각이므로 CH의 길이의 제곱이 AH와 BH의 길이의 곱이다. (삼각형 ACH와 BC가 닮았기 때문인데…) 따라서 CH의 길이가 √a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유리수로부터 사칙연산을 하거나, 제곱근을 취하는 것을 반복하여 얻는 수는 모두 작도수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지저분해 보이는 수도,

유리수의 사칙연산 및 제곱근만으로 얻을 수 있으므로 작도수다. 이제 데카르트의 방법을 써서 이등분각과 정5각형 및 정17각형을 작도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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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각 x를 작도하는 것은 삼각비 cos(x)를 작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sin(x)를 작도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각 x를 이등분하는 문제는 “cos(x)를 작도했을 때, cos(x/2)도 작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왼쪽 그림에서 OA:OB=AM:BM임을 이용하면

임을 알 수 있다. (혹은 삼각함수의 덧셈 정리를 이용해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작도된 수에 사칙연산과 제곱근만 취했으므로 데카르트의 결과로부터 각 x/2는 작도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등분각을 작도하는 법은 고대로부터 잘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서는 데카르트의 방법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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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5각형을 작도하는 것은 360°/5 = 72°를 작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cos(72°)가 작도수냐는 질문과 동일하다. 오른쪽 그림은 이등변삼각형인데, 각 A, B는 72°이고 각 O는 36°이다. 각 B를 이등분하여 선분 OA와 만나는 점을 C라고 하자. 각 A가 72°이고 각 ABC가 36°이기 때문에, 각 BCA도 72°다. 따라서 삼각형 OAB와 ABC가 닮았고 대응변의 길이가 비례하므로 1+x:1=1:x이어야 한다. 방정식을 풀면 x는 황금비 (√5-1)/2이다. 그런데 cos(72°)는 CA/AB의 절반이므로 cos(72°)= (√5-1)/4임을 알 수 있다. 유리수의 사칙연산과 제곱근만 나오므로 cos(72°)는 작도수이고, 따라서 각 72°를 작도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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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각형의 작도법은 기하학 원본에도 나와 있다. √2가 무리수임을 기를 쓰고 숨기려 했던 피타고라스 학파는 자신들의 학파의 상징인 정5각형에도 무리수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현재 정5각형의 작도법은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는데, 예를 들어 다음 그림에서처럼 A, B, C, D 순서대로 작도하면 정5각형의 한 변 AD를 얻는다.
AO=DO=a라 하면, BC는 각 B의 이등분각이므로 OC:CA=BO:BA=1:√5 로부터 OC= a(√5-1)/4를 얻는다. cos(DOC) = cos(72°)이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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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각형 중 변의 개수가 3, 4, 5, 6, 8, 10, 12, 15, 16, 20, 24, …인 것은 자와 컴퍼스로 작도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정7각형, 정9각형, 정11각형, 정13각형, 정17각형, …등을 작도할 수 있느냐는 것은 미해결이었다. 이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가 열린 것은 19세의 청년 가우스(Carl F. Gauss, 1777-1855)가 1796년에 정17각형의 작도가 가능함을 보이면서부터다.
정17각형이 작도 가능하느냐는 것은 cos(360°/17)가 작도수냐는 것과 같다. 가우스가 보인 것을 알기 쉽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

| 이 값이 사칙연산과 제곱근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작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우스의 결론이었던 것이다. 사실 가우스는 직접 정17각형을 작도한 적이 없다! 다만 작도할 수 있다는 것만 보인 것이다. 몇 년 뒤 실제 정 17각형 작도법이 나왔고 그 뒤 개선한 방법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정17각형을 작도하는 것은 꽤 복잡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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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자신이 얻은 결과의 역인 ‘유리수로부터 사칙연산 및 제곱근을 취해서 얻어지는 것만이 작도수’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증명은 하지 못했다. 가우스는 정17각형의 작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정다각형이 작도 가능한지 밝혔지만, 실제로 그런 꼴의 정다각형만을 작도할 수 있는지는 증명하지 못했다. 이 두 가지 예상 및 삼대 작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방법서설 출간 후 200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는데, 여러분은 필자의 다음 수학산책 몇 번만 기다리면 충분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