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의 성공 여부는 총무 손에 달렸다’.
어느 동창회건 회장보다 총무의 역할이 중요하다. 업무 처리와 자산관리 외에도 회원 연락, 모임 장소 섭외, 초청장 만들기 등이 모두 총무의 일이다. 잘되는 동창회에는 예외 없이 헌신적인 총무가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총무를 맡을까. 먼저 폭넓은 인맥을 중시하는 보험·은행·상조·부동산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헌신하고 시간 투자를 하는 만큼 본인의 업무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광희중 23회 동창회 총무인 최광춘(50·ING생명 잠실지점)씨는 “보험이나 은행원은 사람을 만나고 연락하는 게 주 업무다. 동창회 일을 하면서 신뢰를 쌓다 보면 업무와 연결되기도 한다”며 “동창들에게 연락하는 일도 일반 회사원들에 비해 힘들지 않은 편이다”고 말한다.
동창들의 사생활까지 두루 잘 아는 사람이 만장일치로 총무를 맡는 일도 많다. 졸업생이 40여 명인 강원 홍천고 4회 동창회 총무 김춘근(48·자영업)씨는 1학년 때부터 3년간 줄곧 반장을 맡았다. 그는 “40여 명의 아이들과 두루 친하고 이들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총무가 됐다”고 했다.리더십이 있고 앞장서길 좋아하는 사람 또한 총무 1순위다.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청해서 총무를 맡는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동창회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한다.
총무들에게 ‘동창회 활성화의 비법’을 물었다.
먼저 ‘동창들에 대해 많이 아는 것(마남일·51·전주 전라고 6회)’이 기본이다. 직업은 물론 취향, 개인적 근심, 학교 다닐 때의 일까지 기억해주면 첫 모임 참석을 꺼리던 친구도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게 된다. 일단 참석하고 나면 이후에도 참석할 확률이 높아진다.
둘째는 ‘평소에도 회원들에게 자주 연락할 것(송유승·53·김해 진례중 15회)’. 모임을 코앞에 두고 참석 독려 전화만 돌리는 것보다는 평소에도 자주 안부를 묻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구심점’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광주 숭일고 25회 동창회 총무 최광희(51·동장)씨는 “구심점 없는 동창회 모임은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신 후 헤어지는 모임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이 동창회는 10여 년 전부터 산악회를 만들어 1년에 12번 정기 산행을 간다.
모든 총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마지막 비법은 ‘돈·자식 자랑 피하기’. 학교를 졸업했을 때만 해도 출발은 비슷했지만 불혹을 넘기는 사이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나오게 된다. 동창회 모임에서 누군가 ‘돈 많이 번 이야기’ ‘자식 좋은 대학 간 이야기’ 등을 꺼내면 동창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이렇게 한번 상처받은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송지혜 기자
전주 전라고 6회 재경동창회, 정기·산행·번개모임 합쳐 1년에 25~26번 만나 [중앙일보]졸업 30주년 문집 발간 … 부인들 별도 모임도전주 전라고 6회(1976년 졸업) 재경 동창회는 자신들의 졸업 기수에 맞춰 매년 6월 6일 ‘쌍륙절 행사’를 한다. 2006년엔 대관령 목장과 오대산 월정사, 지난해엔 단양 8경과 충주호, 올해엔 강원도 속초를 다녀왔다.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기록자’를 자청하는 최영록(51·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씨는 이를 ‘추억의 수학여행’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수학여행에는 부부 51쌍, 싱글 13명, 자녀 4명 등 총 119명이 참석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황의찬(51·사업가)씨 부부도 32년 만에 동창회에 참석했다. 최씨에 따르면 전라고 6회 졸업생은 모두 417명, 그중 2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150여 명은 2000년에 동창회 카페를 만들어 본격적인 동창회 활동을 시작했다. 친한 친구끼리 만나기는 했지만 나이 40을 넘기면서 전체 모임의 필요성을 느꼈다. 매년 두 차례 정기모임(신년 하례식·쌍륙절)에 월례 산행모임, 거기에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서울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는 번개 모임까지 합해 1년에 25~26차례 얼굴을 본다. 기뻐서, 슬퍼서, 재혼해서, 승진해서 등 번개 모임의 이유도 다양하다. 2006년엔 졸업 30주년을 맞아 『쉰둥이들의 쉰이야기』라는 문집도 발간했다. 학창시절의 추억부터 군대 간 아들에게 전하는 글까지 폭넓은 주제의 50여 편이 빼곡히 담겨 있다.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던 부인들은 급기야 자기들끼리 ‘전라여고’라는 가상의 학교를 만들었다. 이들은 “머지않아 ‘전라여고 동창회’가 결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최씨는 “비슷한 입맛과 언어, 정서를 공유한 이들이 턱 없는 편안함을 느끼며 끊임없이 삶의 화제를 나누는 것이 우리 동창회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