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인간(天·地·天命) 8 끝
♛ 자, 정신 차리고 주목하여라. 인간이 언제나 처녀이면 그는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비옥하게 되고자 한다면 아내가 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내”는 우리가 영혼에 붙일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이름이며, 처녀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 인간이 하느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이런 수용성에서 그는 처녀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그에게서 열매를 맺는 것은 더 좋다. 왜냐하면 선물이 열매를 맺는 것만이 선물에 대한 유일한 감사이기 때문이며, 그때 정신은 감사의 보답으로 예수를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낳는 아내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자기 집착이 없는 아내인 처녀는 언제나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게 똑 같이 가깝다. 그는 많은 열매를 맺고, 하느님 자신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큰 열매를 맺는다. 아내인 처녀는 이 열매와 이 탄생을 산출하고 가장 고귀한 근저로부터 낳고 열매 맺으면서 매일 백배 천 배, 아니 끝없이 열매를 맺는다. 더 정확히 말해, 실로 성부가 자기의 영원한 말씀을 낳는 그 동일한 근저로부터 그는 함께 낳으면서 열매를 맺는다. - 엑카르트《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자, 이 탄생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주목해 보아라. “태어난 이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나는 내가 이미 자주 말해온 바와 같이 말하나니, 이 영혼 안에서의 영원한 탄생은 영원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덜도 더도 아닌 전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 하나의 탄생이기 때문이며, 이 탄생은 영혼의 존재와 근저에서 발생한다. … 하느님은 모든 사물들 속에 존재하시고 활동 하시며 힘을 발휘하신다. 그러나 그는 오직 영혼 안에서만 출산 하신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발자취이지만 영혼은 본성상 하느님의 모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상은 이 탄생으로 장식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이 활동과 이 탄생은 영혼 이외의 어떤 피조물도 수용할 수 없다. 실로 영혼 안으로 들어오는 어떤 완성이든, 그것이 변하지 않는 신적 빛이든 혹은 은총과 행복이든, 모든 것이 반드시 이 탄생과 더불어 영혼 속으로 들어오며, 달리는 들어오지 않는다. - 엑카르트《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우리는 여기 시간 속에서, 성부 하느님이 성취하셨고 또 영원 속에서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신 영원한 탄생에 비추어 보면서, 이 동일한 탄생이 이제 시간 속에서 인간의 본성 속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 이 탄생이 항상 일어나되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일어난다는 것,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 엑카르트《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세 종류의 탄생 ① 삼위일체 내의 성자 하느님의 탄생이라는 영원한 형이상학적 진리. (초시간적 인 영원한 탄생) ② 시간 속에서 하느님이 인간의 본성을 입은 성육신 사건으로서의 예수 그리스 도의 탄생.(유일회적인 시간적 역사적 사건) ③ 인간 영혼 안에 일어나는 하느님 아들의 탄생이다.(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야만 하는 보편적 사건) - 엑카르트《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엑카르트에 의하면, 우리가 마음을 여는 것과 하느님이 들어오는 것, 우리가 마음을 비우는 초탈과 하느님이 자신을 쏟아 붓는 행위는 동시적이다. 즉 인간의 수행과 하느님의 은총이 동시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역시 “자연적 빛”인 이성의 활동이 일단 그쳐야 하느님은 초자연적 은총의 빛을 쏟아 부어주시고, 우리의 마음이 일단 비어야 하느님의 은총으로 채워지는 법이다. 따라서 액카르트는 적어도 여기서는 초탈이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초탈이 극한에 이를 때, 이와 동시에 하느님께서 은총을 쏟아 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 “자연(초탈의 극치)이 최고조에 달할 때, 하느님은 은총을 주신다. 정신이 준비되는 동일한 순간, 하느님은 주저하거나 지체함 없이 들어온다.” -《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말씀의 탄생은 우선 삼위일체내의 영원한 사건, 로고스의 탄생이다. 로고스는 하느님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생각이며 하느님 안에 있는 마음으로서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러나 동시에 창조의 힘이며 인간 영혼에 들리는 말씀이다. 엑카르트는 우리가 영원한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셋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육체(肉體)성, 둘째는 다수(多數)성, 셋째는 시간(時間)성이다. 사람이 이 셋을 넘어서면 그는 영원에 거하고 영에 거하며, 하나에 거하고 황야에 거한다. 거기서 그는 영원한 말씀을 듣는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말씀하신다. ; “아무도 자기 자신을 떠나지 않고는 나의 말이나 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다.”(루가 14,26)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는자는 전적으로 초연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말씀 에서는 듣는 자가 들리는 것과 동일하다. -《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동기나 목적 없이 사는 삶, 오직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기 자신에 의해 사는 삶, 누군가에게 이유와 까닭을 제시할 필요 없이 사는 삶은 곧 스스로가 존재 이유이신 하느님 자신의 삶이다. 하느님은 생명 그 자체로서, 하느님이야 말로 아무 이유 없이 사는 존재다. ; “하느님은 당연히 자기 밖 혹은 넘어 어떤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유가 있는 일은 어떤 것도 하느님의 일이나 하느님을 위한 일이 아니다.” -《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소를 보는 눈으로 보기 원하며 소를 사랑하듯 하느님을 사랑하기 원한다. 그대는 소를 우유나 치즈 등 그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한다. 외적인 부(富)나 내적 위로를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와 같다. 그들은 하느님을 올바로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유익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진실로 말한다. 그대의 노력이 지향하는 모든 것, 그 자체가 하느님이 아닌 것은 그대가 최고의 진리를 얻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선한 것은 결코 없다. - 엑카르트《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엑카르트는 “종교적”행위 뒤에 깊이 숨겨져 있는 인간의 뿌리 깊은 이기적 욕망과 자기 사랑을 간파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느님과 더불어 하느님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원하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기도든 쾌락이든 혹은 그밖에 마음에 드는 어떤 것이든, 자기가 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고, 유다 이스가리옷처럼 ❮하느님을 파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동등하게 가깝다. 지혜자는 말한다. ; 하느님은 그의 그물과 밧줄을 모든 피조물들 위에 쳐놓아서, 사람들이 단지 지각을 원하기만 하면 그를 어느 것에서나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대가는, “모든 사물 가운데서 동등하게 하느님을 인식하는 자가 하느님을 바로 인식하는 자이다.” 라고 했다. … 어떤 사람은 들에 나가서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을 인식하고, 혹은 교회에서 하느님을 인식한다. 그러나 그가 더 조용한 곳에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 잘 인식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의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지 하느님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모든 사물과 모든 장소에 동등하게 계시기 때문이며, 자기를 그에게 있는 한 동등한 방식으로 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 엑카르트《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하느님의 집 문에 서있어라.” “하느님의 집”이란 그의 존재의 단일성이다. “하나”인 것은 전 적으로 자기 홀로 있을 때 가장 잘 스스로를 유지한다. 그러므로 단일성은 하느님 곁에 있고 하느님을 붙잡으며〔하느님에게〕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다. 거기서 하느님은 가장 자기 자신의 것, 자신의 존재속에 있으며, 전적으로 자기 안에 있고 자기 밖의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녹는 곳에서 그는 녹아 흘러넘친다. 그의 녹아 흘러 넘침은, 내가 그의 인식과 사랑의 주제와 관련하여 짧게 말한 바와같이, 그의 선이다. 인식이란 떼어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식이 사랑보다 더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 보다는 둘(인식과 사랑)이 낫다. 왜냐하면 인식은 그 안에 사랑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홀려서 선에 굳게 매달리며, 따라서 사랑 안에서 나는 〔하느님의 집〕문에 매달려있다. 인식이없다면 사랑은 맹목적이다. 돌 하나도 사랑을 가지고 있어서 땅이라는 지반을 구한다. 내가 첫 번째 녹아 흘러 넘침에서 선에 매달려있다면, 그리고 하느님이 선하신 한 그를 취한다면,나는 문을 잡는 것이지 하느님을 잡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식이 더 좋다. 왜냐하면 인식은 사랑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러나 욕망과 갈망을 일깨운다. 반면에 인식은 〔하느님께〕단 하나의 생각도 덧붙이지 않으며 오히려 떼어내고 분리하며 하느님 앞으로 달려가 그를 벌거벗은 채로 만진다. 그를 오로지 그의 존재에서 파악한다. - 엑카르트《마이스트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 그대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주 귀하고, 매우 값지며, 헛되이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수백만 년의 세월에 걸쳐 그대는 840만종의 삶을 거쳤고, 지금 그대는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종인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 슈리푼자《그저 고요하라》- ♛ 若無世人 一切萬法 本自不有. 인간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진리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 존 C. H. 우《선의 황금시대(혜능)》- ♛ 무쿤다, 그렇다면 죽어야지! 너는 하느님의 힘으로 사는 것이지, 음식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 두거라. 영양분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 우리에게 식욕을 주신 분이 자기를 신봉하는 사람을 결코 죽게 하지는 않는다. 음식이 너를 지탱해 주고, 돈이나 사람들이 너를 살아가도록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느님이 네게서 목숨을 거두어가면 그들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 네 위장에서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이 너 자신의 기술로 되는 것인 줄 아느냐? 무쿤다! 네가 가진 분별력이라는 칼을 사용해라. 매개물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단 하나의 궁극 원인만을 감지해라!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요가난다(다야난다)》- ♛ 자아는 가장 야만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노예화 하려고 하지만, 인간은 공간상의 한 점에 국한되어있는 점이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는 어디에나 존재 하는 영혼인 것이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요가난다》- ♛ 사람은 인간의 형상으로 있는 한, 두 가지 힘과 계속 싸워야한다. 첫째는 자기 내부에서 오는 힘, 즉 육체가 흙과 물과 공기와 기타 화학 원소들과 혼합으로 형성 된데서 생겨나는 혼돈과 싸워야 하고, 둘째로는 외부의 힘, 즉 대자연의 분산력(혹은 원심력)과 싸워야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육신의 존재로 남아 있는 한, 하늘과 땅의 무수한 상호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요가난다》- ♛ 하느님의 아들이란, 인간 속에 실현된 그리스도 의식 또는 신성의식을 말한다. 그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의 영광을 완전히 찬미 할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에게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존경은 그 창조주를 찾는 것뿐이다. 인간은 결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추상체의 영광을 찬양할 수 없다. 성자들의 머리 주위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원광(圓光)이야말로, 신을 경배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대한 상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요가난다 (스리 유크테스와르)》- ♛ 인간이 자신의 인간적 두뇌를 완성시키고 우주의 의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이고 질병이 없는 상태로 지속되는 백만 년간의 진화가 요구된다고 경전들은 말하고 있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요가난다》 - ♛ 인간의 자아가 보다 높은힘과 교류를 갖게 되면,자연은 아무런 부작용 없이 인간의 의지에 자동적으로 순응하게 된다. 자연에 대한 이 같은 무작위적 지배야말로 유물론자들이 소위 기적이라고 부르는 현상인 것이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요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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