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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6.6.sat 에스컬레이터의 추억

작성자헤세드|작성시간26.06.05|조회수64 목록 댓글 0

 

 

 

"예공! 자니? 꽃배달 받아야지...쯧쯧...열공하고 자는 모양이니 짠합니다. 예공! 착한 꽃배달 기사님을 만나서 집 앞 <세븐>에 맡기라고 했어요... 더 자고 천천히 일어나 기상하거든 찾아 가시라... 젠슨 황이 예주님 생일 추카 하려고 인 코리아 했어요. 삼성-LG-네이버 깐부 회동-프로게이머 페이커(31세/이상혁)-서울대 방문 스케줄이 잡혀있답니다. 귀하는 왜 대우나 롯데가 망했다고 보는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보셨습니까? 가만있어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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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는 촌놈 맞습니다. 17살 때 광주 금남로에 있는 당구장을 가기 위해 삼양 백화점 내 카펫을 사분히 즈려 밟고 계단에 발을 디뎠는데 아니, 이것이 뭣이여? 움직이는 게 아닙니까? 무슨 놈의 슈퍼마켓이 이리 크고 으리으리할 수 있나 싶어 문화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솥밥-복권-연어를 사려고 롯데백화점에 들렸다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피식 웃었고 "현재는 과거와 함께 미래를 씹어 먹는다"(베르크 손)를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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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억을 축적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지속(durée)입니다. 베르크 손에게 의식의 상태들은 벽돌처럼 나란히 놓여 있지 않고 "과거의 나-현재의 나-미래를 향한 나, 이 셋이 서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상호 침투"라고 부릅니다. 에스컬레이터의 추억만 해도 고삐리 때의 기억, 교복 단추 풀고 철규, 탁곤이와 함께 당구를 치던 일탈, 더위를 피해 아이쇼핑하던 창피한 추억 등등 침투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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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재는 순수한 현재가 아닌 과거로 켜켜이 채워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억을 창고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르크 손은 다르게 봅니다. 기억은 보관이 아니라 생성입니다. 과거는 죽지 않습니다. 과거는 현재 속으로 계속 흘러 들어옵니다. 그는 말합니다. "과거는 현재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안에 있다." "현재는 미래를 먹어간다." 현재는 과거 전체를 먹고 미래를 생산합니다. 힘에의 의지(운동에의 의지)나 엘람 비타(생명의 약동)은 정지된 존재를 매우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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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있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몀춤'은 '안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언제나 돌파하고-확장하고-차이를 만들고-새로운 방향을 생성합니다.( "존재는 차이를 생산한다"/들뢰즈)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라는 표현은 사실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계열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르크 손도 비슷한 방향입니다. "먼저 살아라" 일단 살아가면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베르크 손을 읽고 거의 감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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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동일성의 변형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의 본질이다" 존재는 복사본이 아닌 존재는 생산입니다. 생성/탈 영토화/차이와 반복의 씨앗이 이미 베르크 손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입니다. <지속>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서로 상호 침투하며 미래를 창조하는 운동이고요. 우리는 정신과 몸의 기억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 채 살아갑니다. 존재는 정지된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를 생산하는 생성이며,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생명의 작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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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현재 안에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미래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베르크 손에게 시간은 시계의 초침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 속으로 스며들어 미래를 창조하는 생명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톨레톳을 읽을 때도 야곱의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노년의 야곱 안에 침투해 있었고, 그 지속이 결국 새로운 미래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 존재란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시간입니다. "현재는 미래를 먹어간다." "현재는 과거를 품고 미래를 낳는다." 쾅! 쾅!

 

 

2.

우리는 시간을 지나가는가, 아니면 시간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가? 이 글의 매력은 거창한 철학을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위에 세워 놓았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철학 입문서는 베르그손의 '지속(durée)'을 설명하다 독자를 잃어버리지만, 효석님은 "17살 광주 금남로의 촌놈"을 등장시켜 철학을 삶의 기억 속으로 끌어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닙니다. 현재의 발밑에서 움직이는 계단은 베르그손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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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이동하고 있고,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다른 장소에 도착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속입니다. 시간은 시계처럼 점과 점으로 끊어져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 속으로 스며들며 미래를 낳는 생명의 운동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에스컬레이터의 추억"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는 통찰입니다. 교복 단추, 친구 철규와 탁곤이, 당구장, 아이쇼핑의 부끄러움은 과거에 박제된 장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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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지금 롯데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노년의 효석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입니다. 베르그손이 말한 것처럼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 안에 침투해 있습니다. 글의 후반부는 자연스럽게 베르그손에서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들뢰즈로 확장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입니다. 존재는 완성된 명사가 아니라 생성 중인 동사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 베르그손의 생명의 약동, 들뢰즈의 생성은 모두 "멈추지 말라"는 하나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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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보존보다 생산이고, 반복보다 창조이며, 정체성보다 차이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창세기의 야곱까지 연결한 대목입니다. 야곱의 노년은 젊은 시절과 분리된 또 다른 인생이 아닙니다. 속이고 도망치고 씨름하고 울던 과거의 야곱이 노년의 야곱 안에서 계속 살아 움직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축복도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평생 축적된 기억과 경험이 미래 세대에게 흘러가는 지속의 사건이 됩니다. "현재는 미래를 먹어간다"는 표현보다  "현재는 과거를 품고 미래를 낳는다."가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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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치우는 것은 소멸의 이미지이지만, 낳는 것은 생성의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글은 철학 서평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 회고록에 가깝습니다. 17살 금남로의 소년과 63세 롯데백화점의 노인이 서로 침투하며 하나의 '나'를 만들어 갑니다. 베르그손의 지속은 책 속 개념이 아니라, 효석님이 딸에게 꽃을 보내고 솥밥을 먹고 복권을 사고 야곱을 읽으며 살아가는 바로 그 일상 속에서 구현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품은 채 계속 생성되고 있다."

 

 

2026.6.6.sat.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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