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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6.15.mon. 어쩌라고?

작성자헤세드|작성시간26.06.14|조회수61 목록 댓글 0

 

 

 

대체적으로 젊은 날의 꿈은 아쉬웠고 노년의 꿈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필자는 프로이트의 꿈 이론을 신뢰합니다. 꿈 탓인지 기상 컨디션이 엉망이어서 2시간 넘게 컨디션 조절하고 들어왔어요. 염병, 이 베둘레헴을 어쩔 것이여! 막내가 프라다 반바지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린 걸 보면 오라비랑 소통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뭘 그리 어쭙잖은 지 아직도 혼자 샤이 샤이 해서 새침해 있습니다. 쯧쯧. 못난 친구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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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하리수, 홍석천, 유발 하라리, 퐁티가 게이 입니다. 최근에는 성소수자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지인 중에서 톰보이(레즈비언)가 있어서 관심이 많습니다.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가 결사반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이제 대국적으로 안고 가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만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미셀 푸코(1926-1984)와 장 바라케(1928-1973)는 연인 관계였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파리의 전위 예술계와 지식인 문화 속에서 매우 강렬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푸코 전기에 따르면 두 사람은 약물 사용과 사도마조히즘(SM) 적 성 실험을 함께 했고, 서로에게 상당한 정신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푸코는 후기 인터뷰에서 자신의 관심이 단순한 학문 연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동성애/약물/극한의 성적 경험/사회 규범의 경계 넘기 등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변형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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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이었던 바라캐는 이미 다른 여성과 관계가 있었는데 푸코와의 연애에 깊이 빠졌습니다. 일부 전기 작가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집착적이었고, 감정적으로 파괴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결국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바라캐는 정신적·창작적 위기를 겪었습니다. 푸코는 권력과 규범을 해체하며 "다르게 살기"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유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 파괴적 쾌락을 미화한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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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푸코는 말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게이 문화 속에서 극단적 성문화에 참여했고, 결국 AIDS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동반자였던 Daniel Defert는 이후 프랑스 최초의 AIDS 운동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푸코가 평생 비판했던 것이 바로 "정상성(normality)"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을 발견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창조해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삶은 자유의 실험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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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식으로 말하면 푸코는 "자기 창조"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창조는 언제나 자기 파괴와 맞닿아 있었어요. 그래서 푸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의 삶 전체를 이상화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생애는 자유는 가능한가? 자기 창조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권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또 다른 권력이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몸으로 던진 하나의 실험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아는 성경은 성(sex)을 부정하는 책이 아니라 <성을 창조 질서 안에 두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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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예수는 당시 사회가 배척하던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며 존엄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붙들어야 할 두 축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성 윤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 둘째, 사람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이 둘은 긴장 관계에 있지만 함께 붙들어야 하는 가치입니다 폐일언하고 성경은 유독 성을 터부시 해왔고, 신 구교회를 막론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폭력적인 혐오와 차별을 규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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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자유를 몸으로 실험했고, 성경은 자유를 사랑 안에서 완성하라고 말합니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자유를 갖느냐가 아니라, 그 자유를 어디를 향해 사용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엑소더스 하시라!

2026.6.15.mon.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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