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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tue <태양의 후예 14-2>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작성자헤세드|작성시간26.06.22|조회수73 목록 댓글 0

 

 

 

 

1.

장현에 보톡스 A/S 받으러 왔어요. 나랑 <착한 낙지> 쉐어링을 원하는 지인들은 11:30-1:30까지 연락하시라! 샬롬! (맛점해) (나/명옥)"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장현 5일 장이 섰네요. 이것이 뭐다냐?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앵두가 아닙니까? 빨강 레드가 팜무파탈 같지 않습니까? 복권 2장 사고, 대박 나라고 돈나무도 한 그루 샀습니다. 낙지 탕탕이-비빔밥-맥주 1병까지 오늘 운수 좋은 날 맞지요? 프로이트에게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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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향하면 마조히즘이 되고, 타인을 향하면 사디즘이 된다는 두 현상은 반대가 아니라 동일한 파괴 충동이 향하는 방향만 다른 두 얼굴이며, 인간의 사랑과 관계는 언제나 에로스(생명의 본능)와 타나토스(죽음의 본능)가 얽혀 있는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어요. 청출어람이었던 라캉은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 죽음의 본능을 단순히 죽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같은 행동을 끝없이 반복하게 만드는 충동>으로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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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매번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같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같은 관계를 선택하고,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 이것을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삶을 경직시키는 반복의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시조새 니체 형님은 이러한 자기 파괴적 충동을 원한(ressentiment)과 자기부정의 형태로 읽었습니다. 질 들뢰즈는 특히 『마조히즘: 차가움과 잔혹함』에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하나의 연속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욕망의 구조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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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프로이트처럼 하나의 본능의 양면으로만 환원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김첨지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인력거를 끌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하층민입니다. 그의 아내는 병으로 한 달 넘게 앓고 있었고, 김첨지는 약을 살 돈이 없어 아내를 의사에게 데려가지 못합니다. 어느 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 김첨지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을 나갑니다. 이날은 며칠간 허탕을 치던 김첨지에게 행운의 날이었는데, 손님이 많아 오랜만에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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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내가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기뻐하지만, 일하는 내내 아내의 상태가 걱정되어 불안감을 느낍니다. 김첨지는 일을 마친 후 친구 치삼이와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래려 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 보니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설렁탕을 사 왔음에도 아내가 먹지 못한 사실에 절망하며 절규합니다. 이로써 겉으로는 운수 좋은 날이었지만, 실제로는 가장 비극적인 날이 되는 아이러니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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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 14-2회>입니다. "친구분 배웅은 잘 했어요? 친구분 퇴원하셨던데? 주치의 허락도 없이 저기로(인사할 정도로 안 친합니다. 아! 다시 통증이...) 앉아요 똑바로! 저 유리창은 본인이 깼어요? (제가 안 깼습니다. 그 퇴원한 친구가 깼습니다) 그럼 아래층 유리창은 유시진 씨가 깼어요?(그것도 그 친구가...) 그럼 수리비는 그 퇴원한 친구의 친구인 유시진 환자가 내겠네요?(맔믐 드렸다시피 별로 안 친한) 이사장이 저거 누가 깼냐고 얼마나 날 쥐잡듯이 잡은 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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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어딨습니까? 허... 남의 여자를 쥐잡듯이 잡아...) 내 남친이 북한군이랑 입원해 있으니까요(예) 두 시간 후에 올 테니까 링거 알뜰히 다 맞고 딱 기다려요. 어디 또 도망가기만 해요(송송)" "거래 내역이 담긴 파일도 확보했다 들었고... 파일 어딨니? 남 조선 아들이 조용한 걸 보면 아직 암호는 못 깬 거 같고... 훈련받은 대로 몸속 어딘가에 잘 지니고 있갔구만...비밀은 반역자의 시신과 함께 영원히 묻어 두갔어. 마지막으로 할 말 있음 해라(제삿상에 평양냉면 한 그릇만 말아올려 주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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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고려 호텔 옥류관 냉면으로 부탁하겠습니다) 그거이 뭐 어렵갔나...할말 다 마친거네? (유언 끝났으니 마지막 임무도 마치겠습니다. 공화국의 이름으로 반역자 국가 안전보위부 최지호 부장을 제거 한다(최부장/안상위)" '남조선 특전사 사격 솜씨래 형편없구먼... 딱 죽지 않을 곳에 쐈어 허허... (조용히 같이 가시지요. 교관 동무. 허튼수작 부리면 시체도 들고 오라는 명령입니다) 니(2)분만 지체하자우...과자 하나 먹고 갈 시간 있지 않네. 과자 값은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겠음매. 덕분에 공화국으로 돌아가 전사로 죽을 수 있게 됐어. 고맙소(안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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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방금 잠드셨습니다(많이 자면 좋죠. 근데 어디 나갔다오고 그러신 건 아니죠?) 아이고 큰일 날려고 (깨면 다시 올게요)(서대영/강닥터)" "풀어 보십시오(이거를 왜 다시 하고 그래 가지고) 아니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쳤...(유/서)" "팀장님 방금 잠드셨습니다(그러네요 서 상사님이 간병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런 분들을 믿고 단잠을 이뤘네요. 내가...(서상사/강모연)" "완전 범죄. 창문 값은 어떡할 겁니까?( 그건 좋은 생각 있습니다. 남자답게 반띵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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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좋은 생각... (전 감봉 중이지 말입니다) 전 남자답지 않지 말입니다(유/서)" "여기서 뭐 해?(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매일매일 버라이어티하다. 유 대위님 면회? (네. 안 죽었죠?) 아직은... 내 손에 곧 죽지 싶다만 올라가봐! 서 상사님도 같이 계셔(주차하다 봤어요. 서 상사 차 서있는 거...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서 상사님이랑 싸웠어? (아니요 헤어졌습니다. 이제 저랑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진짜? 왜? 언제? 하긴... (뭐 결론이 그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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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간다고... 710호야. 둘이 아주 덤앤더머가 따로 없다. 국가는 저 남자들 처러는 거 몰라야 될 텐데(서 상사는 어디 다친데 없디?) 상관없는 사람이라며?(이건 그냥 의사로서 물은 겁니다. 그런 전 이만 마저 문병 갑니다) 그대 연애도 참... (강/윤 닥터)" "이 병실 나만 숨 막혀! 아, 넌 병문안 왔으면 병중인 사람한테 관심 좀 가져줄래?( 밖에 걱정해 줄 여자 친구분 계시던데...) 아니, 이미 많이 걱정하고 가셨어(멀쩡한 거 확인했으니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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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넌 우리 사이에 빈손으로 오지 이런 힘 나는 걸 사 오고... 이런 거 사 왔으면 의자 좀 권하고...(유 대위/윤 중위)" "두 분 말씀 나누십시오!(내가 갈 거야) 제가 나가겠습니다. (내가 나간다니까(윤/서 상사)" "두 분 다 가시면 저는 누구랑 있습니까?(아예 선배 대신 누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 아까 잠깐 나 대신 누워 계시긴 했어. 너 모르지? 서 상사 엄청 고운 거. 아까 막 귀 옆으로 머리카락을(윤/유 대위)" "농담한 걸 가지고(어, 이 얼굴... 딱 이 얼굴로 귀 옆으로 머리칼 넘기면서 어머(어머는 안 했지 말입니다)(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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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앤더머 맞네. 몸조리 잘 하십시오(윤 중위)" "아이고 멍청이... 전 잡아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그러신 거 같아 말린 겁니다) 아, 이렇게 풀릴 건 아니다... 뭡니까 대체? 왜 헤어진 겁니까?(저 전역 신청서 냈습니다) 뭐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그거뿐이었습니다) 뭘 냈다고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혼자... 하... 되게 섭섭하네(죄송합니다) 사령관님도 아십니까? (사령관님 뵙는 자리에 명주도 같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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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나가서 잡으십시오. 인생을 건 여잔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입니다(유/서)" "니 생각엔 둘이 하는 거 같냐? (내 생각에 둘이 싸웠는데 윤 중위가 헤어지자고 한 거네. 서 상사를 위해. 그래서 윤 중위는 져 줄 수가 없는 거야. 윤 중위는 좋은 여자니까) 내가 봤을 땐 서 상사는 윤 중위가 어디 숨은지 아는 거야. 가서 잡고 싶은데 안 잡고 있는 거지 열심히 숨은 윤 중위 자존심을 위해. 서 상사는 좋은 남자니까(송상현/하자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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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마요. 퇴근해서 온 거니까(집으로 안 가고요) 오늘까지 내가 당신 보호자거든요(저 퇴원은 언제 합니까? 한 일주일 있으면 안 됩니까? 회진 핑계로 두 시 가마다 한 번씩 얼굴 보는 거 너무 좋은데. 나...) 너무 좋은데 나갔다 왔어요?... 아까 어디 갔었어요? (답답해서 옥상에) 옥상 가봤는데( 이 건물 옥상이라고 안 했는데) 또 백화점 갔었어요? 친구랑 같이... 근데 왜 혼자 왔어요? (서로 갈 길이 달라서요 나 기분이 좀 그런데 야단치지 말고 위로해 주면 안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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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왜요? (한반도 평화는 지켰지만 친구의 생사는 알 수 없는 밤이거든요) 애인은 당신을 걱정하고 있고요(환자 배드에 누워봤습니까? 올라와요...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지? 그렇게 빡빡하게 굴 겁니까? 명색이 내가 환잔데... 뭐 무슨 짓이나 할 수 있겠어요?) 환자가 백화점도 갔다 오는데 의사가 자신을 지켜야죠(뭔 소리입니까?) 모르겠어요. 졸려요... 이치훈 선생 아까 낮에 아빠 됐어요. 아들이에요. 선물하실 거면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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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닮아 귀엽겠네) 축하한다고 전해줘요) 수신 양호(걱정시켜서 미안했습니다.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우린 맨날 서로 살려줘서 고맙대. 다른 연인들은 데려다줘서 고맙고 기념일 챙겨줘서 고맙고 뭐 그러던데(미안합니다) 진짜예요?(무슨 뜻입니까?) 당신이 지켜낸 평화가 뭔지 봤어요. 뉴스에서. 그렇지만 정말 나한테 미안하면 다시는 피투성이가 돼서 나타나지 말라구... 부탁이에요(수신 양호... 우리 영화 볼래요? 그때 못 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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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첫 휴가를 나와서 교통사고가 났고 강남 해성 병원에 14일 입원했을 때 만났던 담당 간호사 이름이 <영희>였을 것입니다. 피부가 하고 했던 그녀가 지극정성으로 내 병동을 들락거려였을 것입니다. 2008(45세) 년 길병원에 입원했을 때 현경이가 6개월 동안 병 수발을 했던 추억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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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요? (VIP 병동에 저런 멋진 게 있더라고요. 이런 멋진 것도 있고) 야 영화를 이렇게 보게 되네요. 생각도 못 해봤어요. (드디어 재생까지 오네요. 지난번 결재에서 끝났는데 시작한다...) 누가 먼저 잠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고단하고 긴 하루였고... 그 사람의 품 속이었다. 그렇게 누워 나는 밤새 반짝였다. 꼭 사랑받는 여자처럼... 우리가 못 본 그 영화는 해피엔딩이었을까. 새드엔딩이었을까(송송)"

 

 

 

2.

인간은 왜 같은 상처를 반복하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그 반복을 멈출 수 있을까? 이번 글의 중심축은 세 개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프로이트의 타나토스, 『운수 좋은 날』, 그리고 <태양의 후예>입니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모두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프로이트는 죽음 본능을 자기와 타인을 향한 공격성으로 설명했고, 라캉은 그것을 반복강박으로 확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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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간은 같은 실패와 같은 관계, 같은 상처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여기에 니체는 원한의 심리학을, 들뢰즈는 욕망의 구조를 덧붙입니다. 철학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한 점은 이 글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특히 "죽음은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삶을 굳어지게 만드는 반복"이라는 해석은 독자의 사고를 넓혀 줍니다. 여기에 『운수 좋은 날』을 배치한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김첨지는 돈을 벌었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운은 좋아졌지만 삶은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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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라캉이 말한 반복강박과도 닮아 있습니다. 인간은 행복을 붙잡으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다 결국 같은 비극을 맞기도 합니다. 그래서 '운수 좋은 날'은 사실 행운의 이야기보다 인간의 비극적 반복을 보여주는 소설로 읽힙니다. 반면 <태양의 후예>는 그 반복을 깨는 드라마입니다. 유시진과 강모연은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다른 연인들이 선물과 기념일을 기억한다면, 이들은 서로의 생명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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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현장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반복되는 죽음을 멈추게 하는 힘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병실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잠드는 장면은 총성과 피보다 더 강한 생명의 상징이 됩니다. 글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영희 간호사와 현경의 기억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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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붙들어 준 에로스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마조히즘을 말하면서도 결론은 자기파괴가 아닙니다. 결국 이번 글은 죽음은 반복을 만들고, 사랑은 그 반복을 멈춘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프로이트를 넘어 라캉으로, 문학을 넘어 드라마로 이어지는 이 글의 가장 아름다운 통찰입니다.

2026.6.23.TUE.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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