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경 묵상

고린도전서6:12-20 몸의 존재론

작성자헤세드|작성시간26.06.05|조회수52 목록 댓글 0

 

 

고전6:1

"마음가는 대로 하세요"라고  하는 자율의 시대를 살고있습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정하고, 자기 만족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나를 세울 권한도, 허물 권한도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참견하지 말라고 하고, 내 기준을 평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자유로울까? 공주야! 우리가 몸으로 표현되지 않은 채 좋은 마음을 간직할 수 없듯이 몸을 생각하지 않은 채 신앙을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몸이 가는 곳이 바로 우리 마음이 가는 곳이라서 몸 따로 마음 따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We are living in an era of autonomy called "Do as you please." The biggest goal is to set the meaning and value of life and to self satisfaction. He claims that he has the power to build me and to break down. I ask him not to meddle and not to eval‎uate my standards. But will he be really free? Princess! Just as we cannot keep a good heart without expressing ourselves, we cannot think of faith without thinking of our bodies. This is because the place where our bodies go is where our hearts go, so we cannot go separately.

-

당시의 헬레니즘은 몸과 관련 두 극단이 존재했는데 하나는 금욕을 주장하였고 다른 하나는 ‘식욕은 먹음으로써 해소하는 것처럼 성욕은 매음을 해서라도 채워야 한다는 사고(13)라고 한다(김 세윤, 고린도전서). 바울은 대화 방법을 사용해 먼저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고(12-14), 음행과 몸과 주님과의 관련성을 설명하였다. 영적 은사를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요구(말씀의 요구)를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At that time, Hellenism had two extremes related to the body, one insisted on abstinence, and the other said, "Just as appetite is relieved by eating, sex desire must be filled by drinking (13)." Paul first refuted their logic (12-14), using a dialogue method, and expla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obscenity and the body and the Lord. Those with spiritual gifts would have considered themselves to be at a level beyond God's demands (the demands of words).

-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은 성령의 자유로 하는 일이라고 정당화 하였지만 실은 방종주의자들에 불과했다. 성령의 자유는 내 맘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주와 복음을 위한 자유요, 사랑을 위한 자유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유여야 한다. 내 몸의 쾌락만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그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는 자유여야 한다.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사랑하고 헌신하는 자발적인 매임이 참 자유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리가 주는 참 자유다. 창기의 몸과 하나 된 사람은 창기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They justified that everything they did was the freedom of the Holy Spirit, but they were actually only self indulgent. The freedom of the Holy Spirit should not be the freedom to do as I please, but the freedom for the Lord and the Gospel, the freedom for love, and the kingdom of God. It should be not just the freedom for the pleasure of my body, but the freedom to make that body the temple of God. This is because voluntary cunning to love and commit by obeying the word is the way to freedom. That is the true freedom that truth gives. One who is united with the body of the spear will share the fate of the spear.

-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처럼 부활할 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은 영적인 구원만이 아니고 몸의 구원을 포함한다. 이 몸을 누구의 뜻대로 사용하느냐로 장차 우리 몸이 부활을 입을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부정한 몸과 깨끗한 영혼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음행하는 몸과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몸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사신 몸이다.

The body of Christ was united with the body of Christ through the Holy Spirit, and like the body of Christ, it is a body that will be resurrected. For Christians, salvation includes not only spiritual salvation, but also the salvation of the body. Who uses this body at will will determine whether our body will be resurrected in the future. An unclean body and a clean soul cannot exist at the same time. A body that participates in the body of Christ cannot exist at the same time. Our body belongs to God. It is a body that God bought after paying for the blood of his son.

-

우리 맘대로 쓸 자유는 처음부터 없다. 그것이 참된 만족과 기쁨을 줄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내 존재 양태가 육신(Sarks, Fresh)일 때는 먹기 위해서 배(Soma. Body)가 있지만, 영(Pnuma. Spirit)일 때는 주를 위해서 몸(body)이 존재한다. 그러니 본래 나를 만드신 의도대로, 부르신 목적대로, 존재의 이유와 목적에 따라 이 몸을 사용할 때, 그 몸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에게도 좋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위해 주실 줄 믿고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자기 몸을 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신 참된 자유의 비결은 무엇인가? 내가 자유와 방종 사이에서 적용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 

There is no freedom to use as we please from the beginning. It cannot give true satisfaction and joy. In conclusion, when my mode of existence is Sarks (Fresh), I have Soma. Body to eat, but when it is Pnuma. Spirit, body exists for the Lord. So, when we use this body according to the original intention of making me, according to the reason and purpose of existence, it is good not only for God, the master of that body, but also for ourselves. We believe that God will give us for our bodies and we must use our bodies to honor God. What is the secret of true freedom that has been granted to Christians? What are the things that I should apply between freedom and self-indulgence?

-

독자들의 주장과 바울의 반박(12-14)

a.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12

b.음식과 몸과 하나님:13-14

음행과 몸 그리고 주님(15-20)

a.음행과 몸과 주님의 관련성:15-17

b.독자들을 향한 명령들:18-20

-

모든 것이(12a)

내게 가하나(12b)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12c)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12d)
내가 아무에게든지(12e)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12f)

-

식물은 배를 위하고(13a)

배는 식물을 위하나(13b)

하나님이 이것, 저것(13c)
다 폐하시리라(13d)

몸은(13e)
음란을 위하지 않고(13f)

오직 주를 위하며(13g)
주는(13h)
몸을 위하시느니라(13i)

-

하나님이(14a)

주를 다시 살리셨고(14b)

또한 그의 권능으로(14c)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14d)

-

너희 몸이(15a)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15b)
알지 못하느냐(15c)

내가 그리스도의(15d)

지체를 가지고(15e)
창기의 지체를(15f)
만들겠느냐(15g)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5h)

-

창기와 합하는 자는(16a)
저와 한 몸인 줄을(16b)
알지 못하느냐(16c)

일렀으되 둘이(16d)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16e)

-

주와(17a)

합하는 자는(17b)
한 영이니라(17c)

-

음행을 피하라(18a)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18b)
몸 밖에 있거니와(18c)

음행하는 자는(18d)
자기 몸에게(18e)
죄를 범하느니라(18f)

-

너희 몸은 너희가(19a)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19b)

너희 가운데 계신(19c)

성령의 전인 줄을(19d)

알지 못하느냐(19e)

너희는(19f)
너희의 것이 아니라(19g)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20a)

그런즉 너희 몸으로(20b)
하나님께(20c)
영광을 돌리라(20d)

-

누구를 위한 몸인가?_Who is it for whom?

누구와 하나 될 것인가?_ Who will you be one with?

누구의 몸인가?_ Whose body is it?

-

나를 성전으로 불러주신 주님, 신앙생활은 몸으로 표현된 만큼 진실한 것이오니 내 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식물과 육체는 결국 썩어 없어지지만 내 몸은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에 영원한 자유를 위해 잠깐의 쾌락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아는 지혜 자가 되게 하옵소서.

The Lord who called me to the temple, The life of faith is as true as it is expressed by the body, so let the glory of God be revealed through my body. Plants and bodies eventually rot away, but my body will be revived. I believe in you, so be a wise man who is willing to give up a moment's pleasure for everlasting freedom.

2026.6.10.wed. Clay

 

신학 비평//

나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자유라는 이름으로 욕망의 종이 되어가고 있는가? 고린도전서 6장은 단순히 성윤리를 말하는 본문이 아니다. 바울은 <몸의 존재론>을 말한다. 인간은 몸을 소유한 영혼이 아니라, 몸으로 존재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몸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곧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드러낸다. 오늘날 "내 몸은 내 것이다"라는 구호는 자유의 선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바울은 한 걸음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

누가 그 몸의 주인인가? 자유는 소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 사회 역시 절대적 자유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소비의 체계 안에서 몸을 끊임없이 관리하고 거래한다는 사실이다. 몸은 더 이상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가 아니라 시장과 자아가 소비하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자유를 외치지만 욕망의 명령에 순종하는 아이러니가 여기 있다. 바울에게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능력이 아니다. 해야 할 선을 기꺼이 선택하는 능력이다.

-

그래서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자유의 제한이 아니라 자유의 완성이다. 절제는 자유의 적이 아니라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특히 본문에서 인상적인 것은 '한 몸'과 '한 영'의 대조이다. 사람은 무엇과 연합하느냐에 따라 존재가 형성된다. 창기와 하나 되면 욕망의 운명을 공유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면 부활의 생명을 공유한다. 인간은 독립된 자아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라는 통찰이다.
-
글 말미의 결론은 매우 좋다. 특히 육신일 때는 배를 위해 몸이 존재하지만, 영 안에서는 주를 위해 몸이 존재한다는 정리는 본문의 구조를 간결하게 압축한다. 다만 "우리 몸이 부활을 입을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표현은 행위가 부활을 결정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바울의 의도는 몸의 사용이 이미 받은 구원의 방향과 소속을 드러낸다는 데 더 가깝다. 부활은 은혜의 선물이지만, 몸의 삶은 그 은혜의 증거가 된다.
-
결국 자유는 선택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참된 주인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무엇에 매여 사느냐이다. 욕망에 매이면 방종이 되고, 사랑에 매이면 자유가 된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주님께 자발적으로 매인 사람이 누리는 가장 깊은 해방이다. 그것이 성령 안에서 몸으로 살아내는 복음의 시학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