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8:1
진리와 사랑은 다투지 않지만, 지식과 사랑은 다툴 수도 있습니다. 지식과 사랑의 대결에 자유가 심판으로 나섭니다. 자유는 어느 편 손을 들어 승부를 가르게 될까. 지식이 건 싸움에 자유가 말리지 않으면 사랑이 위태롭습니다. 사도는 어떤 승부를 기대하며 이 편지를 쓰고 있는가? 공주야! 헤르만헤세는 '지식이 사랑을 만날 때 신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고 했다. 아는 것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교회의 문제에 대한 바울의 처방은 늘 사랑이었단다.
Truth and love do not quarrel, but knowledge and love can be contested. Freedom will be the judge in the battle between knowledge and love. Which side will freedom decide the outcome with? Love is at stake if freedom does not stop the fight over knowledge. What kind of battle is the apostle writing this letter expecting? Princess! Hermann Hesse said, "Knowledge can enter the path of God when it meets love." Paul's prescription for the problems of the Corinthian Church, which knows a lot and is devoid of many things, has always bee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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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랑을 모르니 바람 잘 날이 없는 게지. 본문의 배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방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우상숭배로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우상의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 행위에 대한 것이다. 공주야!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만 유일한 신이고 나머지는 다 우상이다. 따라서 우상은 신이 아니다. 우상에게 제사하고 나온 제물이라고 해서 실제로 그 우상 때문에 부정해진 것은 아니다. 먹어도 된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된다.
I thought I knew everything, but I don't know love, so there are no days when I can't blow well. There are two backgrounds in this text. One is about seeing food offered as an offering to a stranger as idol worship, and the other is about eating the offering of an idol without hesitation. Princess! As we all know, our God is the only god and all others are idols. Therefore, idols are not gods. Just because they are sacrificed to an idol does not mean that the idol is actually denied. You can eat it. You can eat it thinking that it belongs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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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고 마시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그 지식을 사랑으로 쓰지 않으면 공동체 안에서 약한 자들을 실족케 만든다. 물론 사랑으로 쓰면 공동체를 세울 것이다. 진정한 지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절제하고 지체에게 자신을 맞춰주는 지식이 돼야한다.
What you live for and how you live is more important than what you eat and drink. I knew well that eating the sacrifice of an idol would not be a sin, but if I don't use that knowledge as love, I will make the weak in the community suffer. Of course, if you use it with love, you will build a community. True knowledge is the teaching of loving God and loving your neighbors. In order to love, you must be knowledge that restrains what you want and adjusts yourself to your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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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지식인 사랑을 모르면 그 지식은 우리를 살리는 지식이 아니라 죽이는 지식이 되고, 공동체를 세우는 지식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지식이 된다. 올바른 지식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누린다면 무엇이 문제이랴.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형제 사랑이다. 주께서 죽으면서 구원하신 형제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고 실족시키면서까지 우상 제물 먹기를 고집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If you don't know love, the best intellectual, that knowledge becomes knowledge that kills us, not knowledge that builds a community, but knowledge that destroys us. What's the problem if you enjoy the freedom given by God in the right knowledge. But it's worth taking precedence over him. It's brotherly love. If the Lord hurts the weak conscience of the brothers who saved him when he dies and insists on eating idol sacrifices even when he falls, he becomes a slave of his desire, not enjoying God's b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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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수준의 지식으로 자신의 자유를 합리화하는 것보다 더 성숙한 태도는 연약한 지체들이 깨달을 때까지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다. 나의 지식과 자유가 사랑을 섬기고 있는가? 내 사랑의 부재는 무엇인가? 내가 절제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
A more mature attitude than justifying one's freedom with a high level of knowledge is to limit one's freedom until the fragile physicals realize it. Is my knowledge and freedom serving love? What is the absence of my love? What are some things I should restrain myself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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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대해, 지식과 사랑(1-3)
a.문제제기와 독자들의 주장:1a
b.바울의 응답, 지식과 사랑:1b-3
구체적 권면1, 우상에 대한 독자의 지식과 바울의 인정(4-6)
구체적 권면2, 문제 상황들과 바울의 권면(7-13)
a.문제 상황1,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17
b.문제 상황2, 음식에 대해 고린도교인들의 이해:18
c.바울의 권면과 이유: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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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1a)
우리가 다(1b)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1c)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1d)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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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구든지(2a)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2b)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2c)
알지 못하는 것이요(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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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든지(3a)
하나님을 사랑하면(3b)
그 사람은(3c)
하나님도(3d)
알아주시느니라(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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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4a)
먹는 일에 대하여는(4b)
우리가 우상은(4c)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4d)
또한 하나님은(4e)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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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하늘에나 땅에나(5a)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5b)
많은 신과(5c)
많은 주가 있으나(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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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에게는(6a)
한 하나님(6b)
곧 아버지가 계시니(6c)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6d)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6e)
또한 한 주 예수(6f)
그리스도께서 계시니(6g)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6h)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6i)
있느니라(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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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지식은(7a)
모든 사람에게(7b)
있는 것은 아니므로(7c)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7d)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7e)
우상의 제물로 알고(7f)
먹는 고로(7g)
그들의 양심이(7h)
약하여지고(7i)
더러워지느니라(7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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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우리를(8a)
하나님 앞에(8b)
내세우지 못하나니(8c)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8d)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8e)
먹는다고 해서(8f)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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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의 자유가(9a)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9b)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9c)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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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있는 네가(10a)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10b)
누구든지 보면(10c)
그 믿음이 약한(10d)
자들의 양심이(10e)
담력을 얻어(10f)
우상의 제물을(10g)
먹게 되지 않겠느냐(1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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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네 지식으로(11a)
그 믿음이 약한 자가(11b)
멸망하나니(11c)
그는 그리스도께서(11d)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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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너희가(12a)
형제에게 죄를 지어(12b)
그 약한 양심을(12c)
상하게 하는 것이(12d)
곧 그리스도에게(12e)
죄를 짓는 것이니라(1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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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만일(13a)
음식이 내 형제(13b)
실족하게 한다면(13c)
나는 영원히 고기를(13d)
먹지 아니하여(13e)
내 형제를(13f)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1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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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참 신이다_ God is the only God.
사랑 없는 지식은 교만을 낳는다_ Knowledge without love breeds arrogance.
자유보다 사랑이 우선이다_ Love comes before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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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우상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음식을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의 부재이니 사랑 없는 지식, 미숙한 지식은 위태롭고 더욱이 절제 없는 사랑은 상스럽다고 하셨나이다. 주님, 지식 안에서 자유, 사랑과 덕, 양심을 따라 행동하겠나이다. 현란한 박수와 자기만족의 유혹은 한낮 썩어져 갈 것들인 것을 깨닫고 좀 더 절제되고 차분하게 상황을 보고 내 자신을 다스려 가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그리스도의 고상한 지식을 배운 만큼 사랑의 원리를 실천할 수 있게 하옵소서.
I ate food because I knew there was no idol, Lord. "But this is the absence of love, so knowledge without love, knowledge without maturity, is at stake, and, moreover, love without moderation is vulgar." Lord, will you follow freedom, love, virtue, and conscience in knowledge? Let me be more restrained and calm and rule myself, realizing that the flamboyant applause and the temptation of complacency are going to rot in the middle of the day. As I have learned the lofty knowledge of Christ today, let me practice the principles of love.
2026.6.13.sat. Clay
신학 비평//
나는 '옳은 것'을 주장하기 위해 자유를 사용하는가, 아니면 형제를 살리기 위해 자유를 절제하는가?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 제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지식과 사랑, 그리고 자유의 우선순위**를 묻는 장입니다.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신학적 명제가 옳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옳은 지식도 사랑이 없으면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놀라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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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사랑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없는 진리의 사용 방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식은 사실을 분별하지만, 사랑은 사람을 세웁니다. 그래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말씀은 지식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지식의 목적이 사랑이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바울의 자유 이해입니다. 세상은 자유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권리"라고 말하지만, 바울은 자유를 사랑 때문에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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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행사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자유를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자유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시키면서까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욕망의 노예 상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내어주신 형제를 위해 자신의 식탁 하나 양보하지 못한다면, 그 지식은 이미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같은 시험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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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정통성, 성경 지식, 교리적 정확성을 자랑하면서도 상대를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승리가 아니라 교만의 승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확장됩니다. 결국 고린도전서 8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묻습니다. 당신의 지식은 사람을 이기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바울이 기대한 승부는 지식의 승리가 아니라 사랑의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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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 이것이 복음이 만든 자유이며, 십자가가 빚어낸 가장 성숙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권리를 행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권리를 내려놓는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