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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고린도전서9:1-23 사랑은 내려놓을 수 있다

작성자헤세드|작성시간26.06.09|조회수47 목록 댓글 0

 

고전9:1

정당한 권리를 부당하게 위협할 때, 그걸 지키는 건 얼마나 소중한가. 충분히 가졌음에도 더 욕심 내는 권리는 얼마나 흥하던가. 마땅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서 더 나은 것을 위해 내주는 일은 얼마나 거룩한가. 굳이 따져 묻지 않는 권리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공주야! 언제부터 ‘차별’이 우리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차별, 사업자와 노동자, 페미니즘까지 모든 영역에서 차별의 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적 현상으로 보인다.

When you unduly threaten a legitimate right, it is precious to protect it. How much the right to be greedy even though you have enough is prosperous. How holy is it to give up for better when you can claim a right? There is a beauty of rights that you don't have to ask. Princess! Since when has "discrimination" become a topic of our time. It seems like a desirable social phenomenon that the wall of discrimination is collapsing in all areas, including discrimination between the ruling class and the dominated class, businesses and workers, and fem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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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인적으로 차별당하지 않으려는 내면에 손해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바울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했다.이 상황은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 권리가 없다는 말은 아닌데 바울의 대적 자들은 그렇게 여론을 호도하며 바울의 사도직을 폄훼한 것 같구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성도들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것은 상식이다. 율법도 이를 지지한다. 돈을 위해서 사역하는 것과 사역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However, it is also true that those who do not want to be personally discriminated against have a desire not to suffer damage. Our Paul has given up his rights. This situation does not mean that not claiming rights does not mean that there is no right, but it seems that Paul's adversaries have thus misled public opinion and disparaged Paul's apostolic position. It is common knowledge that those who preach receive financial support from the saints. The law also supports this. It is another matter to serve for money and to receive money in exchange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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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사도의 자격이 아니다. 그것을 사역자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하지만 돈을 위해서 사역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따라서 사역자가 돈을 받거나 기대하는 것을 마치 헌신과 열정이 부족하다고 매도 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울은 자기 생계를 직접 책임졌다. 바울이 마땅한 자유를 포기한 것은 그런 보수가 복음 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Abandoning natural rights is not an apostle's qualification. You can't force it on your ministry. But it's not the right attitude to work for money. Therefore, it is wrong to criticize the ministry as lacking in commitment and enthusiasm for what it receives or expects. Paul was directly responsible for his livelihood. Paul gave up his due freedom because he was concerned about who such a conservative would be at least a little bit about preaching the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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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사탄에게 매인 더 많은 사람을 자신처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유를 누리게 하려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종의 삶을 선택하였다. 아마 ‘돈’에 대한 관심 때문에 듣기 좋은 말을 전하고 다녔던 거짓 교사들과 말씀과 삶에서 차별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교회 세속화를 염려하는 소리가 높아지는 지금, 아무리 당연한 권리라고 하더라도, 교회지도자의 재물관은 세상 경영자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Paul gave up his rights and chose the life of a servant in order to allow more people tied to Satan to enjoy freedom as a servant of Christ like him. Perhaps because of his interest in 'money', he wanted to differentiate himself from the false teachers who had conveyed good words in words and lives. Now that concerns about secularization of the church are growing, shouldn't the view of wealth of a church leader be different from that of a world manager, no matter how natural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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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이 자청하여 이 사역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부여하신 숙명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는 엄중한 명령이기에 보수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무리 내 권리가 중요해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권리가 더 중요하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보수를 받지 않았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값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울에게 상이었다.

Paul says he does not demand remuneration because he did not voluntarily enter the path of this minister, but because it is a fate that God has given him authority, and because it is a strict order that will be angry if he does not comply. No matter how important my rights are, God's rights toward me are more important. Because I belong to God. Paul was not paid, but he was not unhappy. The fact that he could preach the gospel without merit was a prize to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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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량으로 사역한 후 하나님께서 주실 하나님께서 이후의 어떤 보상이 아니라, 자기 권리를 다 쓰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관심이 진짜임을 보여줄 수 있고, 그 값없이 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 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바울에게는 가장 큰 상이이었다. 내게 있는 권리는 아름다운가? 복음의 유익을 위해 내가 스스로 포기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나는 교회의 일꾼들을 재정적으로 잘 지원하고 있는가?

Paul's greatest prize was that he could show that his love and interest in them was real by preaching the gospel without using up his rights, and that there was a person who was saved by listening to the gospel without any value, not by any reward after serving with mercy. Are my rights beautiful? What should I give up on myself for the benefit of the gospel? Am I financially supporting the workers of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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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로서의 바울의 권리(1-14)

a.사도의 자격:1-2

b.바울의 권리 논증:3-14

사도의 권리를 복음을 위해 거절함(15-23)

a.바울의 복음 사역:15-17

b.바울의 상급과 복음 사역 방법: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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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유인이 아니냐?(1a)

사도가 아니냐?(1b)

예수 우리 주를(1c)

보지 못하였느냐(1d)

주 안에서 행한(1d)

나의 일이(1e)

너희가 아니냐?(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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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게는(2a)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2b)

너희에게는 사도이니(2c)

나의 사도됨을(2d)

주 안에서(2e)

인친 것이 너희라(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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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판하는(3a)

자들에게(3b)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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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4a)

먹고 마실(4b)

권리가 없겠느냐(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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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5a)

다른 사도들과(5b)
주의 형제들과(5c)
게바와 같이(5d)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5e)
데리고 다닐(5f)

권리가 없겠느냐(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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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나와 바나바만(6a)

일하지 아니할(6b)
권리가 없겠느냐(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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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기 비용으로(7a)

군 복무를 하겠느냐(7b)

누가 포도를 심고(7c)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7d)

누가 양 떼를 기르고(7e)
그 양 떼의 젖을(7f)

먹지 않겠느냐(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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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의 예대로(8a)

이것을 말하느냐(8b)

율법도 이것을(8c)
말하지 아니하느냐(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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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율법에(9a)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9b)

망을 씌우지 말라(9c)
기록하였으니(9d)

하나님께서(9e)

어찌 소들을 위하여(9f)

염려하심이냐(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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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우리를 위하여(10a)

말씀하심이 아니냐?(10b)

과연 우리를 위하여(10c)

기록된 것이니(10d)

밭가는 자는(10e)

소망을 가지고 갈며(10f)

곡식 떠는 자는(10g)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10h)

떠는 것이라(1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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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희에게(11a)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11b)

너희의 육적인 것을(11c)

거두기로(11d)

과하다 하겠느냐(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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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도(12a)

너희에게(12b)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12c)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12d)

그러나 우리가(12e)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12f)

범사에 참는 것은(12g)

그리스도의 복음에(12h)
아무 장애가(12i)

없게 하려 함이로다(12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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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13a)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13b)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13c)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13d)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13e)

-

이와 같이 주께서도(14a)

복음 전하는 자들이(14b)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4d)
명하셨느니라(14e0

-

그러나 내가(15a)
이것을(15b)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15c)

또 이 말을 쓰는 것은(15d)

내게 이같이 하여(15e)

달라는 것이 아니라(15f)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15g)

누구든지(15h)

내 자랑하는 것을(15i)

헛된 데로 돌리지(15j)

못하게 하리라(1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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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16a)

자랑할 것이 없음은(16b)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16c)

만일 복음을(16d)

전하지 아니하면(16e)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1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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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자의로(17a)
이것을 행하면(17b)

상을 얻으려니와(17c)

내가 자의로(17d)

아니한다 할지라도(17e)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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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18a)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18b)

값없이 전하고(18c)

복음으로 말미암아(18d)

내게 있는 권리를(18e)

다 쓰지 아니하는(18f)

이것이로다(1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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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든 사람에게서(19a)

자유로우나(19b)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19c)

종이 된 것은(19d)

더 많은 사람을(19e)

얻고자 함이라(1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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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에게 내가(20a)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20b)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20c)

율법 아래에 있는(20d)

자들에게는(20e)

내가 율법 아래에(20f)

있지 아니하나(20g)

율법 아래에(20h)

있는 자 같이 된 것은(20i)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20j)

얻고자 함이요(2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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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없는 자에게는(21a)

내가 하나님께는(21b)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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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그리스도의(21d)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21e)

율법 없는 자와 같이(21f)

된 것은(21g)

율법 없는 자들을(21h)

얻고자 함이라(2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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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들에게(22a)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22b)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22c)

내가 여러 사람에게(22d)
여러 모습이 된 것은(22e)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22f)

구원하고자 함이니(2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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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음을 위하여(23a)

모든 것을 행함은(23b)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2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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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에게도 권리가 있다_ The apostles have rights, too.

복음을 위해 권리를 쓰지 않겠다_ will not use my rights for the gospel.

내 권리보다 하나님의 권리_ The right of God over my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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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게도 정당한 대우를 해주시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자비량 선교의 유익을 충분히 활용하는 일꾼이 더 많아져서 현대교회의 세습화와

계급화가 무색케 되게 하옵소서. 또한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교회(교역자)는 더 절제하고, 어려운 교회(교역자)는 더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므로 교회가 교회다워지게 하옵소서. 복음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신 주님, 내가 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기억하고 내 모든 야망과 바쁜 일정을 포기합니다. 이 모든 이유가 주님 가시는 그 길을 따라 가기 위함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곡식을 대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기쁘게 적용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Thank you, Lord, for treating me fairly.I hope that more workers will make full use of the benefits of benevolent missionary work, which will overshadow the hereditary succession and classification of modern churches. Also, please make the church more like a church, because the church (the parish) is more restrained and the church (the parish) more supportive. O LORD, who said, "Those who preach the gospel will live by the gospel, Remember that I am a servant of Christ and give up all my ambitions and busy schedules. May all these reasons be to follow the way of the Lord. I hope you will be a happy believer in your words, "Do not put a net on the mouth of a cow that puts grain on it."

2026.6.14.sun. Clay

 

신학 비평//

나는 권리를 지키는 사람인가, 아니면 복음을 위해 권리까지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인가? 고린도전서 9장은 사도의 권리를 말하지만, 결론은 권리가 아니라 복음의 자유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사도로서 생활비를 받을 권리, 결혼할 권리, 공동체의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길게 논증합니다. 이는 권리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리가 분명히 존재함을 먼저 확립하기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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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울이 권리를 포기한 것이지, 권리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이 본문이 때때로 사역자에게 희생만 강요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바울은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는 사역자의 정당한 필요를 기쁘게 감당해야 하며, 사역자 역시 그것을 탐욕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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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윤리적 금욕 때문이 아니라 선교적 전략때문입니다. 복음에 장애가 된다면 자신의 권리까지도 기꺼이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권리를 내려놓은 이유가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금욕주의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사랑이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역설을 만납니다. 세상은 자유를 권리를 끝까지 행사하는 능력으로 이해하지만, 복음은 자유를 사랑 때문에 권리를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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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유가 종노릇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유가 사랑의 형태를 입을 때 자발적인 섬김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이 본문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가 사역자를 지나치게 희생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직분을 특권과 성공의 통로로 만드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복음은 권리를 인정하지만 특권을 우상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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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신이 언급한 "현대교회의 세습화와 계급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본문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자비량 사역만을 이상적인 모델로 일반화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의 자비량은 모든 시대의 규범이라기보다 특정 선교 상황에서 선택한 복음 중심적 전략이었습니다. 따라서 자비량이 더 거룩한 것도 아니고, 사례를 받는 것이 덜 거룩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사역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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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울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이것입니다. 권리를 포기한 것이 위대했던 것이 아니라, 복음이 권리보다 더 소중했기 때문에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권리를 빼앗으시는 분이 아니라, 그 권리를 사랑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십니다. 가장 아름다운 권리는 끝까지 주장하는 권리가 아니라, 더 큰 생명을 위해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며, 바울이 걸었던 복음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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