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1:17
누구를 향하든 "밥 같이 먹자"는 말은 참 따뜻하다. 콩 한쪽도 나눠 먹자는 건 '같이 살자'는 뜻이며, 죽어도 같이 죽자는 말이 아니던가. 그러니 사람을 곁에 두고 저 혼자 먹는다든가, 사람 불러놓고 저 먼저 먹는 건 사람답지 않은 몹쓸 일입니다. 성찬은 같이 먹는 하늘 밥상입니다. 공주야! 어떤 분란이 있을 때 본질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성만찬과 관련한 것인데 어찌하였든지 이전 것은 다 잊고 텍스트에서 직접 살펴 보자구나.
"Let's eat together" is so heartwarming no matter who you're headed for. Sharing a piece of beans means "live together" and doesn't mean "let's die together" even if you die. So eating alone with people around you, or eating first with people over you, is an unkind and terrible thing to do. Eucharistic is a table in heaven that you can eat together. Princess! When there is a certain controversy, it will be necessary to think about the essence. It's about sacrificial feast, anyway, let's forget about the previous one and take a look at it directly in the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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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함께 했던 유월절 만찬에서 유래했다. 예수의 피, 곧 죽음으로 새 언약이 성취된 것을 기념하고, 한 피 나눈 한 식구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성찬은 세례와 함께 매우 중요한 기독교의 의식이란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주의 만찬을 마치 개인 만찬으로 여기고 세상 권력과 부로 인한 차별과 분열의 장으로 만들어버린 상황이다. 공주야! 성찬은 주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의식이다.
The Lord's dinner comes from the Passover dinner with his disciples the day before Jesus was caught. It commemorates the accomplishment of the new covenant through the blood of Jesus, or death, and confirms that they are one family member. The Eucharist is a very important Christian ritual along with baptism. However, the Corinthian Church considers the Lord's dinner to be a private dinner and turns it into a venue for discrimination and division due to world power and wealth. Princess! The Eucharist is a ritual that participates in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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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과 연합되는 의식이며, 그분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 소망으로 공동체가 결속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그것이 분열의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공동체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가난한 자를 배려하지 않은 채 부자들이 먼저 성찬을 하였기 때문이다. 배려와 사랑이 없는 성찬은 자기만족의 형식일 뿐이다. 그때 떡과 잔은 결코 주님의 몸과 피가 되지 못한다. 십자가의 참 의미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곳에 참다운 성전의 은총이 임한다.
It is a ceremony that unites with him, and it is a time for the community to unite with his love of the cross and his desire for resurrection. But for the Corinthian Church, it was another cause of division. This is because the rich first consecrated communion without consideration for the poor who could not prepare food in the community and could not arrive on time. Eucharism without consideration and love is only a form of self satisfaction. At that time, rice cakes and cups never become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 Where the true meaning of the cross is reme mbered and practiced, the true grace of the temple 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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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은 첫 출애굽 사건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되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종말의 천국잔치에 참여할 것을 드라마로 보여주고 미리 맛보게 한 사건이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통해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했듯이, 우리는 성만찬의 의식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의 용서와 구속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감격의 잔치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되돌아 보게 한다. 성찬의 자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들이 누리기 원하는 삶을 오늘 여기서 실현하는 일이요 연습하는 일이다.
The Lord's Dinner is an event in which the first Exodus event was completed through Jesus, showing in a drama that the kingdom of God will be established and participating in the heavenly feast of the apocalypse. Just as Israel remembered the grace of Exodus through the Feast of June, we let us look back on what we can do to become a feast of emotion to remember and appreciate Christ's forgiveness and restraint without staying in the ritual of the Eucharist. The place of the Eucharist is the realization and practice of the life they want to enjoy in the new sky and the new land her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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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을 하면서 갈등과 분쟁, 시기와 질투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성만찬의 의미를 모른 채 사랑 없이 지체들을 대하는 태도를 회개하지 않으면서 성만찬에 참여하면 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니 성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지체를 향한 내 태도를 돌아보고, 성만찬의 의미를 진지하게 이해하면서 주 앞에 회개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참여하였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Conflicts, disputes, times, and jealousy are unimaginable during the sacrament. If you participate in the sacrament without repenting for your attitude toward the deceased without love without knowing the meaning of sacrament, you will be in the position of crucifying the Lord. So, before participating in the sacrament, you should look back on my attitude toward the deceased, and seriously understand the meaning of sacrament and see if you participated with a humble heart of repentance before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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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지은 사람은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감사하는 마음 없이 참여 하지 말라는 뜻이다. 공동체의 밥상이 거룩한 하늘 밥상 되려면 어떤 밥그릇을 상에 올려야 할까? 오늘날 교회 모임이 계방모임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성찬은 왜 '기억'이 아니라 '기다림'에서 완성되는가? 나는 사랑해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It doesn't mean that sinners can't participate, but it means that they shouldn't participate without appreciating Jesus' sacrifice. What kind of rice bowl should be put on the table for the community's table to be served in the holy sky? Why have church gatherings become step meetings today? Why is communion completed in waiting, not in memory? Do I know that love can w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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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과 문제 진술(17-22)
a.도입:17-19
b.문제 진술:20-22
주의 만찬 전승(23-26)
주의 만찬 전승에 근거한 첫 번째 권면(27-32)
a.권면과 이유:27-29
b.예증:30-32
주의 만찬 전승에 근거한 두 번째 권면(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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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명하는 이 일에(17a)
너희를 칭찬하지(17b)
아니하나니(17c)
이는 저희의 모임이(17d)
유익이 못되고(17e)
도리어 해로움이라(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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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너희가(18a)
교회에 모일 때에(18b)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18c)
듣고 대강 믿노니(1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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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19a)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19b)
받은 자들이(19c)
나타나게 되리라(1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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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20a)
주의 만찬을(20b)
먹을 수 없으니(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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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먹을 때에(21a)
각각 자기의 만찬을(21b)
먼저 갖다 먹으므로(21c)
어떤 이는 시장하고(21d)
어떤 이는 취함이라(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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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고 마실(22a)
집이 없느냐(22b)
너희가 하나님의(22c)
교회를 업신여기고(22d)
빈궁한 자들을(22e)
부끄럽게 하느냐(2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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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22g)
무슨 말을 하랴(22h)
너희를 칭찬하랴(22i)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22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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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23a)
전한 것은(23b)
주께 받은 것이니(2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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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주 예수께서(23d)
잡히시던 밤에(23e)
떡을 가지 사(2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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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하시고(24a)
떼어 가라사대(24b)
이것은(24c)
너희를 위하는(24d)
내 몸이니(24e)
이것을 행하여 (24f)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2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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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25a)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25b)
이 잔은 내 피로 세운(25c)
새 언약이니(25d)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25e)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2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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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26a)
이 잔을 마실 때마다(26b)
주의 죽으심을(26c)
오실 때까지(26d)
전하는 것이니라(2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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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누구든지(27a)
주의 떡이나 잔을(27b)
합당치 않게 먹고(27c)
마시는 자는(27d)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27e)
죄가 있느니라(2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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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를 살피고(28a)
그 후에야(28b)
이 떡을 먹고(28c)
이 잔을 마실 찌니(2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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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몸을(29a)
분변치 못하고(29b)
먹고 마시는 자는(29c)
자기의 죄를(29d)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2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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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너희 중에(30a)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30b)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3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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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31a)
살폈으면(31b)
판단을 받지(31c)
아니하려니와(3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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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32a)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3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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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우리로(32c)
세상과 함께(32d)
죄 정함을 받지 않게(32e)
하려 하심이라(3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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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내 형제들아(35a)
먹으러 모일 때에(33b)
서로 기다리라(3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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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구든지(34a)
시장하거든(34b)
집에서 먹을 찌니(34c)
이는 너희의(34d)
판단 받는 모임이(34e)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34f)
그 남은 것은(34g)
내가 언제든지(34h)
갈 때에 귀정하리라(3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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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은 공동체를 하나로 결속하는 일_
The Last Supper Is To unite the Community into One
성찬은 완성을 내다보게 하는 일_
The Last Supper gives us the prospect of the completion of the kingdom of God.
성찬의 의미를 훼손하는 죄_
a crime that defames the meaning of the last su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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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은 이 땅의 교회가 어떤 공동체이어야 하는 지를 말해줍니다. 성찬은 은혜의 방편이고 연합의 상징이고, 살아있는 교회의 표징이나이다. 그러나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는 특정인끼리의 모임은 위화감과 분쟁을 야기 시키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행한 성찬을 용서하옵소서. 우리가 한 소망과 한 뜻을 품고 한 길을 가기로 의기투합한 자들이니 더불어 먹고 사는 예의를 지키면서 더 이상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게 하옵소서.
The last supper tells us what kind of community the church in this land should be. The last feast is a measure of grace, a symbol of union, or a sign of a living church. However, please forgive the last dinner that has been done habitually without considering others, seeing that the community-less gathering is causing trouble and trouble. For we are those who are united in one desire and one will to go the same way, so keep the courtesy of living together and make no more lonely or lonely.
2026.6.18.thu. Clay
신학 비평//
성찬은 왜 '기억'이 아니라 '기다림'에서 완성되는가? 나는 성찬을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식으로만 이해하는가, 아니면 서로를 기다리고 품으며 하나님 나라를 미리 살아내는 공동체의 삶으로 이해하는가? 고린도전서 11장은 흔히 "성찬 제정" 본문으로 읽히지만, 바울의 관심은 의식 자체보다 공동체의 붕괴에 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만찬"을 말하기 전에 "너희 모임이 유익이 아니라 해롭다"(11:17)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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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은 있었지만 교회는 사라졌고, 성찬은 있었지만 십자가는 없었다. 특히 본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서로 기다리라"(11:33)이다. 성찬의 핵심은 떡을 얼마나 경건하게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느냐이다. 부자는 먼저 먹고, 가난한 사람은 굶주린 채 뒤늦게 도착했다. 같은 떡을 먹으면서도 같은 몸이 아니었다. 바울은 이것을 단순한 예절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일"(11:22)이라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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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의 몸을 분별한다"(11:29)는 말씀도 개인의 경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의 몸을 기억하는 의미도 포함되지만, 문맥에서는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알아보고 존중하는 것이 더 직접적인 의미이다. 형제를 무시하면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찢는 행위가 된다. 또한 바울은 성찬을 과거 회상이 아니라 시간을 연결하는 사건으로 설명한다. "나를 기념하라"(과거), "주의 죽으심을 전한다"(현재), "오실 때까지"(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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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은 출애굽을 기억하는 유월절이 예수 안에서 완성된 것처럼, 앞으로 올 하나님 나라의 혼인잔치를 현재의 식탁에서 미리 연습하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그래서 성찬은 기억의 의식인 동시에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는 희망의 식사이다. 오늘날 교회도 이 본문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찬은 정성껏 하지만 서로의 삶에는 무관심하고, 예배는 함께 드리지만 식탁은 계층과 친분에 따라 나뉜다.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떡을 나누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나누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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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라면 오늘도 "너희가 함께 모여도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니다"(11:20)라고 말씀할지 모른다. 결국 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의식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는 공동체이다. 사랑은 기다릴 줄 알고, 기다림은 함께 먹게 하며, 함께 먹는 식탁은 하나님 나라를 세상 가운데 드러낸다. 성찬은 빵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시간이다. 십자가의 떡은 언제나 자기 몫을 줄여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는 떡이기 때문이다. 성찬은 떡을 나누는 예식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사건이며,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결국 "서로 기다리라"는 삶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