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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고린도전서15:1-11 복음을 완성한 부활

작성자헤세드|작성시간26.06.17|조회수59 목록 댓글 0

 

고전15:1

이야기는 사람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전해집니다. 오래된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기억을 형성하고, 그 기억이 삶을 빗어갑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어지며, 공동체를 만들어 갑니다. 바울은 그 복음의 이야기를 다시 상기시킵니다. 공주야! 세상의 어떤 종교도 구원자의 죽음을 말하거나 부활을 말하는 종교는 없다. 유례가 없는 일이라 증거가 없으면 믿을 수 없는 일이란다. 

Stories continue to be told through people. Old stories form memories of many people, and those memories miss life. The events of the gospel of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continue in people's memories, creating a community. Paul reminds us of the gospel story again. Princess! No religion in the world speaks of the death or resurrection of a savior. It is unprecedented and unbelievable without e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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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란 단순히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에 있지 않고 그가 참 메시아임을 확증하고 십자가 사건이 죄인을 위해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받은 것이었음과 죄 사함과 어둠의 통치에서의 해방을 가져온 것임을 신학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다. 나아가 부활은 종말의 시작이기에 완성에 대한 기대를 가능케 한 사건이란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복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계시 받았다.

The key to theological understanding is that the resurrection is not simply about the fact that the dead have survived, but that he is a true messiah and that the crucifixion was a replacement of God's curse for the sinner and a liberation from the rule of sin and darkness. Furthermore, because the resurrection is the beginning of the end, it is an event that made it possible to expect completion. The gospel that salvation is achieved by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was revealed by meeting the resurrected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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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도들이 전해준 것을 받아서 알게 되었고, 바울은 그것을 전했다. 복음에 서고, 복음을 굳게 지키고, 올바르게 믿는 것이 구원의 길이다. 고린도 일부 교인들처럼 복음(특히 부활)에 대해 헛되이 가르치고, 그 가르침에 미혹된 이들에겐 구원이 없다. 지금도 끊임없이 이단이 창궐하고, 어처구니없는 거짓 복음에 교인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공주야!  부활은 복음의 완성이다. 부활 없는 복음은 없다.

And Paul learned the details of the gospel by receiving what the apostles had told him. Standing in the gospel, keeping the gospel firmly, and believing in it correctly is the way to save. Gorin teaches about the gospel (particularly resurrection) in vain, like some church members, and there is no salvation for those who are fascinated by its teachings. It is unfortunate that heresy is constantly rising even now, and that church members are deceived by the ridiculous false gospel. Princess! Resurrection is the completion of the gospel. There is no gospel without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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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죽고 부활 하신 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고 구약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란 것이 핵심이다. 오늘 우리의 구원은 창세전부터 계획 되었고, 창조로 시작 되었고, 예수님이 성취하셨고, 재림을 통해 완성될 장엄한 구원 역사의 결과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하나님의 때에 이루신 구원이고 또 이루실 구원이다. 부활은 모든 구속 역사의 성취이며, 완성의 선취이다. 공주야! 부활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란다.

The key is that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did not happen all of a sudden, but that the prophecy of the Old Testament was achieved. Our salvation today has been plann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world, started with creation, and is the result of the magnificent history of salvation that Jesus achieved and will be completed through Second Coming. Without any deviation, it is the salvation that was achieved and will be achieved at the time of God. Resurrection is the achievement of all restraint history and the first step toward completion. Princess! Resurrection is an obvious historical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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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숱한 증거들로 확증된 사실이고 수많은 증인들이 지금도 살아서 증언하는 사건이다. 바울은 부활이 믿는 자들의 자기 신념도 아니고, 꾸며낸 속임수도 아니라고 한다.. 부활의 증인 중에 다수가 지금도 살아있다고 하면서, 필요하면 언제든 증인을 부를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니 사실 상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보다 허위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구나. 가장 확실한 부활의 증거와 증인은 바울 자신이었다.

This is a fact that has been corroborated by numerous evidences and is an event in which numerous witnesses still testify alive. Paul says that the resurrection is neither a self-belief nor a made up deception of believers. Many of the resurrection's witnesses are still alive, and he is confident that he can call witnesses at any time if necessary. So, in fact, it is more difficult to prove that the resurrection is a false fact than to prove that it is a historical fact. Paul himself was the most obvious evidence and witness of the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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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울은 가장 강렬한 예수님의 반대자였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다. 그런 그가 갖은 수모와 수치와 수고를 감당하면서 이 부활의 증인된 것은 그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결코 더 많이 수고하면서 부활을 전하는 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전했던 복음을 왜 다시금 확인 시키고 있는 것일까?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내 소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As we know, Paul was the most intense opponent of Jesus and the one who persecuted Christians. He became a witness to this resurrection while dealing with all the humiliation, shame, and hard work because the resurrection is true. Because he met the resurrected Jesus. If the resurrection was not true, he would never have been a servant to deliver the resurrection by working harder. Why are you reaffirming the gospel that has already been delivered? Am I living by holding the gospel? What is my calling specif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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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전한 복음(1-2)

부활과 관련한 복음의 내용(3-8)

a.메시아의 죽음:3-4

b.메시아의 부활과 증인들:5-8

바울 자신에 대한 추가 정보와 결론(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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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내가(1a)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1b)

너희로 알게 하노니(1c)

이는(1d)

너희가 받은 것이요(1e)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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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2a)

나의 전한 그 말을(2b)
굳게 지키고(2c)

헛되이 믿지(2d)
아니하였으면(2e)

이로 말미암아(2f)
구원을 얻으리라(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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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것을(3a)

먼저 너희에게(3b)

전하였노니(3c)

이는 성경대로(3d)

그리스도께서(3e)
우리 죄를 위하여(3f)
죽으시고(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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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4a)

성경대로(4b)
사흘 만에(4c)

다시 살아 나사(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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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바에게 보이시고(5a)

후에(5b)

열 두 제자에게와(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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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6a)

오백여 형제에게(6b)

일시에 보이셨나니(6c)

그 중에 지금까지(6d)

태반이나 살아 있고(6e)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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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7a)

야고보에게(7b)

보이셨으며(7c)

그 후에(7d)

모든 사도에게와(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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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나중에(8a)

만삭되지 못하여(8b)

난 자 같은 내게도(8c)

보이셨느니라(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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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도 중에(9a)

지극히 작은 자라(9b)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9c)
핍박하였으므로(9d)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9e)
감당치 못할 자로라(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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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10a)

하나님의 은혜로(10b)
된 것이니(10c)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10d)
헛되지 아니하여(10e)

내가 모든 사도보다(10f)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10g)

내가 아니요(10h)
오직 나와 함께하신(10i)

하나님의 은혜 로라(10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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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나 저희나(11a)

이같이 전파하매(11b)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1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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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완성한 부활_ the resurrection of the gospel

명확한 증거를 가진 부활_ Resurrection with clear evidence

바울이 경험한 부활_ Paul's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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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 교회에 내가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면서 왜, 부활의 복음을 말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게 하옵소서. 부활의 증거를 자기 자신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성도이고 교회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부활할 것이라는 약속 때문에 오늘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 그 부활의 예수께서 살아계셔서 왕으로 다스리신다고 전하는 자가 성도이고 교회이나이다. 주님, 우리가 전하는 자들을 통해 이미 복음을 받았고 그 위에 서 있다면, 직장, 연예, 고부 갈등, 돈 문제, 등 모든 핸디캡으로 부터 흔들리거나 매몰되지 않고 부활의 능력이 발휘 되어지는 삶을 씩씩하게 살게 하옵소서.

May the Corinthians, many of whom are ill, realize why I am saying the gospel of resurrection when I say I will preach the gospel to the Church. It will be the true saints and the church who can claim the evidence of resurrection as themselves. It is the saints and the church who say that because of the resurrection Jesus, who lives today because of the promise of resurrection, Jesus of resurrection is alive and rules as king. O Lord, if we have been preached and are standing on it, let us live a life full of resurrection without being shaken or buried by all the handicaps of work, entertainment, high-value conflict, money problems, etc.

 

2026.6.24.wed, Clay

 

신학 비평//

왜 바울은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 '부활'부터 다시 말했을까? 고린도전서 15장은 단순히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변증하는 장이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분쟁, 음행, 소송, 우상제물, 은사 경쟁 등 온갖 문제를 다루다가 갑자기 복음의 출발점으로 돌아갑니다. 마치 집이 흔들릴 때 벽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기초를 다시 점검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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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행동 이전에 기억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았지만 복음 위에 서지 않았고,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이 만들어 내는 삶의 방식은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알게 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복음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복음을 설명하면서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십자가는 구원의 값이고, 부활은 그 값이 유효하다는 하나님의 영수증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는 비극적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십자가는 속죄가 되고, 패배는 승리가 되며, 죽음은 새 창조의 시작이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울이 부활을 철학으로 설명하지 않고 증인들을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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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바, 열두 제자, 오백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증인석에 세웁니다. 진리는 관념이 아니라 사건이며, 사건은 증언을 통해 전승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원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바울의 가장 강력한 논증은 사실 오백 명도 아니고 자기 자신입니다. "나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다."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바울은 결코 지금의 바울이 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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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자가 전도자가 되고, 적대자가 증인이 되고, 박해자가 순교의 길을 걷는 것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통찰이 나옵니다. 부활의 참된 증거는 빈 무덤이 아니라 변화된 사람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부활을 교리로 외쳐도 삶이 죽음의 논리, 경쟁의 논리, 미움의 논리 속에 머물러 있다면 세상은 부활을 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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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연약한 사람이 은혜로 살아가고,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상처 가운데서도 사랑을 선택할 때 사람들은 그 안에서 부활을 봅니다. 부활은 단지 "죽어서 천국 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미래의 사건인 동시에 현재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절망보다 소망을 선택하고, 미움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포기보다 순종을 선택하는 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부활을 다시 말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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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문제는 은사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니라 그들은 부활을 믿었지만 부활처럼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은 많고 지식은 넘치는데 부활의 흔적은 희미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지금도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직장의 문제도, 건강의 문제도, 돈의 문제도, 인간관계의 문제도 인생의 최종 결론이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었듯이 우리의 고난도 끝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교리 강의가 아니라, "너희도 부활의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라고 묻는 교회 갱신 선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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