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12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결말처럼 보이기 때문에 판단 중지의 여지 없이 판단 기준이 됩니다.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상징이나 비유로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바울은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외칩니다.공주야!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한편으로 조마조마 한 마음이 있구나. 그동안은 성경공부마저 전승되어온(솔직히 말하면 강요되어진) 사고의 틀 안에서 부활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It is easy for one to think based on visible reality. Since death seems to be an inevitable ending for anyone, it becomes the criterion for judgment without a pause. For those who want to understand the story after death as a symbol or metaphor, Paul exclaims that resurrection beyond death is the core of the gospel. Princess! While dealing with the theme of "Resurrection", the core of Christianity, you have a nervous mind. This may be because the study of the Bible has been accepted within the framework of thinking that has been passed down (to be honest, forced to s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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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활이 없다는 고린도교회 문제아의 입장에서 가급적 태클을 걸면서 텍스트를 볼 생각이다. 고린도교회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속된 것(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죽은 자가 부활한다면 다시 그 몸을 입어야 하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지난번(15:1-11)에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초점을 맞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의 완성으로(선취 적 차원) 설명하였고, 오늘은 왜 부활이 필요한가를 조건 문을 통해 설명한다.
In order to solve this difficulty, the father intends to read the text by tackling the problem child of the Corinthian church, which has no resurrection. The Corinthian Church thought that it was salvation to escape from what belonged (body) under the influence of Greek philosophy, but if the dead were revived, it would not have been easy to accept because they had to wear the body again. Paul explained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as the completion of the gospel (preemptive dimension), focusing on the historical fact of the resurrection last (15:1-11), and explained why the resurrection is needed today through a conditional sta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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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부활이 일어날 가망이 없는 사건이라면, 예수님은 썩은 채로 죽어 무덤에 있어야 한다. 부활이 없다면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과 그 중요성을 전한 사도들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부활이 없다면 죽고 실패한 구세주를 믿을 필요도 없으니 그를 향한 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일이 된다고 한다. 지난 이천년 역사 동안 부활의 복음을 듣고 그 진리에 자신을 바친 사람들도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뜻이다.
If there is no chance of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Jesus should die rotten and be in the grave. Without a resurrection, the apostles who risked their lives to deliver Jesus' resurrection and its importance become liars, and without a resurrection, they do not have to believe in a dead and failed savior, so faith in him becomes the most useless thing in the world. This means that those who have listened to the gospel of resurrection and devoted themselves to the truth over the past two thousand years of history will also become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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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영원한 생명도 없고 영원한 몸과 부활도 없다. 예수님의 희생만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말하기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에겐 성부 하나님 앞에 변호해줄 대언자도 없어지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오실 보혜사 성령님도 우리 에겐 없을 것이고 성령의 열매라고 우리가 믿던 것도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Without the resurrection of Christ, there will be no eternal life, no eternal body, and no resurrection. Because only Jesus' sacrifice can save us from God's wrath against sin and move us from death to life. He goes on to say that without Jesus' resurrection, we will have no great speaker to defend before the Father and God, and we will not have the Holy Spirit who will come after Jesus ascends, and what we believe to be the fruit of the Holy Spirit is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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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죽음의 잠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가장 절망적인 잠이 되며, 부활 없이는 복음도 없고 소망도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기대를 걸 곳은 이생뿐이고 그러면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당하고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가나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리스도인이 가장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가 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치르는 어떤 대가도 하늘에서 우리가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부활이다.
Our sleep of death becomes the most desperate sleep that will never wake up, and without resurrection, there is no gospel and no hope. Without the resurrection of Christ, the only place we can count on is this life, and then the Christians who were persecuted for Christ, humiliated and insulted, and had to live a cruel life become the most pitiful and foolish people. It is the resurrec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makes any price we pay in this world incomparable to the glory we will enjoy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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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설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과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것은 불가분 하게 묶여 있기에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면 그리스도 부활의 케리그마가 거짓증인이 된다는 것이다. 글쎄, 이방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의 설교가 썩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구나. 물론 성도들에게는 부활이 필요하다만 이방인에게 그 닥 솔깃한 설교는 아니잖니? 나는 예수의 대표적 부활과 성도의 부활의 연관성을 그냥 받아드릴 것인가? 나는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왜, 부활(resurrection)이란 단어에 live again이 아닌 raise를 쓸까?
The core of Paul's sermon is that believing in the resurrection of Christ and believing in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re inextricably linked, so denying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makes the Kerigma of the resurrection a false witness. Well, from a stranger's point of view, Paul's sermon does not seem very convincing. Of course, the saints need a resurrection, but it's not that tempting sermon to the stranger, right? Will I just accept the connection between the representative resurrection of Jesus and the resurrection of the saint? How do I accept the resurrection? Why, do we use raise rather than live again for the word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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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문제 상황,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12)
첫 번째 논증,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13-15)
a.첫 번째 전제와 결론:13
b.두 번째 전제와 결론:14-15
두 번째 논증,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16-19)
a.첫 번째 전재와 결론:16
b.두 번째 전제와 결론: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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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12a)
죽은 자 가운데서(12b)
다시 살아나셨다(12c)
전파되었거늘(12d)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12e)
어찌하여(12f)
죽은 자 가운데서(12f)
부활이 없다 하느냐(1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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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죽은 자의(13a)
부활이 없으면(13b)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13c)
못하셨으리라(1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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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만일(14a)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14b)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14c)
헛것이요(14d)
또 너희 믿음도(14e)
헛것이며(1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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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가(15a)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15b)
발견되리니(15c)
우리가(15d)
하나님이 그리스도를(15e)
다시 살리셨다고(15f)
증거 하였음이라(15g)
만일 죽은 자가(15h)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15i)
하나님이 그리스도를(15j)
다시 살리시지(15k)
아니하셨으리라(1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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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죽은 자가(16a)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16b)
그리스도도(16c)
다시 사신 것이(16d)
없었을 터이요(1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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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17a)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17b)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17c)
너희가 여전히(17d)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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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리스도 안에서(18a)
잠자는 자도(18b)
망하였으리니(1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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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리스도 안에서(19a)
우리의 바라는 것이(19b)
다만 이생뿐이면(19c)
모든 사람 가운데(19d)
우리가(19e)
더욱 불쌍한 자리라(1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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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_ Without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_ Without the resurrect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에_ With the resurrection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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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구속의 대표로 죽음가운데 일으키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 합니다. 이 위대한 역사인식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벅찬 가슴을 진정시켜 봅니다. 주님, 내 평생 이 사실을 안고 살겠습니다.
As the representative of our arrest, we praise Jesus Christ, who was raised in the midst of death. Let's reflect on this great perception of history and calm our hearts. I will live with this fact for the rest of my life, O Lord.
2026.6.25.thu. Clay
신학 비평//
예수님의 부활은 믿겠는데, 왜 나의 부활까지 믿어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15:12-19는 바울의 가장 대담한 논증 가운데 하나입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여기서 부활을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갑니다. "좋다. 부활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이 오늘 본문의 논리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 자체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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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몸에서 해방되는 것이지 다시 몸을 입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경우일 수 있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그건 너무 과한 이야기 아닌가? 바울은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듭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개인적인 기적이 아니라 인간 전체를 대표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예수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새로운 인류의 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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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머리는 살아났는데 몸은 살아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부활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을 단순한 기적 사건이 아니라 구속사의 구조로 이해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등장합니다. 왜 resurrection(부활)이라는 말을 쓰고 live again(다시 산다)라고 하지 않을까?" 영어의 "live again"은 죽었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나사로는 다시 살아났지만 결국 또 죽었습니다. 그러나 "resurrection"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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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남'이 아니라 '일으켜 세워짐'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부활은 단순한 생명 연장이 아닙니다. 죽음의 지배를 영원히 통과한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소생(revival)"이 아니라 "새 창조(new creation)"입니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의 설교가 썩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정직한 질문입니다. 실제로 철학적으로만 보면 부활은 설득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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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에게는 비합리적이고,, 현대 과학주의자에게는 불가능하며, 실존주의자에게는 검증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바울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철학적 증명을 하지 않습니다. 증인들을 부릅니다. 게바, 열두 사도, 오백 형제, 야고보, 그리고 자기 자신. 바울은 "설명"보다 "증언"을 선택합니다. 부활은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증명되는 명제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증언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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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으로 볼 때 오늘 본문의 핵심은 사실 17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담당하신 사건이고,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 희생을 받아들이셨다는 선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도 실패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죄 사함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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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없다면 복음은 아름다운 비극으로 끝납니다. 결국 "나는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성경은 부활을 단순히 죽은 뒤의 사건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미래의 소망인 동시에 현재의 삶의 방식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것,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 그 모든 것이 부활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부활은 죽은 다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힘이었습니다. "죽은 뒤에 무엇이 되는가?"를 묻기 전에 부활이 없다면 지금의 믿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