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보스톤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같은 구역원중에 부부 유학생이 있었다.
순서에 따라 그 집에서 구역예배를 할 때면 그 부부는 대청소를 한다.
대충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집의 차례가 되는데, 구역예배를 기회삼아 먼지를 털고
집안을 닦는다고 했다.
바쁜 학생부부이기에 그집에서 예배하기가 부담이 되면 우리끼리 돌아가며 하겠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했다.
평소에 미루던 대청소를 구역예배를 계기로 할 수 있어서 잘됐다면서.
오늘 그 집의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내가 저지른 일(?)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아이의 초등학교 같은 반 엄마들과 식사를 하고 교실청소를 가는데,
우린 일 년이 다 되도록 주변 식당을 순례하며 밥을 먹었었다.
회비를 만 원씩 그 자리에서 내서 먹고는 이야기를 하다가 청소하곤 헤어졌었다.
그런데, 내가 이번 모임은 우리집에서 하자고 했다.
어차피 내는 회비로는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면 되고, 내가 차와 디저트를 준비하겠다고
했더니 식당도 질렸는데 잘 됐다며 다들 반기는 눈치이다.
난 가끔 그렇게 일을 저지르는 편이다.
대책도 없이 사람을 부르고는 바쁘게 청소를 한다.
그런 나만의 방식을 난 '오블리게이션(obligation)'이라고 부른다.
내가 나에게 과제나 의무를 지워주고 그걸 해결하는 걸 말한다.
이번 주일에는 또 하나의 오블리게이션이 내게 걸려있다.
편집부 모임때에 내가 강의를 하나 하겠다고 한 것이다.
신입기자들이 몇 명 들어와서 편집장이 실무적 교육을 하던 중에 혹 기존의 기자들중에서
강의를 할 사람은 신청하라고 하길래 내가 덥썩 하겠다고 한 것이다.
아무도 강의를 하려고 안 하는데 난 '간이 큰(^^)'까닭에 그런 일을 잘 저지른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강의 준비도 해야 하고, 편집부 기사도 써야 하고, 다음주에 있을
학부모 모임을 위해 집안 단장도 해야 한다.
난 왜 이렇게 일을 저지르며 살까?
아마도 물이 고이듯 정체되어사는 것을 못 참기 때문일 거다.
또한, 자율적으로 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약간의 타울성을 스스로에게 부과함으로써
나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을 즐기는 까닭이다.
주부가 손님 치레를 많이 해보면 솜씨가 당연히 늘 수 밖에 없다.
집안 단장, 식탁 차림, 음식 연출등이 실습을 통해 향상되기 때문이다.
난 어쩌면 그런 것을 노리고 손님을 부르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 손님이 와서 벅적대는 약간의 분주함도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난 종종 내게 오블리게이션을 선사하는 셈이다.
하나 둘 그런 것들을 처리하면서 내가 성장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 즐겁다.
보스톤의 그 유학생 부부도 어쩌면 구역예배를 통해 자신들의 삶에 대청소라는
오블리게이션을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은 자율과 타율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졌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원하는 것도 있지만 원치않아도 해야만 하는 숙제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 상황에 처할 때 기왕이면 자신이 자신에게 선사하는 오블리게이션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비록 타율적으로 주어졌어도 기쁘게 감당하면서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쉽고 피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나를 움직이는 힘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오블리게이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큐티하기, 일정 분량 이상의 글쓰기, 기도하기, 독서하기.....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에는 이렇게 힘든 선물도 있었구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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