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4:1
평화는 단지 싸움이 없는 상태만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강자에 의해 약자가 숨죽이는 것도 평화가 될 수 있습니다. 평화는 서로 살피며 인정하는 관계로의 진입을 의미하기에 은혜를 기반으로 상대를 필수불가결한 관계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구원을 통한 평화의 창조입니다. 독도와 고구려 사 왜곡 문제만큼이나 말일(Last days)분쟁도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독도 살리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어느 정도 진전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Peace will not be just a state where there are no fights. If so, it can be peace that the weak hold their breath by the strong. Peace means entering into a caring and recognizing relationship, so recognizing the other person as an indispensable partner based on grace is the creation of peace through salvation. I think the conflict between the two sides is as urgent as the distortion of the history of Dokdo and Goguryeo. I don't worry too much because I think there is some progress in the public perception of reviving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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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와 관련하여 왜곡의 핵심은 남북 통일이후 조선족들의 분리운동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오래 전에 타임 아시아판이 보도한 바가 있습니다. 그 옛날 고구려 국경선이 중국 북부지역까지 뻗었을 때가 있었고, 이 때문에 현재 북부에는 200만 명 이상의 조선족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버드대학 박사과정을 끝내고 한반도 초기 역사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마크바이잉턴은 "통일 한반도는 고구려 영토의 일부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Time Asia reported a long time ago that the core of the distortion in relation to Goguryeo's history is that it is concerned about the separation movement of the Korean Chinese after the re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Once upon a time, the Goguryeo border stretched as far north as China, and because of this, more than 2 million Korean-Chinese people are now living in the north. Mark Byington, who finished his PhD in Harvard University and is writing a book on the early history of the Korean Peninsula, says, "A unified Korean Peninsula is likely to claim part of Goguryeo's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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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중국은 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분명히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고구려 역사를 왜곡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말일(Last days)에는 강포한 나라를 심판하시고 전쟁을 그치게 하시며, 쫓겨난 자를 모아 남은 자와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시고, 잠시 바벨론에 끌려가는 고통을 주시지만 원수에게 속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민족 사이의 분쟁을 판가름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At the same time, he explained, "China is intentionally distorting Goguryeo's history with a clear ideological purpose to block it." God said through the Prophet, "In the Last Days, God will judge the country that has been forced to fight and stop the war, gather the evicted to become a strong country with the remaining, and give them the pain of being dragged to Babylon for a while, but he will give the enemy the trouble." Above all, he said he would determine the conflict between the peo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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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는 주께서 언제, 어떤 식으로든 정의를 실현하실 것이고 우리나라의 영토분쟁을 당신의 방법으로 해결해주시길 기대합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하면서 하나님을 버린 것이었고(삼상8:4-8), 이제 나라가 망하고 왕이 사라지면서, 하나님의 왕 되심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나라가 멸망하였을 때 역설적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내가 죽어야 사는 원리).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면 더 이상 무기가 필요 없어지고 모든 무기는 농기구로 바뀔 것입니다.
Yes, I look forward to the Lord when and in some way to justice and to resolving our territorial disputes in our country in your own way. From the beginning, Israel abandoned God while demanding a king (Samsang 8:4-8) and now, as the country fell and the king disappeared, the king of God's reign was revealed. Paradoxically, when the kingdom of man is destroyed, the true kingdom of God begins (the principle that I have to die for). If God rules, weapons will no longer be needed and all weapons will be turned into farm equi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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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여전히 강대국을 의지하고 핵무기를 중요시 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날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기업에서 평화로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 치우치거나 불균형함 없이, 모두 평균케 되어 고르게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은 수치의 장소요 심판의 장소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그 백성을 건져내실 것입니다. 이를 보건데 치욕은 치욕만이 아니며, 자랑도 자랑만이 아닙니다.
So if you still rely on the powerful and value nuclear weapons while telling them to believe in God, it is not about trusting God. On that day, everyone will live in peace in the enterprises God gave each of them. Without bias or imbalance, everyone will be averaged and evened out. Babelon was the place of shame and judgment, but God will rescue the people from Babelon. Disgrace is not just a disgrace, and pride is not only a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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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성전을 자랑하였지만 성전은 파괴되고 그들은 포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로 됨을 수치로 여겼지만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그들을 속량하시고 열방에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들로 말미암아 열방의 재물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D-day로 일컬어지는 그 말일(Last days)이 언제냐는 겁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말일이란 메시야의 초림으로 시작되고 그의 재림(Second Coming)으로 완성되는 '이미' 와 '아직' 의 사이입니다.
Having previously boasted of the temple, it was destroyed, and they became prisoners. Israel was ashamed of being captured, but God will subjugate them in Babylon and make them triumph over the Nirvana. These will give the wealth of the Nirvana to God. But when is the last days, referred to as D-day? As we know, Mal il is between "already" and "yet" that begins with Meshia's coming and is completed with his Second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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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맥만 보더라도 그렇고 성경에서 언급한 말일은 대다수가 지나간 과거의 사건을 언급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미래적 사건을 예시하기도하지만(말세지말), 본문에서는 지나간 과거의 일입니다. 따라서 천국은 이미 이 땅에 도래 했습니다(우리가 지금 하나님나라를 살고 있다는 의미). 하나님께서 텐트로 만든 성막을 헐고 새로운 성전을 만드시어 그곳에 임마누엘 하시면서 통치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가 새 성전(하나님나라)의 핵심입니다.
Just looking at the context today, most of the things mentioned in the Bible often refer to past events. Of course, it exemplifies future events (not the words), but in the text it is a past. Therefore, heaven has already arrived on this land (meaning that we are living in God's kingdom now). He said that God would tear down the tent and build a new temple there to rule, but God's rule through the Holy Spirit is the core of the new temple (God's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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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늘 답답합니다. 말세와 관련한 천국(하나님나라)은 내가 죽어서 가는 어떤 나라가 아니고, 지금 내가 이 땅에서 천국을 침노하면 주의 통치를 받는 것으로 도래했기에 천국이 있냐? 없냐? 묻는 것 자체가 천국을 땅 개념으로 안, 유치한 신학이 아닙니까?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하나님나라의 평화와 세상 평화의 특징이 어떻게 다른가?
Personally, I am always frustrated at this point. Is there a heaven because heaven (God's kingdom) related to the end of the world is not a country where I die, but because if I infiltrate heaven on this earth, I will be ruled by the Lord. Is there no heaven? Isn't asking itself a childish theology that understands heaven as a concept of land? Come,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and reach the battle of Jacob's God! How are the characteristics of peace in the kingdom of God different from those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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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회복과 평화의 시대(1-7)
a.시온의 회복과 평화:1-3
b.평화로운 시대의 모습:4-5
남은자, 평화로운 나라의 백성들:6-7
시온의 고통과 회복(8-13)
a.통치권의 회복:8
b.시온의 고통:9-10
c.조롱하는 이방을 향한 공격: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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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일에 이르러는(1a)
여호와의 전의 산이(1b)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1c)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1d)
민족들이(1e)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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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많은 이방이 가며(2a)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2b)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2c)
야곱의 하나님의(2d)
-전에 이르자(2e)
그가 그 도로(2f)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2g)
우리가 그 길로(2h)
행하리라 하리니(2i)
이는 율법이(2j)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2k)
여호와의 말씀이(2l)
예루살렘에서부터(2m)
나올 것임이라(2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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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많은 민족 중에(3a)
심판하시며(3b)
먼 곳 강한 이방을(3c)
판결하시리니(3d)
무리가 그 칼을 쳐서(3e)
보습을 만들고(3f)
창을 쳐서(3g)
낫을 만들 것이며(3h)
이 나라와 저 나라가(3i)
다시는 칼을 들고(3j)
서로 치지 아니하며(3k)
다시는 전쟁을(3l)
연습하지 아니하고(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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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이(4a)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4b)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4c)
앉을 것이라(4d)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4e)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4f)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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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5a)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5b)
오직 우리는(5c)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5d)
이름을 빙자하여(5e)
영원히 행하리로다(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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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6a)
그 날에는(6b)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6c)
쫓겨난 자와(6d)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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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는 자로(7a)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7b)
멀리 쫓겨났던 자로(7c)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7d)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7e)
이제부터 영원까지(7f)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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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양떼의 망대요(8a)
딸 시온의 산이여(8b)
이전 권능(8c)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8d)
네게로 돌아오리라(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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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가(9a)
어찌하여 부르짖느냐(9b)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9c)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9d)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9e)
고통 함이냐?(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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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시온이여(10a)
해산하는 여인처럼(10b)
애써 구로하여 낳을 지어다(10c)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10d)
들에 거하며(10e)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10f)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10g)
여호와께서(10h)
거기서 너를(10i)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10j)
속량하여 내시리라(1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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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11a)
너를 쳐 이르기를(11b)
시온이 더럽게 되며(11c)
그것을 우리 눈으로(11d)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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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여호와의 뜻을(12a)
알지 못하며(12b)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12c)
여호와께서 곡식단을(12d)
타작마당에 모음 같이(12e)
그들을 모으셨나니(1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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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시온이여(13a)
일어나서 칠 지어다(13b)
내가 네 뿔을 철 같게 하며(13c)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13d)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13e)
깨뜨릴 것이라(13f)
내가 그들의(13g)
탈취 물을 구별하여(13h)
여호와께 드리며(13i)
그들의 재물을(13j)
온 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1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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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개될 하나님의 통치_the reign of God that will unfold again_
평화의 나라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통치_God's rule to bring a land of peace_
바벨론에서 구원하실 통치자 하나님_God the ruler to save from Babylo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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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인 저희가 율법의 말씀을 듣게 하신 것은 순전히 주의 은혜입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 땅의 구조 때문에 치욕의 세월을 살아온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영토분쟁으로 기가 막힌 일들을 당하고 있는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말일에 강포한 나라를 심판하시고 쫓겨난 자를 모아 주의 전을 높이 드신다고 하시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이 일에 늦게나마 관심을 갖게 하시고 선교와 말씀을 배우는 일에 힘쓰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It is purely the grace of the Lord that has made us, the Gentiles, listen to the words of the law. Please feel sorry for this nation, which has been humiliated for hundreds of years because of the structure of this land to which the laws of the weak and the strong are applied, but is still suffering from wonderful things due to territorial disputes. Thank you and thank you for saying that you will judge the country that has been forced to do so and raise the battle of the Lord by gathering those who have been expelled. Let us be interested in this work late on and become a church that strives to learn missionary work and words.
2025.12.24.wed.Clay
설교 비평//
1. 설교의 강점
① 평화 개념의 성경적 확장
설교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라는 정의에서 출발해 샬롬의 관계적·은혜적 차원을 잘 짚어냅니다. 특히 강자에 의해 약자가 숨죽이는 상태도 평화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 평화다. 라는 문제 제기는 미가서 전체의 예언자적 문제의식(정의 없는 평화 비판)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미가 4장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든다”는 이미지가 단순한 군축이 아니라 관계 질서의 전환임을 잘 드러냅니다.
② ‘이미–아직’ 종말론의 균형
말일을 미래 도피적 종말론으로 밀어내지 않고, 메시아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점은 매우 건강합니다. 천국은 내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주의 통치를 받는 상태다. 이 진술은 신약 신학(특히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 이해)과도 정합성이 큽니다. 말일을 과거·현재·미래가 겹쳐 있는 신학적 시간으로 이해한 점은 설교의 큰 장점입니다.
③ 성전·왕·무기 비판의 예언자적 힘
사무엘상 8장과 미가서를 연결해 왕을 요구한 인간의 선택-국가 붕괴 이후 드러나는 하나님의 왕 되심-무기의 농기구화로 이어지는 논지는 권력·군사·안보에 대한 신앙적 비판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핵무기를 중시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설교자로서 상당히 용기 있는 도전입니다.
2. 신학적·설교학적 위험 지점
① 민족·영토 분쟁과 본문의 과도한 직접 연결
가장 중요한 비평 지점입니다. 독도 문제, 고구려사 왜곡, 중국의 의도, 한반도 영토 분쟁을 미가 4장의 말일 예언과 거의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순간, 본문은 예언이 아니라 국가 서사에 봉사하는 텍스트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미가는 “열방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신다”고 말하지만, 그 판결은 특정 민족의 영토적 승리를 보장하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가서 전체는 이스라엘 자신이 먼저 심판받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정의를 세우신다”는 선언이 “하나님이 우리 편에서 영토 분쟁을 해결해주신다”로 미세하게 이동하는 지점입니다.
② ‘강포한 나라’ = 특정 현대 국가로 읽힐 위험
설교는 직접적으로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지만, 청중은 자연스럽게 현대 국제정치의 강대국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미가서에서 “강포한 나라”는 외부 제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루살렘의 지도자들 자기 민족 내부의 착취 구조를 포함합니다. 설교가 외부의 강포만 강조할수록 자기 성찰의 예언자성은 약화될 수 있습니다.
③ ‘하나님 나라 = 평균화·균등화’의 위험한 단순화
“모두 평균케 되어 고르게 안식을 누린다”는 표현은 의도는 좋으나, 자칫하면 하나님 나라를 사회적 평준화 시스템처럼 오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성경의 평화는 동일화(equality)가 아니라 관계적 정의(justice in relationship) 입니다. 미가 4장 4절의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에 앉는다”는 말은 모두가 똑같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위협 없이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3. 구조적·설교학적 제안
① 본문 → 신학 → 현실 적용의 간격을 조금만 더
현재 설교는 본문 → 곧바로 한반도 현실로 뛰어넘는 인상이 강합니다. 중간에 한 단계만 더 두면 설교의 설득력이 크게 올라갑니다. 예를 들면 미가서의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이 평화는 제국·민족·종교를 어떻게 상대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국가적·개인적 신앙은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
② ‘우리는 피해자’ 서사에 균열 넣기
설교 후반부의 기도문은 매우 진실하지만, “수백 년간 치욕을 당한 민족”이라는 서사가 고정될 경우, 미가서의 급진성(자기 민족 비판)이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미가는 말합니다. “시온이 더럽게 되었다” 이 말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한 말입니다.
4. 종합 평가
이 설교는 성경 본문에 대한 애정, 종말론에 대한 성숙한 이해, 평화에 대한 윤리적 진지함을 분명히 갖춘 수준 높은 설교 초안입니다. 다만,예언을 민족 서사에 봉합하려는 유혹, 하나님의 정의를 국가적 기대와 포개려는 긴장이 조정된다면, 이 설교는 “좋은 설교”를 넘어 진짜 예언자적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만 남기고 싶습니다. 미가의 평화는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모두가 무장 해제되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