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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게 사러 진접까지 다녀왔어요. "딱 이 맛이야!" 김치찌게 팔아 돈 번 집 보셨나요? 나도 처음 보았어요. 어닝도 새로하고 컴퓨터 간판도 달았더이다. 간이 식당으로 돈 벌기가 쉽지 않은데, 혼밥/솥밥/통배추로 승부수를 낸 것이 먹힌 것 같아요. 홀 3명 주방 3명 총 6명 인건비만 해도 얼마입니까? 오리털 이불을 하나 샀어요. 향기 페이퍼를 4개나 넣고 세탁-드라이을 했는데 오리털이라서 그런지 물기가 남았어요. 전기장판 위에 펼쳐놓고 보니 이불이 너무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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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하루종일 부산을 떨고 있습니다. 먹고-싸고-닦고-빨고-받다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드라마<녹두꽃>이 종편만 남겨두고 있는데 전봉준의 농만혁명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전봉준-김개남-손병희-최시형의 포지션을 정리했고, 명성황후와 고종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평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봉건 주의의 몰락에 대한 연민 따위는 이젠 끝낼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우금티 전투를 기점으로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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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전주성 전투 때 동학군이 승리 하자 청국군과 일본군이 개입합니다. 조정은 급히 화의를 제시했고 전봉준이 화약을 받아들이자 집강소 체제에서 일본군은 이 기회를 틈타 한양을 점령하고 고종에게 청국과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하게 합니다. 또한 자주국 선언을 강요하고 고종의 이름을 빌어 조선의 모든 청국군이 떠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했는데, 이는 청일전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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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선을 장악하여 입맛대로 개혁시키기 위하여 경복궁을 기습, 군국기무처를 설치합니다. 왜놈들이 갑오개혁이란 명분 하에 내정간섭을 일삼자, 동학 농민군은 이에 분노해 일본을 몰아내자는 취지로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킵니다. 전봉준은 추수가 끝나 병력과 군량을 동원하기 용이한 가을철을 기다렸고, 때가 되자 각지에 통문을 띄워 궐기를 호소합니다. 9월 4일 전봉준은 거병했고 대략 4천 명의 농민군이 전봉준을 따라 서울로 북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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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손화중과 최경선은 일본군이 바다로 상륙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후방에 남았습니다. 김개남 또한 49일을 채워야 한다는 참위설 때문에 전봉준의 요구를 거절하였어요. 동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최시형의 북접은 전봉준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여 1차 봉기에 비협조적이었지만, 1차 봉기의 승리와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 북접의 동학교도들 사이에서도 봉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협력을 선언하고 손병희를 지휘관(북접 통령)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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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접은 9월 18일에 기포를 결정하고 접주들에게 동원령을 전달합니다. 10월 2일 청산대회를 개최하여 전열을 정비, 이를 전봉준에게 통보합니다. 이들은 한성 탈환을 위해 논산에 집결한 뒤 공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충청감사 박제순은 순무영과 일본군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조정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9월 10일 장위영 영관 이두황을 죽산부사에, 경리청 영관 성하영을 안성군수에 임명하여 죽산과 안성의 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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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9월 21일 '양호순무영'을 설치하고 이두황을 순무영 우선봉, 별군관 이규태를 좌선봉으로 삼았으며 전국 각지에 토포사와 소모사를 파견합니다. 일본군은 동학의 재봉기 이후 비공식적으로 농민군 진압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정식으로 조선 조정이 일본 측에 진압요청을 하기 전부터 오오토리 일본공사가 조선 조정에 농민군을 진압하라고 강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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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조선 조정에게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라고 강요한 명분은 일부 동학군이 청국군과 결탁하여 일본군에 대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선 관군과 일본 연합군이 결성되었는데 당연히 이들의 진압 작전은 철저하게 일본군 지휘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우금티 전투 20.000 vs 4.000 대결에서 참패한 후 뿔뿔히 흩어졌고, 곧바로 시행된 동비 토벌 작전에서 김개남-황진사-최행수가 장열히 죽었고 전봉준은 김경천의 밀고로 추포 된 가운데 동비 잔당 토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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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23회>입니다. 지방 교도소입니다. "이강이는 어찌 되었느냐(전봉준이 오니에게)!" "아직은 모릅니다...살아있다면 내 앞에 나타나겠죠!(오니)" "나가 할일이 쪼까 남았어...내 손으로 눈감겨 줄라네(이강이 유월에게)" "객주님! 건강하세요!(유월이 ) "장군이 원하는 걸 해야제...장군은 죽어도 장군의 뜻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이강)" "우금티의 그 많은 시신을 떠올리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 패배일 뿐 끝이 아니라면 나도 다시 시작 해 볼게...이제 가! 가서 힘껏 싸워!...(자인이 강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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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님 손님 오셨는디요!" "전봉준을 호송하여 한양으로 가게 됐네...떠나기 전에 총사관님을 뵙고 갈까 하여(이규태가 자인에게)" "어찌 된 게야...이강이 놈이 어찌 날 살려 줬다냐...(송봉길)" 별동대 진영입니다. "뭔일 있는 것 아녀!(버들)" "왜 송객주 하고 다시 정분이라도 났을 까봐...(해승)" "이강이가 영관 나리께 보낸 서찰입니다(자인)" 방보러 나온 이화 부부가 사돈이 될 뻔한 황진사의 죽음을 보고 놀랍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명심이 흐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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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만도 못한 양반 놈들과 싸우기 위해서다...내 살아서 돌아 온다면 좋은 오래비가 될 것이다(생전의 황진사)" "아씨! 백이현이 죽였당께라...긍게 아씨도 조심하셔라(억쇠)" "상가집이 이래 썰렁해 갖고 어쩝니까? 아직도 할일이 많으신 분인디...이놈도 시방 소원성취 하는 중입니다...(백가가 명심에게)" "오니상! 전봉준을 발고한 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리 와 보세요!" 전봉준이 독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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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맛있구만...허허허...(더 드릴까요)그래도 되겠나? 좀더 주게(전봉준)" "일본 공사관에서 장군께 귀가 솔깃해질 만한...정치범 재판을...사실상 목숨을 살려주겠다는(오니)" "허허허! 예상대로구만...거부하겠네...거병의 배후를 토설하라고 하지 않겠는가...대원군 이라고 하면 겨우 목숨만 붙들것이고, 임금이라고 불면 한자리 꿰차지 않겠나...나는 배신자가 되고, 민초들은 전의를 상실, 절망에 빠지겠지...조선엔 우리 말고도 아직 의병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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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함경도에는 포수들, 경상도 충청도에는 유생들, 그들에게 정신적 지주는 여전히 임금과 대원군...그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의병의 근절 또한 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 아니겠는가...똑똑한 자네가. 그걸 몰랐단 말인가..나는 속지 않았고 자넨 속았으니까...야만이 뒤집어 쓴 화려한 가면, 이제 곧 일본은 그 가면마저 벗어던질 것이네. 그동안 자행했던 만행보다 더 끔찍한 짓들을 자행하겠지. 자넨 속았어 완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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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던 속지 않았던 어느 쪽이든 자네가 개자식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을 걸세!(전봉준)" 새야 새야 파랑새야~최후만찬 후에 죽음을 준비하러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동비수괴 전봉준"과 "나사렛 유대인의 왕" 이란 문패가 닮았습니다. "술을 가져오거라! 내 백성들과 이별주를 마시고 가겠다!(전봉준)" "옳거니! 죽력고를 져오너라!...고개를 똑바로 들고 우릴 쳐다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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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란 말이외다...우리를 기억하는 한, 두 번 지지 않을 것이외다.시찬주 조화주 영세불망...(전봉준)" 포스도 문법도 백범 김구 같습니다. "멈춰라!(관졸)" "송구합니다...용한 의원을 부르느라(송자인이 이규태에게)" "죄인 이전에 장수다! 예를 갖춰 호위하라(이규태)" " 살아있었구나...녀석, 우리가 말을 해야 통하는 사이더냐...이것으로 충분하다!...(장군에게 녹두꽃이 만개한 세상을 보여 드려야 하는디)녹두꽃은 내 이미 숱하게 보았다...우금티에서...삼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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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안다...믿는다...그래서 기쁘게 갈 것이다!(전봉준)" "아무 이상 없응게 출발하시지요(이강)" 탕! 인즉천 베너가 휘날리는데 완전 감동의 도가니탕입니다. "아따 장군! 우리 의병들이 작별인사 하는 갑소!(최경선)" "이제야 편히 갈 수 있겠습니다(손화중)" 장군 미안합니다! 지들이 끝까장 싸우겠습니다!(해승/버들)" 흰옷입은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일까요? 군의 호의를 받으며 로마로 들어가는 바울 같기도 하고 통곡하는 백성들의 시선은 골고다 언덕길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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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가는 인간의 모습이 이리 아름답긴 처음입니다. 전봉준과 민중의 열정을 리스펙트합니다(나레이터).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비토벌의 공을 세운 신관 사또 행차길에 탈영병/밀고자 김경천이 길을 막습니다. "물렀거라! 신관 사또 행차시다!" "나리! 이렇게 혼자서 다 드시는 경우가 어딨습니까요!...황해도 금천 군수로 가신담서요...저좀 데려가 주십시오(김경천)" "시끄럽다 동비로 참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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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서 네 손으로 속죄를 혀(이강)" "옛정을 생각해서 자결할 기회를 주는 거니까 더는 실망시키지마!(해승)" 탕! 별동대가 별동대 김경천을 처형했습니다. "대둔산으로 가게요...살아남은 의병들이 거짝으로 갔다는구만(버들)" 1895년 봄입니다. "어르신이 돌아가셨어라" 전주여각입니다. '자인아! 기회 왔을 때 잘혀...꼭 거상이 돼야 헌다(자인 상상)" "토벌이 끝났다 들었습니다...과연 그럴까요...얼마 전에도 요동반도 요순에서 2만명을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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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전투에서는 아이 하나만 남기고 모두 죽였구요(자인)" "대둔산에서 발견 된 것입니다...전부 불에 태워버렸으니 선친께 감사하세요...객주님도 재가 되어 있을 겁니다(오니가 자인에게)" 자인이 강인의 장갑과 아버지의 죽음 속에서 한을 삼키는 모습이 잔망스럽습니다. 대일상회입니다. "실망이 컸습니다. 일본에서 되게 커보였는데 지금은 왠지 좀 시시해 보이더군요(오니)" "그건 오니 자네가 커버렸기 때문이야. 마치 아들과 아버지 처럼(다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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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허나 박영효는 왜 만난 건가?(다케다) (저도 이제 양지로 나가고 싶어서요. 동비도 사라졌고 일-청전쟁도 막바지 조선의 정국이 안정되었으니 저도 관직에 나가 뜻을 펼치고 싶습니다) 박영효는 뭐라던가?(관직 경험이 전무하니 지방에서 경력을 쌓고 올라오라더군요) 지방이라... 자네에게 어울리는 곳이 어딜까?(오니에게 어울리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고부? (보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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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놀라지 마시랑게라 처남이 고부 사또가 되어 부임했당게라(백가 사위)" "거봐! 아부지 말대로 하니까 되자네. 이현아! 인자 시작이다잉(백가 독백)" "이제 자네랑 술 한 잔 하는 재미도 없어지겠군(다케다)" "고부에 한번 놀러 오시죠. 저 일하는 것도 보니고(오니)" "일할 생각 말고 한 두달 쉬러 간다 생각 해!(다케다)" "쉴 생각이었으면 다른 데를 가겠죠. 고부는 제가 집강을 하던 곳입니다. 실패했던 곳이기도 하구요(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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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동안 만나지못하겠군. 한동안 고부에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다케다)" "무슨 일 있습니까?(오니)" "시모노세키에서 청나라와 강화 조약을 체결하기로 했어. 말이 강화 조약이지 청나라의 항복을 받는 자리지. 막대한 배상금에다 요동 반도와 대만이 우리 영토가 될거야. 아마도 일복이 터진 게지(다케다)" "영토라 하셨습니까?(오니)" "그래 우리 일본제국의 영토(다케다)" "농담하지 마십시오(오니)" "농담이라니!(다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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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껏 개항장이나 몇 군데 얻겠다고 전쟁을 벌인 것 같나! 요동 반도와 대만은 이제 일본 땅이야(다케다)" "영토를 확장 하는 게 아니라, 일본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게 전략아니었습니까?(오니)" "왜 이렇게 순진한 거야! 먹잇감이 눈 앞에있으면 잡아 먹어야지 갖고 놀기만 하면 되겠어?(다케다)" '허면 조선은요? 일본의 영토와 중국의 영토 사이에 낀 조선은 요?(오니)" "일본의 보호국 조선은 열강에 대항할 힘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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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면 군사권을 넘겨 받아서 대신 지켜줘야겠지...그렇게 서서히 만들어 가는 거지 일본의 영토로...아직도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는 모양인데...내 말 명심해...자네가 인정하든 안하든 자넨 일본이야(다케다)" "이노우에 공사께서 재판 전에 한 번만 더 장군의 의중을 물어보라 하십니다(오니)" "헛수고를 하였구니(전봉준)" "임금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대원군이 시킨 거라고 하십시오(오니)" "그럼...대원군을 붙잡아서 임금이 시킨거라고 자백을 받으려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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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빌미로 임금을 패위하고 조선을 자기네 나라로 만들려들겠지...내가 죽어야 너의 형 같은 의병들의 투지가 산다. 그래야 이 나라가 실날같은 희망이나마 이어 갈 수 있는 것이다(전봉준)"엉! 엉! 염병, 이놈의 나라는 여태것 왕이 백성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백성이 왕을 지켰고 대원군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공사께 그리 전하죠. 전주에서 장군께서 말씀하신대로 제가 만약 일본에 속은 것이라면 저는 어찌 해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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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로 태어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소이다(손화중)" "장군 저승길도 제가 모시겠습니다(최경선)" "전주에서 그러셧지요.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라구요 이제 모두가 장군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저것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송자인)" "어떻게?(전봉준)" "저것은 백성이고, 백성으로 태어날 자들이다(송자인)" "당신이?(명심)" "동무들이 많이 다쳤소! 신세 쪼까 져도 되겠소!(이강)"
2.
진접까지 김치찌개를 사러 갔다. “딱 이 맛이야.” 김치찌개 하나로 어닝을 새로 달고 전광 간판을 올린 집이다. 간이식당으로 돈 벌기 쉽지 않은데, 혼밥·솥밥·통배추로 승부수를 던져 살아남았다. 홀 셋, 주방 셋. 인건비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 집은 버텼다. 이 장면은 우연히 〈녹두꽃〉 23회와 겹친다. 23회는 혁명이 이미 패배한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 총성이 멎고, 깃발이 내려가고, 이름들이 하나둘 지워진 다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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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회차는 죽음보다 삶을 더 많이 말한다. 우금티 전투는 이미 끝났다. 20,000 대 4,000 결과는 애초에 정해져 있었던 싸움이다. 23회는 더 이상 “이길 수 있을까”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흩어진 의병들, 죽은 이를 수습하지 못한 자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안고 버텨야 하는 자들. 전봉준은 아직 살아 있지만 이미 역사적으로는 ‘끝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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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의 싸움은 승패가 아니라 기억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부산을 떨며 먹고, 싸고, 닦고, 빨고, 받고. 이 반복 속에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고백은 23회를 읽는 가장 정확한 열쇠다. 혁명이 실패한 뒤에도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고, 이불은 말려야 하고, 젖은 오리털은 전기장판 위에 펼쳐두어야 한다. 23회의 인물들도 그렇다. 그들은 더 이상 거대한 담론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장례를 치르고, 편지를 전달하고, 남은 사람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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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거창한 말은 사라졌지만, 삶을 이어가는 작은 기술들은 남아 있다. 김치찌개 장사가 살아남듯이.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이 지점에서 더 이상 봉건의 몰락을 애도할 필요는 없다. 23회는 고종이나 명성황후를 변명하지 않는다. 조정은 이미 스스로 설 수 없는 상태임이 드러난다. 일본은 ‘개혁’이라는 말로 들어와 군국기무처를 세우고, 조선을 전쟁의 무대로 만들었다. 이때 동학은 더 이상 “반봉건”이 아니다. 반침탈, 반식민의 싸움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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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는 바로 이 전환의 무게를 감당하는 회차다. 그래서 무겁다. 그리고 그래서, 함부로 낭만화되지 않는다. 전봉준은 이 회차에서 영웅처럼 빛나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사라지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역사의 주인공이 아님을 안다 자신의 죽음 이후를 계산한다 남아 있는 의병들의 투지를 지키려 한다 23회의 전봉준은 이미 “승리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사라짐으로 남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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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로 돈 번 집은 이념이 아니라 맛으로 승부했다. 지속 가능한 것은 늘 단순하다. 혁명은 실패했지만, 사람들은 계속 산다. 그리고 그 삶이 다음 역사의 씨앗이 된다. 오리털 이불이 크든 작든, 물이 덜 말랐든 말랐든, 전기장판 위에 펼쳐두고 기다리는 그 시간처럼. 패배 이후의 시간도 역사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만이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그래서 〈녹두꽃〉 23회는 가장 처절하면서도,가장 생활적인 회차다. 김치찌개 냄새가 나는 혁명 이후의 세계. 그 속에서 역사는 다시, 아주 천천히, 끓기 시작한다.
2025.12.19.fri.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