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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종편 리레이팅 하느라 날을 꼬박 샜는디 불만은 없습니다. 시장 봐다 김치찌개를 겁나 맛나게 해묵었고, 딸기 케잌을 사서 스텝들과 파티도 했습니다. 찜해놓은 만화책 나오면 책꽂이에 진열해 놓고 기념할 생각입니다. "기억이라는 건 말이여 세월을 이기덜 못 혀" 명불허전 백가 말이 어찌나 찰떡같이 구성진 지, 나는 이참에 백가와 이현을 이뻐하기로 했습니다. 백가(박혁권)야 연기파 배우인 줄 알았는데 이현이 이놈이 왜 이리 분량이 많나 했더니, 과거 <제빵 왕 김탁구>주인공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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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24회>입니다. 역사극에서 상갓집 시퀀스는 길조입니다. "빈소에 요로코롬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버들)" "고부를 떠나라 합니다. 동생분이 군수가 되었거든요(명심 아씨)" 이강이가 깜짝 놀랍니다. "신관 사도 행차 시다!" "놀랍네요. 우시는 겁니까?(백이현)" "인자는 사람 해치면 안 된다. 좋은 사또가 돼란 말이여! 알았제(백가 처)" "난리 통에 쪽수가 줄었지라...반토막나부렀당게러" "재판 결과는 어찌 됐는디요...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여전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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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도 한 번 해보려고요...의병...의병의 물주라고 해야겠죠(송자인)" 고부관아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일본 공사관이 밀어주는 분이 아닙니까? " 술에 취한 오니가 일본어로 "내가 왜놈들의 앞잡이가 돼서 내려왔는데 어째서 아무도 내게 뭐라는 사람이 없느냐"고 악다구니를 지릅니다. 그날 밤 백가는 <녹두꽃> 총평같은 명불허전을 아들 이현에게 하는디 내가 대사 듣고 오줌을 지릴 지경입니다. "잔치파장혔다이...도채비 다 된 줄 알았드만 아직 사람인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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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갖고 정승되겄냐...(사람은 정승이 못되는 것입니까?) 이현아!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말이여...밟고 간다는 뜻이여...계속 밟아야 되는겨...계단이건 사람이건(필요하다면 아버지도 말입니까) 옛날에 한 일은 잊어버려, 기억은 세월을 이기들 못혀(백가)" 이강은 버들이가 기력을 찾는 대로 명심의 집에서 나가자고 하는데, 해승(안길강)은 "이미 버들의 몸에 납탄의 독이 퍼져 죽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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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버들도 자신의 상태를 잘 압니다. 버들은 더 늦기 전에 기운이 남아 있을 때 해야 할 일을 하겠는 쪽지를 남기고 새벽에 명심의 집을 나와 어디로 가나 했는디 백가네 근처입니다. 버들은 관아로 출근하는 고부 사또 오니를 기다렸고 스나이퍼가 되어 방아쇠를 당깁니다. 탕! 탕! 탕! 대갈통에 맞지 않고 어깨에 총 맞은 오니가 3.8 권총을 꺼네 한 방에 보내버립니다. 이때 3.8구경이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가까이에서 맞았으니 무조건 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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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가 원래 촉이 좋은 인간이라서 버들이 일행(별동대)이 명심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이강이는 이제 큰일 났습니다. 한편 한양에서는 전봉준과 동학도들의 사형이 집행됩니다. 언제 보아도 처형장의 올가미는 소름끼칩니다. "내가 불만이 아주 많소 내 종로 한복판에서 목이 잘려 죽으려 하였거늘,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피를 뿌리려 하였거늘, 어찌 이런 도둑떼소굴보다 못한 곳에서 죽이려 하는가!...나 전봉준 죽어서도 이 나라를 지켜볼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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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함께 죽을 수 있어 더욱 영광입니다...다만 인즉천 세상을 못 보고 죽는 게 아싑구먼이라!(최경선)" "우리는 갑오년에 이미 보았네...눈을 감아 보게 그럼 보일 것이야!(전봉준)" 덜컹! "이강이 니그 형이자너...살려주라(백가 처)" 송자인은 전봉준의 형이 집행되는 동안 가톨릭 형식의 기도를 합니다. 자인은 이규태 영관에게 전봉준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위험합니다(이규태)" "제가 지은 죄를 씻을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송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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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은 한양에서 일을 마치고 의주로 향합니다. 의주에서 유월이 자인의 여각 일을 도우며 살고 있습니다. 자인은 유월에게 내가 의병들의 물주가 되기로 했으니 중간 연락을 담당해 달라고 했고 유월은 기뻐하며 돕겠다고 합니다. 개딸! 리스펙트! 고부 관아입니다. 백가가 옥에 갇혀 있는 이강을 왜 불렀을까요? "싹다 포기하고 동생 생각해서 자결혀. 이현이가 지 형 죽였다는 말 듣지 않게(백가)" 과연 백가 답습니다. 백가는 시종일관 악당답습니다. 나(악동)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백가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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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은 동비 조사를 명목으로 명심을 찾아갑니다. 이현은 명심 만큼은 자신을 위로해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서릿발처럼 차갑기만 합니다. "염병, 그러게 좀 잘하지...(나)" "날 그리 부르지 마시오. 난 당신을 알지 못하오!(명심)" "아씨만은 저를 달리 대해줄 줄 알았는데...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아니까...(고통스러워했던 건 백이현이지 당신이 아니오!)내가 다시 백이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게소! (살아있다면 그렇겠지만 백이현은 이미 죽었소...내가 사랑했던 백이현은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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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관아에 있는 옥사입니다. "혹시 그거 기억나세요...형님이 복면을 쓰고 하나 하나 복수를 해주었지요... 전봉준이 내게 했던 말처럼 내가 일본에 속은 것이 아니라, 다 알면서도 속은 척한 것은 아닌지...(이제와서...너무 멀리 왔다고...)내일 처형 될 겁니다(기다리던 바여)적지 않은 시간 함께 해줘서 고마웠습니다.(그려) 저승에서 만나면 그땐 형님이라 불러도 되는 겁니까?(도채비 아니고 백이현이면...그럼 형이라 해!)그래요 저승에서 뵙죠(이현)" 백이현은 동료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라며 보자기에 싼 주먹밥을 놓고 갔는데, 아니 이것은 열쇠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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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부 관아는 변한 게 없어요. 개구멍도 그대로입니다(이현)"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디 아무래도 이현이가 디질 모양입니다. 그 시각, 백가네는 이현의 퇴청 시간에 맞춰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이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현이 왔냐!(백가)" "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쾅! 이현의 최후가 참 허무 합니다. 옥에서 빠져나온 이강은 이현의 말을 되짚어보니 뭔가 심상치 않아 집으로 갔다가 동생 이현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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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일행은 전주로 향하고 이강은 자인과 재회합니다. 자인은 죽은 줄만 알았던 이강이 살아 돌아 오자 기뻐합니다. 이강은 자인이 한양에서 갖고 내려온 전봉준의 유골함을 들고 과거 전봉준을 업고 놀던 보리밭으로 향합니다. "천하가 녹두꽃으로 흐드러진 날 함 줌의 거름으로 죽고자 한다" "장군! 편히 쉬심서 녹두꽃 피는 걸 지켜보시라우(이강)" 그후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명심은 고부에서 서당을 운영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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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네는 사위가 도박으로 전 재산은 물론 집까지 날렸고, 실성한 백가는 집에 불을 지르고 가족은 야반도주를 합니다. 명심과 자인은 어디선가 싸우고 있을 이강을 생각합니다. 이강은 평안도 의주에서 의병대장으로 지내고 있고 이규태 영광이 관군 몇을 몰고 의병 이강에게로 합류합니다. "대장! 희안한 놈이 와 있어...이놈이 황해도서 동학 접주하면서 선봉장을 했다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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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놈 중위를 죽이고 도망치는 중이래(억쇠)" "이름이 무엇이오?" "김 창수입니다" 이렇게 이강과 훗날의 김구가 마주 보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웃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모세가 지도자로 길러지기 전 미디안에서 광야 생활을 합니다. 광야 생황 중에 애굽 병사 한 명을 죽이고 도망하는 구절이 있는데 표절일까요? 오마주일까요? 아! 게르솜,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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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이 2019년 작품이다보니 <미스터 션샤인>의 후속타 느낌을 주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여주인공 버들·송자인·백이화는 김태리의 여러 얼굴을 나눠 가진 듯했고, 그중에서도 전주 여각의 송자인은 김태리 캐릭터를 가장 닮아 있었습니다. 김옥빈 이후로 한예리는 ‘김효석 사단’의 새로운 발굴이고요. 정읍 내장산 입구에 있는 전봉준 부조가 떠올랐습니다. 작년에 그냥 지나쳤는데, 다시 역사 탐방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쑥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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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삼례가 왜 텃새가 센지 감이 오시나요? 동학은 지역을 만들고, 인물을 만들고, 우리 기질도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드라마에서 유독 대나무가 많이 보이는 건 가사문학의 탓일까요? 우리 짠한 버들이 때문이라도 다시 한 번 찬찬히 보고 싶습니다. 뭣을? 동학농민혁명은 지역 ‘기질’을 만든 사건이었다는 것. 오늘의 호남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격랑에 가장 먼저 몸 던진 사람들이 빚어낸 역사적 기억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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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조정석(백이강)과 윤시윤(백이현)은 같은 아버지를 두고 서로 갈라져 싸워야 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몸으로 겪습니다. 두 사람의 케미는 그야말로 형제·적대·연민·애증이 교차하는 블랙홀 같은 구심점이었고, 그 연기에 빨려들어가면서 나 역시 나의 형제 관계, 나의 서운함, 나의 기억을 돌아보게 됩니다. 역사 드라마가 개인사를 호출하는 순간, 그건 이미 성공한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가 관통하는 핵심을 굳이 한 줄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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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항쟁은 봉건을 끝내고 근대를 열어젖힌, 아래로부터의 ‘하부구조 혁명’이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인내천 사상은 단순한 종교적 구호가 아니라, 당시 계급·지주·부패권력·조정에 맞섰던 민중들의 ‘존엄 선언’이었습니다. 칼 마르크스의 “하부구조”가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아래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솟구치기 시작합니다. 비록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지만, 그 불꽃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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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의 2만 명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 죽음은 3·1로, 항일무장투쟁으로, 4·19로, 6월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주체의 역사’입니다. 이 드라마는 전봉준의 영웅담이 아니라, 민초들의 궤도 이탈기, 즉 존재하나 이름 남기지 못한 이들의 ‘역사적 실존’을 다룹니다. 혁명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야 했던 이복형제의 서사는, 사실상 동학농민운동의 정체성 자체였습니다. 민초들은 언제나 ‘가장 먼저 죽고, 가장 나중에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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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드라마는 그들의 역사를 대신 써준 셈입니다. 돌솥밥 기다리다 찍은 셀카 한 장이, 한 달 전에 떠나보낸 적토마의 기억이, 조정석의 콧물 연기가, 버들이의 짠한 얼굴이, 전봉준의 전투와 민초들의 죽음이… 어째서 지금 내 삶 한가운데에서 다시 세포를 일으켜 세울까요? 아마도 ‘악동’인 내가 늙어가고, 세포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신호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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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뜨거웠던 갑오년, 사람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향해 달려갔던 위대한 백성들의 역사는 그들을 무명전사라 부르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안다. 의병!"
2.
<녹두꽃.은 동학농민혁명을 재현한 역사극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끝내 도달하는 지점은 ‘사건’이 아니라, 기억의 윤리다. 누가 살아남아 말할 자격을 갖는가, 누가 가장 먼저 죽고도 가장 늦게 호명되는가. 백가의 입을 통해 반복되는 말 "기억이라는 건 마리여, 세월을 이기덜 못혀”는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역설적 명제다. 정말 기억은 지는가? 아니면, 지는 척하면서 다른 몸으로 되살아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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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강과 백이현, 같은 아버지를 두고 서로 다른 역사 편에 서야 했던 이복형제의 서사는 동학농민운동 그 자체의 알레고리다. 혁명군과 토벌대, 민초와 관군, 신념과 생존 사이에서 찢긴 존재들. 이들은 선택했기 때문에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비극적이다. 이강의 삶이 ‘버텨냄’이라면, 이현의 삶은 ‘너무 멀리 와버린 자의 고독’이다. 윤시윤이 연기한 이현은 악인이기보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인간의 초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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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냉정한 현실주의자다. 그는 끝까지 악당답고, 그렇기에 가장 설득력 있다. “동생 생각해서 자결혀.” 이 잔혹한 부성은 봉건의 마지막 얼굴처럼 남아, 결국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백가의 몰락은 개인의 파멸이 아니라, 구시대 윤리의 자멸이다. 여성 인물들 버들, 송자인, 명심은 이 드라마의 도덕적 심장이다. 특히 송자인은 총을 들지 않고도 혁명의 시간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의병의 ‘물주’가 되겠다는 선택은, 전투가 아닌 지속의 방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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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총에서 시작되지만, 살아남는 것은 밥과 돈과 돌봄이다. 이 점에서 <녹두꽃>은 전봉준의 영웅담이 아니라, 이름 남기지 못한 이들의 생활사적 혁명을 그린다. 전봉준의 처형 장면은 장엄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죽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갑오년에 이미 보았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세상(인내천의 세계)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우금치의 2만 명은 기록되지 않았으나, 그 죽음은 3·1로, 항일무장투쟁으로, 4·19로,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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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하부구조 혁명’의 시간이다. 역사는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저 죽은 자들로부터 솟아오른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김창수(훗날의 김구)는 상징적이다. 한 혁명이 패배한 자리에서, 다른 시대의 혁명이 싹튼다. 광야로 도망친 자가 다시 지도자가 되는 서사는 반복되지만, 그것은 표절이 아니라 역사의 리듬다. 모세가 그랬고, 동학 이후의 조선이 그랬다. 그래서 <녹두꽃>은 묻는다. 기억은 정말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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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기억은 사람을 바꿔 다시 돌아온다. 지역의 기질로, 가족의 서사로, 그리고 지금 여기의 우리 삶 한가운데로. 민초들은 가장 먼저 죽고, 가장 나중에 기록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들을 대신해 썼다. 이름 없는 자들의 역사,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을.
2025.12.20.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