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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느분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융의 연금술 부분이 흥미로워서 올려본다.
출판사 서평
지은이에 따르면 최초의 예술은 주술적 기능과 영적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고대 동굴벽화에 그려진 들소 그림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고 당집이나 서낭당에 있는 그림들, 솟대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만들고 그것에 경배하는 사람들과 어떤 영적인 소통을 해왔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예술은 과거, 신화의 시대에 떠맡았던 우주의 신성함을 매개하는 역할을 거세당했고 영적인 교감을 가능하게 하던 매개체에서 오락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영혼에 감응을 주지 못하는 예술, 오로지 텅 빈 기표만으로 이루어져 부유하는 이미지들의 혼돈, 그것이 이 시대 고도 소비사회에 이미지와 예술이 처한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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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경구는 말이 세계의 신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줄수 없음을 간파한 철학자의 충고이기도 하다. 세계의 진상은 항상 말을 벗어난다.
그 잡히지 않는 여분의 것, 그러나 잡히는 세계의 모태이기도 한 세계의 또 하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의 몫이다.
예술은 말하려 하지 않고 그냥 스스로를 드러낸다. 자, 보아라. 이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힘은 스스로를 보여주되 쉽게 잡히거나 움켜쥘 수 없는 그 무엇에 있다. 읽지 않고도 이해하게 만드는, 분석적 파악을 거치지 않고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에 있다. 예술이 상징의 맥락에 있으면서도 쉽게 도식화되지 않고 도식의 틀을 벗어나 끊임없이 탈주하듯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예술이 오늘날에도 어떤 힘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비합리적인 소통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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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은 비합리적 세계로 통한다.
융은 상징이 리비도를 품고 있는 이미지를 전달한다고 본다.
상징은 인간의 무의식에 담겨 있는 감정적 에너지가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만들면서 생겨난다
이미지는 어떤 감정적 에너지의 표현이어서 감정이 일어날때 동시에 발생한 여러 가지 상황까지도 담고있으며 거기엔 의식화 되지 않은 수많은 요소들도 잠재되어 있다. 상징은 표면의식의 정보뿐 아니라 무의식 심층에 가라앉아 있는 여러 내용을 한꺼번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상징을 통해 의식의 문턱에 놓여있는 비합리적인 요소들과 만난다.그것은 꿈이나 몽상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그 체험은 현실의 깨어 있는 의식 상태 만큼이나 생생하다
무의식은 의식의 차원 너머 존재하는 비합리적이고 알 수 없는 영역과 관계되어 있다. 상징적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떤 알수없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표면적 기호의 배후에 심층적 차원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모든 상징은 리비도의 역행을 막아준다. 생명 유지 위한 본능은 일종의 에너지로 , 본능이 억압되었을때 인간은 상상에 의해 상징적 표현을 함으로써 리비도를 전이시킨다. 어떤 대상에 집중되어 있던 리비도는 유사한 속성을 지닌 대상이 나타나면 거기로 쉽게 전이되어 버린다. 상징은 리비도 에너지를 전이시키면서 리비도의 차원을 상승시킨다. 상징을 매개로 인간의 리비도는 모습을 바꾼다.
리비도가 이미지화 된다는 것은 물질적 차원에 무정형적으로 자리잡고 있던 에너지가 정신적 차원으로 변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꿈이나 몽상 등으로 나타나는 상징적 이미지들은 이미 인간이 지니고 있는 욕망 체계를 형상화함으로써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있다.
형상화는 무의식에 담겨 있는 무정형의 에너지를 의식화시키는 일이다.
의식화된 리비도는 더 이상 왜곡되지 않으며 그 심적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인간의 심적 에너지가 고착되는 경우는 인간이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 세계의 비합리성에 직면했을 때이다.
이때 인간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비합리성과 화해한다.
상상의 세계와 객관적 현실의 세계는 상징을 통해 만난다.. 상징적인 세계가 직접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는 영역을 직관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인간의 상상력이다. 즉 상상력은 초월의 능력이며 상징은 초월의 매개체인 셈이다.
인간이 리비도 에너지를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상징을 창조하고, 그래서 상징이 형상화된 심적 에너지를 담고있다면 우리가 상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 역시 심적 에너지를 전이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자극하고 어떤 행동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힘을 지닌다.
신화적 담론이 상징의 힘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합리적 관점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신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모든 신화는 그 안에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이는 대극을 하나로 통일시키고 있다. 융이 주목한 상징의 중대한 기능도 대극을 하나로 합일시킨다는 점이다. 모순의 통일성, 그것이 존재하는 것들이 담고 있는 비밀이다. 극과 극은 통할 뿐 아니라 모든 것에는 서로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개의 극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둘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하나 역시 하나가 아니라 여럿, 여럿은 또다시 하나인 것이다..
이집트 헤르메스에 의해 씌어졌다고 알려진 <에메랄드 타블렛> 에서는 우주 전체를 지배한 신비로운 힘, 사물을 조화롭게 하나로 결속시키는 근본적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안에 있는 것은 밖에도 있고
큰 것이 곧 작은 것이다.
위에 있는 것이 아래에도 있으니
오직 존재하는 것은 한 생명과 한 이치다.
이것을 움직이는 자 또한 그와 하나이다.
신성한 경계에는
안도 없고 밖도 없다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다.
위와 아래 또한 없는 것이다.
우주 만물의 상응 원리를 표현한 말이다.
물질계에 존재하는 모든 형상은 그 내부에 비밀을 담고있고 그것은 상징적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때 상징적 방식의 소통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외부의 사물들과 조응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상징적 형상은 그 매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내 마음 안에 있는 이미지가 나의 외부 세계에 조응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내면의 투사라고도 부르지만, 투사란 내면에서 외면으로의 일방성에 초점을 두고 외부의 대상들을 모두 객체화시킨다는 점에서 상징적 소통을 기계론적으로 파악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마음은 인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퍼져있으며, ..
융은 인간의 마음이 무의식적 차원에서 서로 조응하고 있음을 '동시성 원리' 로 정식화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 부르는 현상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설명이라 할 수 있는데 , 우리가 흔히 미신 또는 징크스라 부르는 다양한 현상들을 융은 마음과 물질적 외부 세계와 조응 현상으로 설명한다.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자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자아의 바깥 영역이라고 의식에 규정되었던 세계와도 소통이 가능하다. 즉 내 안에있는 마음의 상태가 내 밖에 있는 물질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와 자아는 하나의 장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주역의 괘가 괘를 뽑는 사람의 운명을 드러내준다든지, 우연히 집어든 카드가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든지 수정구에 영상이 투사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상상력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가 상상하는 동안에 접하는 세계는 물질계를 통해 바라보는 아스트럴계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 영혼의 차원, 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 무의식의 차원이기도 하다.
꿈과 몽상의 세계는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을 위해 끌어오는 에너지원과도 같다. 거기서 끌어오는 이미지들은 예술가라는 한 삶의 개인을 통해 물질화되지만 그 이미지는 개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꿈의 세계는 공유되는 영역이다. 예술이 개인의 한계 넘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이며..
그것은 개인에게 자신의 영혼의 성장과 관계있다. 성장하는 정신의 이미지는 연금술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연금술, 영적인 황금을 찾는 길
이때의 황금은 정신적인 황금, 영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연금술의 원리와 과정은 물질계에 사로잡혀있는 영혼이 어떻게 스스로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상승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모든 종류의 물질은 수은과 유황과 소금, 이 세가지 물질로 환원될 수 있으며 이들의 결합을 통해 황금을 얻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세가지 물질에서 정신과 영혼과 육체, 그리고 물과 공기와 흙을 보았다. 수은과 유황은 각각 달과 태양, 여성과 남성, 음과 양, 수동과 능동 등의 대극을 나타낸다. 서로 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물질의 결합이면서 그것으로 상징되는 우주의 두 가지 힘의 결합이기도 하다.
소금은 수은과 유황이라는 대립을 연결해주는 균형의 상징이다. 소금은 안정성을 가지는 흙의 상징이다.
이 세가지에 불을 가하면 이 물질들은 서로 섞여 다른 물질로 화한다. 황금이 만들어지는 물질적 기반은 고대부터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의 결합에 있다.세 가지 물질은 연금술의 용기 속에서 세계 창조의 모습을 재현해낸다. 황금은 최초의 존재이자 최후의 존재인 빛의 상징이다. 빛에서 온 존재는 끊임없는 해체와 재결합 과정을 거쳐야 원래의 빛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연금술은 바로 물질 속에 감추어진 빛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크게 <흑화 - 백화 - 접근 - 적화> 의 4단계를 거치며, 작게 나누어 점성술 12궁에 상응하는 12단계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이 단계를 거쳐 현자의 돌을 발견하는 자만이 황금을 만들수 있다.
통과의례 색채 상징
흑화란 여러 물질의 혼합물이 뒤섞여 말 그대로 검은 색이 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다양한 물질은 현자의 돌로 변환되기 위한 최초의 하나의 물질로 변한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
인간이 영적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자신의 미숙한 정체성을 죽이고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검은색은 통과의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색이다. 다른 단계로 나아가기 전의 일시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즉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고 있는 어둠이다
개체적 자아가 소멸하는 단계를 나타내며 이때 인간은 정체성을 잃는다.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개인 안에 하나의 전체로서의 대아를 실현시킬 가능성을 담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융은 이 단계를 리비도의 일시적 퇴행 단계라 한다. 개인이 이 단계에 다다를때 심한 혼란을 겪는다. 의식의 상실, 자아의 상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혼돈에서 허우적거림..공포..)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면 최초의 빛을 만난다. 흑화된 혼합물은 백화의 단계로 나아간다.
백화란 물과 같은 상태로 곤죽이 된 물질들이 처음으로 응고해가는 과정, 물질이 죽음에서 다시 소생하는 과정이다. 이때 개인적 정체성을 잃고 헤매던 자아는 최초로 초개인적인 존재와 연결된다. 흰색은 빛의 색이며 정신의 색으로, 물질은 백화되면서 영성을 얻는다. 흰색은 물질적 지상의 세계를 초월한 색이며 영성이 깨어남을 나타냄.(신화나 민담에서 나오는 흰색 동물들, 흰 말 ,흰 토끼, 하얀 새 등은 모두 초월적 세계로의 안내자이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는 흰 토끼를 따라 마법의 세계에 들어간다)
검은색과 흰색은 색의 대극을 형성한다.
파랑은 모성을 노랑은 부성을 상징하며 파랑과 노랑이 혼합되면 초록, 즉 생명의 색이 탄생한다.
초록은 어둠과 빛의 대극을 매개하는 색이다. 대극을 합일하는 상징인 것이다.
초록의 에너지는 대극적 역동성에서 나온다.
초록은 신비한 에너지를 담고 있으며 그것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서 나오는 에너지다.
초록에 노랑빛이 계속 가해지면 빨강이 탄생한다.
다시 연금술의 변성 과정으로 돌아가자.
접근의 단계는 색채로 말한다면 노랑이나 초록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응고된 물질이 생명을 얻어가는 과정이자 최종 단계인 빨강에 이르는 단계인데, 때에 따라 이 단계에 유황이 가해지기도 한다. 유황은 태양의 대리물로 물질에 빛의 속성을 강화시킨다. 노랑과 초록은 생명을 머금은 대지의 색이다. 죽음을 통과하여 영성을 획득한 존재는 다시 대지로 회귀한다.
땅에서의 새로운 탄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초록의 단계에서 생명 에너지를 얻은 물질은 이제 육체를 얻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는 적화의 단계이다.
적화는 비천한 금속을 고귀한 금속으로 바꿀 수 있는 현자의 돌을 얻는 최종 단계이다. 노랑의 단계를 거친 제 1물질은 이제 점점 노랑에서 주홍으로, 주홍에서 빨강의 단계로 변한다 . 이제 금속에서는 붉은 피 같은 물방울이 맺히고 이 단계에서 변성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물질은 점차 식으면서 보라색으로 변한다. 금속이 피를 흘린다는 것은 금속안에 신적인 힘이 가해졌음을 의미하며, 이것은 영혼이 다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물질과 조응하는 영혼의 이미지
변성의 상징 체계는 아주 다양한 방식의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연금술의 체계가 물질적 황금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동시에 정신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이유에서 비롯한다. 내면의 보이지 않는 세계의 변화, 그리고 변화에 따르는 여러 영적인 성숙의 단계는 단칭적인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금술 변성 과정은 흔히 헤르마프로디투스라 부르는 자웅동체적 이미지나 살라만더와 같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의 형상을 통해 표현된다. 이것은 서로 대극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나 힘의 신비적 합일을 통해 현자의 돌이 만들어 질수 있음을 나타낸다.
분석심리학에서는 개인의 무의식 속에서 피어오르는 상징적 이미지들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이해했을때 인성이 성숙된다고 한다. 온 우주에 걸쳐 있는 비합리와 신비를 배척하지 않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의 성숙이 아니겠는가. 연금술의 도상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영적으로 성숙해나가는 데 필요한 대극의 합일 원리를 보여주고 있는 그림들이다.
(상상의 차원과 실재의 차원의 경계는 분명하지도 엄밀하지도 않다)
내가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볼때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바다도 똑같이 감응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세계 속에 존재하는 바다와 마음 안에 존재하는 바다는 둘이되 둘이 아니다. 이때 이미지는 서로 떨어져 별개의 영역처럼 보이는 두 영역을 연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마음속 바다가 이미지를 통해 예술이라는 물질적 형식을 띠고 나타난다. 예술이란 마음을 물질화시키는 일, 마음을 물질적 질서 속에 구현해놓는 일, 다시 말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우리는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본다.
예술이 마음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면 아마 그 근거는 이미지와 마음과 물질이 서로 조응한다는 전제에서일 것이다.
물질과의 조응을 통해 인간은 영적으로 성장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상에서 보내는 삶의 의미일 것이다.
연금술사들이 황금을 얻으려는 여정, 그들이 '현자의 돌'을 찾는 여정은 인간이 물질을 매개로 영혼의 성숙을 추구하려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여정을 서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끼리의 합일을 다룬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로 남겼다. 연금술사들이 찾으려 했던 황금은, 외부에 존재하는 물질로서 황금인 동시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영적인 황금이었기 때문이다.이미지는 인간이 물질계와 정신계를 오갈수 있는 매개장치였던 셈이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물질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를 넘나든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미지를 그리는 일이나 이미지를 바라보는 일은 모두 인간과 세계 내에 구현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와 교류하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