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의 타당성을 그 원인이나 기원과 혼동하는 오류다. 즉, 어떤 이념, 사상, 이론의 기원이 갖는 속성을 그 이념도 가지고 있다고 추리하는 오류다. 예컨대, “분석철학은 영미제국주의의 철학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사상에 물들기를 원하지 않는 한 분석철학을 배워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오류에 해당된다. 또 어떤 논증이 보잘것없는 출처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필연적으로 거짓이라고 상정한다면, 그 역시 바로 발생론적 오류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에 묻은 때에 시비를 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발생론적 오류로 볼 수 있다. 어떤 텍스트(말과 글) 자체를 평가하지 않고 텍스트를 발생시킨(생산한)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뜻이다.
프로이트와 러셀 등은 인간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자연에 대한 공포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흔히 발생론적 오류로 지적되곤 한다. 사하키안은 우리의 종교적 신앙이 어떻게 발생했는가와 그 최초의 계기를 무엇이 마련하였는가를 확증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것이 무신론의 논증으로서 사용된다는 것은 적절한 일이 못된다고 주장했다. 그건 과학이 주술이나 연금술로부터 발생했다고 해서 현대과학이 무의미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발생론적 오류는 역사 평가에서 자주 나타난다. 역사를 오늘의 관점과 기준에서 평가할 경우 부정적으로 평가된 인물이나 세력이 했던 일은 모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설사 그들이 좋은 뜻으로 했던 일이라도 나쁜 의도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사 재평가나 청산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발생론적 오류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텍스트의 논리와 상충하기도 한다. 논리는 수학적 모델을 따르긴 하지만 수학처럼 완벽하진 않다. 사람들은 텍스트의 그런 빈틈을 텍스트 생산자에 대한 신뢰 여부와 정도로 메우려 한다. 이런 시도는 발생론적 오류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실제 생활에서 그걸 오류로 여기지 않고 신뢰의 정당한 기능이라고 본다. 논리적 오류라고 하는 건 수학적 모델의 산물인데, 인간 세계는 수학적 모델의 완전한 지배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디지털’이라기보다는 ‘아날로그’ 형 판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늘 발생론적 오류를 경계하면서도 이런 복잡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는 게 좋겠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생론적 오류 [genetic fallacy] (선샤인 논술사전, 2007. 12. 17., 강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