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중시조 규정공후 절도사공파계

작성자파천|작성시간09.04.19|조회수1,463 목록 댓글 1

1. 규정공 박현(朴鉉) 신위 정립

규정공 박현 -밀성대군(언침)의 16세손/시조 45세손이다.

                   -문하시중(종1품) 박효신(밀성9세/시조38세)의 8세손이다

                   -공의 손자 상장군이 지은 묘비에 의하면

                   -고려조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헌규정(정3품)에 이르렀으며 문장이 탁월하고 덕행이 높아 우리나라 유학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87세에 졸하다. 배위는 동래정씨이다.

                   -충교충절록에서는 동박도학의 조종이라했다. 규정공 박현, 문성공 안유, 문헌공 최충과 더불어 청백리의 표상이라고 극찬했다.

                   -묘는 잠수부 남쪽 40리 두매산 아래 자좌에 신득을 파하고 모시였으니, 지금의 장단군 장도면 두매리 성주동인데 잃어버렸다고 전하였기에, 고양군 원당읍 주교리 두응촌과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봉서동에 제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받들어 온다.
옥천군 원덕사와 고흥군 숭양사와 장흥군의 세덕사와 경산 율산에 위폐를 모시고 향사를 받들고 있다.

 

2.시조/중시조/분파조의 성립

 1) 시조 박혁거세대왕(시조 1세),2세 남해왕,3세 유리왕, 4세 일성왕, 5세 아달라왕 이후로 박씨는 대를 이어 왔다 

 2)  신라 경명왕(시조 29세) 때 8 왕자가 분파하므로서 밀양,고령,함양,죽산,상주,전주,순천,경주와 울산 박씨의 9대본이 되었다.

    그 중 장손 밀성대군 彦沈(시조 30세/밀성1세) 할아버지가 밀양박씨 현조이시다.

 3) 고려 사헌부규정 정3품 朴鉉(시조 45세/밀성16세/중조 1세))을 중조로 하여 족보의 명확화가 이루어졌다.

 4) 족보의 명확화 이후 근대의 인구 증가와 조상 근원 정립을 위한 각 파의 노력으로 수많은 분파가 있었으며  현실적으로 소파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5) 남해의 밀양박씨 박환 조 후손인 현감공파는 밀양박씨/규정공파/절도사공파/현감공파 로 이어지는 소파이다.

 6) 현재 우리 젊은층(보통 30세 전후)의 세대는 시조70세/밀성41세/중조26세/입남조현감공/19세이다.(보통 세를 말할 때는 족보가 명확한 중조 세를 쓰고 있다)

사헌부;-고려 조선시대의 관청-

           사헌부 관직으로서는:고려 중기인 995년(성종 14)에는 대부(大夫)·중승(中丞)·시어사(侍御史)·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감찰어사(監察御史) 등의 관직이 있었고, 1308년(충렬왕 34)에는 대사헌·집의(執義)·규정(糾正:종3품)· 지평(持平)·장령(掌令)등이 있었다

           법제화된 직무- 정치의 시비에 대한 언론활동, 백관에 대한 규찰, 풍속을 바로잡는 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펴주는 일 등으로 되어 있다.

 

 

                                        절도사공(박대손)의 5자 환 할아버지께서  입남(入南海)시조이시다

 

 환 할아버지는 무오사화로 인해 진주에서 숨어 지내다가 남해로 피신 입도하였다. 

 두 분의 부인으로부터 10분의 아들을 두었는데 성간,성화,성주,성근과 함께 입남하였고,성의는 남해에서 탄생하였다.

 

    ↑추원재 전경 -(중시조 박현/분파조 절도공 박대손 등의 조상 신위를 모신 사당)

    ↑규정공 단소(제단비)-고양시

   ↑규정공 단소(제단비)-고양시

↑ 밀양박씨규정공파대종회 입구 간판(경기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추원재 내)-정면 건물이 추원재이다

 ↑추원재와 산소 전경(경기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능골)

  ↑추원재(중시조 박현/분파조 절도공 박대손 등의 조상 신위를 모신 사당)

 추원재 현판

 

        

 규정공의 단비, 소재;전북 완주군 용진                   규정공의 제단비, 소재;능골 추원재 내(內)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빛나는돌 | 작성시간 11.12.03 환 할아버지께서 두 부인에 열 아들?? 이건 생각을 함 해 봐야합니다. 쉽게 원흥일가와 성간일가 ~~ 열분의 나이가 원흥일가 다음에 성간일가 순 이라면 첫째 부인 죽고 둘째 부인을 얻었다면 말이 될 수 있는데 사실 그렇치 않다. 태어난 순서 원흥일가와 성간일가 순서가 막 섞였다. 그렇다면 환할아버지께서 두 집 살림을 하셨다는 말인가?? 그리고 남해의 성간일가가 족보 등장한건 최근의 일이며 발행된것도 한권밖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 수 많은 족보에는 환할아버지의 자손은 원흥일가로 나와 있다. 이건 모두 생각해볼 일이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