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드레스 코드, 스톨레(στολή, stole)
내가 오늘 뭘 입을지 고민하는 건 생존을 위한 게 아니라, 오늘 나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가깝다. 하지만 성경의 옷 이야기도 유사하다, 사용하는 표현에 따라 대체적인 특징이 있다. 수많은 “옷” 관련 헬라어 단어들 사이에서 유독 “신분과 지위”를 이야기하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스톨레(στολή, stole)이다.
1. 스톨레(στολή, stole)는 천 조각이 아니라 신분이다(계 6:11, 7:13).
헬라어에는 옷을 뜻하는 단어가 꽤 많다. 몸에 가장 가까이 입는 속옷은 키톤(χιτών, chiton)이고, 그 위에 걸치는 겉옷은 히마티온(ἱμάτιον, himation)이다. 이것들은 생활과 보호에 초점을 맞춘, 말 그대로 “천 조각”들이다(요 19:23).
하지만 스톨레(στολή, stole)는 이들과 궤가 다르다. 이 단어는 보통 “길고 품위 있는 예복”이나 “공식적인 옷”을 지칭한다. 일상복이 아니며, 고대 세계에서 이런 “긴 옷”은 특정 계층, 즉 왕족이나 귀족, 혹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높은 직위의 사람들만이 입을 수 있었다.
요컨대 스톨레(στολή, stole)는 “나를 가리는 옷”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사회에 선포하는 옷”이었다. 우리의 직함이 걸어 다니는 명함이듯, 고대에는 이 스톨레(στολή, stole)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대변했다. 초점이 ‘싸다, 비싸다’도 아니고, “신분”에 있다. 대체로는 가격도 비쌌겠지만 말이다.
2. 스톨레(στολή, stole)의 이중적 얼굴
(1) 과시
신약 성경이 이 스톨레(στολή, stole)를 사용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신분을 강조하는 단어답게, 그 용례가 극과 극을 달리기 때문이다.
“긴 겉옷(στολαῖς, stolais)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막 12:38). 여기서 서기관들이 좋아하는 “긴 컽옷”이 바로 스톨라이스(στολαῖς, stolais)이다. 이들은 이미 높은 지위를 가졌음에도, 그 옷을 길게 늘어뜨리고 거리를 걸으며 “나는 너희들과 달라”를 과시하는 셈이었다. 그 지위를 더욱 과시하고 타인의 시선을 즐기기 위해 이 “스톨레(στολή, stole)”를 이용한 것이다. 그들의 “스톨레(στολή, stole)”는 “존경받는 신분”의 표식이었어야 하나, 실제로는 “내면의 공허를 가리는 허영의 천”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명품 로고나 과장된 직함을 “스톨레(στολή, stole)”처럼 휘두르며 자신의 껍데기를 치장하는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스톨레(στολή, stole)는 신분을 드러냈지만, 그 신분이 위선일 때, 옷은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2) 회복된 신분
반면, 잃었던 신분이 극적으로 회복되는 순간, 이 단어는 결정적으로 등장한다. 탕자의 비유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πρώτην, proten) 겉옷(στολήν, stolen)을 내어다가 입히고”(눅 15:22). 여기서 아버지가 가져오라고 명한 “제일 좋은 겉옷”은, 헬라어로 “첫째의, 최고의”라는 의미를 가진 수식어 프로텐(πρώτην, proten)이 붙은 스톨렌(στολήν, stolen)이다. 단순히 비싼 옷이 아니다. 그것은 “아들로서의 신분”을 상징하는, 그 집안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식 의복이다.
모든 것을 잃고 종이 되기를 자처했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종의 옷이 아닌 “가장 좋은 스톨레(στολή, stole)”를 입힘으로써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다. 신분은 완벽히 회복되었다!” 이 용례에서 스톨레(στολή, stole)의 진정한 본질을 배운다. 허영으로 입는 옷은 자격 없음을 가리려 애쓰는 것이지만, 탕자의 옷은 “사랑과 은혜로 부여받는 새로운 신분”의 확실한 증거다.
3. 나의 “스톨레(στολή, stole)”는 무엇인가?
스톨레(στολή, stole)의 여정은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의로운 자들에게 주어지는 “흰 두루마기” 역시 스톨레(στολή, stole)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각각 흰 두루마기(στολή, stole)를 주시며”(계 6:11). 이 옷은 “하늘 시민권자로서의 영원한 신분”을 상징한다. 더 이상 썩어 없어질 천이 아니라, 영광의 지위를 입증하는 영원한 표식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스톨레(στολή, stole)를 갈망하며 산다. 우리가 힘주어 말하는 직함, 소셜 미디어에 비추는 완벽한 모습, 남들이 부러워하는 “내 것”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걸치고 다니는 “현대판 스톨레스톨레(στολή, stole)”다.
문제는 우리가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스톨레(στολή, stole)를 만들어 입으려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옷이 찢어지거나 더러워지면, 나의 신분까지 무너졌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스톨레(στολή, stole)의 진정한 의미는 탕자에게서 찾았듯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사랑으로 주어지는 신분”의 회복에 있다.
직함이나 돈의 무게가 아닌, 단지 “나”라는 존재만이 남았을 때, 과연 어떤 신분을 걸친 채 서 있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스톨레(στολή, stole)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채우는 “진실함”과 “겸손”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본성일 것이다. 생명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하나님과 같이 변화시켜나가야 한다(요일 3:2, 롬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