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모서리에 선 연필 한 자루
장 수 현
책상 서랍을 열다가 오래된 연필 한 자루를 발견했다. 낡은 나무 표면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연필심은 더는 깎을 수 없을 만큼 짧아져 있었다. 손에 쥐어보니, 생각보다 가볍고 작았다. 거의 손가락 하나 길이밖에 되지 않는 그것은, 묘하게도 내 기억 속 어떤 장면들과 손을 잡고 나타난 듯했다.
마음의 눈은 관심에 따라 넓게도 보고 좁게도 본다. 여름철 하루살이가 가을철을 모르는 것처럼, 거대한 시간의 순간 속에 생겼다 사라지는 부유의 존재에 불과한 것이 사람이다. 이에 피천득 선생은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하여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나의 내면에 웅크린 삶의 자아를 마주치며 살아오지 않나 싶다.
그래서 사람은 다양성과 복잡성, 유동성과 역사성 등 그 자체가 본질적 속성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뚜렷한 것도 있고 희뿌연 것도 있는데, 희뿌연 것들을 글로 잘 표현하면 뚜렷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연필 한 자루의 힘이다.
언젠가부터 연필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닳아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맞을지 아니면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활용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 더 확실하다 하겠다. 그것은 연필의 숙명이자 존재의 모서리에 있는 이유다. 연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깎이며, 갈리며, 줄어들 운명을 갖는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소멸이어서 슬프다기보다는 어떤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연필을 좋아했다. 볼펜이나 샤프보다 연필이 좋았다. 손에 쥐었을 때의 가벼움, 나무가 손바닥에 닿을 때의 온기, 연필심이 종이 위에 남기는 부드러운 흔적. 연필은 뚜렷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 그것은 마치 속삭임처럼, 혹은 기억의 잔향처럼 오래 남는다.
그래도 나는 연필로 글들을 남들보다 더 오래 쓰는 사람이다. 새 연필을 꺼내는 일보다, 다 닳은 연필을 끝까지 쓰는 일에 더 마음이 간다.
연필은 이상한 존재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닳아 없어질 운명을 안고 있는 것처럼 굴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묵묵히 제 몸을 갈아가며 무언가를 남긴다. 말없이 존재하고, 말없이 사라지는 일이다.
학창 시절, 나는 연필로만 노트 필기를 했다. 비가 오는 날,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던 날, 누군가에게 쓴 편지 같은 글들, 그리고 가끔은 나조차 해독할 수 없는 낙서들까지. 연필은 그 모든 것들을 함께 겪어줬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과 냄새와 소리도, 연필의 나뭇결 어딘가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라진 연필의 조각들은 어디로 갔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책상 위에 떨어진 먼지 속에, 오래전에 던져진 쓰레기통 안에, 아니면 아직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걸까.
연필을 쥐고 있으면 마음이 느려진다. 연필심의 부드러운 마찰 소리, 종이를 스치는 촉감, 손끝에 전해지는 사소한 진동. 그런 감각들은 나를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어쩌면 나는 연필이 사라지는 속도에 맞춰 살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지워지는 시대 속에서 천천히 닳아 없어지는 것에 기대고 싶은 마음.
어느 날은 이런 상상도 해본다. 내 인생이 한 자루의 연필이라면, 나는 어디쯤쯤 깎이고 있을까. 아직 글을 쓰는 중일까, 아니면 다 써버려 이제 쥘 수조차 없게 된 걸까. 알 수 없지만, 만약 끝이 있다면 그 끝은 조용했으면 좋겠다. 마치 연필이 아무 말 없이 짧아지는 것처럼.
오늘 그 짧아진 연필로 몇 자를 적었다. 오래전보다 글씨가 조금은 서툴러졌고, 글이 자주 끊겼다. 하지만 그것도 나다. 남기고, 지우고, 다시 적고, 또 지우며 사는 나라는 존재 말이다.
짧은 연필 하나가 내게 말했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나는 연필을 잘 닳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서랍에는 누렇게 바랜 연필들이 줄지어 누워 있다. 어떤 것은 반 토막이고, 어떤 것은 지우개가 다 닳아 뭉툭한 금속만 남아 있다. 손에 쥘 수 없을 만큼 짧아진 연필들은, 종종 내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오늘, 나를 얼마나 쓸 건가요?" 나는 자주 그 질문을 외면한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은 드물다.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수십 번 단어를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운다. 그 과정에서 연필은 차츰 깎여나간다. 어느 날 나는 커터칼로 연필을 가지런하게 깎으면서 그것은 내 안의 어떤 고민이 깎인 것처럼 느껴진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 뿌옇게 엉켜 있던 기억, 말로 옮기기 어려운 표정 하나까지 연필은 나보다 먼저 그것을 이해한 듯, 묵묵히 여백을 채워나간다.
연필은 말이 없다. 하지만 종이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누구보다 확실하다. 부드럽게 긋는 선, 진하게 눌러쓴 음성 같은 단어 하나, 그리고 지워진 흔적들. 그 모든 것이 연필이 살아온 기록이고, 내가 살아낸 시간들이다. 나는 그 기록과 시간을 모아 정리된 글을 쓴다.
나는 자주 연필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조금씩 줄어드는 존재. 누군가를 울리기 위해, 혹은 위로하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배려의 존재이다. 사람들은 가끔 내 글을 읽고 느낌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연필에게도 들리기를 바란다. 그 글을 쓸 수 있도록 나보다 먼저 스러져간 연필 한자루가 있다.
나는 한 번도 연필을 끝까지 쓰지 못했다. 어느 정도 짧아지면 손에 쥐기도 버거워지고, 더 이상 깎을 수 없게 된다. 연필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진다. 무언가를 완성한 것처럼, 만족한 표정도 없이, 자신의 끝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나는 늘 그 마지막이 두렵다. 나도 언젠가 쓰는 일을 멈출 것이고, 내 글이 더 이상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연필처럼 조용히 물러날 수 있을까? 아니면 끝을 애써 붙잡으며 무언가를 더 쓰려할까?
짧아진 연필을 손에 쥐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 연필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어쩌면 이 글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각오로. 나는 결국, 쓰는 자이기 이전에 사라지는 자다. 글을 남기고, 그 글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국의 정신위생학자인 John. K. 윌리암스의 저서 ‘잠재의식의 활용법’에서 보면 내면의 의식작용이 인간의 정신이나 상상에 중대한 관계가 있으며 이 정신활동이 과학과 예술 분야 즉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그게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다. 묵묵히 써내고, 조용히 사라지는, 연필 한 자루처럼.
장수현 작가의 작품 - 독후감 < 모서리에 선 연필 >
낡은 나무결,
짧아진 심.
묵묵히 깎이며
흔적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진다.
속삭임 같은 글씨,
기억의 잔향.
나는 닮고 싶다—
조금씩 줄어들며
누군가를 위로하는 존재.
끝은 말없이,
숭고히 닳아 없어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