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는 목자 없이 방황하는 존재들입니다

작성자맹냉이|작성시간19.07.29|조회수24 목록 댓글 0

우리는 목자 없이 방황하는 존재들입니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할 구세로라고 익히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만 가르치는 자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쳤던 그런 모양으로 베드로도 설교를 하였고 사도바울도 이방의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왜 이천년 전의 예수님에게만 타켓을 두고 나머지 천사를 보낸다거나 하는 성경말씀은 믿지를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친히 내게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빌립보서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예수님께서 생전에 복음을 전하시면서 하신 말씀 중에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인자이신데 또 인자가 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온다고 하는 인자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제자들이 인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인자라는 단어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되지 못한 존재를 짐승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예수가 되지 못한 제자들은 짐승이었던 것입니다. 짐승은 그렇다면 어떤 생각에 의해 사는 자들인데 제자들이 이미 짐승의 마음을 갖고 사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짐승을 성경에서는 또한 독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일을 말하실 때에 죽으면 안된다고 하며 그 죽음을 못죽게 하겠다고 나설 때에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는 질책을 받았습니다. 


바로 사람(인자)과 짐승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처럼 짐승의 생각으로 사는 존재들은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영접하여 살고 있는 존재들이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한 유대인들(서기관, 바리새인)도 있었습니다. 동일한 독사의 생각으로 살고 있었지요.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예수를 영접한 것과 영접하지 못한 것의 차이였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영접한 것은 아버지께 배워서 예수에게로 나아온 것이었고 바리새인들은 아버지께 배우지 못하여서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차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한 제자들처럼 짐승의 생각으로 사는 자들은 반드시 가르치는 자(예수)를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배운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통하여서만이 배우는 것이 참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스스로 배웠다거나 아니면 어떤 설교를 통한 들음을 통하여 배웠다고 하는 것은 참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가르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성령으로 가르치시는데 성령은 하나님의 보낸 자를 통로로 삼고 가르치기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통하여 가르치시는 그 가르침을 통해서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자신을 통하여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동일하게 어떤 하나님에 의해 보내지는 자를 통하여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생각으로 사는 자들에게 가르치는 자를 보내어 가르치려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알면 장성한 자로 알고 계시는데 착각일 뿐입니다. 성경은 모든 세상을 죄 아래 놓여 있다고 합니다. 죄 아래 놓여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젖을 먹고 단단한 것을 못먹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성경은 왜 이렇게 누구든지라고 제한을 가하고 있을까요? 심지어 가르치는 자 예수나 바울 마저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요한복음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예수 스스로의 생각이나 바울 스스로의 생각을 억누르시고 성령의 가르치시는 바대로만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공부하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게 과연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냐는 것입니다. 결국 가르치는 분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은 결국 아버지가 아들된 가르치는 자를 통로로 삼고 친히 말과 삶으로 그 가르치는 자를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르침을 오늘날도 동일하게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쳤듯이 유대의 사도인 베드로를 통해 이방의 사도인 바울을 통해서 가르쳤듯이 가르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믿음을 선물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렇게 가르치는 자는 유대나라에 유일하게 예수가 오셨고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보내졌고 지금도 가르치는 사역을 갖고 천사가 보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구원에 이름은 이렇게 천사를 통하여 가르치는 가르침을 받아서 자람으로 장성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 외에는 성경에서 다른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한 곳이 없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반드시 여호수아(예수)라는 지도자(가르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나 스스로 깨달은 성경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보내지는 가르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가르치는 자가 바로 예수라는 천사라는 말씀이라는 직분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인 것입니다.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 예수님은 성도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죄만 지고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예수를 기다린다고 해도 그 예수는 영원히 여러분을 데리러 올 수가 없습니다. 그 이천년 전의 예수를 기다린다면 여러분은 영원한 고아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친히 천사를 보낸다고 하고 있는데 왜 그 예수님을 기다린다고 하는가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은 여러분의 생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예수인데 왜 아직도 붙들고 있는 임금님이 되어 있을까요? 바로 여러분이 짐승의 생각(독사=뱀)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들을 보내심은 그 독사의 생각을 깨어부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1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은 이천년 전의 예수님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 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예수님도 아들이었고 제자들도 나중에는 가르침을 받아서 아들들이 된 것입니다. 시간적인 차이만 있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아들)이 마귀를 십자가에서 멸했다면 왜 지금도 마귀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성경은 지금도 그 마귀가 있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그런데 그 마귀를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베드로가 당시에는 마귀였다고 하면 지금 우리가 마귀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베드로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로 사는 자들이기에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 가르치는 자를 통해서 우리 안의 마귀가 쫓겨나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안의 마귀가 어떻게 쫓겨나갑니까? 


예수가 가르치는 말에 의해 쫓겨납니다. 스승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합니다. 그리고 그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의 마음에서 십자가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도 그 예수님이 나를 구원한 구세주라고 꼬옥 붙잡고 계시잖아요? 이것만 봐도 여러분은 젖이나 먹고 단단한 것을 먹지 못할 상황에 놓여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지금 가르치는 자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네이버카페 생명의 만나  남용모 목사

유튜브                    남용모 목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