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과 미국
한국보다 도산 안창호선생을 더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산 안창호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비분강개한 도산은 가족을 미국에 남겨놓은 채 1907년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흥사단을 창건하고, 상해 임시정부 내무총장으로서 세계 여러 곳에 생겨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합하는 일을 맡았다. 만주,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멕시코, 하와이 등을 누비면서 해외 교민사회의 단결된 독립운동 지원을 고취했다. 몇 년에 한 번씩 미국 LA의 가족을 방문했고, 총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1.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
2003년 9월 설치
LA 남부지역을 관통하는 110번 프리웨이와 산타모니카 방면 10번 프리웨이가 만나는 지점에 설치
2.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2001년 8월 제막
로스앤젤레스 동부 리버사이드 시청 앞 광장
3. 도산 안창호 광장
로스앤젤레스 시
도산 안창호 광장(Dosan Ahn Chang Ho Square) - 제퍼슨 길(Jefferson Boulevard)와 반부렌 길(Van Buren Place)
4. 도산 안창호의 날
미국 리버사이드 시
8월 11일 ‘도산 안창호의 날’ 지정
5. 도산 안창호 우체국
2004년 9월 명명
도산 안창호 우체국(Dosan Ahn Chang Ho Federal Post Office) - LA 코리아타운 6가
6. 도산 안창호 패밀리 하우스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대학 - 한국학연구소
한국학 연구소의 건물 이름
7. 도산 안창호의 이름과 발자국 헌액
2012년
세계 민권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Civil Right Walk of Fame, Atlanta)
심지어 마틴 루터킹 목사를 기리는 세계 민권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 최초로 도산 안창호의 이름과 발자국 헌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