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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수필/시사

호비작호비작

작성자어슬렁김용원|작성시간26.06.16|조회수19 목록 댓글 0

#1143,화요산문(58)/호비작호비작/김용원
    내가 자라난 집은 충청도 뻐꾹새 우는 마을의 전형적인 농가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쉬는 날이라서 집에 왔더니 담과 이어진 둔덕을 없애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나무와 아카시아 뿌리가 실하게 뻗은 땅을 파내는 작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해내겠다고 장담하고 나선 터라서 불평도 못 하고 곡괭이와 삽을 번갈아 사용하여 둔덕을 파잦혔다. 그러다 굵은 아카시아나무 둥치와 맞서게 되었다. 나는 말 그대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뿌리 주위를 삽으로 파고 곡괭이로 찍어냈지만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 무슨 일로 오신 고모부가 내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대충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는 일을 계속했다. 이제는 자존심 문제가 끼어들었다. 고모부는 키가 작고 깡말랐지만 근동에서는 당차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그에 걸맞게 입바른 소리를 잘하시는 그분은 보나마나 덩치는 커다만 게 일하는 건 어린애만도 못하구먼,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계실 게 뻔했다. 아니나다를까, 한참 동안 지켜보시던 고모부가 그예 한마디 하셨다.
    “으이그, 그렇게 힘쓴다고 되는 게 아녀. 나 하는 거 보라구.”
    하시면서 곡괭이를 채뜨리듯 가져가더니 말 그대로 ‘호비작호비작’거리기 시작했다. 나처럼 곡괭잇날을 높이 들었다가 힘껏 내리찍는 게 아니었다. 곡괭잇날을 가까이 짧게 잡고는 마치 작은 호미로 땅을 긁어내듯 호비작호비작 아카시아 뿌리 사이의 흙을 긁어내는 거였다. 마침내 아카시아 나무가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내자 고모부는 발로 쭉 밀어 간단히 자빠뜨렸다. 그러고는 이런 명언을 내 귀에 꽂아 넣어 주셨다.
   “힘든 일일수록 힘을 빼고 한쪽 귀퉁이부터 야금야금 해결해야 하는 겨.”
    그때 겪은 경험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삶의 형식과 내면에 적잖은 긍정적 도움을 안겨줬다. 직장생활을 했을 때도 그랬고, 자식들을 길러내며 먹고 살 때도 그랬고, 노후를 준비할 때도 그랬고, 이렇게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무리없이 호비작호비작하다 보면 마침내 어느 순간 일이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큰일을 해놓은 것은 없지만 큰일을 저지른 적도 없고 그날이 그날이듯이, 그러면서도 달팽이처럼 어딘가로 가긴 가는 그런 삶을 살아냈고, 마침내 큰 상처 없이, 힘든 헐떡거림 없이 저어기 보이는 종착역과 마주서게 되었다.
    그건 내가 애초 여러 면에서 갖고 나온 달란트가 허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보다 빠른 순발력도 없고 남보다 앞선 재치도 없고 남보다 뛰어난 재주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남 앞에서 뻔뻔하지 못하는 그런 흠이 있는 나로서는 호비작호비작 일상이 이른바 코드가 맞았던 것이다. 마치 먹이사슬에서 대항할 능력이 딸리는 개미가 체표를 줄여 땅속생활로 진화했듯이.
    그런데 이 삶이 나름 얼마나 평화롭고 나름 미학적 가치가 있는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에 대적할 능력도 없으면서 혹시나 하고 달려들었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보아왔다. 빚을 내어 사업을 하거나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거리로 나앉은 사람, 그만한 재능이나 경력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정치계에 뛰어들었다가 친가와 처가 살림까지 망쳐먹은 얼치기 정치지망생 등등, 둘러보면 쌔고 쌨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대상의 화려함만 보았지 그 방면에 성공한 사람들이 남모르게 얼마나 꾸준하고 끈질기게 ‘호비작호비작’ 노력하는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은 누를 범한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그런 점에서 호비작호비작 일생을 살아온 나에게 오늘만큼은 칭찬해주고 싶다. 참 잘해냈다. 그치? #호비작호비작#뻐꾹새우는마을#어슬렁김용원#읽어보고또와
    /어슬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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