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 전문지 《딩아돌하》(2014년 겨울호)에서 진행한 김개미 시인과의 서면 인터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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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미 : 이안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인터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안 : 별 말씀을요. 저야말로 ‘김개미 동시’의 열성 팬인걸요. 반갑습니다.
김개미 : 선생님은 시와 동시를 같이 하시는 분인데요. 저에게는 이정표와 같은 분입니다. 제가 제대로 질문을 드려야 하는데 섬세한 사람이 못 돼 염려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페이스북이나 동시마중 카페에 들락거리면서 훔쳐보기는 합니다만, 그건 겉모습일 테고요. 보이지 않는 근황이 궁금합니다. 어디에 관심을 두고 계신지, 개인적인 숙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또한 슬픔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이안 : 과분한 말씀이세요. 제가 오히려 김개미 선생님 동시에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조금 바쁘긴 해요. 지난해 가을부터 동시 강의를 많이 다니게 됐어요. 매주 서너 차례 정도. 과거에 비해 동시 수요가 엄청 늘었단 걸 실감합니다. 반응들도 좋고요. 잘만 안내하면 동시 인구가 정말 많아질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돌아올 때가 많죠. 말씀하신 대로 페이스북이나 동시마중 카페(http://cafe.daum.net/iansi)에 올리는 글이나 사진이 제 현재와 본심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모는 아니죠.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니까. 종종 슬픔이나 우울, 불안에 붙들릴 때가 있고, 그건 운명, 또는 인생의 불가해성이나 깊이에 관계된 것 같아요. 그걸 동시 쓰기로 넘어설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지난 1년은 정말 힘들었죠. 이대로 주저앉고 싶은 적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동시가 찾아와서 일으켜 주었어요. 동시는 사람을 살리는 힘을 지녔단 말을 실감했습니다.
김개미 : 모든 장르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동시’에서는 시인의 고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필에 보면 제천에서 태어났다고 돼 있는데 거기가 고향인가요?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읽을 때 거기보다 더 남쪽의 냄새를 맡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지금은 충주에 살고 계시고요. ‘뿌리가 어디 있는 거야?’하고 궁금했던 적도 있습니다. 선생님께 가장 밀착된 곳은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안 : 제천에서 태어나 자랐죠. 고향 마을 이름이 월림(月林)이었어요. 저는 그 두 글자가 맘에 들었어요. 한자를 처음 배울 때부터 ‘달숲’이란 말의 이미지를 좋아했어요. ‘달의 숲’이라니, ‘숲에 비친 달빛’이라니, 혼자 골똘해한 적이 많았죠. 고향 이야기가 제 시집에는 자주 등장하지만, 동시집에는 이렇다할 만한 고향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 고향」 「밥알 하나」가 고향과 관련된 동시의 전부네요. 남쪽은 심정적으론 좋아하지만 뚜렷한 연고는 없어요. 제게 가장 밀착된 시간과 공간은 지금―여기, 제가 살고 있는 충북 충주시 남산1길 13-1이에요. 생활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고, 제 작품의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이기도 하니까요. 제 눈앞에 보이는 꽃, 나비, 나무, 개, 고양이,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너머가 지금,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눈앞에 놓인 것을 보면서도 이 시공간이 유래된 과거와 이로부터 다가올 미래의 시간을 함께 만나게 돼요.
김개미 : 선생님은 어린아이 같아요. 천진하고 긍정적이고… 『고양이와 통한 날』에 실린 「사진」이라는 시에 보면 ‘가난’을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시 속에서 가족은 “서로 사랑하며 가난”해요.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지 궁금합니다. 어떤 아이였으며 어떤 결핍이 있었나요? 문제는 없었나요?
이안 : 언제까지나 깔깔깔, 어린아이 같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조금 미성숙한 면이, 제게 있죠. 생의 어느 시점에 딱 멈추어진 무엇이 사람들마다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저는 그게 비교적 긴 연령대에 걸쳐져 있더라구요. 어떤 땐 그것이 동시의 시간으로, 어떤 땐 시의 시간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오락가락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그것을 주로 동시의 시간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린 시절은 풍요롭게 기억해요. 동네에서 잘사는 축에 드는 집에서 태어났고, 크게 모자라는 것 없이 자랐거든요. 다만 중학 1학년 때부터 고향 마을과 부모님 곁을 떠나 제천 시내에서 자취를 하게 됐는데, 그땐 많이 힘들었죠. 성장기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느라 자취방 다락에 올라가 몰래 울기도 하고 그랬죠. 나서서 하기보다 좀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는 아이였어요. 그러면서도 누군가 불러주기를 은근히 기다렸죠.
김개미 : 고양이를 기르시잖아요? 동시집 두 권의 제목에 나오기까지 하는데요. 한 때 “고양이를 길러야 동시를 잘 쓴다, 그러니 우리도 고양이를 기르자.” 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어요. 이안 선생님이랑 김륭 선생님이 고양이를 길러서 그런 말이 나왔지요. 고양이 소개 좀 해주세요. 어떤 고양이길래 「고양이는 고양이」, 「동그라미 고양이」, 「고양이와 통한 날」, 「고양이 일기」, 「고양이의 탄생」, 「고양이와 나와」, 「눈 온 아침」, 「고양이 무덤」 등의 시를 탄생시켰는지요?
이안 : 10년 전쯤에도 힘든 일이 있었어요. 샤워를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때 우연히 “인생을 비참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이 둘 있으니, 바로 고양이와 음악”이라는 문장을 만났어요. 슈바이처가 한 말이었는데, 그 말을 꼭 붙들었어요. 음악도 그중 하나였지만 음악은 고양이보다 더 멀게 느껴졌거든요. 바로 나가 고양이를 한 마리 들였죠. 근데 그 고양이는 털이 눈부시게 희고 아름다운 터키쉬 앙고라 종이었지만, 빠져대는 털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깜짝 놀랄 만큼 똑똑하기도 했고요. 스트레스에 깔려 죽을 것 같아서 아는 사람에게 넘겼죠. 그다음엔 고양이에 대한 사전 조사를 좀 자세히 했어요. 털이 짧고 무게도 있어 공중에 둥둥 떠다니지 않고 바닥에 가라앉는 단모종이 있었어요. 체형이 날렵하고, 울음소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내며, 사람과의 친화성도 뛰어나고, 묘족(苗族) 가운데 가장 먼저 사람의 친구가 되었다는 에티오피아 원산의 아비시니안 종을 들였죠. 저랑 잘 맞았어요. 언제나 위로를 주었죠. 무심한 듯하면서도 언제나 곁을 지키는 다감함,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지음(知音) 그 자체죠. 고양이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 저는 고양이의 그 불가능을 좋아해요.
김개미 : 『고양이와 통한 날』을 읽은 제 느낌은 ‘따뜻함’이었어요. 그 중심에는 「빈집 마당에 오는 눈」(“빈집 마당에 오는 눈은 / 잘 녹지 않는 눈 // 우리 집 마당에선 다 녹은 눈이 / 유하네 마당에는 그대로 있네 // 빈집 마당에 오는 눈은 / 잘 녹지 않는 눈 // 눈 위에 작대기로 조 유 하 이름 쓰고 / 둘이서 놀 때처럼 놀다 왔어요”_전문)이 있었고요. 실제로 있었던 일 아닌가요? 첫사랑?
이안 : 『고양이와 통한 날』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동시집이죠? 아이가 다섯 살 무렵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부부의 삶의 방식에 빠져 있었을 때였어요. 어설프나마 노자에 조금 경도돼 있었고요. 시골에 작은 집을 구해 삼 년 반 동안 들어가 살았죠. 동시보다는 시에 집중했을 때고, 동시 공부를 막 시작한 때였어요. 초심자, 또는 아마추어였죠. 뚜렷한 저만의 동시관, 이런 건 없었고, 동시라는 일반적인 인식이나 관념 상태에서 동시를 썼던 것 같아요. 「빈집 마당에 오는 눈」은 제 아이가 화자인 작품이에요. 옆집에 친구 부부가 들어와 살았는데 그 집 아이 이름이 ‘조유하’예요. 제 아이랑 동갑이고요. 근데 얼마간 살다가 멀리 이사를 나갔죠. 그 이야기예요.
김개미 : 저는 「혜성이」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세요? 지금까지 써오신 작품 중에 어떤 것에 제일 마음이 가세요?
이안 : 혜성이는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시내로 나와 살 때 만난 아이예요. 제 아이랑 같은 학년이고, 제가 글쓰기를 가르치며 가까워진 아이였어요. 또래들보다 똑똑하고 넉살도 좋고 의젓했어요. 제 아이가 혜성이네 집에 놀러갔다 와서 해준 이야기에 착안해서 쓴 것인데, 지금 읽어도 혜성이의 눙치는 말투가 맘에 들어요. 이런 식의 말법이 저랑 맞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쓴 작품에서는 「뱀」 연작이나 「나비」 연작, 『고양이의 탄생』 5부에 실린 작품들, 그리고 세 번째 동시집에 수록될 작품들에 마음이 가요.
김개미 : 『고양이의 탄생』에서는 「뱀1」, 「뱀2」, 「뱀3」, 「뱀4」, 「뱀9」, 「뱀10」, 「뱀11」, 「뱀12」, 「뱀13」, 「뱀14」, 「뱀15」, 「뱀16」, 「뱀17」, 「뱀18」 등 뱀에 관한 시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시들을 동시집에 넣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어린이들에게 통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요. 고민은 없으셨는지요? 아울러 「뱀5」, 「뱀6」 「뱀7」… 등이 비어 있는데, 혹시 다음 동시집에 나올 예정인지도 궁금합니다.
이안 : 「뱀」 연작을 『고양이의 탄생』 맨 앞에 둔 것은 잘한 선택이었지 싶어요. 인상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이게 동시일까? 아이들이 읽어줄까? 이렇게 걱정하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동시에 매력적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죠. 동시집 묶기 전에요. 그래서 좀 모험을 했어요. 알 듯 말 듯한 모호함과 난해함에서 연유하는 골똘함, 말의 배치가 주는 재미, 짤막한 동시를 연이어 읽어가며 품게 되는 의문, 이런 것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면 이 작품은 성공한 거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런 효과를 발생시킨 것 같아요. 「뱀」 연작을 가장 재밌어라 하는 어린이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이런 반응은 동시를 쓰면서 많은 힘이 됐어요. 빠진 연작은 편집 과정의 편의 때문이었어요. 아이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게 편집부의 의견이었는데, 그때 제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아쉬워요. 용기가 부족했죠. 그림책으로 만들어져서 유럽 쪽으로 번역되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던 작품인데, 이걸 알아봐줄 화가와 출판사는 대체 어디 있는 걸까요?(하하)
김개미 : 『고양이의 탄생』에 실린 시 가운데 「똥강아지 또강아지」, 「지렁이」, 「들국화 기차역」, 「노란귀바위거북을 타고」 등은 이전까지 써오신 시와는 사뭇 다른 발성과 호흡을 보입니다. ‘논다’라는 느낌도 많이 들어서 독자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지요. 재밌는 느낌이긴 한데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어요.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게 되어 여러 번 읽게 됩니다. 이러한 시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안 : 언급하신 것은 모두, 제가 애정하는 작품들이에요. 이 작품들 쓰고 나서, 제가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저는 책임보다는 ‘무책임’이란 말이 좋아요. 진지함보다는 ‘농담’이란 말이 좋고요. 제 동시가 너무 심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가벼움 쪽에 더 많이 끌리고요. 진지함만으로 일관한 작품을 만나면 고개를 돌리는 버릇이 있어요. 시인 자신의 가치관을 무 자르듯 내보이는 작품은 불편해요. 그럴 거면 차라리 산문을 써라!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위에서 말씀하신 시들이 어린이 독자와의 만남에서 어떤 운명을 걷게 될지는. 다만, 저로 하여금 새로운 지점을 보게 만든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죠.
김개미 : 《어린이와 문학》 5월호에 실린 「유월」(“아빠, 뻐꾸기가 울어요. // ―뻐꾸기시계 소리일 거야. // 뻐꾸기가 운다니까요. // ―아냐, 뻐꾸기시계 소리래두. // 그럼, 뻐꾸기시계새가 뻐꾹뻐꾹 날아다니며 운다고 해둘게요. // ―거 봐, 뻐꾸기시계 소리지.”_전문)이란 시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일요일”이라는 부재가 달렸었지요? 뻐꾸기시계가 있는 집 풍경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요. 마침 뻐꾸기가 울어요. 아들이 꽤나 심심한 모양입니다. 아들은 뻐꾸기 울음을 듣습니다. 그 소리를 아버지에게 들어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뻐꾸기시계 소리라고 말합니다. 아들의 말을 묵살해 자신이 하던 것, 예를 들면 텔레비전 시청이나 낮잠을 자려 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이 쓸쓸한 풍경을 앞에 두고 ‘뻐꾸기 소리냐 뻐꾸기시계 소리냐’의 수수께끼를 냅니다. 그것으로 쓸쓸함을 살짝 가리는 것이지요. 살짝 가리는 것은 쓸쓸함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서고요. 기존의 시와 많이 달라요. ‘변화의 전조’랄까 그런 게 느껴집니다. 최근 변화를 모색하고 계시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것이 달라진다, 하는 점이 있는지요?
이안 : 잘 읽어주셨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이 김개미 선생님 말씀 안에 대부분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쓰고 나서 기분이 좋았어요. 어떤 한 가지로 분명하게 읽힐 수 없는 것, 단언할 수 없는 것,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것, 독자를 좀 더 시의 현장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 어느 쪽으로 어떤 결론이 나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그러면서도 어떤 느낌과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면 족한 것 아닌가 생각하죠. 때론 제 작품이 수많은 오독을 발생시킬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오독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해석의 풍경이 시인의 창작의도인 작품. 물론 「유월」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시인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변화된 풍경 속에 시인을 던져 넣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이 저에겐 그런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김개미 : 『고양이와 통한 날』이 2008년에, 『고양이의 탄생』이 2012년에 나왔습니다. 곧 세 번째 동시집이 나올 거라고 들었습니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서요? 예감이 어떠신지요? 색감이나 분위기, 기존에 내신 두 권의 동시집과는 어떤 차별성을 보이는지요?
이안 : 네, 지금 그림 작업 중이라고 들었어요. 『삼백이의 칠일장』(문학동네 2014)에 그림을 그린 최미란 작가가 하시는데, 기대가 커요. 언제나처럼!(하하) 지금 부 배치랑 제목, 해설까지 정해진 상태니까, 그림 작업이 문제없이 이루어지면, 내년 초쯤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랬으면 좋겠고요. 앞의 고양이 두 권과는 사뭇 다른 동시집이 될 거예요. 농담과 웃음 쪽으로 좀 더 건너갔고요. 어린이와 어른 독자들이 모두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동시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상 나오고 나면 어떤 후회나 아쉬움을 갖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기대가 더 큰 편이에요.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기쁨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풍경이 그려진 것 같아요.
김개미 : 의미 있는 동시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가 나왔습니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평론집이고, 또 많이 읽히고 있는데요. 감성이 있는 평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론집을 내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이안 : 동시 쪽에 와서, 구체적으로 『동시마중』 창간(2010년) 이후에 제가 한 일은 대부분 이제까지 동시문단에 없었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동시마중』이란 동시 전문지도 그렇고,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도 그렇고요. 평론집은 시집이나 동시집과는 좀 다른 느낌이에요. 동시는 단순해서 평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동시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품고 있는 시의 세계는 결코 작지 않은데, 그간 동시 평론의 부재가 이런 말을 기정사실화해왔단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 저보다 더 좋은 평론가가 동시 분야에 나타나면, 우리 동시가 더 풍성한 풍경과 깊이를 얻게 될 것 같아요. 그런 고정관념을 조금이나마 흔들어놓게 된 것 같아 제 나름으론 기쁘죠.
김개미 : 평론집을 읽으면서 동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시 비평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요. 비평을 할 때 무엇을 중심으로 비평을 하시는지요?
이안 : 제 글보다는, 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 작품이 우선인 것 같아요. 제가 어떤 말을 하기 위해 해당 작품을 끌어오는 게 아니라, 어떤 작품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전하기 위해 글을 쓰는 편이죠. 좋은 작품을 풍성하게 읽어내는 것, 해당 작품의 동시사적 의미, 그 작품이 현재 우리 동시단에 제출하는 문제의식, 창작자인 저에게 제공하는 창작과 관련한 힌트, 시인이 작품을 통해 펼쳐 보이려는 세계, 이런 걸 읽어내려고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평론집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제 평론은 “내 창작이 나아갈 바를 산문적으로 고민한 행위”이고, “창작을 의미 있게 밀고 나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자, 새로운 창작의 전위를 내 안에서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 같은 성격이 강하죠.
김개미 : 동시와 평론, 두 가지를 다 하시니까 안목이 남다를 것 같아요. 이제 막 동시를 배우기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안 : 2010년대 우리 동시가 보여주는 변화와 발전 양상은 눈부실 정도여서, 이것을 하나씩 차근차근 따라가지 않으면 이제는 쉽게 따라잡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던 현상인데, 지금 이런 일이 사건에 가까울 정도로 펼쳐지고 있거든요.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과 올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 사이에는 되돌릴 수 없는 거리가 발생해 있단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부지런히 읽을 필요가 있겠죠. 또한 우리 동시의 흐름을 개관할 정도의 독서가 요구되고요. 동시를 개관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까요. 우리 동시 문학사의 주요 동시집을 한 곳에 죽 세워 꽂아 놓으면, 채 3미터가 안 된다고 보는데, 그 정도의 독서도 하지 않고 좋은 동시를 써보겠다고 하는 것이 게으름이고 시대착오라 생각합니다. 그와 함께 주요 시집이나 인문학적 독서로 시인으로서의 내실을 다져야겠고요. 산문 정신도 함께 훈련하면 좋겠어요. 시단에 비해 동시 문단 시인들의 체질이 너무 약한 것 같거든요. 좀 더 대범해졌으면 좋겠어요. 아님 말고! 농담과 무책임의 유희 정신! 이런 유쾌와 통쾌, 발랑과 발랄이 어우러지는 동시단이 되었으면 하죠.
김개미 : 아직 한국 동시는 더 많은 발전이 필요하며 또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데요. 이안 선생님께서도 평론집 머리말에 “우리 동시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가능성’으로만 끝나면 재미없잖아요?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이안 : 끝까지 가보는 정신, 좀 크게 실패해보겠다는 근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감각의 극한까지, 실험의 극한까지, 상상의 극한까지. 좀 더 큰 포부, 말하자면 동시를 가지고 세계문학적 지평까지 가보겠다는 큰 꿈을 가지면 좋겠어요. 『산해경』이나 『장자』의 상상력,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판타지, 이런 건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시정신이고 시적 인식의 문제라고 보는데, 동시로써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러자면 동시는 어떤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내다버리는 게 필요하겠죠. 저마다 다른 동시관으로 재미나고 즐겁게, 미답처를 딛는 기분으로 나간다면, 가능성을 넘어서는 성취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김개미 : 선생님께서는 창작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특히 《동시마중》은 동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신인 발굴은 물론 시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인들의 동시까지 《동시마중》을 통해 발표되고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이안 : 창간 첫해인 2010년엔 많이 힘들었죠. 사생활이 완전히 몰수당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많이 생겼어요. 동시단에서뿐만 아니라 동화작가들, 시단의 선후배 시인들까지 나서서 거의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계시니까요. 마음이 따뜻하고 고맙죠. 시단의 협력과 지원이 없었다면 재미가 훨씬 덜했을 거예요. 독자들도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돕고 싶어 하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돕고 있는데, 그런데도 제대로 못 꾸려간다면 그건 전적으로 제 책임일 것 같아요.
김개미 : 동시 톡톡,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팟 캐스트, 권태응 어린이시인학교 등 창작 이외에도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적잖은 노력과 열정과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한 일이지요. 다른 시인들처럼 틀어박혀 글만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시는지요?
이안 : 일이 많긴 한데, 제가 힘들 때 이 일들이 저를 버티게 해주었으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하게 돼요. 물론 가끔은, 틀어박혀 쉬고 싶단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죠. 어쩔 땐 아름다운 은퇴 같은 것도 상상해보고요. 하지만 틀어박혀 글 쓴다고 해서 잘 써지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끝까지 밀고 가볼 생각이에요.
김개미 : 아내 되시는 송선미 선생님도 동시를 쓰시고 또 동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는 걸로 압니다. 어떠세요? 부부가 함께 글을 쓴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 그러면서 함께 산다는 것. 많은 격려와 이해를 주고받을 것 같은데요. 혹시 한 분이 시가 안 써질 때 다른 분이 잘 써지고 그러면 시기와 질투가 생기지는 않습니까?
이안 : 그렇기는 하죠. 송선미 씨가 쓴 격월평을 보거나 어떤 동시를 읽을 때는 기가 죽기도 해요. 하지만 우린 서로 달라, 다르니까 잘할 수 있는 것도 서로 달라, 이렇게 위안하면서 힘껏 응원하죠.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라죠. 송선미 씨 첫 동시집과 제 세 번째 동시집이 함께 출간되면 좋겠단 소망을 갖기도 했는데, 송선미 씨 동시집이 먼저 나올 거란 예상과 달리 제 것이 먼저 나오게 돼서 좀 아쉽고요.
김개미 : 마지막 질문입니다. 시와 동시 비평 말고 다른 무언가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요? 평생에 이거 하나만은 꼭 한번 해보고 싶다 하는 것이요.
이안 : 산골에 들어가서 좀 살아보고 싶어요. 절간 같은 곳에 기숙하면서 한 몇 년을 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혹은 창작촌 같은 데 들어가서 한 철 만이라도.
김개미 : 정성스러운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곧 나올 세 번째 동시집을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이안 : 제 동시를 꼼꼼히 들여다보시고 좋은 질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를 돌아다볼 수 있어 좋았어요. 저도 김개미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엘프 작성시간 16.03.21 이 글이 왜 이제야 제 눈에 들어온걸까요...
이안 시인의 수업을 듣고 싶고 이안 시인에 대해 많이 궁금했던 사람으로써
무지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아니눈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3.21 4월 말에 매주 화요일
한국적가회의에서 동시창적교실 개강합니다
12강이고 저녁이에요^^ -
답댓글 작성자엘프 작성시간 16.03.21 아니눈물 감사합니다~^^
장소는 서울이겠죠...
저는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한 번 더 읽어야겠어요~^^; -
답댓글 작성자아니눈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3.21 엘프 네에ㅡ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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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경숙(서울구로초) 작성시간 19.06.09 인터뷰 정말 좋네요. 깊이 있구요. 링크라도 퍼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