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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방

심장心腸

작성자착한혀|작성시간26.06.10|조회수64 목록 댓글 1
 몇 해째 사다 심어도 자꾸 죽기만 한다니까

 꽃나무 파는 아저씨 말이

 모란은 가을에 잎 다 진 다음에 심어야지

 봄에 심으면 살리기가 힘이 든다는 거야

 그럼, 가을에 팔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니까

 가을에 누가 꽃나무를 사 가겠느냐는 거야

 가을엔 단풍 보기도 바쁘다는 거야

 그렇지만 아저씨한테 또 모란을 샀지

 모란이 안 되는 이유를 알았으니까 더 정성껏

 저기 저, 하얀 꽃 피운 모란이 그때 사 온 모란인데

 아주 이뻐 십오 년도 더 살았어

 모란은 다 귀해

 어렵게 살지 않은 모란은 없어


-이 안 「옆집 할머니 모란 자랑」 전문 (웹진 《같이가는기분》2026. 봄호)

  “꽃나무 파는 아저씨”가 끌어안고 있는 모순은 “모란”의 생리生理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삶을 위한 생리生利-자본주의적인 행동의 간격에서 온다. 봄에 심은 “모란”은 “죽기만” 한다. 화자는 거듭되는 ‘죽음’의 경험을 통해 봄에 심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모란”의 운명을 알게 되었다. “꽃나무 파는 아저씨”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을에”는 팔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완전한 “모란”이 되기 이전에 맞닥뜨리는 불합리한 세계의 구조다. “모란이 안 되는 이유”를 안 화자인 “옆집 할머니”는 “모란”과 ‘운명’ 사이에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 “모란”의 삶을 주체적으로 지켜내며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야 하는 것이 미션이다. “아저씨”와 같이, “모란”의 운명을 알면서도 “아저씨한테 또 모란을” 산 화자는 “십오 년도 더” 산 모란의 양육자가 되었다. 거듭되는 “모란”의 죽음은 마치 화자의 임사체험과도 같다. 거듭되는 모란 키우기는 마치 생에 대한 도전과도 같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살려내고자 하는 마음이다.

 간혹 자의식이 모든 것을 휘감아버리는 시나 서사에서 ‘이 망할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해!’를 외치며 수렁에 빠진 자기 삶의 견인에 몰두하다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소리치는 경우를 왕왕 마주하곤 한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때로 편향되고 협소한 시야를 통해 응축된 힘을 드러낸다. 부조리한 세계 혹은 거대한 재난 속에서 일인칭의 존재가 돌올해지는 순간이랄까. 그러나 “모란”과 “할머니”의 관계는 보다 소박하고 보다 어른스럽다. 레비나스의 환대는 자기 자리를 내주는 일이다. 돌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세계와 계속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화자의 “삼백예순 날”은 “섭섭해 우옵내다”라고 고백하듯, 울고 있는 시간이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삶과 죽음의 구분이 무력해지는 역설의 시간이다. 비대칭, 불균형, 편향, 오래된 시소처럼 아무도 없는 데도 자꾸 한쪽으로만 기울어진다는 것. 이쯤에서 묻게 된다. 내 존재의 의의를 타자에게 내맡기는 이 마음의 발원지는 대체 어디인가. 어떤 이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운명에 놓인 존재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이 마음은.

 

[출처] 김준현- 심장心腸|작성자 webzinese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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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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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반야 | 작성시간 26.06.14 어렵게 살지 않은 모란은 없다는 말
    정말 귀하다는 말
    그래서 더 귀하고 소중한 모란
    심장이 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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