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물방울 이야기 1 /김륭

작성자풀꽃소녀|작성시간26.09.09|조회수53 목록 댓글 2

물방울 이야기 1 /김륭

 

나홍주가 빨간 물방울 하나를 주워 왔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물방울, 그것을 어떤 사람은 어항 속 금붕어의 기억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달에 간 토끼의 눈망울이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우주라고 했지만, 나홍주는 말 못 하는 짐승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라며 울었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 어떤 소녀가 따라 울었고 어떤 소년은 총을 만들어 자기 오른쪽 머리를 겨누고 빙빙 돌렸지만, 나는 나홍주가 주워 온 빨간 물방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사랑은 자꾸 묻는 게 아니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지금 편지를 쓰고 있다. 발그레 부풀어 오른 두 뺨을 어루만지며 물방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는 없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른 새벽 풀잎 끝에 매달려 있는 이슬방울도 누군가의 꿈인지 모른다. 집 없는 길고양이 목에 달아 줄 수 있고, 복숭아와 바꿀 수도 있고 벽돌이나 창문으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나홍주가 주워 온 빨간 물방울 하나로 복숭아 두 개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나홍주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빨간 불이 켜진 방에 파란 불을 켜러 들어가고 있다.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창비>> (창비 2018)

 

리뷰:

아름답다. 김륭 시인의 물방울 이야기 1을 읽는데 쉘 실버스타인의 퍼즐 조각이 떠올랐다. 골목길에 버려진 퍼즐 조각 하나가 원피스의 주름일 수도 있고, 작은 털 뭉치일 수도 있고, 망토 끝자락일 수도 있듯 빨간 물방울도 금붕어의 기억, 토끼의 눈망울, 우주, 말 못 하는 짐승들이 남긴 이야기가 된다. 하나로 정해지지 않아서 좋다. 더 많은 세계를 품어서 좋다.

화자는 그 물방울이 무엇인지 자꾸 캐묻지 않는다. 사랑은 자꾸 묻는 게 아니니까. 그저 물방울 속으로 들어간다.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나도 자꾸 물방울 속으로 들어간다.

특히 빨간 불이 켜진 방에 파란 불을 켜러 들어가는 마지막이, 읽을수록 여러 겹으로 설렌다. 화자는 빨간 불을 끄고 슬픔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저 네가 우는 방으로 들어가, 그 곁에 파란불 하나를 켜 준다. 깊고 조용한 지지와 응원이다.

그리고 빨간 물방울 하나로 복숭아 두 개를 만든다니. 이상하게 아름답다. 피나 눈물 같던 아픔을 서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복숭아로 만들다니. 아픔을 반씩 나누어 가지겠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나도 떨어져 나온 것, 작고 몽당인 것, 미완의 존재에 눈길이 자주 간다. 불완전한 물방울 하나가 하나의 세계를 품고 이쪽저쪽 기울일 때마다 전혀 다른 빛깔로 반짝이는 시로 태어나다니 놀랍다. 아마 그래서 이 시가 내 가슴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나 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강아지 | 작성시간 26.09.10 new 빨간잎에서 떨어지는 빨간 물방울. 잠시 멈춤을^^
  • 작성자반야 | 작성시간 17:52 new 물방울의 선명한 눈동자!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