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 화석
김준현
오늘은 내가 주번이다
칠판을 열심히 지워도 글씨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공룡의 시간이 뼈 화석에 남아 있는 것처럼
국어 시간 영어 시간 수학 시간
쉬는 시간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미래의 고고학자 눈으로 유심히 보면 다 보여
떠드는 사람 염승현 이윤호 썼던 것도
스승의 날에 선생님 감사합니다 썼던 것도
혜지랑 소원이 백 일 된 날
혜지♡소원이 축하했던 것도
물론 없지만
분필로 꾹꾹 눌러 툭툭 새겼던 거 다 기억해
혜지 대신 내 이름 적었던 것도
소원이 바보 적었던 것도
이 칠판은 다 기억할까
백 번도 넘게 지웠던 자리
몇 년 동안 몇십 년 동안
칠판은 얼마나 많은 애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를 기억하고 있을까
《노릇노릇 딴 생각을 구웠어》(문학동네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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