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이정화
둘째는 이쁜이
막내는 귀여웠지만
나는 싸가지가 없어
문이 큰 소리로 닫힐 때
엄마는 나를 먼저 다그치고
바람이 그랬다는 말을 믿어 주지 않아
엄마는 우리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했어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잘 설 수 있는 어른이 되어 가는 중
닫히는 문을 빠르게 나올 수 있는 어른이 되어 가는 중
매일 학교에 지각했어
싸가지 없는 친구들과 학교 화장실에 낙서를 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버려진 캔을 골라 멀리 차 버리고
웃음을 한꺼번에 비워 버렸어
집으로 돌아오면 문을 살살 닫고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지
엄마는 무슨 바람이 불었냐 물었어
동생들은 귀여운 그림을 그리며
무럭무럭 커 가고 있는데
엄마, 나 글을 써요
칭찬을 들으면 딴짓하고
욕을 들을 때 거울을 봤어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끝나는 편지를 구기고
선생님 잘했다고 내 머리를 쓸지 말아요
예의 바른 아이가 된다면 나는 펑
터질 것 같아요
터질 것 같아요
엄마는 우리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했어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싸가지를 주세요
나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커 가는 중
상처를 모르는 사람으로 커 가는 중
무럭무럭 자라 싸가지 없는 친구들과 어깨동무해야지
못된 울타리에게 심하게 욕해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례한 쓰레기통에 삿대질하고
우는 아이에게 다정해야지
싸가지가 없대요
나는 너무
《창비어린이》2026년 여름 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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