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家之狗상가지구
喪家之狗는 초상집의 개같이‘초라해서 볼품이 없는 모습’을 뜻한다.
‘정승집 개’라는 말이 있다. 정승집의 개는 그야말로 ‘개 팔자’다.
平素(평소)에 잘 먹고 寵愛(총애)를 받다가 죽으면 수많은 問喪客(문상객)들로 門前成市(문전성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政丞(정승)이 먼저 죽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또 다른 ‘개 팔자’가 된다. 발에 차이고 먹이조차 제대로 먹지 못해 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喪家之狗는 ‘초라해서 볼품이 없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말이 孔子의 형색을 묘사한데서 由來됐다면 놀라운 일이다.
萬人의 尊敬(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가 喪家의 개 같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들어보자.
사실 그는 不遇(불우)한 一生을 살았던 사람이다.
세 번째 妾의 소생에다 어려서 父母를 여의었으며 아내는 家出했고 아들은 자기보다 먼저 죽었다. 後에 14년 동안 무려 여섯 나라를 遊說(유세)했지만 成功은 커녕 심한 苦楚(고초)를 겪기까지 했다.
한번은 鄭나라에서 遊說(유세)할 때였다. 혼자 城 밖의 東門 앞에서 서성이는데 弟子들은 스승을 찾기 위해 四方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孔子를 본 어떤 사람이 弟子 子貢(자공)에게 말했다. 『東門 앞에 어떤 老人이 하나 앉아 있더군요. 聖賢(성현)님과 비슷하게는 생겼지만 疲勞(피로)에 지쳐있는 모습이 마치 喪家의 개 같아 보이더군요.』 子貢이 그 이야기를 傳하자 孔子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喪家의 개 같다고? 그럴 만도 하겠지. 본디 초상난 집에서는 개를 돌볼 틈이 없거든. 굶주린 개의 꼴이 아마도 내 모습 같았던 모양이지. 하하하!』 벗고 보면 다 똑 같은 데 어깨나 모자나 가슴에 뭐 다른 것을 달고 있으면 별볼일없는 인간이나 사물도 어깨나 모자나 가슴에 단 것, 그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은.... 보이는 그 物件은 달라진 게 없어도 그것을 보는 우리 눈은 이미 겉모습이 나타내는 그대로 생각되어 지도록 薰習(훈습)되어 버린 것 때문이리다.
望文生義(망문생의)란 말은 【글만 바라보면서 의미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글에도 外樣(외양)과 內訓(내훈)이 있음을 가르치는 漢字成語(한자성어)다.
孔子인줄 알고 보았다면 누가 그를 喪家의 개 같다고 여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