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師說사설 - 스승으로 말하면

작성자能在|작성시간11.04.16|조회수548 목록 댓글 0

師說 사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모름지기 도가 있는 군자를 스승으로 삼아 옛 성인의 도를 배움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道(도)가 세상에 절로 행하여지고 있을 적에는 배움에 노소가 없고 귀천이 따로 없어 누구든 도가 있는 사람이면 기꺼이 스승으로 받들고 배웠으며 먼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묻는 것을 부끄러워 않았다.

그러나 그 후 사람들이 스승을 삼고 제자가 되는 것을 수치스레 여기는 自高自大(자고자대)의 풍조가 생겨나자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개탄하고, 이를 깨우쳐주기 위하여 師說(사설)을 지었다고 한다. 올해부터 스승의 날에는 휴교를 한다고 한다. 시류는 스승을 곤란하게 하고 일부의 스승답지 못함과 학부모의 잘못된 스승관이 참스승의 가슴과 어린학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소식이다.

이글을 지은 한퇴지(韓退之: 768-824)는 중당(中唐)의 대문호로, 이름을 유(愈)라하며, 퇴지는 그의 자이다. 하남성 창려(昌黎)사람으로, 당송팔대가의 첫머리에 꼽히며, 저서에 <창려집(昌黎集>이 전한다. 당시 진사시에 합격한 이씨의 아들 반이라는 사람에게 지어준 것으로 오늘 날 저만 잘나고 저만 똑똑하다고 믿는 요즘의 세태에 한번 쯤 읽어 보면 생각되어 지는 바가 많을 듯하다.

한문에 토를 달지 않았다. 해석만 읽어보아도 그 뜻이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 여기며 진정한 많은 스승님께 존경의 마음을 담아서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올려 본다.

다음은 한퇴지(韓退之)가 지은 스승에 대한 해설이다.

 

古之學者 必有師니 師者는 所以傳道, 授業, 解惑也라

옛 학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라 하는 것은 도를 전하고 학업을 주고 의혹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다.

人非生而知之者인댄 孰能無惑이리요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닐진대 누가 능히 의혹이 없을 수 있으리오

惑而不從師면 其爲惑也 終不解矣니

의혹하면서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는다.

生乎吾前하여 其聞道也 固先乎吾면 吾從而師之하고

누구든 나보다 먼저 나서 그 도를 듣기를 진실로 나보다 먼저라면 내 좇아서 이를 스승으로 할 것이요

生乎吾後하여 其聞道也 亦先乎吾면 吾從而師之니

나보다 뒤에 났다 하더라도 그 도를 듣기를 또한 나보다 먼저라고 하면 내 좇아서 이를 스승으로 할 것이다.

吾 師道也니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리오

나는 도를 스승으로 하거니, 어찌 그 나이의 나보다 먼저 나고 뒤에 남을 개의하랴!

是故로 無貴無賤하며 無長無少요 道之所存은 師之所存也라

이렇기 때문에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으며, 나이 많은 것도 없고 적은 것도 없는 것이요,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嗟乎라 師道之不傳也 久矣니 欲人之無惑也 難矣라

슬프다! 사도가 전하여지지 아니한 지 오래되었으니, 사람이 의혹이 없고자 하기는 어렵다.

古之聖人은 其出人也 遠矣로되 猶且從師而問焉어어늘 今之衆人은 其下聖人也 遠矣로되 而恥學於師하니

옛날 성인은 사람에게서 뛰어나기를 멀리 하였으되 오히려 또한 스승을 좇아 물었건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 성인에서 떨어지기를 또한 멀리하였으되 스승에서 배우기를 부끄러이 여긴다.

是故로 聖益聖하고 愚益愚라 聖人之所以爲聖과 愚人之所以爲愚 其皆出於此乎인저

이렇기 때문에 성인은 갈수록 성인이요, 우인은 갈수록 우인이라, 성인이 성인 된 까닭과 우인이 우인된 까닭은 그 모두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愛其子하여는 擇師而敎之하되 於其身也엔 則恥師焉하니 惑矣라

그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스승을 가려서 이를 가르치되, 그 자신에 있어서는 곧 스승 둠을 부끄러이 여기니 미혹한 탓이다.

彼童子之師는 授之書 而習其句讀者也니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라

저 동자의 스승은 그에게 책을 주어서 그 구두를 익혀 주는 사람이니 나의 이른바 그 도를 전하고 그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다.

句讀之不知와 惑之不解에 或師焉하며 或不焉하니 小學而大遺라 吾未見其明也로라

구두를 알지 못함과 의혹을 풀지 못함에 혹은 스승을 두고 혹은 그렇지 않으니,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는 것이라, 아는 그것을 밝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巫醫樂師百工之人은 不恥相師어늘 士大夫之族은 曰師曰弟子云者면 則群聚而笑之하여

무당, 의원, 약사, 온갖 장인 등은 서로 스승이 됨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데, 사대부의 족속들은 스승이라 하고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이면 곧 모두들 모여서 이를 비웃는다.

問之則曰 彼與彼로 年相似也오 道相似也니

이것을 물으면 곧 말하기를, '저이와 저이와는 나이가 서로 같고, 도가 서로 비슷하다.' 고 한다.

位卑則足羞요 官盛則近諛라 하니 鳴乎라 師道之不復를 可知矣로다

지위가 낮으면 수치스럽게 여기기에 족하고 관위가 높은 즉 아첨에 가깝다고 하니, 슬프다! 사도의 회복되지 않음을 알 만하다.

巫醫百工之人을 君子 不齒하니 今其智乃反不能及하니 可怪也歟인저

무당, 의원, 악사, 온갖 장인들을 군자가 이를 비천하게 여기지만, 오늘날 그 지혜가 이에 도리어 저들에게 미칠 수가 없으니 괴이하게 여길 만하다.

聖人은 無常師라

성인은 본래 일정한 스승이 따로 없다.

孔子 師(담)子, (장)弘, 師襄, 老聃하시니 (담)子之徒 其賢이 不及孔子요

공자는 일찍이 담자, 주나라의 대부 장홍, 노나라의 악관 사양, 도가의 시조 노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담자의 무리들은 그 어질기가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孔子曰 三人行에 則必有我師라 하시니

공자가 말하기를, '세 사람이 동행한다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셨다.

是故로 弟子 不必不如師오 師 不必賢於弟子라

그러므로 제자라고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며, 스승이라고 반드시 제자보다 현명한 것은 아닌 것이다.

聞道 有先後요 術業이 有專攻일새니 如是而已니라

다만 도를 듣고 아는 것이 나보다 먼저인가 뒤인가를 보아 그 먼저 되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면 되는 것이요, 또 술업에는 전문으로 연구하는 것이 다르므로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을 스승으로 하면 될 따름이다. 여기에 무슨 귀천이 있고 노소가 따로 있을 수 있겟는가!

李氏子 蟠이 年十七이라 好古文하여 六藝經傳을 皆通習之러니

정원 19년에 진사에 급제한 이씨의 아들 반이란 사람이 나이 겨우 열 일곱에 옛 학문을 좋아하여, 육예(시,서,역,춘추,예,악)의 경전을 다 통하여 익히더니

不拘於是하고 請學於余어늘

당시의 스승을 두고 제자가 되는 일을 수치로 알던 세상 형편에도 아랑곳없이 나에게 배우기를 희망해 왔다.

余嘉其能行古道하여 作師說以貽之하노라

나는 그가 옛 성인의 도를 행하려는 것을 가상히 여겨 이 사설을 지어 써 그에게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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