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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답사 및 취미

제400차 '고립의 시대' 강의를 듣고

작성자안성환(23회)|작성시간25.06.16|조회수41 목록 댓글 0

‘고립의 시대’ 강의를 듣고

『고립의 시대』 는 40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저자 노리나 허츠(1957년, 영국출생)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가 직면한 외로움의 본질과 그 심각성을 통찰한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사단법인 울산문화아카데미 전임강사인 이범교 교수님의 2시간가량의 강의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교수님의 강의는 다음 다섯 가지 큰 주제로 나누어 강의하셨다. 먼저 ‘불행히도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외롭다’ 이다. 두 번째가 ‘우리는 왜 더 외로워졌는가’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외로움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네 번째는 ‘나이별로 외로움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설명하면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로 마무리하셨다.

첫 질문에 전 세계는 지금 외로움에 돌입하고 있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요양원에 거주자의 60%는 일 년 내내 방문객이 없다고 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가족이 요양원에 있더라도 실제로 자주 찾아가기는 드물다. 영국에 밀레니엄 세대(24세 전후) 청년 5명 중 1명은 친구가 한 명도 없고, 3명은 항상 외롭다고 응답했다. 한국 역시 2021년 기준, 국민의 38%가 “항상 혹은 자주 외롭다”라고 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이며, 한국이 가장 외로운 나라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왜 우리는 더 외로워졌는가?
삶은 이전보다 훨씬 편리했지만, 사람들과의 실제 접촉은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단체모임이나 종교활동이 활발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규모 도시화, 농촌의 소외, 그리고 빠르게 발전한 기술과 비대면 문화는 외로움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 사람들은 이제 카페 가기보다는 배달 앱을 이용하고, 직접 수업을 듣기보다 온라인 강의를 선호하며, 장보기 역시 인터넷으로 대신하고 있다. 가족들은 요양원으로 흩어지고, 큰집에는 부부만 남는 시대가 되었다. 마찰은 줄었지만, 접촉 역시 줄어들었다. 결국, 우리는 편리함을 선택한 대가로 ‘단절’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외로움이 왜 문제가 되는가?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다.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고, 신체적 건강까지 해친다. 외로운 사람은 불안, 우울증, 심지어 자살 위험이 커지며, 심장마비나 뇌졸중 가능성도 20%나 증가했다. 치매 발생률은 무려 60% 이상 높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통계는 외로움이 담배 15개비를 매일 피우는 것보다 해롭고, 비만보다 두 배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외로움은 실제 생존에도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질병’ 이다.

그렇다면 누가 더 외로운가?
우리는 흔히 노인이 더 외로 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16세~34세 사이에서도 20% 이상 친구가 ‘한 명도 없다’라고 말한다. 이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외로움은 실패한 사람보다 오히려 ‘성공한 사람’이 더 많이 느낀다고 한다. 반면 외로운 수치가 7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 평균은 젊은 층 보다 낮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외로움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해결의 핵심은 ‘어울려 사는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은 성격이 좋고 소통도 활발하다. 반대로 홀로 사는 사람은 점점 대화의 방법을 잊고 자기표현이 강해지며, 타인과의 마찰이 심해질 수 있다. 외로움은 소통 단절의 결과로 보면 된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누구와도 공감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영국에는 ‘외로움 부장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안이다. 이 문제의 중심에는 ‘휴대전화’ 가 있다. 손에 스마트폰만 쥐고 있으면 굳이 말하거나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만큼 감정적, 정서적 교류가 사라진다. 이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공감력 상실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정리하면
오늘날은 ‘가족의 해체 시대’이다. 농경사회에서는 3대가 함께 살며 정서적인 안정과 지혜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며, 자녀는 원룸으로 나가고 부모는 요양으로 보내는 구조이다. 지자체들이 각종 동아리나 소모임들을 장려하는 이유도 외로움의 해소를 위한 것이다. 4차 혁명은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감 능력을 소멸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소고기를 먹으면서 우리는 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도살장에 일하는 사람은 우는 소의 눈물을 보며 고통을 체감하고, 오히려 고기를 멀리한다고 한다. 기술이 편리함을 주지만, 그만큼 감정은 무뎌진다. 이것의 주범이 바로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라고 한다. 산업의 발달에 제일 크게 성장하는 것이 인공지능이고 그 피해는 인간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는 결혼식 하객도 대행업이 있고 또 애인도 대행해 주고, 섹스를 대신 해주는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외로움은 기술로 대체될 수 없으며, 공동체의 연대 없이는 더욱 단절되고 불안정한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고립의 시대』는 단순한 종말론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을 담고 있다.
“우리는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2025. 6. 15 안성환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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