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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유래

정곡면 두호마을

작성자안성환(23회)|작성시간09.04.12|조회수110 목록 댓글 0

정곡면소재지에서는 남동쪽 7km 남짓한 거리로 강변에 있는 마을이다. 법정동리로는 적곡(赤谷)리 마을이다. 원당과 두호, 웃땀, 아래땀 등 세뜸으로 나누어져있고 북실(적곡)의 협동이다. 옛지명이「북두미」「북듬이」인데 어떤이는「북두루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북쪽으로 봉수대가 있던 가막산(可莫山 또는 可幕山)이 높이 솟아 있고 함박산이 서북방을 가린 채 동네를 감싸고 있고 동남쪽으로 남강이 길게 흐르고 있다. 원당은 아마 맨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살았던 묵은 터란 뜻에서 붙여진 지명인 듯 하다. 그리고「북두미」「북듬이」로 불렀던 두호마을은 아래위로 두뜸을 이루고 있는데 웃땀이 여남은집, 아래땀이 30여가구이다. 「북두미」「북듬이」란 지명은 정확한 근거가 없이 각기 다른 풀이를 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쓰는「북」은 「붉다(赤)」의 받침소리 리을의 탈락과 묵음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가막산의 횃불, 땅심 좋은 황토밭, 강물의 범람으로 벌건 흙탕물에 잠기는 저습지대, 못이나 늪이 많은 둠곳,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작은 호수란 뜻의 두호(斗湖)가 된 것이니 지명의 변천사를 보면 재미있지만, 마을의 역사를 무시하고 작명한 것이라 화가 난다. 원당마을은 옛날 도자기를 굽던 곳(민요지)이란 기록도 있는데 지금은 흔적이 없다. 뒤편 산골짜기에 있는 약새미물도 효험 있기로 소문난 물이다. 동네 뒤로는 여러 개의 봉오재(봉화재)가 있고 당산재 등 옛사람의 애환이 서려있는 소로잿길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됐다. 아래땀 뒤 넓은 산소는 충의위(忠毅衛)를 지낸 두재(斗齋) 안숙(安淑)공의 묘소이다. 묘역 옆에 수령 500년 됐다는 거대한 모과나무는 기념물이 될만하다. 동네어귀에 남정용(南廷容)공의 효심을 기리는 돌비가 서 있고 남씨문중의 모금재(慕錦齋)와 원강정(元岡亭)이 있다. 세 뜸에는 지금 남씨27집, 최씨, 김씨가 여남은 집, 전씨7집, 정씨 5집 등 모두 50여가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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