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행자 일행이 바다를 건너던 중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부낭(浮囊)에 겨우 목숨만 의지하여 정처없는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때 바다 속에 사는 배고픈 나찰이 나타났다.
“여보시오. 당신들이 지금 타고 있는 것을 나에게 줄 수 없습니까?”
“다른 것은 모르지만 이것만은 줄 수가 없습니다.” 하며 거절하였다. 그들은 막중한 임무를 띠고 이웃나라로 가던 중이었으므로, 나찰의 요구를 들어 줄 수가 없었다.
“당신이 설령 우리를 죽인다고 해도 이것을 당신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나찰이 다시 말하기를 “그대들이 만약 전부를 줄 수 없거든 반이라도 나누어 주시오.“
그것도 줄 수 없다고 하니 나찰은 또 이르기를
”그대들이 정녕 반도 줄 수 없거든 삼분의 일이라도 줄 수 없습니까?“ 라고 사정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거절하니,
나찰은 다시 말하기를 “그대들이 만약 손바닥만큼도 줄 수 없다면 내가 지금 배가 몹시 고파 고통이 심하니 티끌만큼이라도 주시오.” 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매우 미안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비록 바늘귀 만큼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 하므로 조금이라도 이것을 준다면 바로 기운이(바람) 점점 새어나가 마침내 물에 빠져 죽는 일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하며 끝까지 나찰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대반열반경」11권 성행품(聖行品)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가섭 보살에게 보살이 닦아야 하는 거룩한 行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계율을 수호하는 마음을 금강과 같이 견고하게 할 것을 강조하신 내용이다. 여기서 부낭은 계율을 뜻하고 나찰은 우리 마음 속의 번뇌에 비유했으며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생사고해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고자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부처님의 계(戒)라는 부낭(浮囊)에 겨우 의존하여 있다. 이는 조금이라도 떼어 줄 수 없다. 차라리 목숨을 내어 줄 지언정, 계(戒))를 파하면 고(苦)의 바다를 건너는 일이 요원해 지기 때문이다. 계(戒)는 고해(苦海)에 빠져 윤회하지 않게 해 주는 부낭이라는 뜻의 이 벽화를 대웅전에 그린 뜻은 불자들이 조석으로 새겨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무엇을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까”라는 제자들의 물음에 “계를 의지해서 수행하라”고 하셨다. 수행은 작은 행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 운문지 제52호 <벽화이야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