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문을 지나거나 혹은 범종루, 또는 많은 대중이 설법을 듣기 위해 법당 앞에 세운 누각을 밑을 지나면 절 마당이 드러납니다. 남섬부주에서 산 넘고 물건너 수미산에 도착하여,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지나 이제 부처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절마당 건너에 불보살님이 계신 법당이 보입니다. 그 이름도 다양하여, 대적광전, 대웅전, 영산전, 원통전, 지장전, 등등입니다. 일반 가정에 방문하였을때 먼저 어 른께 인사를 드리듯이 부처님 나라에 들어섰다면 제일 먼저 부처님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조심스럽게 가운데 문과 길(御間 어간)을 피해 양쪽 문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립니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불교에서는 많은 부처님과 보살님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분들이가요?", "한 분의 부처님만 계시면 되지 왜 그렇게 많은 불보살님이 계십니까?"
이점은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닙니다. 사실 경전을 제외한 인간의 역사에 실제 존재하였다고 증거가 발견되는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불보살님을 친견하였다는 기록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기도속에서 만난 것일뿐, 실제 그 분들이 언제 어디서 교화를 펼치셨다는 기록은 찾아볼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많은 부처님이 존재하는 이유를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교에서는 '모든 이가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역사상 석가모니 부처님이외에도 과거에도 수많은 부처님이 계셔야 하고 현재에도 수많은 부처님이 계셔야 하며, 미래에도 많은 부처님이 계셔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수많은 부처님이 등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칠불과, 연등부처님, 미륵부처님의 경우 시간적 측면에서 언급했다면,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 동방유리광 세계 약사여래불의 경우는 공간적인 측면에서 언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의 모습은 바로 우리 중생의 본모습(불성)을 다양하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둘째는 우리 주앳ㅇ의 살아온 과정이 달라 그 업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러한 업으로 인해 중생의 이해와 요구는 너무도 다양합니다. 따라서 중생이 불보살님께 바라는 바가 똑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바람에 따라 불보살님의 가피가 다양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모습으로, 어떤이에게는 약사여래불의 모습으로, 어떤 이에게는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다양한 불보살의 모습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다가가는 다양한 방편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