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은 우상이 아닌가?' 간혹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상이라는 말에 거부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말을 통해 우리 스스로 살펴볼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불보살님을 형상으로 모시기 시작한 것은 1세기 말엽부터라고 합니다. 물론 부처님 당시에 우전왕과 파사익왕이 도리천의 마야부인에게 설법하러 가신 부처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병이나자 그 신하들이 붉은 전단나무와 자마금으로 부처님을 모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여튼 학술적으로는 1세기 말엽 이전을 무불상 시대라고 합니다. 이때에는 부처님형상 대신 보리수, 법륜, 탑 등을 예배의 대상으로 하였다고 봅니다.
부처님을 모시지 않은 것은 교학적 근거와 신앙적 근거때문이라고 봅니다. 교학적 근거는, 열반에 드신 부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으로 그 모습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적 근거는 부처님을 보통 사람과 동일하게 나타내는 것이 무례한 일이며 깨달음을 얻은 무한한 덕을 간직한 부처님을 감히 유형의 상에 한정시킨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 불교가 등장하면서 불신관(佛身觀)의 변화, 불자들의 간절한 신앙적 염원이 어우러져 1세기 말엽부터 불상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심, 그리고 간절한 신앙의 염원에서 불상을 모시기 시작 되었습니다.
<증일 아함경>을 보면 불상 조성과 예배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부처님께 예배하려 하거든
지난 과거나 장차에 올 미래나
그리고 지금의 현재에 있어
그것 모두 공(空)법이라 관찰하라.
...
세갈래 나쁜 길에 안 떨어지고
마침내는 저 천상에 태어나
거기서 그는 천상 왕이 되나니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복이다.
일단 뒤의 게송은 파사익왕과 우전왕에게 불상을 모신 공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앞의 게송은 수보리 등에게 '부처님께 예배한다"는 진정한 의미를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모든 것에는 형식과 내용이 함께 갑니다. 특히 마음 공부를 하는 신행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닦아라'하거나 '네 마음속의 부처님을 찾아라'하면 초심자들에게는 뜬 구름을 잡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내용을 채우기 위한 형식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보이는 무엇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때 부처님 형상을 모셔 놓고 그 마음을 달랬던 파사익왕과 우전왕처럼, 대승불교도들이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신앙의 염원으로 부처님 형상을 모셨던 것처럼, 보이는 부처님 형상을 통해 하염없이 자신을 낮추어 갈 때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불상은 우상이 아니라 바른 길을 찾아가게 하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자 불보살의 화현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이 란 그 불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보이는 부처님 형상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부처님을 찾아간느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그 바깥 형상에 머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 들인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상이라는 것도 형상으로 모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으로 모시든 마음속으로 그리든 그것을 실체화하고 무조건적으로 절대시한다면 그것이 우상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