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적 폭력이 육체적인 폭력보다 훨씬 해롭고 사악한 것이다
아힘사란 말 들어보셨지요?
비폭력으로 번역되고 있는 아힘사
간디가 인도를 폭력으로 지배하는 영국에 대해 항거하는 방법으로 실천했던 아힘사
이 아힘사는 그렇게 비폭력이라고 번역되지만 사실은 이것은 아힘사라는 진정한 의미와는 조금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가슴속에서 모든 폭력이 가라 앉고 난 본래의 상태
그 상태는 사랑이라고 이야기하죠.
아힘사는 바로 이런 사랑을 뜻하는 말
비폭력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비폭력을 넘어서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아힘사
이 아힘사를 실천한 간디의 손자 아롱 간디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 부터 비폭력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다고 합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살던 어린시절 아롱 간디는 백인 아이들 한테 가면 너무 검다고 매를 맞고 또 흑인 아이들 한테 오면 너무 희다고 맞으면서 굴욕감과 분노를 쌓아왔다고 하지요.
그런 아롱 간디는 인도로 와서 할아버지인 간디에게 아힘사의 진정한 뜻을 배우게 됩니다.
간디는 손자 간디에게 비폭력의 진가를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 먼저 폭력으로부터 폭력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이해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간디는 손자에게 폭력의 족보를 나무의 가지 처럼 그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그날 하룻동안 생긴 일들의 폭력성을 분석하도록 도우면서 그 분석한 것을 손자로 하여금 나뭇가지에다 붙이게 하였다고 합니다.
나무의 한 쪽 가지에는 육체적인 폭력을 붙이고
나머지 다른 한 쪽에는 정신적인 폭력을 붙이도록 하였다는 것이지요.
두 달 만에 손자 아롱 간디의 방안은 한 쪽 모두가 정신적인 폭력의 가지로 뒤덮였다고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아롱 간디에게 이 정신적 폭력이 육체적인 폭력보다 훨씬 해롭고 사악한 것이라고 가르쳤지요.
정신적 폭력이 육체적인 폭력에 불을 지피는 연료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인식하고 이해할 수 없다면 평화를 위한 노력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입으로만 비폭력을 외치면서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폭력성을 너무나 자주 목격해왔습니다.
가까운 경우로 정신적인 폭력의 예를 들자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피하는 행위 그것도 아주 교묘한 형태의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아힘사는 종종 힘든 사람을 견뎌내는 것을 의미하는 그런 뜻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생활 속에서도 우린 성질이 모난 사람, 성겪이 까다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피해서 저 쪽으로 돌아서 가버립니다.
그 말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그 사람의 성겪이 지니고 있는 가시에 찔리고 싶지 않다는 표현인 것이지요.
간디는 손자인 아롱 간디가 반 친구에 대해서 불평을 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거기서 성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에게 다가가라.
그 친구 옆에서 점점 더 편해지도록 노력해라.
그리고 너의 마음을 줘서 그 친구가 가진 가시가 빠지도록 도와줘라.
< 유나방송 김 재진 시인님의 방송을 듣다가 마음 깊이 와 닿아 적어놨다 올렸습니다.>